해명(海鳴)이 싫다. 
아득히 멀리, 정신까지 아득해질 정도로 멀리에서 차례차례 밀어닥치는 한적하고 위협적인 굉음.
대체 어디에서 들려오는 걸까. 무슨 소리일까. 무엇이 울고 있는 걸까. 울고 있는 것은 물일까- 아니면 바람일까. 그도 아니면 또 다른 것일까. 끝없는 넓이나 무의미한 깊이만 느끼게 하고, 전혀 안심할 수가 없다. 

애초에 바다가 싫다.
바다가 없는 곳에서 자란 나는 처음으로 그것을 보았을 때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바다일까,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바다의 주체는 물일까? 아니면 그 밑의 해저일까?
우선 그게 확실하지 않다. 물에 잠겨 있는 땅은 이미 바다인걸까?
그렇다면 저 불길한 파도라는 것은 뭘까.
파도도, 생각하기도 싫어질 만큼 아득히 먼 곳에서 너울너울 밀려왔다가는 떠나간다. 그것이 지금도 끊임없이 온 세상 해안에 똑같이 밀려왔다가는 돌아가는 걸까 생각하면 미칠 것만 같다. 그렇다면 바다는 흐느적거리며 그 영토를 쉼없이 넓혔다 좁혔다 하고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바다가 바로 보이는 방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이 깨서는 계속해서 '해명이 싫다.'고 생각했다. 정확하게 하자면, [광골의 꿈]의 첫문장을 계속해서 떠올렸다. 전날 퍼마신 술이 덜 깨어 어지러운 귓청에 파도 소리가 계속해서 울리자, 이 '해명은 싫다.' 라는 문장이 눈 앞에 전광판이 그러하듯 계속해서 번쩍이고 있었다. 싫어, 정말 싫다..   

바다 옆에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창문을 닫는다고, 귀를 닫는다고 끊이지 않는 해명을 계속해서 들어야 한다는 것. 괴로운 일이다. 이 책을 읽기 전 파도소리는 내게 언제나 낭만적인 것이었고, 꿈같은 소리었다. 하지만 교고쿠 나츠히코는 언제나 그렇듯 내 무의식 깊은 곳에 침투해서 무언가를 건드려서는 해명을 두려워하게끔 만들어버렸다. 마치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바다를 두려워 했던 것만 같다. 그 깊이. 그 아득함. 사람을 미치게 하는 끝없는 해명.

앞으로 나는 바닷가에서 살 수 없을 것이다. 이 강렬한 첫문장에 의해 바다는 불길하고도 두려운 폭력이 되어버렸다. 

나 역시, 해명(海鳴)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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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10-04-20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어디를 가셔서 쓰신 글일까요..ㅎㅎ
광골의 꿈을 읽으려고 대기시켜 놓았는데... 빨리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ㅎㅎ

Forgettable. 2010-04-20 15:30   좋아요 0 | URL
어째 한 번, 푸른 하늘이 그대로 비치는 푸른 동해였던 적이 없.었.던 동해죠.
제가 갈 때마다 흐리고 쓸쓸해요.

전 이제 막 상권 읽었는데,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좋습니다. 어렵고, 무섭고, 알쏭달쏭해요. ㅎㅎ

다락방 2010-04-20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남자친구였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은 그렇게도 겨울바다를 좋아했어요. 저를 사귀면서는 저랑 같이 가긴 했지만, 대부분은 겨울마다 혼자 그 바다를 찾는데요. 그러다가 물에 뛰어드는 사람을 한번 구한적도 있대요. 훨씬 훨씬 젊었을적에 말입니다. 그러면서 겨울바다를 밤에 보면 시꺼매서 자꾸만 뛰어들고 싶게 만든다고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오늘 뽀님의 사진이 쓸쓸하고, 인용하신 문구와 잘 어울려서 어쩐지 좀 무서워요. 무섭고 쓸쓸하고. 자꾸 저 안으로 걸어들어가고 싶어질라고 해요.


Forgettable. 2010-04-20 15:35   좋아요 0 | URL
전 겨울바다 너무 추워요.
겨울에 물에 뛰어드는 사람을 구했다니, 대단한 남자친구에요. 그 추운 날에 그 찬물에 뛰어들 생각을 하더니. 진짜 멋지다. 수영 잘한다고 떠벌거리는 전 아마 할 수 없을 거에요. 신발도 젖고, 옷도 젖을테니까요. 게다가 젖은 의복들은 얼테구요.. 이런 걱정들이 앞서서 아마 뛰어들지 못했을 거에요. 그 분 진짜 대단하다. 정말 대단한 사람을 사귀셨었군요, 락방님!!

저 검은 바다 실제로 보면 절대 들어가고 싶지 않을걸요! 저 바다 속은 무섭고 쓸쓸한 곳이에요 정말로!

다락방 2010-04-20 16:41   좋아요 0 | URL
그사람이 그렇게 말한거지 제 눈으로 본게 아니니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죠. 잘 보이기 위한 거짓말일 수도 있고.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었어요;;

Forgettable. 2010-04-21 12:02   좋아요 0 | URL
뭘. 대단했구만요 ㅎㅎ 부러워, 그.런. 사람과의 연애 +_+

Alicia 2010-04-20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명이 있군요.. 그게 해명이군요.. 바다가있는 지방소도시로 내려가 살고싶다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휴.

Forgettable. 2010-04-21 12:03   좋아요 0 | URL
와, 알리샤님이당! ㅎㅎ

해명에 대한 두려움과는 별개로 해명이란 말 좋죠.
바다가 있는 지방소도시에 내려가서 사셔도 되요. 바다 바로옆만 아니라면 파도소리 때문에 괴로울 정도는 아닐거에요, 그리고 그 느낌은 사람마다 다른거니까.. 어쩌면 시시 때때로 변하는 소리 때문에 심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Forgettable. 2010-04-21 13:10   좋아요 0 | URL
이 책의 번역가가 번역을 참 잘해주는 것 같아요. ㅎㅎ
원작자가 해명이란 단어를 사용했는진 모르겠지만요.

다락방님이랑 데이트 하기만 하면 만취데이트인데.. 알리샤님이 감당하실 수 있을까요. 헤헤^^;;;
한 번 같이 만나면 재밌겠다.

다락방 2010-04-21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끄럽다. 만취데이트 ㅋㅋ (알리샤님, 현재의 위 상태로는 우리 감당 안되실거에요 ㅠㅠ)

뽀님아.

내 이메일 주소 써줄게요. (어쩐지 곧 헤어질기세 ;;)

fallen77@hanmail.net

Forgettable. 2010-04-21 15:36   좋아요 0 | URL
뭐야 ㅋㅋ 저 알라딘 계속 할거거든요? ㅋㅋㅋㅋ
그래도 저장해둘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