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시절
찰스 디킨스 지음, 장남수 옮김 / 창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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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고전이라고 하면 일단 믿음직스럽고, 아주 실망하는 사태까지는 벌어지지 않으니까 안전빵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일단 한 번 빠지기가 어렵다.
빠지면 거침없이 그 광활한 세계에 숨어서 휘젓고 다닐 수 있지만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막상 빠지기조차 싫은거다. 
 
디킨즈의 소설을 한 번 읽어야겠다고 생각을 한 지 어언 1년이 넘었으나 그 동안 마음에 드는 번역서를 찾을 수 없어서 망설여왔는데 서점에서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창비에서 나온 [어려운 시절]을 골라집게 되었다. 
만나기로 한 사람을 기다리며 다방에 들어가 맛난 치즈빵과 커피를 홀짝이며 책을 펴니 두근두근 한다. 얼마만에 느껴보는 설레임인지. '독서의 세계로 다시 돌아온걸 환영합니다.'라고 빵빠레를 울려주는 듯한 책이었다. 
 
여러 등장인물이 나오는데. 사실적인 사람들과 비사실적(감성적인) 사람들이 있다. 비사실적인 사람들은 자기들의 비사실적인 면모가 너무 부끄러워 사실적인 사람들의 조언을 얻고자 엄청 노력하지만, 그 조언을 들어도 답답함은 가시질 않는다. 라고 말해봤자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를테니 읽고 이 리뷰를 읽기를 권장한다. 난 누가 어떻고 스토리는 어떻고를 설명해주는 친절한 리뷰어가 될 수 없으니.. 
 
사실 스토리라인은 단촐하다고 할 수 있다. 책에서 중요한 게 있다면 스토리인데, 요즘은 '공감'이라고 한다. (그러니 일기같은 글이 출판되지. ) 이 책은 스토리도 단순하고 요즘처럼 EQ어쩌고 하는 시대에서는 도저히 공감해줄 수 없는 책이다. 허나 책의 매력중 간과한 게 있다면 바로 캐릭터의 깊이다. 다양한 등장인물이 각각의 캐릭터를 갖고 있는데 누구 하나 미워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심지어 화자도 매력적이다. 책에 왠만하면 표시를 해두지 않는 성격이지만 이 책만은 예외로 여기저기에 포스트잇을 덕지덕지 붙여 두었다.  

   
    잘들 노는군, 자수성가한 사람 앞에서!    
   

이 말을 한 바운더비는 위와 같은 대사로 꽤 자주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데, 폭력적인 겸손함의 유머를 알려준 최초의 사람이다. 

   
  걱정 많은 선량한 사람들아, 기술이 자연을 망각에 맡길까 두려워 말라. 조물주의 작품과 인간의 작품을 어디에든 두고 나란히 놓고 보면 전자가 비록 아주 보잘것없는 일손의 무리라 해도 그 비교에 의해 존엄함을 획득하게 될 것이다.  
   

크으- 현재 나의 고민을 듣고 상담해주는 듯한 화자의 매력적인 한마디.
그러나 번역은 거지같다. 창비라해서 믿고 봤건만 어려운 말 투성이에, 너무 장문이라 두어번은 읽어야 이해가 되는 문장도 많았다. 아쉽.. 원서도 이리 어려울까. 궁금하네.
 
누구 하나 미워할 수가 없다. 누나의 돈을 갈취하는 건달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가는 자신의 죄에 너무나도 고통스러워하고, 사실적인 교육을 받아 사랑없는 결혼에 이른 여인네는 차마 사랑을 따라가지 못하고 아버지의 집으로 숨는다. 사실을 강요하던 아버지는 사실에 반대지점에 서있는 자녀들을 안아줄 수밖에 없고, 부모에게 버림받아 자수성가했음이 평생의 자랑거리였던 남편은 실은 부모를 버린 패륜아였다. 아, 이 외에 주위사람들도 너무 중요하지만 그들은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니 생략. 
 
미워하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 없는 건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해하려고 하면 사실 우린 그 누구도 미워할 수 없게된다. 작가도 이를 염두해두고 서로 사랑하자는 주제로 이 작품을 쓴 것일테다. 나쁜 작가, 흥. 자기가 만들어낸 캐릭터들이라고 그렇게 위에서 관망하며 이들이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어떻게 좌절하는지를 보면 기분이 좋으니. 그러나 작가는 전지전능하니 어쩔 수 없다. 한 문장에도 그 내공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 예시로 한문장 선택해서 적어 놓으려 했으니 차마 하나를 콕 찝어 선택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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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히스토리 X - American History X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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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의 받아봤던 인종차별이란,  
성적으로 노리개감의 목표물이 된다는 것 정도- 아무래도 한국이나 일본 여성들의 이미지가 외국에선 좀 낮고, 호기심이 생긴단 걸 알기도 하고 내가 만났던 사람들의 경우에는 위험하지도 않았고 대놓고 섹스하자고 달겨들기보단 좀 더 신사다웠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영화[아메리칸 히스토리 X]의 인종차별에 비하면 귀여운 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시아계 남자들의 경우 좀 더 심한 경우도 있었지만 영화에서의 폭력은 정말 장난이 아니다. 

에드워드노튼 같은 사람이 이야기하면 말도안되는 인종차별이론이라도 진짜 설득력있다.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흑인들, 아시아인들이 굴러들어와서 백인들의 터전을 빼앗고, 일자리를 빼앗는다. 빌어먹을 평등정책때문에, 능력있어서가 아니라 흑인이기 때문에 원래 백인들의 것이었던 일자리를 얻고 더 나은 권리를 획득한다. 백인들이 낸 세금은 이주민들을 구제하는데 사용된다. 

아, 사실 반박할 수가 없었다. 바꿔 말하자면 나 또한 백인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빈곤층이나 외국인노동자, 농민들을 위한 정책때문에 손해를 봤으면 봤지, 덕을 보는 입장은 아니다. 따라서 스킨헤드들의 이론과 분노에 쉽사리 휩쓸릴 뻔 했다. 사실 물밀듯 이주해오는 흑인이나 아시아인을 위한답시고 인권이나, 사랑,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이런 사상이 무슨 상관이야, 일단 내가 손해를 보는데!  

그러나 영화 중반부부터 상황은 완전히 뒤바뀐다. 당당하게, 거리낌없이 흑인들을 살해하고 감옥으로 들어간 에드워드노튼은 소수의 입장에 선다. 감옥에선 백인보다 흑인이 훨씬 월등하다. 그 곳에서 말 한마디 섞고싶지 않았던 함께 일하는 흑인과 소통하게 되고, 그가 고작 TV를 훔친 죄로 6년형을 구형받았단 얘기를 듣고, 순진하게 백인우월주의를 외치다가 믿었던 백인집단에게 강간당하며 그 동안 그를 지탱하고 있던 온 세계가 흔들리게된다.   

결국 그를 보호해주던 백인집단에서 벗어나 흑인집단의 보복성 린치를 기다리지만 그에겐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무사히 출소하여 더 막강해진 스킨헤드로부터 벗어나고, 자신을 추앙하던 동생도 그 구렁텅이에서 꺼내온다. 그러나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영화에서도 말해졌던 것 처럼 그들은 분노를 쏟아낼 대상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 대상이 흑인이나 아시아인이 될 수도 있고, 백인이 될 수도 있고, 대통령이 될 수도 있고, 기득권층이 될 수도 있고, '우리'가 아니라면 누구든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분노를 쏟아냈을 때 댓가는 꼭 치루어야 한다. 물론 치루지 않는 사람이 더 많아서 문제일 때도 있지만- 

그래도 사랑하며 살자, 그 분노의 창 끝이 나를 향했을 때를 두려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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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09-03-23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기가 너무 심해서 골골대느라 마음속에 있는 오만 동정심은 모두 나 자신을 향해있을 때 쓰는 리뷰니 고작 이따위-

그나저나 동생 역을 맡은 에드워드 펄롱은 터미네이터2에 나온 아이라는데 정말 아름답다. 아름다운 남성들이여, 난 당신들을 오래오래 찬양하리니- 그러나 마약에 절어 뚱뚱보가 되어버렸다. 지금까지 찍은 영화들을 보니 모두 범죄, 스릴러, 공포 등등- 마약에 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우린 이런 아름다운 아이를 망쳐버린 걸 반성해야 한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곡선은 아직 그 골격에 내재하니, 다시 돌아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제목이 왠지 '분노의 달리기', '분노의 양치질'따위가 연상된다. 난 '분노'의 아이러니적인 성격을 말하고 싶은데..

거친아이 2009-03-23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전히 에드워드 노튼 보려고 본 영화였어요. ^^
연기도 영화도 정말 대단했지요? 인종차별이란 게 과연 뭘까 싶기도 했구요.
리뷰 덕분에 다시 한번 영화에 대해 떠올려봤어요~

Forgettable. 2009-03-24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친아이님, 오랜만! :)
저도 에드워드 노튼 좋다고 했더니 지인이 추천해주시더라구요, 그래서 주말에 냉큼봤는데 영화를 보고 진짜 식은땀에 젖어 있었어요;; 아 정말 대박-
근데 전 진짜 에드워드노튼도 너무 다른 모습이라 놀라웠지만 저 에드워드 펄롱의 우수어린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호호
 
스웨덴 기자 아손, 100년전 한국을 걷다 - 을사조약 전야 대한제국 여행기
아손 그렙스트 지음, 김상열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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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않게 이 책을 받았을 때 선뜻 책을 빌려주는 그의 마음 씀씀이가 참 고마웠다. 나와 같은 책을 읽고 생각을 공유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니. 환상적이지 않을 수가 없잖아. 

그래서 책을 바로 읽기 시작했는데 첫장을 피며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엄청 기대를 했다.
전 세계 각국의 사람들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뭐 여러나라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는데 스웨덴 사람은 한 번도 만나보지를 못했다. 어디 붙어있는지도 잘 모르는 이 나라에서 우연히 발견된 책이라니, 게다가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옛날 민중들의 소소한 이야기라니(게다가 외국인이 본!), 사실 기대를 너무 했었나보다.  

분명 처음의 세 챕터, 코레아로 가는길-, 첫날 밤의 소동-, 공주에서 만난 봇짐장수들-, 까지는 나의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켜주었다. 여행을 하며 일어나는 여러가지 사건들이나 외국인의 눈에 비친 조선의 민중들의 모습이 너무 사실적이고 재미있어서 책에 푹 빠졌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여행하고, 게다가 첨부된 사진들은 그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작가는 자유롭고, 호기심이 많고, 제법 우쭐한 것 같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
책의 2/3는 조선의 문화의 이런저런 설명으로 채워졌다. 한글도 모르는 외국인이 쓴 것이니 수박겉핥기식의 정보가 대부분이었고 국사 교과서, 혹은 한국인이 쓴 [중국문화의 이해]정도의 수준으로 조선의 모습이 그려졌다. 민담의 맛은 역시 사투리와 구어체일텐데 번역에 번역을 거듭하다보니 그 색이 바래어 평범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우리나라의 구비문학이 얼마나 맛깔나는데, 민담부분은 차라리 책에 넣지 않았어도 되었겠다.  

그리고 한국의 민간신앙을 엄청나게 무시하고 있는데, 한국의 역사는 민간신앙에 뿌리를 두고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과 믿음, 그로 인해 살아지는 삶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고선 미개하다고 생각해버리고, 서양의 진보한 의학과 문화만을 맹신하는 태도는 약간 거슬렸다.

물론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과 묘사력은 빛을 발한다. 좋았던 부분은 굉장히 많았지만, 황태자비의 장례식을 묘사한 부분은 정말 좋았다. 내겐 전통적인 것이나 그에겐 이국적으로 비춰져서 묘사하는 것을 읽고있는 기분이 묘했다. 이 책의 매력은 바로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했던 것은 이 사람이 상두꾼, 대막대기, 상판대기, 탕약, 풍수지기, 줄행랑을 치다, 궁여지책, 악귀, 명정(!?) 이런 단어들을 어떻게 사용했으며 옮긴이는 어떻게 번역을 했길래 이런 단어들이 100년 전을 살던 외국인의 글에서 등장하느냐!이다. 
이 외에도 저자는 굉장히 현대적인 표현과 너무도 한국적인 표현을 쓰고 있는데 솔직히 말해서 난 옮긴이가 작가의 책을 번역이라기보단 재창조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책읽는 내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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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3-20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말해서 난 옮긴이가 작가의 책을 번역이라기보단 재창조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책읽는 내내 했다.'

의심하실만 하시군요 ㅎㅎ

Forgettable. 2009-03-20 13:41   좋아요 0 | URL
네, 옮긴이가 스웨덴에 6년을 있었다고는 하는데 스웨덴의 100년전 고어를 이렇게 세련되게 번역하는 능력이라니. 정말로 번역만 한거라면 뛰어난 번역가일 거라고 계속 생각 ㅋㅋ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며 엄청 애국심이 솟아났답니다 ㅎㅎ

궁금 2009-06-06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외국인이 본 한국 이런 거 기획 자체가 싫어서 읽을 생각도 안했는데.. ㅋㅋ 님 글 읽고나니 재미있을 것 같네요. 궁금하기도 하궁 ㅋㅋㅋ

Forgettable. 2009-06-07 11:3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ㅎㅎ
사실 반은 욕(?)이라서ㅡ 막 권해드리고 싶진 않아요
앞부분은 정말 괜찮은데 점점 국사교과서 분위기라 ㅡㅡ 소장용이라기 보단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훑어 보셔요 ^^

 
다즐링 주식회사 - The Darjeeling Limite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 

처음 30분을 보면서 어쩜 이렇게도 좋을까, 싶어서 지하철에서 미친 사람처럼 내내 실실거렸다. 그러다가 이렇게 지하철에서 소비할 수는 없는 영화라고 결론을 내리고 과감하게 끄고는 아껴두었다가 주말에 나머지 부분을 시청했다. 

갈수록 처음의 강렬한 힘이 어떻게 손 쓸 시간도 없이 무지하게 떨어져 가고, 코믹한 요소도 처음 30분의 것이 전부이고, 상징적인 장면 장면은 너무 뻔해서 실망했지만......
그래도 어느 영화에서 이렇게 매력적인 3형제를 만날 수 있을까!
[다즐링 주식회사] 뿐이다. 


 

목에 건 꽃목걸이며, 싸구려 신발, 이마에 찍은 빨간 점, 뱀!!!! (나라도 샀을거다, 정말정말정말)
아, 미치겠다. 
인도 가고싶다.. 저 뒤에서 쳐다보고 있는 인도남- (인도남들은 거의 90프로 저렇게 어디에선가 쳐다보고 있다.) 

책이나 영화를 볼 때 그 배경을 직접 체험해 봤느냐, 아니냐는 감상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아마 [다즐링 주식회사]의 배경이 근처의 네팔이었더래도 난 이만큼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즐링이 어딘지 알고, 중간에 내린 곳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곳인지 알고, 시장이, 버스가, 사원이, 기차가 어떤 지 알기에 이 영화가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 + 배경을 알고 있다는 건 정말로 중요하다.
최근의 [로마인 이야기]나, [펭귄의 실종]은 세계지리를 배웠어야 한다고 한탄에 한탄을 거듭하게 하는 책이다.)

이들은 엄마찾아 삼만리 여행을 하는 중인데, 모든 여행이 다 그렇듯이 이 신성한 여행은 사실 그 목적보다는 그 목적에 방해되는 일거수 일투족이 더 여행스럽다. 매일 아침의 일정표와 매번 놓칠 뻔 하는 기차, 안지켜도 그만인 일정표를 겨우겨우 따라가다시피하는 그들의 여행은 나의 마구잡이식 여행을 떠올리게 했고 그래서 나는 더 행복했다.  

  
 

- 여행객들이면서 좋은 오토바이도 타고 있다 ㅎㅎ

또 한가지 재밌었던 건 이들이 'spiritual journey' 를 위하여 행하는 말도 안되는 기도와 의식이었는데, 멀쩡해보이는 백인 남자 셋이서 로컬들 사이에서 엄청 열심히 엎드려 기도하고, 두손 모아 기도하고, 깃털에 소원을 빌며 날리고, 돌 밑에 묻는 행위들은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것 같지만 내게는 엄청난 부러움을 안겨주었다. 재밌어하는 동시에 은근히 진심으로 소원을 빌며 우스꽝스러운 기도를 열심히 하는 건 정말이지 완전 내 스타일이다.  

영화에서 발견한 내 인생 최초의 함께 여행하고 싶은 삼인방이다!

한가지 약간 억지스러운 것이 있다면, 이들은 계속해서 기차를 놓치는데, 인도에서 기차를 타 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겠지만 이 나라에서 기차를 놓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99프로의 기차들이 연착되거나 늦게 출발하기 때문. 그러니 이렇게 매번 기차를 놓치는 것은 '달리는 기차를 따라잡기 씬'에 대단한 로망을 가진 감독때문에 억지로 끼워 넣어진 매우 영화스러운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니면 나름 시간을 지키는 비싼 열차(이름은 까먹었다. 우리나라에 비하면 거의 KTX 수준의 열차가 있긴 있다. 나도 한 번 타봤다.) 만 타고 다녀서 진짜 로컬 기차는 안타봐서 모르거나.
로망때문일 거라고 백프로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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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쉽게 사랑에 빠지지 말자-
    from My own private affairs 2009-03-03 09:14 
      아- 이사람 너무 좋다. 비록, 처음 [피아니스트]를 보고 마구 열광하며 찾아보곤 잊어버리고,  두번째로 [킹콩]을 보며 마구 떨려하며 또 찾아보고 아 이사람이 그 사람이구나!!! 라며 감탄하곤 또 잊어버리고,    세번째로 [다즐링 주식회사]를 보며 이 매력적인 생명체는 도대체 누구인가!!!!!!!!!!!!!! 라며 홀딱 반해서 또 찾아보니  위의 두 사람이다.  당신은
 
 
Mephistopheles 2009-03-04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텔 슈발리에는 이 영화의 부록같은 영화이므로 꼭 시청하시기 바랍니다. 영화 속 3형제 중 막내인 잭과 그의 연인이였던 나탈리 포트만의 이야기입니다..^^

Forgettable. 2009-03-04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메피님 리뷰를 써 놓으신 영화들을 보면 스타일이 저랑 좀 다른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도 보셨군요!!!
개인적으로는 피터와 앨리스의 이야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 이남자 너무 멋져서요-ㅋㅋ
잭도 귀엽지만 :) 잭은 이 영화 감독이랑 작업을 많이 한 것 같아요.

근데 이 삼형제는 엄청 부자인가요?
그리고 이 영화는 어디서 구해요? ㅜㅜ 단편이라 찾기가 쉽지 않군요!
(엄청 말많기)


Mephistopheles 2009-03-04 09:37   좋아요 0 | URL
삼형제의 아버지가 부자였던걸로 기억합니다. 피터와 앨리스의 이야기는....아마도 피터역을 맡은 배우에게 꽂히셨기 때문인 것 같고요..ㅋㅋ 잭역을 맡은 제이슨 슈왈츠만은 웨스 앤더슨 감독과는 이 영화와 호텔 슈발리에가 다에요..재미있는 건 이 영화에서 배우로만이 아닌 각본가로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호텔 슈발리에는....음...지금 상황에선 열심히 넷을 뒤져보면 나올껍니다. 혹은 영화가 짧으니까 유튜브를 뒤져봐도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가도 나탈리 포트만의 누드가 나오기에 힘들 것 같고 입니다..(엄청 대답하게주기)

Forgettable. 2009-03-04 09:49   좋아요 0 | URL
오호 당장 유투브에 가봤더니 있는 것 같아요+_+ 바로 뜨는군요!!
감사감사 ㅋㅋㅋ 잭은 머리스타일도, 수염도 그대로네요 ㅎㅎ
집에가서 봐야겠어요.

다방면에 방대한 지식을 갖고 계시는군요^^

Mephistopheles 2009-03-04 12:38   좋아요 0 | URL
어..전 다방에 출입하진 않습니다.

Forgettable. 2009-03-05 09:2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메피님이 제게도 유머댓글을 남겨주시니 황송황송-

어제 유투브에 있던건 집에가서 보니 호텔슈발리에 앞부분 6분만 있더라구요.
유투브에 19금영상은 짤리나봅니다 ㅜㅜ
 
아투안의 무덤 어스시 전집 2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지연, 최준영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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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스시의 마법사 1권을 보면서 괴상한 번역에 치를 떨며 '이게 뭔가ㅜㅜ'라며 아연해했기에 2권을 봐야하나 말아야하나는 중대한 결정이었다. 그렇지만 어떤 계기를 통해 쭉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중고샵을 통해 2권 [아투안의 무덤]을 구매했다. 

 일단 1권에 비해 책은 얇다. 그리고 전혀 쌩뚱맞은 무녀 아르하의 이야기였다. 리뷰를 통해 알고 있어서 새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지는 않았다. 번역은 거슬리기는 해도 각오하고 봐서인지 그냥저냥 봐줄만했다. 그래서 일단은 또 3권까지 가볼 예정이다.  

 [아투안의 무덤]이 지루하다거나, 재미없었지만 그래도 전체로 봤을 땐 하나의 중요한 연결고리가 된다는 리뷰가 많았는데 내게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 속에는 나의 로망들이 잔뜩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1. 지하무덤, 미궁 

 내가 동굴을 좋아하기는 한다. 그렇지만 아무 빛이 없는 곳에서 벽을 더듬어 그 촉감만으로 길을 찾아야 하고, 그 길에서 벗어나면 무한한 암흑속에서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지독한 악몽이 아닌가! 축축한 벽을 만지다가 벌레라도 만진다거나 올빼미를 쓰다듬기라도 한다면.... 소릴 지르며 방방 뛰어다니다 길을 잃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똑똑한 그녀 테나는 마치 그 곳이 처음부터 자신의 세계였던 양 그 동굴에서 아늑함을 느낀다. 

 계절도 없고, 낮과 밤도 물론 없으며 시간이 흐르지 않는 그곳. 지친 하루를 암흑 속으로 묻어버릴 수 있는 아늑한 나만의 세계는 나의 로망이다. 이전에 나이차이가 좀 많이 나던 선배가 '남자는 로망!!!'이란 말을 반복해서 왠 로망타령인가 싶어 아주 조금 짜증이 났던 적이 있는데 이제 그마음 안다. 이런 공간은 정말이지.. 나의 꿈, 희망사항이라는 말보단 로망이란 말이 딱이다.  
 그리고 내가 믿는 분들이 나를 지켜준다고 믿을 수 있는 그곳에 이방인인 마법사가 나타났을 때 내가 취하고 싶은, 취했을 행동을 테나는 그대로 행하고 있다. 내가 느끼는 것 처럼 그녀도 똑같이 느끼고 내가 하고 싶은대로 그녀도 행동했다.  

2. 새매같은 남자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나의 로망이 아닌가 싶다. 여자들만 있는 곳에서 암울하게 지내던 그녀의 세상게 강인하고 조금은 냉정하기도 한,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낯선'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내가 평생 알아왔던 온 세상을 떨쳐버리게 할 만큼 날 사로잡지만 사실 내 곁에 머물러 있을 사람이 아니다. 그는 정착해 있기엔 내재된 힘이 지진도 가라앉힐만큼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는 내게 잊혀진 이름을 주었고, 암흑 속에 덮여서 찾을 수도 없었던 나의 빛을 찾아주었고, '신뢰'라는 이름으로 우릴 묶어주었고, 우릴 구하기 위해 힘을 소진하였으며, 내 앞에선 지친 기색도 보여주고, 무엇보다도 내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내가 상상했던 그 이상의 세계를 선사해주었다. 

 그는 내 옆에 있을 수는 없지만 내가 필요할 때라면 언제든지 내게 와주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이란 언제나 가슴 아픈 것이다. 현재 불가능한 것을 나중에 언젠가는 해달라고 손가락을 걸지만, 그 기대때문에 설레기보단 지금은 불가능하니까, 나중에도 안될까봐 달달 떨며 가슴아파하는 것이다.  

 새매덕분에 세상에 나체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으나 그는 더 이상 날 지켜주지 않는다. 왜냐면 나만의 빛이 날 충분히 태워주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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