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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시절
찰스 디킨스 지음, 장남수 옮김 / 창비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고전이라고 하면 일단 믿음직스럽고, 아주 실망하는 사태까지는 벌어지지 않으니까 안전빵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일단 한 번 빠지기가 어렵다.
빠지면 거침없이 그 광활한 세계에 숨어서 휘젓고 다닐 수 있지만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막상 빠지기조차 싫은거다.
디킨즈의 소설을 한 번 읽어야겠다고 생각을 한 지 어언 1년이 넘었으나 그 동안 마음에 드는 번역서를 찾을 수 없어서 망설여왔는데 서점에서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창비에서 나온 [어려운 시절]을 골라집게 되었다.
만나기로 한 사람을 기다리며 다방에 들어가 맛난 치즈빵과 커피를 홀짝이며 책을 펴니 두근두근 한다. 얼마만에 느껴보는 설레임인지. '독서의 세계로 다시 돌아온걸 환영합니다.'라고 빵빠레를 울려주는 듯한 책이었다.
여러 등장인물이 나오는데. 사실적인 사람들과 비사실적(감성적인) 사람들이 있다. 비사실적인 사람들은 자기들의 비사실적인 면모가 너무 부끄러워 사실적인 사람들의 조언을 얻고자 엄청 노력하지만, 그 조언을 들어도 답답함은 가시질 않는다. 라고 말해봤자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를테니 읽고 이 리뷰를 읽기를 권장한다. 난 누가 어떻고 스토리는 어떻고를 설명해주는 친절한 리뷰어가 될 수 없으니..
사실 스토리라인은 단촐하다고 할 수 있다. 책에서 중요한 게 있다면 스토리인데, 요즘은 '공감'이라고 한다. (그러니 일기같은 글이 출판되지. ) 이 책은 스토리도 단순하고 요즘처럼 EQ어쩌고 하는 시대에서는 도저히 공감해줄 수 없는 책이다. 허나 책의 매력중 간과한 게 있다면 바로 캐릭터의 깊이다. 다양한 등장인물이 각각의 캐릭터를 갖고 있는데 누구 하나 미워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심지어 화자도 매력적이다. 책에 왠만하면 표시를 해두지 않는 성격이지만 이 책만은 예외로 여기저기에 포스트잇을 덕지덕지 붙여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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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들 노는군, 자수성가한 사람 앞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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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한 바운더비는 위와 같은 대사로 꽤 자주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데, 폭력적인 겸손함의 유머를 알려준 최초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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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많은 선량한 사람들아, 기술이 자연을 망각에 맡길까 두려워 말라. 조물주의 작품과 인간의 작품을 어디에든 두고 나란히 놓고 보면 전자가 비록 아주 보잘것없는 일손의 무리라 해도 그 비교에 의해 존엄함을 획득하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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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으- 현재 나의 고민을 듣고 상담해주는 듯한 화자의 매력적인 한마디.
그러나 번역은 거지같다. 창비라해서 믿고 봤건만 어려운 말 투성이에, 너무 장문이라 두어번은 읽어야 이해가 되는 문장도 많았다. 아쉽.. 원서도 이리 어려울까. 궁금하네.
누구 하나 미워할 수가 없다. 누나의 돈을 갈취하는 건달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가는 자신의 죄에 너무나도 고통스러워하고, 사실적인 교육을 받아 사랑없는 결혼에 이른 여인네는 차마 사랑을 따라가지 못하고 아버지의 집으로 숨는다. 사실을 강요하던 아버지는 사실에 반대지점에 서있는 자녀들을 안아줄 수밖에 없고, 부모에게 버림받아 자수성가했음이 평생의 자랑거리였던 남편은 실은 부모를 버린 패륜아였다. 아, 이 외에 주위사람들도 너무 중요하지만 그들은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니 생략.
미워하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 없는 건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해하려고 하면 사실 우린 그 누구도 미워할 수 없게된다. 작가도 이를 염두해두고 서로 사랑하자는 주제로 이 작품을 쓴 것일테다. 나쁜 작가, 흥. 자기가 만들어낸 캐릭터들이라고 그렇게 위에서 관망하며 이들이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어떻게 좌절하는지를 보면 기분이 좋으니. 그러나 작가는 전지전능하니 어쩔 수 없다. 한 문장에도 그 내공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 예시로 한문장 선택해서 적어 놓으려 했으니 차마 하나를 콕 찝어 선택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