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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투안의 무덤 ㅣ 어스시 전집 2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지연, 최준영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7월
평점 :
어스시의 마법사 1권을 보면서 괴상한 번역에 치를 떨며 '이게 뭔가ㅜㅜ'라며 아연해했기에 2권을 봐야하나 말아야하나는 중대한 결정이었다. 그렇지만 어떤 계기를 통해 쭉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중고샵을 통해 2권 [아투안의 무덤]을 구매했다.
일단 1권에 비해 책은 얇다. 그리고 전혀 쌩뚱맞은 무녀 아르하의 이야기였다. 리뷰를 통해 알고 있어서 새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지는 않았다. 번역은 거슬리기는 해도 각오하고 봐서인지 그냥저냥 봐줄만했다. 그래서 일단은 또 3권까지 가볼 예정이다.
[아투안의 무덤]이 지루하다거나, 재미없었지만 그래도 전체로 봤을 땐 하나의 중요한 연결고리가 된다는 리뷰가 많았는데 내게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 속에는 나의 로망들이 잔뜩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1. 지하무덤, 미궁
내가 동굴을 좋아하기는 한다. 그렇지만 아무 빛이 없는 곳에서 벽을 더듬어 그 촉감만으로 길을 찾아야 하고, 그 길에서 벗어나면 무한한 암흑속에서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지독한 악몽이 아닌가! 축축한 벽을 만지다가 벌레라도 만진다거나 올빼미를 쓰다듬기라도 한다면.... 소릴 지르며 방방 뛰어다니다 길을 잃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똑똑한 그녀 테나는 마치 그 곳이 처음부터 자신의 세계였던 양 그 동굴에서 아늑함을 느낀다.
계절도 없고, 낮과 밤도 물론 없으며 시간이 흐르지 않는 그곳. 지친 하루를 암흑 속으로 묻어버릴 수 있는 아늑한 나만의 세계는 나의 로망이다. 이전에 나이차이가 좀 많이 나던 선배가 '남자는 로망!!!'이란 말을 반복해서 왠 로망타령인가 싶어 아주 조금 짜증이 났던 적이 있는데 이제 그마음 안다. 이런 공간은 정말이지.. 나의 꿈, 희망사항이라는 말보단 로망이란 말이 딱이다.
그리고 내가 믿는 분들이 나를 지켜준다고 믿을 수 있는 그곳에 이방인인 마법사가 나타났을 때 내가 취하고 싶은, 취했을 행동을 테나는 그대로 행하고 있다. 내가 느끼는 것 처럼 그녀도 똑같이 느끼고 내가 하고 싶은대로 그녀도 행동했다.
2. 새매같은 남자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나의 로망이 아닌가 싶다. 여자들만 있는 곳에서 암울하게 지내던 그녀의 세상게 강인하고 조금은 냉정하기도 한,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낯선'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내가 평생 알아왔던 온 세상을 떨쳐버리게 할 만큼 날 사로잡지만 사실 내 곁에 머물러 있을 사람이 아니다. 그는 정착해 있기엔 내재된 힘이 지진도 가라앉힐만큼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는 내게 잊혀진 이름을 주었고, 암흑 속에 덮여서 찾을 수도 없었던 나의 빛을 찾아주었고, '신뢰'라는 이름으로 우릴 묶어주었고, 우릴 구하기 위해 힘을 소진하였으며, 내 앞에선 지친 기색도 보여주고, 무엇보다도 내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내가 상상했던 그 이상의 세계를 선사해주었다.
그는 내 옆에 있을 수는 없지만 내가 필요할 때라면 언제든지 내게 와주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이란 언제나 가슴 아픈 것이다. 현재 불가능한 것을 나중에 언젠가는 해달라고 손가락을 걸지만, 그 기대때문에 설레기보단 지금은 불가능하니까, 나중에도 안될까봐 달달 떨며 가슴아파하는 것이다.
새매덕분에 세상에 나체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으나 그는 더 이상 날 지켜주지 않는다. 왜냐면 나만의 빛이 날 충분히 태워주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