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세 달 전인가, 알라딘에서 중고샵 책 상태에 관한 설문을 할 때 선택 항목을 보고 불안한 기분이 들기는 했다. 

최상 항목에 책에 서명하고, 줄 긋고, 표지 찢어진 등의 내용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됐다. 혹시 이런 항목들을 보고 '아, 이 정도는 최상이라고 해도 될라나?' 생각하는 어설픈 판매자들이 등장하는 건 아닌가 노파심도 들었다.

내 경우, 책을 구입할 때 기본적으로 소장 목적이 포함된다. 일단 내 손에 들어온 책은 이유가 뭐든 사정이 어떻든 타인에게 주는 건 물론이고 되팔거나 버리지 않는다. 때문에 중고샵을 이용할 땐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 - 품절/절판으로 책을 구할 수 없을 때 고민고민 하다 구입한다. 상태가 좋은 책이 없으면 차라리 읽기를 포기하고 그게 언제가 되든 재출간을 기다린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말 그대로 새 책입니다' 

라는 설명이 부연되어 있으면, 구매자는 '말 그대로 새 책이려니'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그래도 중고책인데, 중고에 새 것을 바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배송비까지 물면서 적지 않은 가격을 치를 땐 판매자의 '최상'을 믿기 때문이다. '새 책에 가깝다' 하면 '새 책에 가까우려니' 기대하는 게 잘못인가?  

중고샵에 바라는 건 아주 소박하고 단순하다. 책 상태에 관해 판매자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라는 것.

읽지만 않으면 새 책인가? 정체불명의 오염 흔적에 알 수 없는 도장들이 잔뜩 찍히고 묵은 먼지로 책은 누렇게 변색되고. 이게 말 그대로 새 책인가? 분명한 건 상품 설명에, '새 책이지만 심한 노끈 자국이 있습니다', '먼지로 인한 오염 자국이 심합니다' 등의 솔직한 설명만 있었어도 구입하지 않았을 거다.

돈 버는 판매자가 아니라 돈 쓰는 구매자를 위해 알라딘은 보완책을 마련하길 바란다.

중고 상품을 등록할 땐, 하다 못해 상태를 '최상'으로 등록하는 상품엔 최소한 상품의 사진이라도 올리게 하던가. 상태가 설명과 다르면 간단하게 환불처리 할 수 있도록 해주던가.

이게 어려운가? 아주 간단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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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SF 작가라는 아서 C. 클라크의 단편집(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1953-1960 / 황금가지)의 첫 번째 단편은「다른 호랑이」(The other tiger)인데 원래 제목은 '반박'이었으나 프랭크 스탁턴의「숙녀일까 호랑이일까」(The lady or the tiger)에 헌정하는 의미로 제목을 바꾸었다고 한다.
실제로 불과 4페이지 분량의 짧은 단편은 내용만 보면 프랭크 스탁턴의 단편과 그닥 연관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원래 제목 '반박'이 딱 제격인데, 또 한편 생각해 보면 '인생은 예측불허'라는 동일한 주제를 보여주니 바뀐 제목도 그다지 나쁘진 않다.
'무한한 우주'를 가정하는 데서 시작하는「다른 호랑이」의 결론은 이러하다.

우리는 다른 곳에서는 태어날 수 없기 때문에 여기서 태어난 것이다. - p.16 「다른 호랑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매년 어마어마한 인세 수입을 올리는(비교하자면 '해리포터'보다 더 많이 벌어 들인) 하드보일드 추리 소설『밀레니엄』의 작가 스티크 라르손은 스웨덴 출신의 기자인데 이 사람의 삶이 참 드라마틱하다. 
모아 놓은 재산이 없었던 그는 은퇴 후 노후에 도움이 될까 해서 생애 첫 소설『밀레니엄』3부작을 쓰는데 출간 6개월 전 엘리베이터가 고장나 7층 사무실까지 걸어서 올라갔다가 심장마비로 급사하고 만 것. 이후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고 엄청난 수입을 벌어 들였지만 정작 장본인은 수입은커녕 자신의 원고가 책으로 만들어진 것도 못 보고 죽은 셈이다. 한 치 앞을 모르면서 백년대계하는 인간의 나약함이랄까 어리석음이랄까...
참고로 이 사람의 소설은 내 취향엔 조금 어긋나는데, 때문에 얼마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며 어마어마한 인세 수입을 올린 소설이라는 기사를 읽고 좀 많이 놀랐다.


스티그 라르손 외에도 자신의 소설이 가져다 준 행운을 누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비운의 작가 중에는 영화로 제작되어 많은 인기를 끈『마이너리티 리포트』『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을 꿈꾸는가』『페이첵』의 필립 K.딕도 있다.



다시「다른 호랑이」로 돌아와서...
인생이 예측불허라는 건 아마도 인간의 마음이 예측불허인 데서 기인하는 바가 크지 않을까.
같은 맥락에서, 프랭크 스탁턴의「미녀일까 호랑이일까」는 공주의 선택을 보여주지 않고 끝을 맺는데 사실 나는 공주가 연인을 위해 '미녀'(the lady)를 선택했을 거라는 데에 '매우' 회의적이다.

노예의 두 눈은 어느 쪽이냐고 묻는 듯 이글이글 타올랐다. 공주도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공주는 손을 들어 오른쪽을 가리켰다. 아무도 그녀의 행동을 보지 못했다. 그는 몸을 돌려 성큼성큼 문으로 다가갔다.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였고, 그는 자신 있는 손길로 오른쪽 문을 열었다.

자, 한번 생각해 보라. 공주는 지난 수주일 동안 호랑이가 소름 끼치는 이빨을 드러낸 채 뛰쳐나오는 광경을 상상해 왔다. 다른 쪽 문을 연 모습도 상상했다. 처녀를 보고 미소 짓는 그의 얼굴! 결혼식 종이 울리면 공주는 입술을 깨물며 머리칼을 쥐어뜯는 것이다. 차라리 그가 당장에 죽어 버리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하지만...무시무시한 호랑이와 사랑하는 이의 비명소리!

공주는 노예가 물어 올 줄 알고 있었고 무슨 대답을 할지도 생각해 두었다. 한 순간의 지체도 없이 공주는 오른쪽 문을 가리켰다. 나는 이 물음을 여러분에게 던지고자 한다. 과연 무엇이 나왔겠는가. 미녀일까, 호랑이일까?

-「미녀일까 호랑이일까」, 프랭크 스탁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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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 연애조작단>(이하, '시라노')는 추석 연휴 때 부산에서, <무적자>는 어제(금요일) 저녁에 봤는데, 간단평을 하면 '시라노'는 오밀조밀 아기자기하고, <무적자>는 전체적으로 선이 굵고 거친 인상이 든다. <시라노>는 코믹 멜로이고, <무적자>는 액션 느와르이니 당연한 얘기인가 싶기도 하고.

<시라노>를 연출한 김현석 감독의 예전 작품은 <YMCA야구단>과 <스카우트>를 봤는데 이 감독은 연출보다는 각본 쪽에 더 재능이 있는 듯하다. 연출을 못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야기는 조밀하게 잘 쓰는데 영화를 보고 나면 늘 얼마쯤 부족하다 싶은 찜찜함이 남는다.
시라노는 17세기 프랑스 작가 에드몽 로스탕의 5막 시극에 등장하는 인물로 박색의 외모 때문에 자신의 사랑을 숨기고 친구의 연애편지를 대필하는 인물. 이러한 플롯을 그대로 빌려온다는 점에서 영화는 이를테면 극속 극 형태를 취하는데, 연애에 서툰 사람들의 연애를 성사시켜주는 일을 업으로 하는 '시라노 에이전시'를 중심으로 이곳을 찾는 연애 초보들의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하지만 능동적으로 시라노 역할을 자처했던 에이전시 대표 병훈(엄태웅)은 어느 날 에이전시를 찾아온 상용(최다니엘)으로 인해 소설 속 시라노처럼 옛 애인 희중(이민정)과 고객 상용 사이에서 매파 노릇을 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이 영화는 뭐랄까, 요소 요소에서 톡톡 튀는 대사와 설정들은 웃음도 나고 재미도 있지만 막상
극장에서 나온 후에 영화를 기억할만한 인상적인 임팩트가 없다. 다만 영화에서 헤어진 옛 애인과 재회했을 때 병훈이 보여주는 몇 가지 행태들이 눈에 띄는데 기존 로맨틱물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정형을 탈피한, 지극히 현실적인 병훈의 반응/역반응이 꽤 신선하다. 시라노의 거대한 코가 병훈에겐 어떤 형태로 감춰져 있는지 보는 것도 영화를 보는 재미.

<무적자>는 리메이크 원작 <영웅본색>을 못 본 이유로 일단 비교는 불가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원작을 안 본 것이 득일까 실일까 갸우뚱 기우뚱 했고, 덕분에 영화관에서 나올 때 제일 먼저 한 건 원작인 <영웅본색>을 봐야겠다는 결심이었다.
내용은 딱, 남자들 얘기다. 영화를 보는 중에 두 번 웃었는데 모두 <영웅본색> 주제가 나올 때였다(영화는 안 봤지만 주제가는 안다).
송해성 감독의 영화는 이번이 처음인데 감독의 스타일을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 건, 그만큼 이 감독의 노선이 분명하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송승헌 씨 연기. "은서야~" 할 때 고개를 비틀며 입가를 아래로 살짝 늘이는 버릇이 여전히 남아 있긴 한데 발성이 굉장히 묵직해졌달까, 배우 느낌이 물씬 나는 것이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듯 했다.
여하튼 재미있는 건 나는 영화 속 남자들의 의리, 우정, 형제애 이런 것에 제법 유치한 감동을 느꼈는데 정작 이 영화를 본 (내 주위)남자들은 상당히 냉정하게 반응하더라는 것.
여담이지만, DVD가 출시되면 꼭 한번 세어보고 싶다. 태민이 끌고 온 부하들과 영춘의 총에 맞힌 태민의 부하들 중 과연 어느 쪽이 더 많은지.
영화 전반에 걸쳐 리얼리티는 많이 떨어진다. 줄거리를 말하는 게 아니라(이야기야 어차피 픽션이므로 감안하고 본다) 단적인 예로, 대한민국 현실에 어울리는 건 아무래도 총싸움보다는 칼싸움인지라 비록 등장인물들이 무기밀매업에 관계되어 있다고는 하나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시도 때도 없이 해대는 총질은 아무래도 이건 좀 아니올시다 싶다. "마이 뭇다 아이가"가 달리 명대사이겠는가.
(그러고 보니, '고마해라'가 '마이 뭇다' 앞에 오냐, 뒤에 오냐로 친구랑 실랑이를 벌였던 기억이 난다) 

<시라노>도 <무적자>도 원형을 과거의 작품에서 빌려오거나 가지고 왔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마침 요즘 읽고 있는『클래식 중독』(조선희 / 마음산책)은 저자의 옛 영화 다시 보기 기록으로, 영화 얘기에 덤으로 영화와 얽힌 내외적 수다로 가득하다.
나는 기자 혹은 기자 출신이 저자인 책은 사전 정보가 없어도 거의 고민 없이 장바구니에 담는데 (물론 개인차는 있겠지만 대부분)서술간 사실 관계가 명확하고, 글이 의도하는 바가 뚜렷해서 가독성이 좋으며 무엇보다 기자 특유의 촌철살인의 어법을 읽는 것이 즐겁다는 것이 그들을 신뢰하는 이유다.
이 책은 작가가 기자 출신(연합통신 기자, '씨네21' 편집장 등)이라는 점 외에도 옛날 영화에 대한 호(好)가 나와 통했다는 점에서 꽤나 재미있게 읽고 있다.
사실 옛날 영화는 '옛'이 풍기는 어감 탓인지 왠지 촌스럽고, 고루하고, 밍숭맹숭 심심할 것 같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일례로 내 경우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옛날 영화와 마주쳤을 때 거의 대부분 그 영화를 끝까지 보게 되는데, 반면 영화가 현대물인 경우 금방 다시 채널을 돌려 버리는 일이 많다.
참고로 내가 좋아하는(-라기 보다는 여러 의미로 깊은 인상을 받은) 옛 영화는 국내 작품은 <최후의 증인>, 국외 작품은 <줄 앤 짐>(프랑소와 트뤼포 연출)이다. <최후의 증인>은 몇 년 전에 <흑수선>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 되기도 했는데 원작은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이루었던 김성종의『최후의 증인』. 이 외에도『클래식 중독』에서도 언급되는 <어제 내린 비>도 무척 인상이 깊었던 영화로 기억에 남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혹시 원작 소설이 있을까 찾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참고로 각본은 (조선희 씨에 의하면)당대 최고 신문 연재 인기 작가였던 최인호이다. 

시간이 관여하는 모든 사물은 저마다 고유한 역사를 가지는데 영화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그러므로 작품의 품질을 시간의 선/후로 가리는 것은 소모적인 낭비로 보인다. 이번 연휴에 영화를 고를 때 확 끌리는 작품이 없어 고민을 많이 했는데 요즘 들어 옛날 영화가 여러모로 양적 질적으로 더 풍성했고 더 재미있었다는 아쉬움이 부쩍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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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속스캔들
석현 군은 소문대로 귀여웠고, 보영 양도 역할을 잘 한 것 같고, 태현 씨도 자신의 장기를 잘 발휘한 것 같고. 얘기가 좀 더 풍성했으면 좋았겠다 싶다. 한국영화의 고질병인 용두사미를 피해가지 못한 것도 아쉽다.

 

작전
비슷한 영화가 계속 나오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먹히기 힘든 장르인 듯.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 구조와 반전이지만 대체로 무난하게 볼 만 했다. 옥의 티는 서연(김민정)의 캐릭터. 역할에 비해 너무 착하다.

 

국가대표
단순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굉장히 밀도 있게 찍은 느낌. 디테일에 치중하는 것보다 굵은 줄기를 따라가는 이야기 덕분에 영화에 몰입이 잘 되고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도 쉽다. 이것이 이 영화가 흥행할 수 있었던 요인인 듯.
대회가 끝난 직후 라커 앞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장면은 지나치게 감상적이어서 오글거리기도 했지만 이 모든 것을 상쇄할만큼 음악이 좋았다는 거! 러브홀릭스의 'Butterfly'는 이보다 더 적확할 수 없는 선곡. (감독판은 오글거리는 장면이 빠지고 대신 코미디요소가 강화되었다고 한다)

7급 공무원
유치와 재미의 경계를 잘 피해간 영화. 그래도 후반부로 갈수록 유치하긴 했다. 관객을 웃겨야 하는 코미디 장르가 원래 더 어렵다. 영화의 1등 공신은 원석 팀장(류승용). 이 아저씨 정말 볼매이심.

 

The Gift(Echelon Conspiracy)
사건의 매개체가 휴대폰이라는 점에서 샤이아 라보프의 『Eagle Eye』와 비슷하다. 장담하건데 시간이 지나면 두 영화의 줄거리가 머리 속에서 합체할 게 분명하다. 
 

  

불꽃처럼 나비처럼
예고편을 보고 기대한 영화. '스타일만큼은 괜찮겠지' 마음을 비운 것도 있고, '기대하지 않으면 그럭저럭 괜찮다'는 몇 몇 리뷰도 이 영화를 선택하는데 한 몫 했다. 결론은,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은 영화. 팩션이라고 하기에는 작가가 이야기를 너무 제맘대로 썼다. 함께 본 친구는 '원작자가 야설록이었으면 안 봤다'는 명언을 남겼다.

One Week
슬픈 영화는 될 수 있음 안 보는데 추석 전날, 이 날 하루만 극장에서 상영한다고 이 날을 놓치면 못 본다는 말에 B양에게 끌려 조조로 본 영화(부산 극장 얘기다). 관객이 거의 없어 덕분에 극장을 대관한 듯 아주 아늑하고 조용하게 봤다. 다만 너무 아늑했던 탓인지 정작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던 B양은 쿨쿨~ 잤다.
로드무비. 가을의 감성과 잘 어울리는 영화다. 스토리 면에선 『Knocking on Heaven's Door』, 영화 전반에 흐르는 음악이나 회색 톤의 화면은 『원스』와 느낌과 비슷하다. 주제는 심각한데 표현은 그다지 무겁지 않다. 30년이든 70년이든 지나온 삶을 정리하는데 충분한 시간이라는 게 과연 있을까. 누군가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누군가에겐 절실했을 오늘 하루를 나는 얼마나 충실하게 보냈는가 고민하게 된다.

트랜스포머 2 (패자의 역습)
전작의 성공으로 물적 물량적 지원을 아낌없이 받은 티가 난다. 영화를 보니 주연 여배우가 영화 개봉 뒤 비난을 쏟아낸 심정을 알 것 같다. 심하게 말하면 영화가 여배우를 대놓고 눈요기로 삼는다. 굳이 이 배우가 아니었어도 상관 없었을 것 같은 역할과 비중은 충분히 배우의 자긍심을 건드릴만 하다.
사실, 이분법적으로 말하면, '바비 인형'이 여자아이들 장난감의 대명사라면 남자아이들 장난감의 대명사는 '로봇' 아닌가. 따라서 트랜스포머가 로봇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태권브이 류의 로봇 만화에 열광하며 유년을 보낸 성인남자들의 향수를 대변하는 영화라고 이해한다면 영화 속에서 여배우를 소비하는 시선을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하지만 뭐가 어떻든 여배우의 분노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또 하나. 매트릭스 이후 한번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반전은 이제 확실히 유행으로 자리 잡은 클리셰인 듯.

스타트렉 '더 비기닝'
스타트렉은 특유의 분장 때문에 질색하며 채널을 돌리던 드라마였기 때문에 당연 영화를 볼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이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친구 때문에 보고 말았다. (친구 따라 강남도 가는데 영화쯤이야...)
일단 시공간 이동에 대하여, 비슷한 이야기를 다룬 기존 영화들에 비하면 왜곡이 덜하고 비교적 깔끔하게 처리한 것이 마음에 든다. 기대 없이 봐서인지 의외로 꽤 괜찮았던 영화.
* 현재 시즌 4가 방영중인 미드 『Heroes』의 대표적인 악역 사일러가 주연으로 나오는데 이 배우가 나오는 줄 알았다면 아무리 친구가 보고 싶다고 해도 안 봤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한 일은 끔찍한 악몽을 연상시키는 사일러 때문에 못 보고 있는 『Heroes』가 강을 건너 산을 타고 안드로메다로 향하고 있다는 소문. 보고 싶은 드라마를 등장인물 하나 때문에 보지 못한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G.I.Joe '전쟁의 서막'
영화를 본 후 기억나는 건 '정신없다'뿐.
블록버스터답게 돈을 퍼부은 덕에 시각적으로 화려하고 내용도 그럭저럭 볼 만 했다. 2편을 의식한 탓인지 이야기의 완성도는 아무래도 떨어진다.

 

엑스맨 울버린
이 영화, 워낙 전편들이 탄탄하기 때문에 기본은 하는 시리즈라는 선입견이 있다. 물론 외전 격인 울버린도 볼 만 하다. 사실 나는 『케이트&레오폴드』나 『Someone like you』등의 고전적 로맨틱코미디에 나오는 휴 잭맨을 더 좋아한다. 물론 최근작들도 나쁘지 않지만, 그래도 다음 영화는 장르를 좀 바꿔주셨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이 있다.

리스트의 마지막 네 편은 SF물이다. 이들을 순위를 매기자면,
스타트렉 > 트랜스포머2 > G.I.Joe > 엑스맨 울버린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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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0-08-30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유의 분장때문에 채널 돌아가던 스타트렉에게 우선순위를 주시면, 다른 아이들은....

인삼밭에그아낙네 2010-08-31 09:29   좋아요 0 | URL
앗! 아니어요~ <스타트렉> 재미있어요~
정확하게는, 스타트렉>>>>트랜스포머2... 쯤 되겠습니다. 이건 물론 제 취향이고요 ^^;
 

몇 년 전, 인기를 끌었던 공중파 프로그램 <다큐멘터리 이야기 속으로>는 매 회 꼭지가 세 개 정도로 구성되었다. 그 중 세 번째 꼭지는 '무서운 이야기'였는데, 정말이지 무서웠다. 화면이.
사실 나는 좀 심하게 겁이 많아서 공포물이라면 아주 기겁을 하는데 그래서 이 방송을 볼 때마다 거의 매번 기절하기 직전까지 자지러지고는 했다. 그럼 안 보면 되지 않느냐, 싶겠지만 그게 또 그렇다. 무서운 건 무서운 거고, 궁금한 건 궁금한 거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궁금하고, 툭하면 시꺼매지는 화면은 무섭고, 인 것. 그리하여 매주 자학하는 심정으로 TV 앞에 앉곤 했는데, 우스운 건 같은 공포물이라도 텍스트엔 그다지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는 거다. 그러고 보면 내가 공포를 느끼는 감각은 이미지와 시각적인 것에 국한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일례로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는 읽을 때 책 표지에 덮개를 씌우고서야 읽을 수 있었던 것처럼. 각설하고,
쓰네카와 고타로의 『야시(夜市)』는 한 마디로 설명하면 일본 만화 『백귀야행(Ichiko Ima)』류의 소설판이다.
일본에서 건너온 판타지 호러?, 환상 호러? 혹은 괴기 호러?... 뭐라 부르든 그 쪽 장르의 만화책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단연 『백귀야행』과 국내에 영화로도 개봉된『음양사』다. 『백귀야행』은 6, 7편서부터 다소 지루하고 긴장이 떨어지는 감이 있어 그 뒤로 열심히 챙겨보지 않지만 1~5권은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이 에피소드가 좋다. 『음양사』는 서울문화사에서 정식 판권을 가지고 출간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절판되어 버렸는데 게으름을 피우다가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땅을 쳤다. 결국 아쉬운대로 중고 시장에서 다른 출판사 것으로 구했는데 여러모로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서울문화사판으로 다시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일본은 섬기는 신(神)도 많고 그래서 귀신도 많고, 그에 따른 민간 설화나 괴담도 정말 많은 나라다. TV에선 귀신 체험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끊임없이 방영되고 수많은 제보들이 매주 TV에서 재연된다. TV에서뿐만이 아니다. 주변 사람에게서도 귀신을 봤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한 마디로 <주온>이나 <링>같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게 하나도 안 이상한 나라다. 숱한 제보 중엔 가짜도 많지만 그래도 어쨌든 채택되어 재연되는 제보는 늘 무섭다. 다음은 몇 년 전 일본에서 머물 때 아마 후지TV에서 봤던 걸로 기억하는 내용.

사진의 배경은 마루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방이 한 칸 씩 있고 마루 앞은 마당인 구조를 가진 집인데, 마루 중앙에는 커다란 상이 하나 놓여 있고 상 뒤로 문갑 같은 것이 있다. 제보해 온 사진은 마루를 배경으로 어린 딸아이를 찍은 사진이다. 그런데 사진을 현상한 가족은 경악했다. 분명 사진을 찍을 때 아무 것도 놓여있지 않았던 마루의 상 위에 여자의 머리가 있었던 것. 딸아이 뒤로 시커먼 형체의 여자의 머리가 옆으로 누운채 카메라 렌즈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사실 사진을 현상했더니 찍을 때 없었던 새로운 장면이 나타났다, 라는 내용은 가장 흔한 제보이면서 또 가장 조작이 많다고 한다.) 

사실은 나도 비슷한 체험을 한 적이 딱 한 번 있다. 그러니까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가 직접 겪었던 유일한 체험인데 그 일은 시나가와(品川)에 있는 사촌언니의 집에 놀러갔을 때 일어났다. 엄마와 같이 군마(群馬)에서 온천 여행을 하고 돌아온 날이었는데, 사촌언니는 외출하고 엄마와 나는 옷 방에서 짐을 풀고 있던 중이었다. 나는 처음엔 엄마가 투덜 투덜 하는 것을 무성의하게 흘려듣고 있었는데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엄마의 말이 귀에 쏘옥 들어왔다.
"시계 소리가 어디서 이렇게 나는지 모르겠네. 이 방은 시계도 없는 것 같은데."
그랬다. 옷 방은 말 그대로 옷과 가방, 신발이나 옷장만 있을 뿐 시계라고는 작은 탁상 시계 하나 없었고 엄마와 나는 손목 시계도 차고 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시계'과 관련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너무나 크고 뚜렷하게 들리는 커다란 시계의 초침 소리. 왜 있지 않은가. 벽에 거는 커다란 벽시계. 딱 그 소리였다.
이상한 한편 신기했던 엄마와 나는(엄마 역시 살면서 그런 경험이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옷 방을 샅샅이 뒤졌지만, 심지어 옷장 위까지 털었다, 결국 시계는 발견하지 못했다. 물론 우리가 소리의 진원지를 찾는 그 와중에도 초침소리는 계속해서 들렸다. 시계도 못 찾고 소리의 진원지를 찾는 것도 실패한 우리는 나중엔 포기하고 산책을 나갔는데, 놀랍게도 산책에서 돌아왔을 때 시계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이후 사촌언니를 비롯 다른 사람들에게 그 얘기를 했지만 아무도 우리 얘기를 진지하게 듣지도, 믿어주지 않았다. 심지어 "옆 집에서 망치로 못을 박는 소리를 잘 못 들은 게 아니냐" 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나마 나 혼자 안 들은 게 어딘가 싶었다. 적어도 그 얘기를 믿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은 있는 셈이니까. 안 그랬음 복장 터져서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야시』는 일단 재미있다. 빨간색 표지의 양장 안에는 「바람의 도시」 와 「야시」 두 개의 중편이 있는데 둘 다 재미있다. 이런 류의 얘기들은 하나를 꺼내 먹으면 또 먹고 싶어서 손을 집어 넣게 되는 과자 봉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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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0-08-30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에 덮개를 씌우면 잘 읽으시는군요ㅋㅋ 야시의 표지는 별로지만 내용은 보고싶네요^^

인삼밭에그아낙네 2010-08-31 09:26   좋아요 0 | URL
워낙 시각적인 공포에 취약해서...(흑흑)지하철 역에서 우연히 영화 '주온'의 포스터와 맞닥뜨리고 심장마비에 걸릴 뻔 한 1인이랍니다;;;
<야시>는 이쪽 장르답게 읽고 나면 그닥 기억에 남지 않지만 읽는 동안은 재미도 있고 책장도 술술 잘 넘어갔던 소설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