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이번 창비 봄호 단편소설 중「그들과 함께 걷다」(배지영)의 줄거리.

한 남자가 작업 중에 하수구에 갇혔다가 만 이틀 만에 지상으로 나오니, 그 사이 지구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세상이 온통 좀비들 천지다. 다행히도 남자 외에도 여자 생존자가 있어 남자와 여자는 태초의 아담과 이브처럼 짝을 맺고 같이 산다. 그리고 여자가 임신을 한 것을 알게 될 즈음, 생존자가 그들 말고도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른 생존자들이 집 앞에서 경적을 울려대며 위협하는 걸로 끝이 나는 이 소설을 읽고 생각했다. "살아남은 것이 남자에게(혹은 여자에게) 과연 행운이었을까?"

 

영화로도 개봉한 리처드 매드슨의 소설 『나는 전설이다』는 좀비가 차지한 세상에 홀로 생존해 고군분투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결국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인 남자는 이전 세계에서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는 마지막 과정 즉 '전설'이 된다.

영화도 썩 나쁘지 않지만 작가의 주제의식이 잘 드러난 것은 역시 소설이다.

다윈의 적자생존을 적용하면,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휩쓸고 간 지구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 것은 좀비이고, 인간은 적응에 실패했으므로 좀비가 지구의 다음 주인이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인 것처럼 보인다. 소설에서 좀비들이 남자에게 주장하는 것도 그것이고.

소설에 비해 영화는 공개된 엔딩과 비공개된 엔딩 모두 훨씬 낙관적이다. 남자 외에도 인간 생존자가 있을 뿐만 아니라, 어딘가에서 무려 '사회'를 재건하고 있으니까. 다만 영화적 상상이 만들어낸 엔딩 덕분에 제목의 의미는 순식간에 증발한다.

 

궁금하다. "살아남은 것이 남자에겐 행운이었을까?"

 

배경은 다르지만 비슷한 맥락으로 사라 주제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가 있다.

출근길에 한 남자가 갑자기 눈이 멀고 전염병처럼 그와 접촉한 사람들이 연쇄적으로 눈이 멀게 되면서 도시 전체가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정부에 의해 폐쇄된 도시에 단 한 사람, 눈이 멀지 않은 안과의사의 아내가 있다.

내용 전개에 의문을 제기한 건 M군이었다. 만약 눈이 멀지 않은 1인이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면, 약자가 아니라 지배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거다.

분명한 건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았던 아내에게 그 사실이 어떤 우월한 지위도 안겨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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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와 책 수다를 떨었는데 대충 이런 내용... (N은 나)
 

N: (하루키의 '잡문집' 지름신을 물리치고) 우리나라에서 하루키의 위치는 유행이다. 유명세만큼 하루키가 제대로 읽혔다면 지금 같은 열풍이 있을 수 없다
B: 예전에『상실의 시대』를 읽었는데 그 뒤로 하루키 소설은 안 읽힌다
N: 나는『해변의 카프카』때부터 때려쳤다. (소설의)자기복제가 심한 작가다. 하루키를 이해하기 위해 굳이 그의 소설을 다 읽을 필요는 없다. 단편은 대체로 좋다. 이번 예약구매 신간이 단편집이었다면 고민 안 했을지도 모른다. 작가의 수필은 대체로 읽을만 한데 하루키는 예외다
B: (국내에 출간되는)일본 소설은 추리소설이 대세 아닌가
N: 매니아가 많지. 매니아들 서평 덕에 나도 일본 추리소설에 많이 낚였는데 세이조도 낚일 뻔 했다. 알다시피 전작주의라 하마터면 세이조를 다 살 뻔했다
B: (세이조의)『이누가미 일족』은 정말 별로였다. 명색이 추리소설인데 사건이 전부 우연히 이루어진다는 게 말이 안 된다
N: 말이라고 하나. 게다가 명탐정이라는 인간이 눈 앞에서 네 사람이 죽어나가는 데도 아무 것도 모른다는 건 정말 코메디다
B: 그래도 교고쿠 시리즈는 괜찮더라
N: 다행이다. 아직 안 읽었지만 교고쿠 역시 평이 워낙 좋아서 나오는대로 사고 있다. 추리소설은 의외로 (인지도가 거의 없는)『시소 게임』이 괜찮았다. 참『용의자 X의 헌신』영화화 한단다
B: 게이고는『백야행』만 읽었는데 난 별로였다
N: 『백야행』은 그냥 로맨스소설이다
B: 주인공 둘 다 능력이 있는데 굳이 둘이서 계속 살인을 해야 하나 설득력이 없다
N: 로맨스소설이라니까. 그냥 남자가 여자한테 낚인 거다. 그래도『용의자 X의 헌신』은 추리소설답다. 거의 끝부분 한 장면 때문에 인상적인 소설이다
B: 책은 안 읽었지만 그 한 장면은 얘길 들어서 알고 있다
N: 완전범죄의 절대조건은 '알리바이'인데 알리바이를 조작하는 부분이 나름 참신했다




 

 

N: (요즘 국내에선)일본이 대세지만 추리소설의 본좌는 역시 아가사 크리스티다. 어린 나한테 모든 범죄의 동기는 '치정' 아니면 '돈'이라는 걸 가르쳐 준 작가다
B: 아가사는『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만 읽었다
N: 다른 것도 읽어봐라. 아가사 여사는 심리를 잘 다룬다. 추리소설의 묘미는 뭐니뭐니 해도 범인이 누구인가, 범인의 트릭은 뭔가 궁금한 데서 오는 긴장감 아니겠나. 그런 점에서 아가사 여사가 역시 최고다
B: 아가사 크리스티는 전집이 나오지 않았나 (왜 책장에 책이 안 보이냐는 얘기)
N: 중학생 때부터 책을 모았는데 예전에 병원에 입원한 친구한테 빌려주고 못 돌려받았다. 책과 CD는 빌려주면 안 된다는 걸 그때 깨우쳤다. 그래도 널 위해 내가 아가사 여사 전집을 사마


 

 


 

B: 판타지, SF 소설은 이제 안 사나
N: 왜 안 사겠나. 일단 시중에 나온 건 다 샀고, 이젠 새로 출간되면 그때그때 산다
B: 영국에선 유명한 판타지 작가지만 우리나라에 처음 번역된 소설이 이번에 출간됐던데
N: 제목이 뭔데?
B: 기억 안 난다
N: 생각나는 단어를 말해봐라, 검색해보자
B: 트리니티? 그런 단어가 들어간 것 같다
N: 켈트 신화 영향인지 판타지 소설은 영국이 확실히 강하다
B:『핑거포스트1663』(요 며칠 B가 읽고 있는 소설, 영국이 배경) 읽어봐라. 한 사건에 대한 목격자 네 사람의 증언록인데 재미있다
N: 네 사람이 다른 얘기를 한다는 부분이『그날 밤의 거짓말』(제수알도) 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고 보니 '그날밤ㅡ' (거의)마지막 장면은 영화 <쏘우>랑 같지 않나, <쏘우>가 먼저일까 책 출판이 먼저일까
B: 그랬나? 책 내용이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런데 중요한 건그 장면까지도 네 사람의 계획에 들어 있었던 거 아닌가
N: 글쎄 소설 주제는 '죄수의 딜레마'니까 그 장면은 별개로 독자를 위한 장치가 아닌가 싶다
B: 그런데 내용이 정말 기억이 안 난다
N: 나도 그렇다, 그쪽 문화를 몰라서 그런 것 같다. 생각해봐라, 우리는 '마빡이' 하면 바로 알아듣고 웃지만 다른 나라야 그 정서를 알겠나. 같은 얘기지. 그러니 서양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신화를 열심히 읽어줘야 된다. 조이스의『율리시스』가 대표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헤르도토스의『역사』(숲, 천병희) 부터 읽어봐라. 쉽고 재미있다
B: 율리시스가 신화에 나오는 영웅 맞지? (J.조이스의)『율리시스』에 그 율리시스가 나오는 줄 알았다. 그 책은 도대체 누가 읽나
N: 줄거리만 보면 하룻밤 새 일어나는 막장 치정극이다. 조이스가 워낙 언어를 뒤트는 감각이 남달라서 같은 문화권, 언어권이 아니면 그 소설을 누가 제대로 이해하겠나 싶다. 게다가 문체도 의식 흐름 기법이다. 그나마 단편집『더블린 사람들』은 그럭저럭 읽을만 했는데『피네간의 경야』는 읽는 게 아예 불가능할 것 같다
B:『나사의 회전』도 문체가 딱『올랜도』다. (두께가)얇아서 골랐는데 읽으면서도 문체 때문에 도대체 뭔 소리인지 내용이 머리에 안 들어오더라
N: 그거 내용은 <디 아더스> 아닌가
B: 모르겠다. 하여튼 읽는 동안『올랜도』악몽이 되살아났던 것만 기억난다
N: 나는 처음에 제목 봤을 때 나사가 미항공우주국인 그 나사인 줄 알았다
B: 나는 나사가 (공구) 나사인 줄은 알았다

 

 

 

 

 

B:『태양은 가득히』사라
N: 그거 번역한 출판사가 두 군데다. 살만한 건 한 군데인데 책 표지가 넘 촌시러... 알랭들롱을 꼭 썼어야 했나
B: 동서문화사꺼 말하나, 동서 표지가 좀 그렇지
N: 동서는 표지에 신경을 너무 안 쓴다
B: 그래도 사라. 어렸을 때 읽어서 마지막 장면의 구체적인 내용이 기억이 잘 안 난다.문학동네던가 민음사던가 '리플리' 전집이 아마 나왔을텐데. 그런데 전집에 '태양은 가득히'가 빠졌다, 그게 제일 유명한데
N: 판권 때문인가? 책은 안 읽었지만 영화는 봤다. 프랑스, 미국 버전 둘 다. 어쨌든 리플리는 안 들키고 살아 남았지 않나. 책도 마찬가지 아니냐, 후편이 계속 나온 걸 보면
B: 맞다. 그런데 미국버전은 책보다 감성적인 부분이 많이 강조됐다. 톰이 디키를 사랑하는 걸로 표현됐다. 프랑스 버전은 물질에 대한 욕망이 강조됐다
N: 주드 로가 뇌쇄적이긴 했지. (존 말코비치 주연의)<리플리's 게임>의 리플리가 그 리플리인지 정말 몰랐다
B: 그 영화 봐야 되는데 
 

 

 

 

 

 

N: 그나저나 '파이 이야기' 영화는 언제 나오나
B: '파이 이야기'를 읽을 때 판타지라고 생각 안 했는데 '원숭이 섬' 장면 때문에 소설이 판타지라는 느낌이 남았다, '원숭이 섬'이 어떤 의미인지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N: 나도 파이가 '원숭이 섬'에 들어갈 때랑 나올 때의 장면이 흐릿하다. 의도적인 건가?
B: 글쎄. 그런 탓인지 호랑이나 다른 등장동물은 다 이해했는데 원숭이 섬만 이해를 못 했다
N: 난 호랑이를 잘 모르겠던데. 뭍에 도착한 뒤에 호랑이가 환영처럼 묘사되지 않나
B: 나는 호랑이를 분열된 자아라고 이해했다. 하여튼 '파이이야기'의 마지막은 굉장한 반전이었다
N: 맞다. 파이가 '그럼 니네가 원하는 얘길 해줄게' 라고 말할 때 낚인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낚였다. 어, 이거 뭐지? 했다. 역시 샤말란이 적임자다
B: 샤말란이 적임자지. <식스 센스> 보러 가기 직전에 스포에 당했던 게 생각난다. 나는 평생 '죽은 사람이 보여요'의 충격을 모르고 살 거 아닌가
N: 에구, 불쌍한 것. 나는 스포를 즐겨서 다행이다. 그러고보니 xx일보에 '나는 스포다'를 흘리고 다니는 미친기자놈이 하나 있었지
B: 절름발이가 범인이다
N: 내가 꼽는 반전 영화는 <식스 센스> <유주얼 서스펙트> <노웨이아웃>이다, <노웨이아웃>봤나
B: 본 것 같은데, 무슨 내용이지?
N: 케빈 코스트너, 진 해크먼이 나온다. 케빈 코스트너는 해군 장교, 진 해크먼은 케빈의 상사인가 그럴 거다
B: 기억이 잘 안 난다, 무슨 내용이지?
N: 어쩌고 저쩌고...



 

 

 

N: 연말엔 버나드 쇼나 읽어야겠다. 어릴 때 읽고 안 읽었는데 요즘 다시 읽고 싶어졌다. 요즘 희곡이 부쩍 재미있다
B: 버나드 쇼랑 쇼펜하우어랑 늘 헷갈린다. 집에 쇼펜하우어 있나
N: 나는 버나드 쇼랑 오스카 와일드랑 헷갈리던데. 쇼펜하우어 있지만 책이 너무 낡아서 새 책 사려고 어디 구석에 처박아뒀다.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로 청년들을 낚은 희대의 낚시꾼이라 생각함
B: 나도 동의함 

 


 

 

 

 

B: 1박2일에서 이승기가 도스토예프스키를 모르는 걸 보고 아, 요즘 애들은 무식한 게 아니라 그냥 책을 안 읽는구나 싶었다
N: (깜놀) 이승기가 도끼를 모른다고?
B: 그렇다니까
N: 요즘 20대가 옛날 20대보다 독서량이 더 많지 않나. 논술세대 아닌가
B: 그렇게들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N: 하긴 M군은 톨스토이를 모르더라. M군한테 톨스토이도 모르나 했다가 임어당 공격을 받았다
B: 임어당이 톨스토이보다 유명하지 않나. 교과서에『생활의 발견』이 나오잖아
N: 톨스토이의『바보 이반』도 나온다
B: 내가 배운 국어엔 안 나왔다

(이후 국어는 국정인가 아닌가 잠깐 토론이 벌어짐)

 

 

 

 

 

 

 
B: 서유기가 장편인 거 아나
N: 뭬야? 단권 아니었나? 나는 단권으로 읽었다. 근데 중국 3대 기서가 수호전, 서유기 또 뭐지?
B: (…)
N: (…) 

(폭풍검색 중, 어느 네티즌의 '중국 3대 기서는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에 웃다가 뒤로 넘어감)


 

 

B: 근데 금병매 내용이 야한막장드라마다. 내용이 어쩌고저쩌고...
N:『겐지이야기』랑 비슷하네. 겐지 내용이 어쩌고저쩌고... 문학적인 유명세 때문에 한때 살까말까 엄청 고민했다. 일본에서 가져온 원서 (만화책) 겐지 이야기『淺き夢見し(あさき ゆめみし)』는 있으니 나중에 한번 봐라
B: 결국 그거지 않나. 당시 생활이나 문화의 기록이라는 보존적인 측면에서 가치가 있다는 거. 브론테 자매나 제인 오스틴을 봐라. 내용은 그냥 로맨스소설인데 100년이 지나니 고전이 됐다
N: 맞다 맞다.


 

 

B: 그런데 영화 <동사서독>이 '영웅문' 시리즈에 나오는 내용인가?
N: 그런 내용 안 나온다. 영화는 인물의 이름만 가지고 온 완전히 새로운 창작물이다. 동방불패도『소오강호』한 페이지에 잠깐 나오는 인물이다. 영웅문 시리즈 안 읽었나
B: 영화, 드라마로 <의천도룡기>만 봤다 (B는 '의천도룡기'의 양조위 열혈팬)
N: 읽어 봐라 재미있다. 예전에 베프랑 '동사서독' 놀이를 한 기억이 난다
B: 동사서독이 사람인가
N: 동사, 서독, 남제, 북개라고 장년초딩 4인방이다. 거지왕 홍칠공이 바로 북개다
B: 책이 너무 길다
N: 시리즈 하나를 읽는데 보통 이틀 걸렸다. 길이는 문제가 안 된다. 잡으면 밤새워 금방 읽는다
B: 등장인물이 짜증난다. 장무기는 주인공인 주제에 너무 우유부단해서 엄청 짜증났던 인물이다
N: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작가가 있는데 김용도 그런 부류다. 극중 등장인물의 정체성이 웬만해선 안 바뀐다. 처음 캐릭터가 끝까지 간다. 대표적인 인물이『녹정기』의 위소보다. <동사서독>은 텍스트로 이해하면 더 재미있는 영화다. 집에 감독판 <동서서독>이 있으니 봐라. 괜찮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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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고라>의 한 장면. 화면 왼쪽에 보이는 탑 형태의 건물이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파로스 등대.

엄숙주의 :
구체적인 조건이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원리ㆍ원칙을 고집하는 극단적으로 엄격한 고정적 사고 및 행동 양식. 도덕에 있어서 칸트가 도덕 법칙은 어떤 경우에도 의무적 성격을 갖는다고 주장하고 의무를 최고의 것으로 한 것이 엄숙주의의 전형이며, 도덕적 의지의 동기로서 행복이나 쾌락의 요구를 엄하게 배척하는 금욕적 경향을 띤다. - 출처. 지식사전

나는 종교든, 정치든, 사상이든, 사람이든 엄숙주의가 붙는 것이면 그게 뭐든 딱 질색하는데 엄숙주의는 일단, 무엇보다, 유머감각이 없어 재미가 없다. 그런데 알레한드로의 영화 <아고라>는 결국 엄숙주의 구체적으로 종교적 엄숙주의에 관한 이야기이다.

(실제 역사나 세부 사건들의 양상에서 조금 차이가 있지만)일단 영화에만 집중하면, 줄거리는 이렇다.

기원전 6세기 무렵, 한차례의 극단적인 대립 이후 이교도(영화에선 학문을 추구하는 무신론자들)는 흩어지고 그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도서관이 파괴된다. 이후 알렉산드리아는 유대교도와 기독교도가 종교적으로 대립하면서 다시 극단으로 치닫는데 기독교 주교 키릴로스(혹은 키루스)는 유대교도들과의 싸움에서 정치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지방 장관 오레스테스를 압박하고 그 수단으로 오레스테스와 친분이 있는 (과)학자 히파티아를 위협한다. 그 와중에 오레스테스가 일부 광신적인 기독교인의 돌에 부상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범인이 처형을 당하자 키릴로스 주교는 죽은자를 순교자로 칭하고 기독교인들을 부추긴다. 결국 광신적인 기독교인들은 이교도 히파티아를 납치, 살해한다. 한편 과격분자였던 키릴로스 주교는 당시 교세 확장이 시급했던 기독교단의 정치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지원으로 숱한 문제점에도 승승장구, 사후에 성인(聖人)으로 추대된다.

극단적인 것은 언제나 파괴적인 결말로 이끄는데 그 성격상 불순물이 섞이는 걸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정적과 대립하고 싸우는 과정에서 힘의 우위에 있는 집단 혹은 개인은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대개 폭력이라는 방식을 불러들이는데 특히 종교간 분쟁에서 이러한 경향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실제로 물리적인 강제력은 불순물을 걸러내는데 가장 단기적이고 가장 확실한 효과를 안겨 주는데, 안타깝지만 폭력은 고래로 국가 기관 혹은 권력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은 꽤나 역사가 깊은 실천적인 금언인 셈.

<아고라>의 주제는 초반의 '도서관 강당에서 시작하는 장면'에서 드러나는데, 히파티아와 학생들이 토론하는 모습은 이 영화의 나아갈 방향을 암시하고 있다. 또 이 장면은 지동설을 두고 벌어진 토론에서 천문 현상 역시 신의 뜻에 귀속되어 있다고 믿는 기독교도 제자와 눈에 보이는 증명된 사실만 인정하는 (이교도)학자 히파티아를 통해, 과학과 종교, 주인과 노예, 남성과 여성이라는 갈등을 한꺼번에 보여주는데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처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덧붙여 전체 지구를 보여주고 지중해의 도시 알렉산드리아로 들어가는 미시적 접근법 역시 현재 이 도시가 처해있는 상황이 폐쇄적이고 폭압적인 것임을 잘 보여준다.

역시 영화 초반, 눈에 띄는 장면이 있는데 키릴로스가 사람들이 모인 광장에서 불 위를 걷는 것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장면이 그것.
인간의 종교가 다 그렇지만 기독교 역시 많은 자기 모순(= 인간의 모순)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미신성이다. 기도를 통해 기원을 하고, 기원을 통해 구원을 받는 방식은 그 형태로만 보면 무속신앙의 '굿'과 별 다를 바가 없는데 귀신을 불러 점을 치고, 굿을 통해 구원을 받는 무속신앙을 우상숭배, 이단이라 하여 배척하고 금지하는 기독교는 그 역사를 들여다 보면 같은 방식으로 신자들을 모으고, 교세를 확장해왔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자가당착의 모순이 드러나고 그로 인해 불필요한 희생이 너무 많았다는 것인데 영화 크루서블(The crucilble)로 제작되기도 했던 세일럼의 마녀재판은 이러한 경직된 종교적 엄숙주의와 종교의 미신성이 합작해 만든 비극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 <크루서블>이 보여주었던 것과 유사한 장면 즉, 교인이 아니면 곧 마녀라는 편집증적이고 광신적인 이단 논쟁은 <아고라>에도 등장한다.

영화에선 자세히 나타나지 않지만 당시 가장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고대 도시였던 알렉산드리아는 결국 종교 분쟁, 정확히는 인간의 욕망 앞에서 쇠락한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은 여성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히파티아이고, 영화 내용 역시 히파티아의 일생의 절정 부분에 집중하지만 다른 한편 히파티아와 도시 알렉산드리아의 운명이 그 궤를 같이 한다는 점에서 영화의 주인공을 '도시 알렉산드리아'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신념이 이상이 되면 개인의 욕망이 되지만 이상이 신념이 되면 개인을 벗어나 공리적인 것이 되는데, <아고라>는 키릴로스와 히파티아를 통해 이 차이를 보여준다. 어떤 점에서 그들은 결국 자신의 신념을 충실하게 따른 개인일 뿐인 것.
결국 '나쁜 인간은 없다, 나쁜 신념을 가진 인간이 있을 뿐' 인 걸지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건설한 지중해 최대 항구 도시이자 국제 도시였던 알렉산드리아는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파로스 등대와 사라피스 신전, 역사상 최대 규모였던 도서관을 소유했지만 끊임없는 종교 분쟁과 싸움으로 도서관은 불타고 수많은 장서가 유실되는 안타까운 역사를 가진 도시이다.

- 출처.『알렉산드리아』, 생각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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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즈의 전쟁』『보르 게임』은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의 '보르' 시리즈로 모두 십여 편이 넘는 시리즈 중 국내에 출간된 장편은 이 두 권 뿐이다. 국내 시장의 분위기로 봤을 땐 아마 나머지 시리즈의 번역을 모두 만나보기란 거의 불가능하지 싶다.
책으로 들어가서, 

행책SF 총서 중 가장 먼저 읽은『신들의 사회』가 워낙 강렬했던 탓에 이어 읽은『마일즈의 전쟁』은 독서에 속도가 붙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일단 속도가 붙은 뒤로는 이어지는『보르 게임』과 그 중간 얘기인 단편『슬픔의 산맥』(무크지 Happy SF 2권 수록)까지 단숨에 읽었지만 그래도『신들의 사회』의 재미와 감동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 이는 아마 남성작가에서 여성작가의 필체로 곧장 넘어간 데서 오는 부작용일 수도 있다.

주인공 마일즈 보르코시건의 모험을 그리는 보르 시리즈는 전형적인 스페이스 오페라. 그중『마일즈의 전쟁』의 마일즈는 예전 TV 애니메이션 <무책임함장 테일러>를 연상시키는데, 내용면에선 그다지 비슷한 게 없는데도 읽다 보면 그냥 자연스럽게 테일러 함장이 떠오른다.
보르 시리즈의 특징은, 이걸 특징이라고 해도 될런지,  마일즈가 생각이 '너무' 많고, 말이 '너무' 많아서 언뜻 지루할 정도. 그런데 책을 읽는 동안은 고만고만 하던 얘기가 누군가에게 말로 전할 때는 엄청 재미있어진다. 

그러니까『마일즈의 전쟁』줄거리는 이렇다.
사관학교 입시에 떨어져서 상심한 마일즈는 외가가 있는 행성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참견 잘 하고, 자의식 강하고, 오지랖 넓은 성격 탓에 어쩌다 우연히, 말하자면 부도 수표를 내밀고, 워프 가능한 낡은 중고 우주선 한 대와 기관사 한 사람을 손에 넣는다. 그리고 부도 수표가 들키기 전에 우주선 구입 비용을 갚기 위해 분쟁 지역으로 화물을 운반하는 이를테면 '택배 용병' 흉내를 내는데, 세상만사 계획대로만 되면 아무 문제 없을 것을 이래저래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배 한 척은 두 척이 되고, 두 척은 다시 세 척이 된다. 물론 부하 용병도 한 명에서 두 명으로, 두 명에서 열 다섯 명으로 다시 이천 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결국 제독의 지위에 오른 마일즈는 남의 행성 분쟁에 끼어들어 전쟁까지 치르게 된다.

전반 거의 1/2 가량이 하도 지루했던 탓에 -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인 이 소설은 마일즈의 끊임없는 독백과 상상 혹은 망상으로 지문의 대부분이 채워져 있다,
읽는 도중에 '도대체 언제부터 재미있어지는 거냐!' '재미의 포인트가 어디?' 하는 심정으로 찾아서 읽은 인터넷 서평의 반응은 대부분 요절복통 방을 데굴데굴 굴렀다는 내용. 도대체 어디가? 무엇이?
하지만 책을 읽는 도중 드디어 나도 요절복통하는 순간이 왔으니. 임무 수행하라고 보낸 부하들이 귀대할 때마다 새로운 용병 부하들을 그것도 많은 수를 뒤에 매달고 나타나는 부분은, 가히 이 소설에 등장하는 유머의 정점이라고 할만 하다.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용병 부하들의 끼니와 월급을 걱정해야 하는 마일즈로선 기함하고 복장이 터지고도 남을 일.
그러므로 몇 몇 서평의, 가벼운 무협지처럼 편하게 즐기면서 읽어라, 는 '보르 시리즈'를 읽는 이들에게 가장 적절한 길잡이일 듯. 

단언하건데『마일즈의 전쟁』보다『보르 게임』이 2.5배 더 재미있다. 더 재미있는 요소의 힌트는 황제 그레고르.『보르 게임』에 만약 소제목을 붙이면 '황제 가출 사건'이 딱 제격이다.

그리고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마일즈의 첫사랑 엘레나.
이 작가의 소설에 '페미니즘'이라는 수식이 붙는 것이 의아할 정도로 엘레나의 인물 묘사에서 느껴지는 건 유사 우주된장녀라고나 할까, 하여튼 참 정이 안 가는 아가씨다. 게다가『보르 게임』에선 한층 더 밉상이다. 예쁘면 다 용서되는 마일즈에겐 자업자득이다 싶지만서도. ('페미니즘' 얘기는 아마도 마일즈의 어머니와 관련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 사족
소설에 작가의 개입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소설 자체의 독립적인 아우라가 약해지기 마련인데, '보르 시리즈'가 그렇다. 책의 많은 분량이 끊임없이 마일즈의 'outstaning'을 강조하지만 실상 그 정도로 뛰어나지는 않으니 읽는 독자가 살짝 민망하다. 다시 말하지만 읽는 입장에서 마일즈의 허풍과 말빨이 작가가 자랑하는 만큼 '우와아-' 감탄이 나올 정도는 아니다. 마일즈가 행운을 타고난 청년이라는 것에는 백번 공감하지만 마일즈의 비범함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끼워맞추기'식 기승전결 안에서만 빛난다. 당연히 독서가 가벼울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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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만추>의 시나리오 영상집이 나왔다. 화면이 워낙 예뻤다고 기억되는 영화라 영상집 출간이 그리 어색하지 않다. 

영화를 본 감상을 한 줄로 요약하면,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백치미인과 한 시간 쯤 마주 앉았다 나온 기분?
아무 장면이나 떼내어 광고나 뮤직비디오로 써도 좋겠다 싶은, 비에 젖은 시애틀과 두 배우가 등장하는 장면 장면이 섬세하고 무엇보다 화면을 흘러넘치는 감성이 참 진하다.
그런데 그 뿐,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특히 초반 뮤지컬 장면은 뜬금없고, 의미도 없고, 지루했다. 반면, 애나의 중국어 고백에 '하오'(good)와 '화이'(bad)로 응답하는 훈의 동문서답식 대화 부분은 좋았다.
영화 전체를 통해 가장 좋았던 건 마지막 장면.
대사가 없는 그 몇 분 동안 약간의 소음, 보일듯 말듯 떠도는 먼지, 애나의 미세한 움직임 하나 하나에도 굉장히 집중하게 만든다. 그 순간만큼은 애나가 되어서 훈을 기다리는 마음이었다고나 할까.

훈은 '김주원'과 자꾸 겹쳤고, 탕웨이는 사감이지만 물에 뜬 기름처럼 캐릭터와 약간 비켜가는 듯 느껴졌다. 한마디로 애나의 단독씬에서 몰입이 깨어지는 장면이 좀 있었다.

영화를 보고난 후 궁금했던 건 훈이 나타나지 않은 배경이었다.
감옥에 수감된 것일까, 아니면 2년 전 약속은 그에게 의미가 없었던 것일까.

대답은 원작에서 찾았다.

결말을 슬쩍 열어놓은 2011년작에 비하면 원작은 훨씬 친절하다.
역시 여운이 길게 남는 건 열린 결말이로구나...

영화 마지막, 애나가 훈을 기다리는 장면에서 황지우의 詩「너를 기다리는 동안」을 떠올린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덕분에 오랜만에 황지우의 시집을 꺼내 읽었다.
음, 이 詩는 시간이 오래 지난 지금 읽어도 내겐 역시 연인을 기다리는 감성으로만 읽힌다.
이 詩에 무거운 시대를 얹고 열변을 토하던 옛 친구가 문득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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