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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이라는 것을 읽기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스스로를 '활자 중독증'이라고 생각했다.
영상이 주는 빠르고 쉽고 자극적인 세계에 재미를 붙인 후에도 그런 생각은 여전했다. 사실, 인간은 새로운 것에 쉽게 익숙해지는 반면 한 번 익숙해진 것은 무의식의 어딘가에 체화된 채로 스스로 지속되는 관성이 있기 마련이라서 그것을 잊고 있는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활자'에 중독되어 있었다.
언젠가 우리말, 우리글이 없는 낯선 세상에 혼자 덩그러니 남았을 때였다. 그때 내가 가장 절실하게 원했던 것이 활자였고 언어의 국적은 중요하지 않게 되어서 나는 학교 화장실에 놓여 있던 학교 신문, 수업 때 나눠주던 열람표는 물론이고 과자 포장지 뒤에 있는 성분 표시까지도 모두 닥치는대로 챙겨와서는 감동하면서 읽곤 했다. 집을 떠날 때 제일 먼저 챙기는 것도 책이었고 어딘가 낯선 공간에 남게 되었을 때 찾는 것도 '글자가 있는 무언가'였다.
얀 마텔의『파이 이야기』에서, 파이가 227일 간을 태평양 위에서 떠돌다 마침내 문명 사회로 돌아와서 묵었던 호텔에서 읽을 거리, '성경'을 발견하고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성경을 세계의 모든 호텔에 비치하는 운동 기구》에 매달 후원금을 보내리라고 결심하는 부분에선 저절로 "맞아, 맞아!" 했다.
예전에 공기를 마시듯 읽어 냈던 독서가 이제 양적으로는 줄어들기는 했지만 보다 진지해지고 집중력이 늘었다. 다시 읽는 고전이 더 재미있어진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요즘들어 TV가 부쩍 재미 없어진 것도 매체가 처한 환경적 혹은 시스템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이런 '독서의 변화'와도 무관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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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반납기한을 훌쩍 넘긴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들.
- 여행길에 한 권을 챙겼으나 내려갈 때와 올라올 때 책갈피가 같은 곳에 끼워진 책.
이는 모두 이번 부산행에 대해 내가 애초에 얼마나 낙관적이었던가를 보여주는 증거.
상경 다음 날(토요일), 잠시 고민했다.
하루라도 빨리 반납하자. 아니다, 기왕에 늦은 거 그냥 다 읽고 반납하자.
그리하여? 책들은 여전히 방과 서재, 거실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다.

2. 책은, 과연 내게 어떤 의미인가 새삼 생각한다. 눈이 핑핑 돌아가게 정신 없는 와중에도 B의 도움으로 온,오프 서점에서 품절-절판에 들어간 책을 구하는데 성공, 거기에 B가 안겨준 두 권까지 가방에 넣어 낑낑 대며 올라 왔다. 그러고도 모자라 상경 이틀째인 일요일에 지시장과 알라딘에서 정신 없이 책을 주문하고 있다. 이쯤되면 책은 도대체 내게 무엇인가 생각이 안 들래야 안 들 수가 없다. 




(왼쪽) B에게 받은 두 권.『현대미학강의』(진중권),『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곽아람)
(오른쪽) 품절-절판된 책들.『무어의 마지막 한숨1,2』(살만 루시디),『마일즈의 전쟁』(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신들의 사회』(로저 젤라즈니)
품절 혹은 절판된 책들을 구할 때 내가 마지막으로 구원 요청을 하는 이가 B다. 이번 역시 B의 도움을 받았다.  







곽아람이 먼저였는지, 요네하라 마리가 먼저였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두 사람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함께 내게로 왔다는 거다.
처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노먼 록웰의 '눈에 멍이 든 소녀'(사진). 이 그림은 저자에 의해 '빨강머리 앤'으로 되살아난다. 보너스라고 해야할까, 더욱 좋았던 건 이 책에 최근 읽은 소설 중 내가 가장 열광했던 '필경사 바틀비'도 등장한다는 사실.
추천사에도 있지만『모든 기다림의 순간…』에는 세 가지가 있다. '글, 그림, 글을 읽고 그림을 본 사람'이 바로 그것이다.
작가와 소통하는 것이 즐거운 이 책을, 참 아끼면서 읽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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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마흔 세 번이나 해지는 걸 봤지."
그리고 조금 후에 너는 덧붙여 말했다.
"그런 거 알아요? ……아주 서글퍼지면 해지는 게 보고 싶거든요……"
"마흔 세 번을 본 날 그럼 너는 그토록 슬펐단 말이냐?"
그러나 어린 왕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 pp.27-28『어린왕자』, 김 현 옮김 / 출간일. 1991,04(중판, 초판: 1973), 문장


- 내가 가지고 있는『어린왕자』는 정가가 1,500원이다. 예전 책을 보게 되면 무엇보다도 책 값이 정말 많이 올랐구나, 놀란다.
-『어린왕자』는 (故)김 현의 번역을 최고로 친다는 얘기를 들은 것은 H의 언니로부터였다. H의 언니는 불어를 전공하고 오랫동안 현지에서 유학 생활을 하였다. 그런데 오랜만에 검색을 해보니 김 현의 번역본이 보이질 않는다.
- 같은 책을 다독 하지 않는 독서 습관을 가진 나로서는 이례적으로 꽤 여러 번 읽었던 이 얇은 소설은, 굳이 시기를 나누면 어렸을 때는 별나라의 모험담 정도로 읽었던 것 같다. 두번째 읽었을 때(이십대 초반)는 세간의 "어쩌구저쩌구~"에 동승하여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소설 속 함축과 줄다리기를 하면서 치기어린 자세로 읽었던 것 같고(가장 안 좋은 독서 행태) 그리고 바로 오늘 오전, 아주 오랜만에 우연히 손에 잡힌『어린 왕자』를 다시 읽는데, 이 소설이 이렇게 외롭고 쓸쓸한 소설이었던가ㅡ 했다. 발췌한 부분은, 특히 굵은 구절은 그만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물이 핑 돌았던 장면.
- 들쭉날쭉한 문장 부호와 동시대성이 다소 떨어지는 어휘가 새삼 눈에 띈 김에, 양장에 새로운 활자체에 종이질도 더 좋은 김화영 교수님의 새 번역본을 살까 싶어 온라인 서점에 접속했다. 하지만 미리보기로 잠깐 내용을 보고 일단 보류.『어린 왕자』는 故김현의 번역본이 가장 낫다고들 하는데 정말 제일 뛰어나서인지 아니면 오래 되어 내 눈에 익숙해진 탓인지 하여튼 낡고 오래된 이 책이 더 맘에 든다.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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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
나는 다만, 이 책의 주인공은 유희에 참가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죄선고를 받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 알베르 카뮈『이방인』中 미국판 서문.
- 김화영 옮김, 책세상

처음『시지프 신화』를 읽을 때 작가가 얘기하는 방식의 '부조리'가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작가의 습작에 가까운(또한『이방인』의 전신이기도 한)『행복한 죽음』에 이어 세 번째로 읽은 것이 바로『이방인』. 발췌한 서문에서부터 나를 사로잡았던 이 책을 나는 조금 읽다가 첫 장으로, 또 조금 읽다가 첫 장으로 되돌아가서 거듭 읽었다.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이 아까워서 한 장 한 장 아껴서 읽고 또 읽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책『이방인』, 사랑하는 작가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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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을 꼽아 보니)약 15개월 전의 일이다... 
서점에서『혼불』(최명희 / 한길사)이 사라진 후 재간을 기다리다 거의 포기할 무렵, 우연히 파주 헤이리 출판단지에서 한길사가 운영하는 북하우스에 아직 재고가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얼른 북하우스에 전화했더니 출판사 보유분이 남아 있다고, 다만 상태는 안 좋다고 한다. 집에 가려고 비행기표를 끊어놓은 상황이라 가능한 상태가 좋은 걸로 추려서 보내달라고 부탁하고 바로 입금, 이튿날 받았다.
책은, 평소 약간 결벽증적인 내 취향을 포기한다손 치더라도 좀 심각할 정도의 '중고' 상태로 왔다. 그렇다고는 해도 구입 전 출판사측에서 내게 그 부분에 대해 미리 언질을 하였으므로 달리 문제 될 건 없었다. 구체적인 상태는, 세 권 정도는 상태가 아주 좋고 두 권 정도는 좀 많이 안습. 나머지는 그럭저럭 봐줄 만하다.
책은 물론 새 책이다. 밖으로 드러난 내지면의 색이 많이 바랜 걸 제외하면 파본이나 낙장도 아니고 모서리도 모두 무사하고 표지도 반짝반짝 하고. 절판된 책을 구했는데 이게 어딘가... (허허)
문제는, 불과 3주 후에 들려온『혼불』 재출간 소식이었다. 소식을 접한 건 LA에서였다. 그나마도 재출간 일자가 두 달 후다. 오랫동안 재간을 기다리다가 결국 할인 전혀 없이, 택배비까지 물고 직구입한 그『혼불』이 말이다. 어이가 없었던 건, 전화 통화할 때, "혹시 재출간 소식에 대해선 모르시나요?" 물었더니 아주 청순한 어조로 "네, 전혀-" 하던 출판사 직원이다. 재출간된다는 것을 알았어도 책은 샀을 텐데. 작가의 처음 원고가 훼손 없이 그대로 잘 나온다면 새로이 한 질을 더 구입하면 되니까. 어찌됐든 작가 생존 시에 출판되었던 책을 가진 나로서는 아무래도 좋은 소식이었다.  


2008/12. 어렵게 구한 혼불

책을 구하려고 발을 동동 구르던 기세는 어쩌고 책장에 책을 꽂은 게 언젠데 이제서야『혼불』을 읽고 있다. 내 품안에 있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이렇게 크다. 그런데 이제 겨우 3권 째인데, 자꾸만 10권에 눈이 간다. 이런 소설이 미완성이라니... 벌써부터 이렇게 안타까우니 다 읽고 나면 어떨지,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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