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SF 작가라는 아서 C. 클라크의 단편집(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1953-1960 / 황금가지)의 첫 번째 단편은「다른 호랑이」(The other tiger)인데 원래 제목은 '반박'이었으나 프랭크 스탁턴의「숙녀일까 호랑이일까」(The lady or the tiger)에 헌정하는 의미로 제목을 바꾸었다고 한다.
실제로 불과 4페이지 분량의 짧은 단편은 내용만 보면 프랭크 스탁턴의 단편과 그닥 연관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원래 제목 '반박'이 딱 제격인데, 또 한편 생각해 보면 '인생은 예측불허'라는 동일한 주제를 보여주니 바뀐 제목도 그다지 나쁘진 않다.
'무한한 우주'를 가정하는 데서 시작하는「다른 호랑이」의 결론은 이러하다.

우리는 다른 곳에서는 태어날 수 없기 때문에 여기서 태어난 것이다. - p.16 「다른 호랑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매년 어마어마한 인세 수입을 올리는(비교하자면 '해리포터'보다 더 많이 벌어 들인) 하드보일드 추리 소설『밀레니엄』의 작가 스티크 라르손은 스웨덴 출신의 기자인데 이 사람의 삶이 참 드라마틱하다. 
모아 놓은 재산이 없었던 그는 은퇴 후 노후에 도움이 될까 해서 생애 첫 소설『밀레니엄』3부작을 쓰는데 출간 6개월 전 엘리베이터가 고장나 7층 사무실까지 걸어서 올라갔다가 심장마비로 급사하고 만 것. 이후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고 엄청난 수입을 벌어 들였지만 정작 장본인은 수입은커녕 자신의 원고가 책으로 만들어진 것도 못 보고 죽은 셈이다. 한 치 앞을 모르면서 백년대계하는 인간의 나약함이랄까 어리석음이랄까...
참고로 이 사람의 소설은 내 취향엔 조금 어긋나는데, 때문에 얼마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며 어마어마한 인세 수입을 올린 소설이라는 기사를 읽고 좀 많이 놀랐다.


스티그 라르손 외에도 자신의 소설이 가져다 준 행운을 누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비운의 작가 중에는 영화로 제작되어 많은 인기를 끈『마이너리티 리포트』『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을 꿈꾸는가』『페이첵』의 필립 K.딕도 있다.



다시「다른 호랑이」로 돌아와서...
인생이 예측불허라는 건 아마도 인간의 마음이 예측불허인 데서 기인하는 바가 크지 않을까.
같은 맥락에서, 프랭크 스탁턴의「미녀일까 호랑이일까」는 공주의 선택을 보여주지 않고 끝을 맺는데 사실 나는 공주가 연인을 위해 '미녀'(the lady)를 선택했을 거라는 데에 '매우' 회의적이다.

노예의 두 눈은 어느 쪽이냐고 묻는 듯 이글이글 타올랐다. 공주도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공주는 손을 들어 오른쪽을 가리켰다. 아무도 그녀의 행동을 보지 못했다. 그는 몸을 돌려 성큼성큼 문으로 다가갔다.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였고, 그는 자신 있는 손길로 오른쪽 문을 열었다.

자, 한번 생각해 보라. 공주는 지난 수주일 동안 호랑이가 소름 끼치는 이빨을 드러낸 채 뛰쳐나오는 광경을 상상해 왔다. 다른 쪽 문을 연 모습도 상상했다. 처녀를 보고 미소 짓는 그의 얼굴! 결혼식 종이 울리면 공주는 입술을 깨물며 머리칼을 쥐어뜯는 것이다. 차라리 그가 당장에 죽어 버리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하지만...무시무시한 호랑이와 사랑하는 이의 비명소리!

공주는 노예가 물어 올 줄 알고 있었고 무슨 대답을 할지도 생각해 두었다. 한 순간의 지체도 없이 공주는 오른쪽 문을 가리켰다. 나는 이 물음을 여러분에게 던지고자 한다. 과연 무엇이 나왔겠는가. 미녀일까, 호랑이일까?

-「미녀일까 호랑이일까」, 프랭크 스탁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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