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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과 배트맨이 싸우면

 

내가 M에게 "배트맨과 슈퍼맨이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아?" 물으면서 배트맨의 딜레마에 대해 얘기했더니 M이 그 얘기 예전에도 했다는 거다. 내겐 반복할 정도로 재미있는 주제였던 모양이다.

"누가 이길까?" 에 대한 M의 대답은, "그게 말이 되나." 

이 대화는 여기서 끝났는데 집에 돌아와 뒤늦게 궁금하다. 왜 말이 안 된다는 거지?

당시엔 외계인과 지구인의 싸움이니 당연히 외계인이 이긴다는 얘기겠거니, 지레 이해하고 더 묻지 않았는데 나의 '이해'는 결국 '나의' 이해였던 것. 우리말은 끝까지 들어야 되는 건데 아, 궁금궁금...;

 

슈퍼맨은 지구보다 문명이 발달한 크립토 행성의 크립토니안으로 실상 외계인이다. 당연히 지구인인 배트맨이 이길리가 만무...... 하다고 볼 수도 있으나, 지구에서 클락을 괴롭혔던 악당들이 과학자, 사업가, 괴짜 돌연변이 등이었던 걸 상기하면 썩 일방적인 싸움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영화에서 배트맨을 부추겨 슈퍼맨과 싸움을 붙이는 인물이 클락과 악연 중의 악연인 렉스 루터라고 하니 여기서부터 클락이 이미 핸디캡을 지고 들어가는 대결이라 결과는 쉽게 장담 못 할 듯.

작년 여름 코믹콘에서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 Batman v Superman: Dawn of Justice>이 공개된 이후 두 영웅의 대결이 계속 화제였는데 제작사 발표에 의하면 영화가 거의 완성됐다고 하니 예정대로 올 3월에 극장에서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워낙 소문난 잔치라 막상 뚜껑을 열어 보면 먹을 거 없을 수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는 옵션.)

 

 

 

웨인 파이낸셜 빌딩 잔해 위에 선 브루스 웨인

 

 

 

배트맨의 딜레마

  

 출판사가 그린비가 아니었으면 안 읽었을『배트맨과 철학』은 애초에 제목에서 느꼈던 '기획의 냄새'는 편견에서 비롯된 오해였고, 나중에 재독하고 싶을 만큼 내용이 알차고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이 책은 전반에 걸쳐 배트맨의 딜레마를 다루는데, 특히 인상적인 내용은 '살인하지 않는 배트맨의 딜레마'를 다룬 대목.

 

배트맨은 자신의 의무는 범죄자를 법의 안마당에 데려다 놓는 것까지라고 생각하며 범죄자를 심판하는 건 법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 뛰는 공권력 위에 나는 범죄자인지라 잡아다 주면 탈옥하고, 잡아다 주면 탈옥하는 범죄자로 인하여 고담시는 여전히 범죄, 악당, 부패의 도시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니까 배트맨은 범죄자를 포획하는 과정은 자신의 영역이지만 범죄자의 심판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라고, 자신의 역할에 선을 긋는데 이러한 배트맨의 윤리의식의 가장 큰 피해자는 고담시민, 그리고 그의 조수격인 로빈이다. 배트맨에겐 두 명의 로빈이 있었는데 한 명은 예의 탈옥한 범죄자에 의해 살해당하고, 다음 로빈 역시 범죄자의 복수 놀이에 희생양이 된다. 두 로빈이 멀쩡했다면 그리하여 고담시에서 펼쳤을 정의와 선의 실현을 가정한다면, 이는 결국 고담시민의 악운이며 배트맨은 범죄방조와 살인방조의 혐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물론 제일 나쁜 건 무능한 공권력이지만 이건 이미 기성의 질서 즉 현실이므로 그 질서에서 벗어난 박쥐 가면을 쓴 배트맨에게 개인의 윤리를 넘어선 공리주의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요구가 당연한가 하면 그건 또 아니올시다 인데, 배트맨의 정체는 고담시 경제의 절반이 넘는 부를 소유한 고담 시민 '브루스 웨인'으로 브루스는 자연인으로서의 정체성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성 질서의 바깥에 배트맨이 있다면 안쪽에 브루스 웨인이 있는 형국. 결국 배트맨의 딜레마는 개인의 윤리와 공인의 윤리 사이의 간극으로 볼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배트맨은 범죄자를 포획하고, 브루스 웨인은 범죄자를 공권력에 인도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배트맨 시리즈를 '비긴즈'로 이야기를 회귀시킨 건 브루스 웨인의 성장담을 안배한 긴 안목의 기획이 아니었나 뒤늦은 추측도 할 수 있다. 아마도 프로이트라면 브루스 웨인이 아버지의 죽음에 간적접으로 관여했다는 죄책감, 그러니까 서양인의 뿌리깊은 원죄 의식인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의 또다른 변형이 브루스 웨인으로 하여금 살인하지 않는 배트맨을 만들어냈다고 해석하지 않았을까.

 

한때 설왕설래 했던 마블&DC 히어로 중 최고 갑부는 스타크 인더스트리 CEO인 토니 스타크로 추정 소유 재산이 토니 1000억 달러라고 한다. 내가 놀란 건 2위 브루스 웨인. 역시 추정재산 800억 달러 수준이라는데, 브루스 웨인이 이렇게 부자인 줄 난 정말 몰랐네. 참고로 이번에 두 영웅을 싸움 붙이는 렉스 루터는 자산가 히어로들 사이에서 47억 달러로 당당히 4위를 기록했다.

 

 

뭔가 다크다크 흑화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배트맨

 

 

<배트맨 v 슈퍼맨>에서 브루스 웨인을 연기하는 배우가 영화 <데어 데블>의 벤 애플렉이다. 보통 히어로 배우는 겹치기 출연을 안 하는 걸로 아는데 미드 <데어 데블>이 올 3월에 시즌 2 방영 예정이고, 14년에 종영되기 직전까지 인기 코믹스였는데 왜 하필 벤 애플렉일까. '배트맨'과 '슈퍼맨' 모두 마블의 히어로이긴 하지만 그런 이유로 벤 애플렉이 역을 맡은 것 같지는 않고.

클락 켄트는 <맨 프롬 엉클>의 또라이 CIA 요원인 헨리 카빌이 연기한다. 헨리 카빌은 어느 방향에서 봐도 참 고전적인 프로필이 돋보이는 배우.

 

하나 더. <배트맨 V 슈퍼맨>의 V가 궁금한 건 나뿐인지. versus의 'VS' 가인 아닌 'V'다. 역시 배트맨과 슈퍼맨은 대결하지 않는 걸까.

이쯤되니 다시 궁금해진다. M의 "배트맨과 슈퍼맨이 싸우는 게 말이 되나." 의 의미가 뭔지.

 

 

 

* 영화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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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

 

 

 

 

 

 

 

 

 

 

 

 

 

 

2006년 개봉작인 영화를 뒤늦게 찾아보게 된 계기는 브레히트의 '마리아의 추억'이 인용되었다는 얘길 듣고서였다. 브레히트의 시를 인용하는 영화라니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뛴다.


독일 영화.


1984년 동독,

감청과 도청이 절정에 달한 시기에 능력있는 비밀경찰 비즐러는 인기 극작가 드라이만을 감청/도청할 것을 명령받는다. 영화의 시작은 이렇듯 무미건조하다.

극작가 드라이만과 여배우 크리스타 부부의 삶을 엿듣는다는 건 베르히트의 시집을 읽고,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듣는 것이며, 예술가들의 열정 가득한 논쟁을 엿듣는 걸 의미한다.
비즐러가 드라이만의 서재에서 훔쳐온 브레히트의 시집을 읽는 장면은 영화 <이퀼리브리엄> 초반의 숀 빈이 예이츠를 읽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초반부와 말미에 같은 작품(드라이만의 작품)의 공연 장면이 등장하는데 역시 브레히트의 서사극을 연상케한다.
영화 말미, 마지막 15분이 남기는 감동이 묵직하다. 뭉근하게 치밀어 오르지만 확 터지지 않고 불발탄처럼 가슴에 머문다. '울고 싶은 기분'이란 이런 거구나.
오랜만에 이야기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의 완결성이란 이런 거다- 라고 보여주는 것 같은 영화다.

구체적으로 세어보진 않았지만 이제껏 본 영화를 통틀어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영화가 될 것 같다.

 

* 마리아의 추억(혹은 마리A의 추억)은 브레히트의 몇 안 되는 서정시이지만 서정시도 실존주의 작가가 쓰면 이렇게 깊은 울림을 준다는 사실.

 

마리아의 추억

 

1
그 푸르렀던 9월의 어느 날
어린 자두나무아래서 말없이
그녀를, 그 조용하고 창백한 사랑을
나는 귀여운 꿈처럼 품에 안았었다.
우리의 머리 위로 아름다운 여름 하늘에
구름은 아주 하얗고 아득히 높아
내가 올려다 보았을 때는, 이미 사라져 버렸다.

2
그 날 이후 수많은 달들, 숱한 세월이 소리없이 흘러 지나가 버렸다.
그 자두나무들은 아마 베어져 없어졌을 것이다
사랑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너는 나에게묻는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나는 너에게 말하겠다.
하지만 네가 무슨 뜻을 품고 있는지 나는 이미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정말로 끝끝내 모르겠다.
내가 언젠가 그 얼굴에 키스를 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3.
그 키스도, 구름이 거기 떠있지 않았더라면
벌써 오래 전에 잊어버렸을 것이다.
그 구름을 나는 아직도 알고 앞으로도 항상 알고 있을 것이다.
구름은 아주 하얗고 위에서 내려 왔었다.
어쩌면 자두나무들은 아직도 변함없이 꽃피고
어쩌면 그 여자는 이제 일곱번째 아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구름은 잠깐동안 피어 올랐고
내가 올려다 보았을 때, 이미 바람에 실려 사라졌었다. (1920년)

 

*마리아 : 아우구스부르크 시절의 애인, 로자 마리 아만(Rosa Maire Aman)

*출처.『살아남의 자의 슬픔』, 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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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고라>의 한 장면. 화면 왼쪽에 보이는 탑 형태의 건물이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파로스 등대.

엄숙주의 :
구체적인 조건이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원리ㆍ원칙을 고집하는 극단적으로 엄격한 고정적 사고 및 행동 양식. 도덕에 있어서 칸트가 도덕 법칙은 어떤 경우에도 의무적 성격을 갖는다고 주장하고 의무를 최고의 것으로 한 것이 엄숙주의의 전형이며, 도덕적 의지의 동기로서 행복이나 쾌락의 요구를 엄하게 배척하는 금욕적 경향을 띤다. - 출처. 지식사전

나는 종교든, 정치든, 사상이든, 사람이든 엄숙주의가 붙는 것이면 그게 뭐든 딱 질색하는데 엄숙주의는 일단, 무엇보다, 유머감각이 없어 재미가 없다. 그런데 알레한드로의 영화 <아고라>는 결국 엄숙주의 구체적으로 종교적 엄숙주의에 관한 이야기이다.

(실제 역사나 세부 사건들의 양상에서 조금 차이가 있지만)일단 영화에만 집중하면, 줄거리는 이렇다.

기원전 6세기 무렵, 한차례의 극단적인 대립 이후 이교도(영화에선 학문을 추구하는 무신론자들)는 흩어지고 그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도서관이 파괴된다. 이후 알렉산드리아는 유대교도와 기독교도가 종교적으로 대립하면서 다시 극단으로 치닫는데 기독교 주교 키릴로스(혹은 키루스)는 유대교도들과의 싸움에서 정치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지방 장관 오레스테스를 압박하고 그 수단으로 오레스테스와 친분이 있는 (과)학자 히파티아를 위협한다. 그 와중에 오레스테스가 일부 광신적인 기독교인의 돌에 부상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범인이 처형을 당하자 키릴로스 주교는 죽은자를 순교자로 칭하고 기독교인들을 부추긴다. 결국 광신적인 기독교인들은 이교도 히파티아를 납치, 살해한다. 한편 과격분자였던 키릴로스 주교는 당시 교세 확장이 시급했던 기독교단의 정치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지원으로 숱한 문제점에도 승승장구, 사후에 성인(聖人)으로 추대된다.

극단적인 것은 언제나 파괴적인 결말로 이끄는데 그 성격상 불순물이 섞이는 걸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정적과 대립하고 싸우는 과정에서 힘의 우위에 있는 집단 혹은 개인은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대개 폭력이라는 방식을 불러들이는데 특히 종교간 분쟁에서 이러한 경향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실제로 물리적인 강제력은 불순물을 걸러내는데 가장 단기적이고 가장 확실한 효과를 안겨 주는데, 안타깝지만 폭력은 고래로 국가 기관 혹은 권력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은 꽤나 역사가 깊은 실천적인 금언인 셈.

<아고라>의 주제는 초반의 '도서관 강당에서 시작하는 장면'에서 드러나는데, 히파티아와 학생들이 토론하는 모습은 이 영화의 나아갈 방향을 암시하고 있다. 또 이 장면은 지동설을 두고 벌어진 토론에서 천문 현상 역시 신의 뜻에 귀속되어 있다고 믿는 기독교도 제자와 눈에 보이는 증명된 사실만 인정하는 (이교도)학자 히파티아를 통해, 과학과 종교, 주인과 노예, 남성과 여성이라는 갈등을 한꺼번에 보여주는데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처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덧붙여 전체 지구를 보여주고 지중해의 도시 알렉산드리아로 들어가는 미시적 접근법 역시 현재 이 도시가 처해있는 상황이 폐쇄적이고 폭압적인 것임을 잘 보여준다.

역시 영화 초반, 눈에 띄는 장면이 있는데 키릴로스가 사람들이 모인 광장에서 불 위를 걷는 것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장면이 그것.
인간의 종교가 다 그렇지만 기독교 역시 많은 자기 모순(= 인간의 모순)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미신성이다. 기도를 통해 기원을 하고, 기원을 통해 구원을 받는 방식은 그 형태로만 보면 무속신앙의 '굿'과 별 다를 바가 없는데 귀신을 불러 점을 치고, 굿을 통해 구원을 받는 무속신앙을 우상숭배, 이단이라 하여 배척하고 금지하는 기독교는 그 역사를 들여다 보면 같은 방식으로 신자들을 모으고, 교세를 확장해왔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자가당착의 모순이 드러나고 그로 인해 불필요한 희생이 너무 많았다는 것인데 영화 크루서블(The crucilble)로 제작되기도 했던 세일럼의 마녀재판은 이러한 경직된 종교적 엄숙주의와 종교의 미신성이 합작해 만든 비극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 <크루서블>이 보여주었던 것과 유사한 장면 즉, 교인이 아니면 곧 마녀라는 편집증적이고 광신적인 이단 논쟁은 <아고라>에도 등장한다.

영화에선 자세히 나타나지 않지만 당시 가장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고대 도시였던 알렉산드리아는 결국 종교 분쟁, 정확히는 인간의 욕망 앞에서 쇠락한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은 여성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히파티아이고, 영화 내용 역시 히파티아의 일생의 절정 부분에 집중하지만 다른 한편 히파티아와 도시 알렉산드리아의 운명이 그 궤를 같이 한다는 점에서 영화의 주인공을 '도시 알렉산드리아'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신념이 이상이 되면 개인의 욕망이 되지만 이상이 신념이 되면 개인을 벗어나 공리적인 것이 되는데, <아고라>는 키릴로스와 히파티아를 통해 이 차이를 보여준다. 어떤 점에서 그들은 결국 자신의 신념을 충실하게 따른 개인일 뿐인 것.
결국 '나쁜 인간은 없다, 나쁜 신념을 가진 인간이 있을 뿐' 인 걸지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건설한 지중해 최대 항구 도시이자 국제 도시였던 알렉산드리아는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파로스 등대와 사라피스 신전, 역사상 최대 규모였던 도서관을 소유했지만 끊임없는 종교 분쟁과 싸움으로 도서관은 불타고 수많은 장서가 유실되는 안타까운 역사를 가진 도시이다.

- 출처.『알렉산드리아』, 생각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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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속스캔들
석현 군은 소문대로 귀여웠고, 보영 양도 역할을 잘 한 것 같고, 태현 씨도 자신의 장기를 잘 발휘한 것 같고. 얘기가 좀 더 풍성했으면 좋았겠다 싶다. 한국영화의 고질병인 용두사미를 피해가지 못한 것도 아쉽다.

 

작전
비슷한 영화가 계속 나오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먹히기 힘든 장르인 듯.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 구조와 반전이지만 대체로 무난하게 볼 만 했다. 옥의 티는 서연(김민정)의 캐릭터. 역할에 비해 너무 착하다.

 

국가대표
단순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굉장히 밀도 있게 찍은 느낌. 디테일에 치중하는 것보다 굵은 줄기를 따라가는 이야기 덕분에 영화에 몰입이 잘 되고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도 쉽다. 이것이 이 영화가 흥행할 수 있었던 요인인 듯.
대회가 끝난 직후 라커 앞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장면은 지나치게 감상적이어서 오글거리기도 했지만 이 모든 것을 상쇄할만큼 음악이 좋았다는 거! 러브홀릭스의 'Butterfly'는 이보다 더 적확할 수 없는 선곡. (감독판은 오글거리는 장면이 빠지고 대신 코미디요소가 강화되었다고 한다)

7급 공무원
유치와 재미의 경계를 잘 피해간 영화. 그래도 후반부로 갈수록 유치하긴 했다. 관객을 웃겨야 하는 코미디 장르가 원래 더 어렵다. 영화의 1등 공신은 원석 팀장(류승용). 이 아저씨 정말 볼매이심.

 

The Gift(Echelon Conspiracy)
사건의 매개체가 휴대폰이라는 점에서 샤이아 라보프의 『Eagle Eye』와 비슷하다. 장담하건데 시간이 지나면 두 영화의 줄거리가 머리 속에서 합체할 게 분명하다. 
 

  

불꽃처럼 나비처럼
예고편을 보고 기대한 영화. '스타일만큼은 괜찮겠지' 마음을 비운 것도 있고, '기대하지 않으면 그럭저럭 괜찮다'는 몇 몇 리뷰도 이 영화를 선택하는데 한 몫 했다. 결론은,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은 영화. 팩션이라고 하기에는 작가가 이야기를 너무 제맘대로 썼다. 함께 본 친구는 '원작자가 야설록이었으면 안 봤다'는 명언을 남겼다.

One Week
슬픈 영화는 될 수 있음 안 보는데 추석 전날, 이 날 하루만 극장에서 상영한다고 이 날을 놓치면 못 본다는 말에 B양에게 끌려 조조로 본 영화(부산 극장 얘기다). 관객이 거의 없어 덕분에 극장을 대관한 듯 아주 아늑하고 조용하게 봤다. 다만 너무 아늑했던 탓인지 정작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던 B양은 쿨쿨~ 잤다.
로드무비. 가을의 감성과 잘 어울리는 영화다. 스토리 면에선 『Knocking on Heaven's Door』, 영화 전반에 흐르는 음악이나 회색 톤의 화면은 『원스』와 느낌과 비슷하다. 주제는 심각한데 표현은 그다지 무겁지 않다. 30년이든 70년이든 지나온 삶을 정리하는데 충분한 시간이라는 게 과연 있을까. 누군가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누군가에겐 절실했을 오늘 하루를 나는 얼마나 충실하게 보냈는가 고민하게 된다.

트랜스포머 2 (패자의 역습)
전작의 성공으로 물적 물량적 지원을 아낌없이 받은 티가 난다. 영화를 보니 주연 여배우가 영화 개봉 뒤 비난을 쏟아낸 심정을 알 것 같다. 심하게 말하면 영화가 여배우를 대놓고 눈요기로 삼는다. 굳이 이 배우가 아니었어도 상관 없었을 것 같은 역할과 비중은 충분히 배우의 자긍심을 건드릴만 하다.
사실, 이분법적으로 말하면, '바비 인형'이 여자아이들 장난감의 대명사라면 남자아이들 장난감의 대명사는 '로봇' 아닌가. 따라서 트랜스포머가 로봇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태권브이 류의 로봇 만화에 열광하며 유년을 보낸 성인남자들의 향수를 대변하는 영화라고 이해한다면 영화 속에서 여배우를 소비하는 시선을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하지만 뭐가 어떻든 여배우의 분노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또 하나. 매트릭스 이후 한번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반전은 이제 확실히 유행으로 자리 잡은 클리셰인 듯.

스타트렉 '더 비기닝'
스타트렉은 특유의 분장 때문에 질색하며 채널을 돌리던 드라마였기 때문에 당연 영화를 볼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이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친구 때문에 보고 말았다. (친구 따라 강남도 가는데 영화쯤이야...)
일단 시공간 이동에 대하여, 비슷한 이야기를 다룬 기존 영화들에 비하면 왜곡이 덜하고 비교적 깔끔하게 처리한 것이 마음에 든다. 기대 없이 봐서인지 의외로 꽤 괜찮았던 영화.
* 현재 시즌 4가 방영중인 미드 『Heroes』의 대표적인 악역 사일러가 주연으로 나오는데 이 배우가 나오는 줄 알았다면 아무리 친구가 보고 싶다고 해도 안 봤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한 일은 끔찍한 악몽을 연상시키는 사일러 때문에 못 보고 있는 『Heroes』가 강을 건너 산을 타고 안드로메다로 향하고 있다는 소문. 보고 싶은 드라마를 등장인물 하나 때문에 보지 못한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G.I.Joe '전쟁의 서막'
영화를 본 후 기억나는 건 '정신없다'뿐.
블록버스터답게 돈을 퍼부은 덕에 시각적으로 화려하고 내용도 그럭저럭 볼 만 했다. 2편을 의식한 탓인지 이야기의 완성도는 아무래도 떨어진다.

 

엑스맨 울버린
이 영화, 워낙 전편들이 탄탄하기 때문에 기본은 하는 시리즈라는 선입견이 있다. 물론 외전 격인 울버린도 볼 만 하다. 사실 나는 『케이트&레오폴드』나 『Someone like you』등의 고전적 로맨틱코미디에 나오는 휴 잭맨을 더 좋아한다. 물론 최근작들도 나쁘지 않지만, 그래도 다음 영화는 장르를 좀 바꿔주셨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이 있다.

리스트의 마지막 네 편은 SF물이다. 이들을 순위를 매기자면,
스타트렉 > 트랜스포머2 > G.I.Joe > 엑스맨 울버린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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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0-08-30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유의 분장때문에 채널 돌아가던 스타트렉에게 우선순위를 주시면, 다른 아이들은....

인삼밭에그아낙네 2010-08-31 09:29   좋아요 0 | URL
앗! 아니어요~ <스타트렉> 재미있어요~
정확하게는, 스타트렉>>>>트랜스포머2... 쯤 되겠습니다. 이건 물론 제 취향이고요 ^^;
 

쇼타임(미국)에서 제작한 미드《튜더스》1시즌 열 편 중 2편까지 봤을 때, 도서관에 갔다가 마침『천일의 스캔들』을 발견하고 대출하면서 도중에 책을 읽고 다시 드라마를 보는 뒤죽박죽 순서가 됐다. 소설은 역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고 아무래도 시각적 효과가 돋보이는 드라마 쪽이 역사 고증에 더 충실하다는 느낌이 든다. 참고로 소설과 드라마는 같은 인물, 같은 배경을 다룬다는 것 외에는 아무 연관이 없다.

소설『천일의 스캔들1,2』(개정전 제목은 <천일의 앤 불린>)은 메리 불린과 앤 불린 자매가 주축인 소설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메리 불린은 헨리8세의 애인이었고, 앤 불린은 헨리8세가 아라곤의 왕비 캐서린과 이혼하기 위해 로마 카톨릭과 결별하고 성공회를 만드는 동기를 제공한 장본인이다. 대개 앤의 언니로 알려져 있지만 소설에서는 동생으로 등장하는 메리가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한다. 이 소설의 장점은 분량이 꽤 됨에도 만 이틀을 넘기지 않고 금방 읽을 수 있다는 것과 소설임을 감안, 연대별로 큰 줄기를 따라가면 당시의 시대 상황과 흐름을 쉽게 정리할 수 있다는 것 정도이다.

'Farewell My Love'는 국내에선 영화와 동명의 제목인 '천일의 앤'으로 알려진 ost  곡인데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한편 언제 어디서 봤는지 기억도 안 나는 옛날 영화《천일의 앤》에 등장했던 앤은 막연하나마 절대 권력자에 의해 연인과 억지로 헤어지고 왕의 여자가 되는 비운의 여인으로 기억에 남아있는데《튜더스》에서 다시 만난 앤은 한마디로 장희빈스럽다고 해야 할까...  

 

《튜더스》시즌 1은 울지 추기경의 사망까지 내용이 전개된다. 이후 시즌은 아마 헨리8세의 반복되는 이혼과 재혼, 블러디 메리(Bloody Mary)를 거쳐 엘리자베스1세의 얘기까지 내용이 진행되지 않을까 싶지만《로마Rome》가 시즌2를 끝으로 제작비 문제로 더이상 제작하지 않는다는 걸 보면《튜더스》의 운명도 어떻게 될지 며느리도 모를듯...

주인공 헨리8세 역을 맡은 조나단의 인기가 매우 높은데 나는 '예쁘면(혹은 잘 생기면) 다 용서가 되는' 너그러운 인간이 못 돼서 나쁜 놈은 아무리 멋있어도, 물론 아깝기는 하지만, 그냥 나쁜 놈으로만 보인다. 앤 불린 역시 마찬가지. 사실 권선징악 지지자인 나는 동정받는 악인이라는 캐릭터에 공감하지 않는다.

역사가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 우연히, 정말 우연히 일어나지만 그중 드물게 우연이 필연을 낳고 바로 그 필연이 거대한 세계 지도의 조각을 맞추기 때문이지 않을까. 요컨데,
헨리8세는 어려서 형이 요절하는 걸 지켜봤고, 절대 군주가 되었지만 기다리는 아들은 태어나지 않고, 왕비의 시녀 앤이 눈에 띄고, 앤은 정부가 아닌 왕비가 되기를 원하고, 앤은 울지 추기경과 사이가 나쁘고, 카톨릭은 이혼을 인정하지 않고, 때마침 루터에 의한 신교가 유럽에 확산되고 있었고, 헨리8세는 결국 로마교황청에 등을 돌리고 성공회를 열고, 왕비와 이혼함과 동시에 앤과 결혼하고, 앤에게서 딸 하나를 얻고, 훗날 앤의 딸은 우여곡절 끝에 영국에 정치적/문화적 르네상스를 이루는 엘리자베스1세가 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셰익스피어같은 당대의 문인이 등장하고, 영국이 해상을 장악하고 동인도회사를 설립하는 것 모두 엘리자베스1세 시절이다.

여섯 명의 아내들 중 두 명은 참수형시키고, 한 명은 아들을 낳았으나 출산 직후 산후욕으로 사망, 두 명은 이혼, 왕이 먼저 사망한 덕에 살아 남은 운좋은 마지막 한 명까지... 해서 잔혹 동화 '푸른 수염'의 모델이기도 한 헨리8세는 알려진대로 사생활이 무척이나 복잡하고 난삽하다. 하지만 통치자로서는, 비록 이혼이 목적이었다고는 하나, 면죄부 판매 등으로 부정부패가 정점에 달했던 당시 로마 교황청과 결별, 영국 국교 성공회를 일으키고, 통치기간 중 부국강병을 실현했으며, '지식이 없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스스로 지성인이면서 지식을 장려하고, 또한 젊었을 땐 유럽에서 가장 잘 생긴 왕자로 인기가 높았다고 하니 그놈의 아들 타령만 아니었으면 참으로 바람직했을 인물이 아닌가 싶다.

헨리8세의 여러 번의 결혼 중에는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아들도 중요하지만 이왕이면 왕비가 예뻤으면 했다는 욕심 많은 헨리8세. 가히 판타지에 가까운 초상화 기술을 믿지 못해 네 번째 결혼 상대자인 독일 클레브스 공작의 누이 앤(클레브의 앤)을 결혼 전에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클레브스 집안의 강한 반발에 결국 결혼식 당일에서야 왕비의 얼굴을 보게 되는데, 넙적한 얼굴에 또 거구였던 신부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는다는 얘기에 이르면 이 대단한 왕이 귀엽기까지 하다. 결국 네 번째 왕비는 못생겼다는 이유로 무시 당하다 7개월 만에 이혼을 당했다고 하니, 그래도 죽음은 면했으니 바꿔 말하면 역시 미인박명인 걸까 싶기도 하고.

헨리8세를 비롯 앤 불린, 메리 여왕, 엘리자베스1세까지 인물들 자체가 워낙 강렬한 데다 또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보니 아무래도 드라마를 볼 때도 인물에 치중하게 된다. 하지만 루터와 칼뱅의 종교 개혁이 유럽 전역에 확산되는 시점에서 헨리8세 때부터 시작된 튜더 왕조 인물들을 둘러싼 구교와 신교의 대리전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유의하면서 봐도 재미있다. - 물론 재미를 담보해야 하는 미디어의 특성(=허구성)을 염두에 두어야겠지만.  

앤 불린의 딸이자 영국의 부흥기를 이끈 엘리자베스1세의 얘기를 다룬 영화로 케이트 블란쳇이 주연한《엘리자베스'Elizabeth', 1998》와《더 골든 에이지The Golden age》가 있다. 전자가 여왕으로 등극되기까지의 내용이라면 후자는 이후 45년의 통치 기간을 다룬다. 여담이지만《더 골든 에이지》는 심각하게 재미가 없다. 무엇보다도 픽션이 지나치다.
 

이 시대 혹은 이런 배경에 관심이 있다면 역시 구교와 신교의 극한 대립으로 벌어진 1572년 성바르톨로메오의 학살사건이 배경인 알렉상드르 뒤마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여왕 마고Quees Margot』(이자벨 아자니, 다니엘 오떼이유, 벵상 뻬레 등)도 볼 만하다.
참고로 여왕 마고는 엘리자베스1세와 대립각을 세웠던 비운의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의 시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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