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일즈의 전쟁』『보르 게임』은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의 '보르' 시리즈로 모두 십여 편이 넘는 시리즈 중 국내에 출간된 장편은 이 두 권 뿐이다. 국내 시장의 분위기로 봤을 땐 아마 나머지 시리즈의 번역을 모두 만나보기란 거의 불가능하지 싶다.
책으로 들어가서, 

행책SF 총서 중 가장 먼저 읽은『신들의 사회』가 워낙 강렬했던 탓에 이어 읽은『마일즈의 전쟁』은 독서에 속도가 붙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일단 속도가 붙은 뒤로는 이어지는『보르 게임』과 그 중간 얘기인 단편『슬픔의 산맥』(무크지 Happy SF 2권 수록)까지 단숨에 읽었지만 그래도『신들의 사회』의 재미와 감동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 이는 아마 남성작가에서 여성작가의 필체로 곧장 넘어간 데서 오는 부작용일 수도 있다.

주인공 마일즈 보르코시건의 모험을 그리는 보르 시리즈는 전형적인 스페이스 오페라. 그중『마일즈의 전쟁』의 마일즈는 예전 TV 애니메이션 <무책임함장 테일러>를 연상시키는데, 내용면에선 그다지 비슷한 게 없는데도 읽다 보면 그냥 자연스럽게 테일러 함장이 떠오른다.
보르 시리즈의 특징은, 이걸 특징이라고 해도 될런지,  마일즈가 생각이 '너무' 많고, 말이 '너무' 많아서 언뜻 지루할 정도. 그런데 책을 읽는 동안은 고만고만 하던 얘기가 누군가에게 말로 전할 때는 엄청 재미있어진다. 

그러니까『마일즈의 전쟁』줄거리는 이렇다.
사관학교 입시에 떨어져서 상심한 마일즈는 외가가 있는 행성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참견 잘 하고, 자의식 강하고, 오지랖 넓은 성격 탓에 어쩌다 우연히, 말하자면 부도 수표를 내밀고, 워프 가능한 낡은 중고 우주선 한 대와 기관사 한 사람을 손에 넣는다. 그리고 부도 수표가 들키기 전에 우주선 구입 비용을 갚기 위해 분쟁 지역으로 화물을 운반하는 이를테면 '택배 용병' 흉내를 내는데, 세상만사 계획대로만 되면 아무 문제 없을 것을 이래저래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배 한 척은 두 척이 되고, 두 척은 다시 세 척이 된다. 물론 부하 용병도 한 명에서 두 명으로, 두 명에서 열 다섯 명으로 다시 이천 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결국 제독의 지위에 오른 마일즈는 남의 행성 분쟁에 끼어들어 전쟁까지 치르게 된다.

전반 거의 1/2 가량이 하도 지루했던 탓에 -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인 이 소설은 마일즈의 끊임없는 독백과 상상 혹은 망상으로 지문의 대부분이 채워져 있다,
읽는 도중에 '도대체 언제부터 재미있어지는 거냐!' '재미의 포인트가 어디?' 하는 심정으로 찾아서 읽은 인터넷 서평의 반응은 대부분 요절복통 방을 데굴데굴 굴렀다는 내용. 도대체 어디가? 무엇이?
하지만 책을 읽는 도중 드디어 나도 요절복통하는 순간이 왔으니. 임무 수행하라고 보낸 부하들이 귀대할 때마다 새로운 용병 부하들을 그것도 많은 수를 뒤에 매달고 나타나는 부분은, 가히 이 소설에 등장하는 유머의 정점이라고 할만 하다.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용병 부하들의 끼니와 월급을 걱정해야 하는 마일즈로선 기함하고 복장이 터지고도 남을 일.
그러므로 몇 몇 서평의, 가벼운 무협지처럼 편하게 즐기면서 읽어라, 는 '보르 시리즈'를 읽는 이들에게 가장 적절한 길잡이일 듯. 

단언하건데『마일즈의 전쟁』보다『보르 게임』이 2.5배 더 재미있다. 더 재미있는 요소의 힌트는 황제 그레고르.『보르 게임』에 만약 소제목을 붙이면 '황제 가출 사건'이 딱 제격이다.

그리고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마일즈의 첫사랑 엘레나.
이 작가의 소설에 '페미니즘'이라는 수식이 붙는 것이 의아할 정도로 엘레나의 인물 묘사에서 느껴지는 건 유사 우주된장녀라고나 할까, 하여튼 참 정이 안 가는 아가씨다. 게다가『보르 게임』에선 한층 더 밉상이다. 예쁘면 다 용서되는 마일즈에겐 자업자득이다 싶지만서도. ('페미니즘' 얘기는 아마도 마일즈의 어머니와 관련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 사족
소설에 작가의 개입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소설 자체의 독립적인 아우라가 약해지기 마련인데, '보르 시리즈'가 그렇다. 책의 많은 분량이 끊임없이 마일즈의 'outstaning'을 강조하지만 실상 그 정도로 뛰어나지는 않으니 읽는 독자가 살짝 민망하다. 다시 말하지만 읽는 입장에서 마일즈의 허풍과 말빨이 작가가 자랑하는 만큼 '우와아-' 감탄이 나올 정도는 아니다. 마일즈가 행운을 타고난 청년이라는 것에는 백번 공감하지만 마일즈의 비범함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끼워맞추기'식 기승전결 안에서만 빛난다. 당연히 독서가 가벼울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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