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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김사과 지음 / 창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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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주정이 심한 사람은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보여주면 고치거나 술을 끊게 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술에 취했을 때 내가 어땠는지 스스로 어렴풋이 기억하거나 동석했던 다른 사람의 증언을 통해 듣는 것과 그것을 직접 보는 것은 아마 천지차이일 겁니다. 녹음된 내 목소리를 처음 들을 때의 놀라움과도 아마 비교가 불가능하겠지요.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있다거나,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다는 인지를 통해서 나 자신을 인식하는 방법은 그것을 아무리 성실하게 한다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어떤 말을 하거나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 나를 관찰하는 것 또한 나의 의식이 나를 벗어나서 나를 관찰한다는 생각, 그 관찰이 남들의 관점과 비슷할 거라는 착각일 뿐입니다. 거기에는 타인이 어떻게 생각할 거라는 부정확한 짐작까지 개입합니다. 또 자신이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은 이미 스스로가 그간 해온 생각이나 행동, 자신에 대해 스스로 판단해온 것들이 어쩔 수 없이 전제돼 있기 때문에 그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남들이 나에 대해 대체로 생각하는 바와는 일치할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거기다 술을 마셔서 의식을 흩트리고, 주정까지 부리는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기란 더욱 불가능합니다. 멀쩡한 정신일 때도 인간이란 누구나 혐오스러운 면을 갖고 있는 법인데 그것이 술을 마시고 부리는 주정이라면 아마 그 혐오감, 무엇보다 그것이 자기 자신에게서 표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참아내기 힘들 것 같습니다.

 

김사과의 [천국에서]를 읽고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은 책을 읽으면서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케이와 그녀를 둘러싼 인물들의 대화나 묘사를 보면서 그 속에서 나 자신의 어떤 모습, 그 중에서도 혐오스러운 여러 면을 한꺼번에 많이 마주하게 됐습니다. 우스꽝스러운 인물들을 마구 손가락질하며 비웃을 수 없으니 불편했습니다. 그들과 다른 나만의 어떤 면을 필사적으로 찾아보기도 했습니다만 피곤할 뿐이었습니다. 구체적인 배경과 상황을 제외하면 나는 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김사과 작가의 이번 소설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과 굉장히 비슷합니다. 마약을 하거나 술을 잔뜩 마신 상태에서 나누는 전혀 문학적이지 않은 대화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우리가 평소에 하는 대화들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걸 또박또박 적힌 글자로 보자니 그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모를 수가 없는데, 나 역시도 그렇겠구나 생각하면 씁쓸해집니다.

 

홍상수 영화 속의 그런 장면들을 극장에서 보면 저는 ‘하하하’ 하고 굉장히 많이 웃습니다. 웃는 지점이 남들과 어긋날 때가 많아 대체로 관객이 많지 않은 조용한 극장에서 제 웃음소리만 민망하게 울릴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김사과 소설 속 인물들의 대화를 읽으면서는 피식 웃긴 했어도 ‘하하하’ 하고 웃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똑같이 우스꽝스러운데, 왜지? 생각해봤더니 극장에서의 저의 웃는 행위 역시 나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다고 착각하는 와중에 극장 안에 있는 다른 관객들을 의식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 드는 겁니다(이봐요, 여기에서조차 저는 분명하게 인정하지 않고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 드는 겁니다’라는 어중간한 문장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 장면에서 확실히 웃어줌으로써 나는 너무 평범하고 솔직해서 천박한 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내비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나’는 술은 취하지 않았으니 자신 있게 웃었겠지만, 실제로 제 안에는 그런 허영이 있습니다.

 

대화를 보여줄 뿐 생각은 들려줄 수 없는 영화와 달리 소설은 그 대화를 보여주기 전후의 상황 설명이 덧붙여져 있기 때문에 대화의 어떤 부분이 우습다 해도 실제로 소리 내어 웃기는 힘들다는 장르적인 차이도 물론 있습니다.

 

[천국에서]는 케이가 뉴욕에서 써머와 댄과 함께 지내는 1부, 한국에 돌아와서 주로 홍대 인근에서 재현과 연애하는 2부, 인천 사는 지원과 연애하고 이별하는 3부, 이 모든 것을 정리하는 짧은 4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김사과의 작품은 [2011 제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단편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다>밖에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김사과의 작풍에 대해서는 짐작하는 바가 있습니다. 워낙 ‘문제적 작가’라는 평가와 함께 그녀의 작품 경향을 논하는 글을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록 단편 한 편을 읽어본 저도 [천국에서]는 그간의 김사과 작품과 많이 다르(겠)다고 봤습니다.

 

달라진 김사과의 이번 소설에는 다음과 같은 작가의 논평이 많이 등장합니다.

 

여행자가 된 도시에서는 사람들도 여행자가 되어야 했다. 그런데 여행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세상을 일련의 풍경으로 인지하는 것이다. 풍경이 된 세상은 아름답다. 거리에 가득 찬 쓰레기에서 고급 호텔에서 내려다보이는 스카이라인까지, 여행자의 시선 속에서 세상은 공평하게 아름답다. p.92

 

감수성은 하나의 거대한 시장이 되었고, p.94

 

갈수록 세련되어지는 도시의 풍경은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그건 시한폭탄이 장착된 극장에서 상연되는, 세상에서 가장 길고 화려한 영화와 같았다. 끔찍한 결말이 다가오고 있지만, 관객들은 여전히 화려한 이야기에 매혹되어 있었다. p.126

 

세계화되고 자본주의에 완전히 잠식당한 세계와 그 안에서 별다른 반성이나 상황에 대한 독자적인 인식 없이 길들여진 개인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한 시각 자체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지만 신랄해서 아픕니다. 저 역시 그런 여행자 중 한 명이고, 거대한 시장이 돼버린 ‘감수성’의 충실한 소비자이며, 세련되어지고 있는 도시의 풍경이 내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가끔은 내 것이라거나 내 것이 될 거라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만약 이러한 이야기들을 하면서, 세상이 그렇고 그 속을 사는 사람들도 다 그렇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래도 나는 아냐’라는 식의 태도를 취했다면 아마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 뻔뻔함, 무조건 크고 새로운 것을 칭송하는 태도는 케이 윗세대 한국인들의 전형적인 특징이었다. 케이는 그런 특징이 자신의 세대에서는 제발 멸종하기를 바랐다. 물론 그것은 심오한 통찰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고 그저 눈앞에 펼쳐진 촌스러운 광경이 참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윗세대도 정확히 그녀와 같은 이유에서 이 도시를 깨부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단지 그들은 크고 눈에 띄는 변화를 선호하고 케이는 소박하지만 섬세한 변화를 선호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p.103

 

작가가 내세운 주인공 케이 역시 작가가 비판하는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허영과 자기기만으로 가득 찬,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보통 사람들과 자신을 구분 짓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이십대 초반의 여대생입니다.

 

‘허세 작렬’하는 사람은 과거에나 현재에나 어디에나 있습니다. 허세들은 대체로 자신이 타인 앞에 내세워져 있을 때 유독 작렬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보통 다른 사람들의 작렬하는 허세에도 쉽게 넘어 갑니다. 그것이 허세인지 아닌지 쉽사리 구별하지 못할뿐더러, 그것을 알아챈다 해도 적지 않은 타인들이 그러한 허세의 근거들에 쉽게 매혹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적당히 그 허세에 묻어갈 수 있다면 적당히 모른척하고 그것을 긍정합니다.

 

J는 케이보다 한 살이 많았는데 홍대를 졸업하고 한예종에서 미디어 아트를 전공하고 있었다. 그는 어려서 영국에서 살았던 적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어딘가 영국풍으로 세련되고 우수에 차 보이는 것이 근사하다고 일 년 전 처음 그를 봤을 때 케이는 생각했다. p.104

 

하지만 혼자 있을 때 굳이 ‘허세 작렬’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 자신에게는 굳이 나를 포장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케이는 그러합니다. 자기 자신에게조차 자신을 포장합니다.

 

그저 한 가지, 인천에서 지냈던 시간만은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아니, 가능하면 없던 시기로 만들고 싶었다. 어차피 나쁜 꿈에 불과했지 않은가? 케이는 그 시간이 자신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고 믿었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온갖 멋져 보이는 것들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펑크, 아나키즘, 아방가르드, 공산주의, 혁명, 마약, 히피, 섹스...... 물론 철저히 개념적인 차원에서였다. 서구의 청소년들과 달리 그 개념들을 실제로 현실에 적용해볼 자유는 한국의 청소년들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한국에서 개인에게 허용된 유일한 표현 방식인 패션을 통해 케이는 그것들을 실천하기로 결심했다. p.142

 

[천국에서]는 이렇게 실제 천국은 등장하지 않고, ‘얼핏 천국으로 보이는 것’과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장소로서의 천국’만 등장합니다. 진짜로 좋은 것은 하나도 나오지 않고 ‘겉으론 좋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쁜 것’만 잔뜩 나옵니다. 그래서 작가가 만약 이렇게 모든 것을 다 비관적인 관점 속에 집어넣고, 주인공만은 다르다는 식으로 자기만 혼자 쏙 빠져나왔다면 독자로서의 저는 ‘뭐야? 혼자 잘났어?’ 하며 작가에게 반감을 품는 것으로 책을 덮었겠지만, 주인공 케이가 작가가 비판하고자 하는 모든 상황과 사고방식의 정수이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계속해서 자기반성을 하게 됩니다.

 

영국풍이니, 홍대풍이니, 중산층이니, 잠실 친구들이니 하는 구체적인 용어들은 이렇게 텍스트로 읽으면 반감이 생기지만, 이 중 어떤 것은 실제로 제가 동경했고 아직도 동경하고 있는 것들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한때 제가 편입되고 싶었던 세상이었고, 지금도 만약 그럴 기회가 생긴다면 거부하지 않고 들어갈 그런 세계.

 

만약, 그런 세계로 편입된다면 저는 앞으로 이런 텍스트들을 외면하게 될까요, 아니면 여전히 읽으면서 그래도 나는 아직 예민하게 자기반성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허세를 부릴까요.

 

그는 그렇게 한바탕 자신과 광주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은 뒤 공연장을 구경시켜주었다. 생각 외로 인테리어도 세련되었으며 싸운드 시스템도 훌륭했다. 하지만 뭐가 불안한지 그는 거듭 괜찮지요? 나쁘지 않지요? 서울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지요? 하고 물어댔고 그러면 케이의 일행은 반복해서 같은 칭찬을 늘어놓았다. 박씨는 이 생각 없는 젊은이들이 단지 서울에서 왔다는 이유로, 마치 서울에서 보낸 사절단이라도 되는 양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사실 진짜 멋을 아는 것은 광주 시민이고 서울은 잡탕 같은 도시라면서 폄하하기를 반복했다. p.164

 

또 김사과의 확언대로 그 세계는 원래부터 그 세계 속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면 절대 갈 수 없는 곳이라면, 저는 공연장 주인처럼 내가 속한 현재를 과도하게 긍정하면서도 여전히 그 도달할 수 없는 그 세계를 동경하게 될까요.

 

그럴 때마다 케이는 커다란 수족관을 떠올렸다. 수족관 속에서 열심히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 한 마리. 투명한 유리 너머로 내다보이는 것들에 대해서 물고기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글쎄, 아무 생각도 없겠지. 하지만 생각을 한다면? 이해가 안 되겠지. 어, 나랑 같겠지.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해서 한번 생각을 시작한 물고기가 그걸 멈출 수가 있을까? p.331

 

[천국에서]를 읽으면 계속해서 책 읽기를 멈추고 ‘나’는 어떠한가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것은 대체로 확언보다는 질문의 형태로 발현됩니다. 괴롭습니다. 그런데 김사과는 또 한 번 좌절을 안겨줍니다. ‘한번 생각을 시작한 물고기가 그걸 멈출 수가 있을까?’라고 말하면서요.

 

그런 점에서 결말 부분은 의외였습니다. 케이가 수족관은 없다고 결론 내리며 그 까페에서 갑자기 일어나 가는 그곳이 어디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짐작 가는 대로라면 그건 또 좀 너무 갑작스럽달까요.

 

소설 속에서 원래 ‘인물’은 변하게 되어 있지만, 그러한 변화가 충분히 설득력 있게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차라리 분노로 들끓는 주인공이 주변인이나 전혀 관계없는 타인을 무차별적으로 잔인하게 죽이는 전작들이 오히려 더 그럴만해 보입니다. 그런 폭력적인 결말이 좋다는 게 아니라, 인물의 드라마틱한 행동이나 변화는 그만큼 충분한 계산을 가지고 그려내야 독자들도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소설 전반에서 케이가 끊임없이 고뇌하고 있긴 하지만 그 고뇌의 내용 중에 이런 드라마틱한 변화를 짐작케 하는 실마리는 충분하지 않았다고 느껴집니다.

 

작가는 소설 전체에서 케이나 써머, 댄, 케이의 부모님, 써머의 부모님, 댄의 부모님, 재현, 지원과 지은과 그들의 아버지 등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간략하게 그들의 성장배경이나 살아온 환경 등을 꼭 서술하고 넘어갔습니다. 마치 브리핑처럼 간략하게. 그렇다보니 IMF라든지, 미국발 금융위기 같은 세계사적인 사건이나 뉴욕, 브룩클린, 잠실, 홍대, 상수동, 인천 남동공단, 광주와 같은, 각각만 가지고도 최소한 한 권의 책 분량으로 이야기될 수 있을 거대한 이슈들이 몇 줄의 문장만으로 간단히 처리됩니다. 인물들도 굉장히 단순화되죠. 어떤 특정한 세대나 상황을 표상하는 인물로 각인됩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그런 사람’으로 ‘그런 환경’ 속에 남겨놓고 케이만 막판에 싹 빠져나오는 듯한 결말은, 그래서 더 쉽게 납득이 가지 않고 배신감마저 느끼게 합니다.

 

더불어 [천국에서]를 읽으면서, 김사과가 젊은 작가이기 때문에 이토록 복잡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그토록 확고한 문장으로 쓸 수 있기도 하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직접 경험하지 않았거나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것들을 다 경험했고 다 아는 것처럼 확언하고 있다는 인상도 받았습니다.

 

소위 ‘논술’이라는 것이 시험과목에 있는 직종에 취업하기 위해 준비하면서 반은 억지로 신문을 읽고 관련 책을 찾아 읽은 시기가 있습니다. 마침 그때가 미국발 금융위기가 닥친 무렵이라 시험 문제로 많이 등장했죠. 물론 제가 아는 선에서 쓰기를 요구한 문제이긴 하지만 저만의 시각이 들어있어야만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개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논평까지 써야 했습니다. 그 논평이 우스꽝스럽지 않게 하기 위해 최대한 사실과 진실을 알고자 이것저것 읽고 공부했지만, 그 모든 것은 쉽게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큰 그림을 익히고 큰 줄기를 파악하는 데 주력했는데, 김사과의 소설 속 논평 중에도 어떤 것들은 이런 방식을 통해 파악하지 않았을까 싶은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다 안다고 해서 소설 안에 구구절절 다 쓸 수 없었겠지만, 확실히 본인의 관점을 갖고 설명한 부분과 두루뭉술한 문장으로 넘어간 부분의 차이는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앞에서 이미 인용한 문장에서 케이가 그런 것처럼 ‘물론 그것은 심오한 통찰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고 쿨하게 인정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 역시 케이와 멀지 않은 세대이며 케이가 속한 어떤 집단과는 분명한 교집합을 갖고 있을 테니까요.

 

김사과가 2013년에 쓴, '모든 게 망가졌는 데 아무것도 무너져내리지 않는 세계'는 결국 이성복 시인이 1978~9년께 쓴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는 그 세계와 다르지 않아보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계는 결국 모두 병들고 모든 게 망가져도 어떻게든 유지되는 곳인가요.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자체로 거대한 보균자이지만 결국 발병은 하지 않는, 발병은 해도 결코 죽지는 않는 거대한 질병덩어리인가요. 그렇다면 도대체 왜죠.

 

작가로서의 김사과가 독자로서의 저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그 질문들은 애초에 던진 사람조차 영원히 정답을 발견할 수 없는 난제들입니다. 하지만 죽기 전까지 계속해서 질문을 잊지 않고 정답은 아니라도 자신만의 해답을 정리해나가느냐, 그냥 모른척하고 사느냐는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적어도 소설가는 살다 보니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자꾸 질문을 잊는 사람들에게 반복적으로 그리고 자기만의 이야기 방식으로 질문을 던지는 사람입니다. 그런 점에서 앞에서 말한 이번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김사과의 다음 질문을 기다립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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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민음사입니다. ^^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03 윤고은 <밤의 여행자들>

에 이어 금세 새로운 서평 이벤트로 찾아왔습니다. 


서평단 책을 소개하기 전에 한가지 힌트를 드리자면,

윤고은 작가와 마찬가지로 

혈기가 넘치는(!!) 젊은 소설가라는 점입니다.


이번 서평단의 주인공은 바로

2013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자인 이재찬

「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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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올해의 작가상「펀치」는 내신 성적 5등급, 외모도 5등급인

18살 여고생 방인영이 40대 계약직 공무원 ‘모래의 남자’에게 부모 청부살해를 의뢰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았습니다. 


방인영은 재력과 명예를 고루 갖췄지만, 재벌총수와 사회 고위층의 비리를 변호하는

아버지를 경멸하며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방 변호사'라고 칭합니다. 


또한 자신의 성적에 열을 올리며, '방 변호사'에게 사랑받기 위해 몸무게 유지에

여념없는 어머니에게도 등을 돌립니다.


방인영은 '딸을 외고 보내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계급이기에 억울함'(p.12)을 가진 부모에게,

혈연이기에 잔존할 수 밖에 없는 자잘한 애정까지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사회적인 문제의식 뿐만 아니라, 이재찬 작가만의 경쾌한 말맛과 뒷통수를 때리는 신선한 시각은

책을 덮을 때까지 눈을 뗄 수 없는 속도감 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2013 오늘의 작가상 심사평 중_

이 소설이 지닌 온갖 장점 중에서 이른바 ‘타고난 감각’ 혹은 ‘선천적 재능’으로 부를 만한 것 하나만을 꼽으라면, 나로서는 ‘별것도 아닌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는 흑마술’이라 대답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건 사기다. 그러나 이 작가가 제대로 사기를 쳐 주어서 나는 기뻤다.

—심사평 중에서|박형서(소설가)

 

이야기가 경쾌하고 문장이 좋다. 문장들을 읽어 가다 보면 사물(사태)의 본질을 재빨리 포착해서 이를 발랄하게 드러낼 줄 아는 감각이 느껴진다. 우리 문단에 의미 있는 한 방을 날려 줄 수 있는 작품이다.

—심사평 중에서|정영훈(문학평론가·경상대 국문과 교수)




2013 오늘의 작가상 수상자 이재찬 작가, 그는 누구인가?_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0년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에서 「버스, 정류장」이 당선되었고,
 이 작품은 2002년 3월 김민정, 김태우 주연의 동명 영화(명필름 제작)로 개봉되어 호평을 받았다. 2013년 장편소설 『펀치』로 제37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장편소설 『안젤라 신드롬』으로 제5회 자음과모음 네오픽션상을 수상했다.

영화 「버스, 정류장」을 보신 분들에게 
더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 


2013 오늘의 작가상 이재찬 장편소설 <펀치> 중_
한국 여자의 몸매는 전통적으로 '상체 빈약, 하체 튼튼'이다. 
걸 그룹들은 그런 역사를 정면으로 거스른 '가슴 육덕, 하체 부실'이다.
몸매로는 신이 창조한 역사를 어겼지만 걸 그룹이 부르는 노래 가사는
남성이 창조한 여성의 역사에 고스란히 복종하고 있다.
"오빠 나 좀 봐. 나를 좀 바라봐." 이건 질투심이 아니다. p.20

"1등급이 아니면 기회조차 잡지 못해."
방변호사가 한 말이다. 1등급은 유전자와 부모의 재산이 결정하는 거다.
주인공이 될 수 없기에 난 궤도에서 이탈할 테다. 
안그러면 내 인생은 보나 마나 평생 들러리일테니까. p.25 

엄마와 방 변호사도 시장에서 만나 흥정한 거 아닌가.
각자의 가치를 높인 후 적당한 소비자를 물색하고 판매하기 전에
스스로 사랑을 세뇌한 후 결혼한 거 아닌가.
열성 유전자만 물려준 건 사랑이 부족해서 그런 걸까. 
사랑이 충만했다면 우성유전자들이 내가 됐을까. p.56

맨발로 엘리베이터까지 쫓아 타면서 동생한테 쌍욕을 퍼부은 
방 변호사는 누가 뭐래도 자타 공인 대한민국 엘리트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전형적인 한국의 엘리트라고 할 수 있다. p.57


이재찬 작가만의 예리한 시각과 경쾌한 말맛이 느껴지시나요?


2013년 올해의 작가상「펀치」를 읽고 
서평을 써주실 분 들은 아래의 양식으로 해당 날짜까지 지원해주시면 됩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리겠습니다.


 

서평단 모집 상세내용_
★ 응모 방법 : 리뷰 페이지를 자신의 블로그에 스크랩 한 뒤 읽고 싶은 이유를
★ 간단하고 성실하게 댓글로 작성하여 스크랩 링크와 함께 남겨주면 응모 완료
★ 응모 기간: 2013.10.25 - 2013.11.05 (12일간)
★ 추첨 인원: 20명
★ 서평단 발표: 2013.11.06 (수) 오후
★ 서평 기간: 2013.11.09 - 2013.11.23 (2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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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 2013 제37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이재찬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1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3년 10월 30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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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결괴 1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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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두 권짜리 책을 읽을 때는 2권까지 마저 읽고 감상을 쓰곤 했습니다. 그런데 히라노 게이치로의 [결괴]는 1권까지만 읽은 지금 한 번쯤 정리를 해봐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이 작품은 2권부터 전개될 내용이 1권과는 명확히 다를 거라고 예상됩니다. 1, 2권이 단순히 분량으로만 나뉘어진 것이 아니라 각각의 역할도 명확해 보입니다.


1권은 말 그대로 2권에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한 서막의 역할에 충실합니다. 1권의 말미에 구체적인 사건이 언급되고 있지만 그것은 사건의 겉모습일 뿐 속사정은 아닙니다.

1권까지만 읽고 먼저 감상을 써보기로 한 데에는 히라노 게이치로라는 작가에 대한 약간의 실망의 영향도 있습니다. 초반에 인물들에 집중한 이야기는 히라노 게이치로 답다는 생각이 들어 좋았습니다. 그런데 소위 '사건'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날 때부터는 왠지 전형적인 일본의 범죄소설과 다르지 않다는 실망감이 저도 모르게 생겼습니다. 

현대의 범죄라는 것은 공통적으로 갖는 특징들이 있습니다. 다른 방식으로는 전혀 해소되지 못하고 과도하게 내재된 분노를 기반으로 한다든가, 그 분노가 단순히 분노의 직접적인 원인제공자에게만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든가, 표출방식이 정말 무섭도록 잔인하고 끔찍하다든가 하는 특징들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다가 일본에서 화제가 되는 극악무도한 범죄들은 또 특유의 성질들을 더 갖고 있습니다. 막상 말로 하자니 어떤 식으로 써야할지 어렵게 느껴지지만, 일본에서 특별히 화제가 되는 범죄들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폭력과 억압을 특정 개인이 수렴하는 방식이 더욱 나르시시스트적이고, 그래서 그 분노가 '미화'라는 방식으로 정당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느껴집니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지만 '지적(intellectual)'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더 소름끼칩니다. 순간적인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투박해서 차라리 인간적이라면, 자신이 느끼는 분노를 차곡차곡 모아서 그것을 가장 끔찍하게 드러내는 방식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실행하는 식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정말로 무섭습니다.

이것이 일본에서 생산된 많은 영화나 소설 등의 콘텐츠에 의해 생긴 편견인지, 그것도 아니면 제가 하필이면 본 콘텐츠들이 대부분 그런 경향을 갖고 있었던 탓인지는 저도 분명히 말하기는 힘듭니다. 어쨌든 저에게는 일본의 범죄에 대해서는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선입견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선입견들을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속 범죄양상에서도 비슷하게 느꼈고 결국은 히라노 게이치로 역시 이렇게 자극적인 소재와 묘사 방식을 선택했구나 하는 약간의 실망감을 느낀 겁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ㅡ버스에 타고 있다. 그런데 한 남자가 난데없이 칼을 빼들고 날뛴다. 승객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응? 어쨌거나 그 남자가 빨리 버스에서 내려주길 간절히 바라겠지. 밖에서는 누구를 죽이든 상관없어. 아니. 오히려 밖에서 누군가를 죽여주면 기뻐할 거야. 다행이다, 버스 안에 있었던 덕분에 살았다, 하면서. ㅡ아무 일 없는 대낮에도 살인이 은밀하게 기대되고 있단 뜻이야! 내 말 알겠나? 살인은 결코 근절되지 않아. 그렇다면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서 일어나게 하는 수밖에 없지. p.317

'히라노게이치로마저 이토록 자극적인 소재와 묘사를 선택했다는 것'에 대한 저의 작은 실망은, 사실 너무 적나라한데 차마 절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어서 나온 반작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아직 2권을 남겨놓은 저는 기대가 더 큽니다. 1권에서 드러난 잔혹범죄의 양상은 여느 범죄소설의 끔찍함과 다를 바 없이 그저 자극적으로만 느껴지지만, 이 모든 게 다 2권에서 히라노 게이치로만의 시각으로 그 이면을 보여주고 사람을 보여주고 삶을 보여주기 위한 치밀한 계산 아닌가 하는 기대 말입니다.

앞에서 실망 어쩌고 한 것도 히라노 게이치로에 대한 기대치가 워낙 높아서 그렇지 사실 따지고 보면 본격 범죄가 일어나기까지 작가가 인물들에 들이는 공이 상당합니다. 

특히, 작품의 초반에 료스케가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주변 공기를 느끼는 방식은 상당히 철학적이면서도 동시에 굉장히 의인화되어 있습니다. 의인화라는 방식은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의 공기를 시각적으로, 와닿게 표현하는 데는 상당히 효과적입니다. 사변()의 영역을 체험과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옵니다.

또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 탓인지, 잔혹범죄가 아닌 인간관계에 대해서 쓴 것도 그 어떤 범죄에 대한 묘사보다 더 을씨년스러움이 묻어납니다. 오랫동안 같이 산 부부, 혹은 그보다는 적은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의심이 개입된 부부, 오랫동안 열등감을 주고 받은 형제 관계가 냉정하게 바라볼 때 그 얼마나 싸늘해질 수 있는지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어떤 범죄가 일어났을 때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부터 용의자를 추려나가는 것도 어쩌면 그러한 관계의 본질에 있겠지요.

가즈코의 굳은 표정 위에는 목욕 후 바른 화장수의 흔적이 주눅든 기색도 없이 반들반들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더없이 안온하고 예사롭고 일상적인 윤기이며, 그녀가 남편과 무관하게 자기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베풀어온 "무언가"였다. 그에게는 그것이 자신과 아내 사이에 놓인 무한에 가까운 거리로 느껴졌다. p.354

한 번에 그 뜻이 확 와닿지 않는 '결괴(決潰)'라는 제목은 '방죽이나 둑 따위가 물에 밀려 터져 무너짐'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1권은 '터져 무너짐'을 주로 보여줬습니다. 2권에서는 그것이 어찌하여 '물에 잔뜩 밀려' 터져 무너지지 않고는 안 되었나를 더 촘촘하게 보여줄 것 같습니다. 읽기 전에 벌써 조금은 두렵고 무섭습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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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피 블랙 캣(Black Cat) 13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지음, 전주현 옮김 / 영림카디널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非아이슬란드식 살인에 대한 소설들을 주로 쓰고 있는 작가,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의 에를렌두르 반장 시리즈 중 한 작품입니다. 국내에 번역된 세 작품 [저주받은 피], [무덤의 침묵], [목소리] 중에는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 소설입니다. 


저는 [무덤의 침묵]을 먼저 읽었는데, 물론 에를렌두르를 둘러싼 개인사나 또 함께 일하는 후배 형사 등의 캐릭터에 대한 파악을 위해서는 발간된 순서대로 읽는 게 가장 좋겠지만, 순서를 바꿔 읽어도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 어차피 에를렌두르 시리즈 전권이 국내 번역된 것도 아니고, 또 다른 작품을 보지 않고 이 중 하나만 보더라도 캐릭터나 그 캐릭터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게 설명이 돼 있습니다. 

이 책은 약 40여 일 전, 아이슬란드로 출발하는 전날 밤에 읽었습니다. [무덤의 침묵]을 읽고 좋아서, 레이캬비크에 가면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작가를 만날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말입니다. 전체 인구 30만의 나라에 간다고 제가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었지만 그 생각만으로도 설레긴 했습니다.

[저주받은 피]의 내용은 제목 그대로입니다. 한 노인이 그의 집에서 머리에 재떨이를 맞고 사망한 채 발견됩니다. 사체 옆에는 '내가 바로 그다'라는 메시지가 남겨져 있습니다. 살인자를 찾기 위해서는 피살자에 대해 조사하는 게 먼저입니다. 그가 왜 누군가에게 의해 강제로 삶을 종료당해야 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와 그의 삶의 궤적을 쫓아야만 합니다.

피살자에 대해 조사하던 에를렌두르는 그가 과거 강간으로 고소당한 전력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와 그에게 강간을 당한 피해자들, 그와 함께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실종된 친구, 당시 강간 사건을 조사한 형사, 피해자의 가족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가 왜 누구에 의해 죽었는지가 밝혀집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사실과 또다른 새로운 사람이 등장하면서 사건은 조금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의 소설은 이런 측면에서 추리소설로서의 묘미를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새로운 등장인물의 등장과 함께 독자가 예상했던 방향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비틀면서 새로운 국면을 제시하는 방식은 정통 추리소설의 방식에 굉장히 충실합니다.

그러나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의 작품의 미덕은 그 과정에서 드러내는 사람들의 고통과 그 비극에 대한 진지한 위로에 있습니다. 이 작품 역시 읽다보면 '저주받은 피'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단순히 다섯 글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피 속의 저주가 얼마나 비극인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습니다. 범인이 누구인지 맞히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지고, 평범했던 말 그대로 범인(凡人)이 왜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犯人)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더 귀 기울이게 됩니다.

이것은 피해자가 죽어 마땅하다는 비난도 아니고, 살인자는 당연히 그랬어야 했다고 인정하는 면죄부도 아닙니다. 그저 다행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접 겪지 않아도 됐던 비극에 대한 이해와 공감입니다.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은 끔찍한 범죄를 이야기하면서도 이렇게 인간에 대한 따뜻한 이해와 위로를 전할 줄 아는 작가입니다. 손이 찬 사람이 사실은 마음이 따뜻하다고 하는 말은, 손이 차가운 제가 좋아서 믿는 말이지만, 이 말을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에게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추운 나라에 사는 사람이 사실은 마음이 굉장히 뜨거운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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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오늘의 일본문학 12
아사이 료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것은 소설입니까.

라고 할만큼 아주아주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소설입니다. 작가의 전작인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영화제목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와 미묘하게 달라 늘 헷갈리는 이 제목!) 역시 고등학생들의 일상을 굉장히 현실적으로 보여줬습니다만, [누구]는 정말이지 현실의 인물과 대화들을 그대로 옮겨온 것 같은 작품입니다.

아사이 료가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취직을 했다고 들었는데, 짐작해보건대 이 작품은 길지 않았을 그의 '취준생' 시절 동안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쓴 것 같습니다. 작가다운 관찰력으로 보고 들은 이야기로 여기 소설의 주인공처럼 몇 년씩 취업준비를 하지 않고도 이렇게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한 것이지요.

저 또한 첫 직장을 관두고 문턱이 높은 곳을 목표로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구직활동한 경험이 있고, 모르는 사람과 주로 이야기하는 트위터보다는 아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페이스북을 주로 하긴 하지만 적극적인 SNS 사용자입니다. 그래서인지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낯설고 새롭다기보다는 굉장히 익숙했다고나 할까요.

이 책을 읽는 것은 구직활동을 하던 때의 고민들, 과연 나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자기소개라는 명목으로 한껏 나를 포장하면서 느끼는 자괴감, 때로는 사상 검증까지 받아야했던 면접 경험 등을 고스란히 되짚어보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렇게 친숙하고 익숙한 이야기들인데도 저는 이상하게 이 책이 쭉쭉 읽히지가 않았습니다. 리얼리티가 살아있다기보다는 말그대로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아서 소설을 읽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누군가의 '취업준비 수기'를 읽는 기분이었달까요.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참신한 청춘 소설'이라는 평을 받으며 전후 최연소 나이로 나오키상을 받았지만 저는 그러한 평가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물론, 문학에서의 '참신함'이란 이전에 쓰여지지 않았던 것을 쓰는 것에 큰 가치를 둡니다. 이전에 이토록 적나라하게 구직활동을 하는 이 시대의 청춘들에 대해서 쓴 작품이 없었다면 이 작품은 '참신하다'는 평을 충분히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처럼 가까운 과거에 구직활동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받아들이는 것이 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이상합니다. 열일곱살들의 이야기와 감성을 섬세하게 그렸다는 평을 받았다는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를 읽었을 때는 너무 오래전 이야기라 공감이 잘 안 되고 그 섬세함도 크게 와닿지 않는 것 같다고 썼었는데 말입니다.

곰곰히 되짚어보면, [누구]의 참신함에 대해서는, 멀지 않은 과거에 너무 직접적으로 고스란히 체험해본 것을 너무 그대로 보게 돼서 크게 공감하지 못하고 있고,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의 섬세함에 대해서는, 그 시기를 지난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제대로 느끼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시절의 감정이나 감성이 떠오르게 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사이 료의 작품에 대해서는 이런 느낌을 갖게 되는 이유가, 아마 그 적나라함과 사실성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은유나 상징이 강하다면 독자가 스스로 읽어낼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꼭 내가 겪어본 일인지 아닌지, 그 시절을 지나왔는지 아닌지와 상관 없이 공감도 하고 감동도 하고 또 다른 생각도 많이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아사이 료의 작품은 굉장히 구체적이기 때문에 툭툭 읽다가 걸리는 부분이나 와닿지 않는 부분이 좀 더 많이 생기고 그것이 인상깊게 남는다고 할까요.

아사이 료의 작품을 두 번째로 읽으면서 느꼈습니다. 대체로 어떤 작가의 작풍을 좋아하는 것이 독자라면 저마다 있듯이, 아마 아사이 료 작가의 작풍은 저의 취향과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이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상을 받은 이유는 아마도, 대체로 청춘의 시기도, 취업준비생의 시기도 오래전에 지나왔을, 이제는 한 국가의 문단에서 권위를 인정받으며 나오키상이나 스바루상의 심사위원이 되어 있는 세대의 작가들에게 이런 이야기 자체가 낯설고 새롭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미 지나온 청춘은 대체로 아릅답게 느껴지고, 또 이미 훌쩍 지나와버렸기 때문에 10대나 20대 사이에서는 평범하고 일상적으로 공유하는 현실이나 감성은 대체로 참신하게 느껴지고, 그들의 감정표현이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요. 또 이렇게 노골적으로 대화나 상황 등을 옮겨오는 방식 역시 기성 세대에게는 참신하게 다가갈 것 같고요.

어쨌든 이 작품이 참신하다는 평을 받게 한 또 다른 포인트인 트위터를 통해 결국은 서로의 이중성이 드러나고 사실은 위태로웠던 관계들이 무너지는 과정은 흥미로웠습니다. 

저 역시 그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SNS의 사용자이지만, 이메일 주소를 통해 SNS 계정을 찾아낸다거나 포털 검색창의 자동완성 기능으로 어떤 사람을 파악하고, 인간의 이중성이나 천박함을 드러내는 부분은 통쾌했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리얼했기 때문에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떤 치졸함을 실제로 지켜보고 있는 듯해 민망하기도 하고, 소설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친구의 경험담을 듣고 있는 것 같아 긴장감도 느꼈습니다. 

아사이 료가 각광받는 것은 바로 그러한 적나라한 리얼리티를 사소한 일상을 쓰며 극대화하는 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글쓰기 방식에 대한 저 개인의 호불호를 떠나서 아사이 료가 그러한 장기를 가진 것은 분명합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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