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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오늘의 일본문학 12
아사이 료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이것은 소설입니까.

라고 할만큼 아주아주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소설입니다. 작가의 전작인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영화제목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와 미묘하게 달라 늘 헷갈리는 이 제목!) 역시 고등학생들의 일상을 굉장히 현실적으로 보여줬습니다만, [누구]는 정말이지 현실의 인물과 대화들을 그대로 옮겨온 것 같은 작품입니다.

아사이 료가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취직을 했다고 들었는데, 짐작해보건대 이 작품은 길지 않았을 그의 '취준생' 시절 동안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쓴 것 같습니다. 작가다운 관찰력으로 보고 들은 이야기로 여기 소설의 주인공처럼 몇 년씩 취업준비를 하지 않고도 이렇게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한 것이지요.

저 또한 첫 직장을 관두고 문턱이 높은 곳을 목표로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구직활동한 경험이 있고, 모르는 사람과 주로 이야기하는 트위터보다는 아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페이스북을 주로 하긴 하지만 적극적인 SNS 사용자입니다. 그래서인지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낯설고 새롭다기보다는 굉장히 익숙했다고나 할까요.

이 책을 읽는 것은 구직활동을 하던 때의 고민들, 과연 나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자기소개라는 명목으로 한껏 나를 포장하면서 느끼는 자괴감, 때로는 사상 검증까지 받아야했던 면접 경험 등을 고스란히 되짚어보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렇게 친숙하고 익숙한 이야기들인데도 저는 이상하게 이 책이 쭉쭉 읽히지가 않았습니다. 리얼리티가 살아있다기보다는 말그대로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아서 소설을 읽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누군가의 '취업준비 수기'를 읽는 기분이었달까요.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참신한 청춘 소설'이라는 평을 받으며 전후 최연소 나이로 나오키상을 받았지만 저는 그러한 평가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물론, 문학에서의 '참신함'이란 이전에 쓰여지지 않았던 것을 쓰는 것에 큰 가치를 둡니다. 이전에 이토록 적나라하게 구직활동을 하는 이 시대의 청춘들에 대해서 쓴 작품이 없었다면 이 작품은 '참신하다'는 평을 충분히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처럼 가까운 과거에 구직활동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받아들이는 것이 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이상합니다. 열일곱살들의 이야기와 감성을 섬세하게 그렸다는 평을 받았다는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를 읽었을 때는 너무 오래전 이야기라 공감이 잘 안 되고 그 섬세함도 크게 와닿지 않는 것 같다고 썼었는데 말입니다.

곰곰히 되짚어보면, [누구]의 참신함에 대해서는, 멀지 않은 과거에 너무 직접적으로 고스란히 체험해본 것을 너무 그대로 보게 돼서 크게 공감하지 못하고 있고,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의 섬세함에 대해서는, 그 시기를 지난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제대로 느끼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시절의 감정이나 감성이 떠오르게 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사이 료의 작품에 대해서는 이런 느낌을 갖게 되는 이유가, 아마 그 적나라함과 사실성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은유나 상징이 강하다면 독자가 스스로 읽어낼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꼭 내가 겪어본 일인지 아닌지, 그 시절을 지나왔는지 아닌지와 상관 없이 공감도 하고 감동도 하고 또 다른 생각도 많이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아사이 료의 작품은 굉장히 구체적이기 때문에 툭툭 읽다가 걸리는 부분이나 와닿지 않는 부분이 좀 더 많이 생기고 그것이 인상깊게 남는다고 할까요.

아사이 료의 작품을 두 번째로 읽으면서 느꼈습니다. 대체로 어떤 작가의 작풍을 좋아하는 것이 독자라면 저마다 있듯이, 아마 아사이 료 작가의 작풍은 저의 취향과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이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상을 받은 이유는 아마도, 대체로 청춘의 시기도, 취업준비생의 시기도 오래전에 지나왔을, 이제는 한 국가의 문단에서 권위를 인정받으며 나오키상이나 스바루상의 심사위원이 되어 있는 세대의 작가들에게 이런 이야기 자체가 낯설고 새롭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미 지나온 청춘은 대체로 아릅답게 느껴지고, 또 이미 훌쩍 지나와버렸기 때문에 10대나 20대 사이에서는 평범하고 일상적으로 공유하는 현실이나 감성은 대체로 참신하게 느껴지고, 그들의 감정표현이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요. 또 이렇게 노골적으로 대화나 상황 등을 옮겨오는 방식 역시 기성 세대에게는 참신하게 다가갈 것 같고요.

어쨌든 이 작품이 참신하다는 평을 받게 한 또 다른 포인트인 트위터를 통해 결국은 서로의 이중성이 드러나고 사실은 위태로웠던 관계들이 무너지는 과정은 흥미로웠습니다. 

저 역시 그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SNS의 사용자이지만, 이메일 주소를 통해 SNS 계정을 찾아낸다거나 포털 검색창의 자동완성 기능으로 어떤 사람을 파악하고, 인간의 이중성이나 천박함을 드러내는 부분은 통쾌했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리얼했기 때문에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떤 치졸함을 실제로 지켜보고 있는 듯해 민망하기도 하고, 소설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친구의 경험담을 듣고 있는 것 같아 긴장감도 느꼈습니다. 

아사이 료가 각광받는 것은 바로 그러한 적나라한 리얼리티를 사소한 일상을 쓰며 극대화하는 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글쓰기 방식에 대한 저 개인의 호불호를 떠나서 아사이 료가 그러한 장기를 가진 것은 분명합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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