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대중문화>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이렇게 또 한 달이 흘러 12월이다. 다른 달처럼 12월도 한 달이 흘러 왔을 뿐인데, 이상하게 12월은 일 년이 흘러 온 달인 것만 같다. 

이 달에는 읽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꼽고 나니 꼭 5권이다. 다른 분야에 비해 신간이 많이 쏟아져나오지 않는 분야구나 새삼 느끼게 된다. 

읽고 싶은 새 책 첫 번째는,

앤디 워홀 정신 | 세실 길베르 (지은이) | 낭만북스 | 2011년 11월  

프랑스의 이상문학상인 ‘메디치상’을 수상한 <워홀 스피릿>의 번역본. 앤디 워홀의 출생, 가족관계, 작품 활동, 대인관계, 정신세계, 삶과 죽음, 대중적인 평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그의 머릿속을 분석한다. 작가는 앤디 워홀이 단순히 대중을 열광시킨 아티스트가 아니라, 종교, 정치를 뛰어넘은 시대적 가치관에 기반을 둔 전방위적 예술가였던 것임을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한 시대에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그 시대를 넘어 그 다음, 그 다음다음 세대에까지 끊임없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예술가라면 설사 당시에는 그가 어떤 의도나 명확한 철학을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닐 지라도 충분히 다시 짚어볼 가치가 있다고. 그러니까 앤디 워홀 같은 작가라면 더더욱 그의 머릿속이 궁금한 거다. 솔직히 그의 작품보다 그의 생각이나 정신이 더 재미 없을까봐 약간 긴장이 되긴 하지만 들여다보고 싶다, 앤디 워홀의 머릿속! 

읽고 싶은 새 책 두 번째는,  

거대건축이라는 욕망 | 데얀 수딕 (지은이), 안진이 (옮긴이) | 작가정신 | 2011년 11월 

건축비평가 데얀 수딕이 20세기 이후 폭발적으로 진행된 거대건축의 역사를 조명하며, 건축의 이면에 숨겨진 역학관계를 분석해 펴낸 책이다. 거대건축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권력자와 건축가들부터 서구에서 아시아로 점차 확대되고 있는 고층건물 신드롬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정치와 문화, 돈과 예술적 가치 사이에서 표류한 건축의 역사를 다룬다.  

아, 몰랐다. 새 책을 볼 때 세부카테고리를 다 눌러봐야하는구나... 그리고 [건축] 카테고리에서 발견한 이 책. <거대건축이라는 욕망> 정말 흥미롭고 정말 우리나라 정치인들과 건설업자들에게 읽히고 싶다. 왜 건물은 커야하고 높아야하는가. 서울 살다 가끔 전라도로 여행을 가 보면 내가 왜 그런 진짜 숲 아닌 빌딩 숲 속에 멀리 쳐다보지도 못하고 숨도 못 쉬며 살고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결국 다시 서울로 돌아오게 되긴 하지만.

읽고 싶은 새 책 세 번째는,

애착의 대상 - 기호학과 소비문화 | 아서 아사 버거 (지은이), 엄창호 (옮긴이)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1년 11월 

우리는 코드로 자신을 말한다. 코드는 어디에 있나? 커피, 토스터, 만년필, 보드카, 컴퓨터, 넥타이, 감자튀김, 핸드백, 향수, 장난감 곰…. 애정을 넘어 ‘애착의 대상’이 된 상품들이다. 코드는 이 속에 ‘숨어’ 있다. 이 책은 기호학, 정신분석학, 사회문화적 해석을 통해 상품의 숨은 코드를 밝혀내고, 코드화된 브랜드가 어떻게 자아 정체성과 집단 무의식을 형성하는지, 즉 소비문화의 비밀을 파헤친다.  

연애를 할 때, 혹은 꼭 연애를 할 때가 아니라도 상대방이 나를 꿰뚫어보는 듯한 발언을 하면 (특히 그것이 장점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거나 자신이 선호하는 성향일 때) 왠지 그 사람이 나를 알아주는 것 같아 친밀감이나 호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인가 나는 정신분석학이나 기호학이라는 학문이 참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본격적으로 공부해보기는 겁이 나지만 이렇게 쉽게 설명해준다면 언제든 환영이다. 책 제목 때문인가, 이 책이 꼭꼭꼭 선정됐으면 좋겠다.

읽고 싶은 새 책 네 번째는,  

청춘의 사운드 - 차우진 산문집 | 차우진 (지은이) | 책읽는수요일 | 2011년 11월  

대중음악평론가 차우진의 청춘과 음악에 관한 에세이. 저자는 2000년대 이후 급변해 온 청춘의 삶과 그들에게 위안이 되어준 음악들로부터 다양하고 진솔한 고민과 정서를 길어낸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대중음악은 젊음에 대해 노래하며 젊은이의 시간을 겨냥한다. 때문에 동시대의 청춘들에게 음악이란 그 무엇보다도 각별한 매개체로 다가오곤 한다.  

청춘과 음악이란 말은 언제나 잘 어울린다. 유아기와 음악, 중년과 음악, 노년과 음악, 다 안 어울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청춘과 음악이라는 말이 가장 합이 맞다. 무엇보다 내게도 음악이라는 것의 존재가 미치는 영향력이 아마 엄마 다음이라고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것이고, 황신혜밴드 김형태 씨에 의하면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다 '청소년'으로 정의된다는데 그런 의미에서 나도 여전히 '청춘'의 한중간에 있으니 아마 이 책 속에는 내가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읽고 싶은 새 책 마지막은,

다, 그림이다 - 동서양 미술의 완전한 만남 | 손철주, 이주은 (지은이) | 이봄 | 2011년 11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모습들’ 그러나 지금은 돈의 가치에 밀려 잊고 살았던 삶의 조건들 10가지를 선정해, 동서양에서는 그것의 가치를 어떻게 설정하였고, 어떻게 표현했는지 살펴보는 책이다. 옛 그림에서 지혜를 얻고 동시에 서구식 교육을 받아온 세대들에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방법을 동시에 제공함으로써, 삶의 가치를 바로 세우는데 균형감을 선사한다.  

아주 흥미로운 책이다. 손철주 작가가 '서양미술사학자인 이주은 작가'를 늘 생각하며 쓴 책이라고 하니까 말이다. 동양미술을 공부한 사람과 서양미술을 공부한 사람이 서로의 관점에서는 이 그림들이 어떻게 보일까를 생각하고 이야기나누며 작품을 고르고 글을 썼다고 한다. 그래, 생각해보면 '다, 그림이다.'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거대건축이라는 욕망
데얀 수딕 지음, 안진이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11월
28,000원 → 25,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400원(5% 적립)
2011년 12월 06일에 저장
절판
애착의 대상- 기호학과 소비문화
아서 아사 버거 지음, 엄창호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1년 11월
18,000원 → 18,000원(0%할인) / 마일리지 540원(3%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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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06일에 저장

청춘의 사운드- 차우진 산문집
차우진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1년 11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2011년 12월 06일에 저장
절판

앤디 워홀 정신
세실 길베르 지음 / 낭만북스 / 2011년 11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2011년 12월 06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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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목인 - 1집 음악가 자신의 노래
김목인 노래 / 미러볼뮤직 / 2011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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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로 들어보았어요. 앨범재킷이 너무 예쁘네요- 김목인 씨의 노래는 읊조리는 세심한 가사가 돋보이는데, 아마 듣다보면 반드시, 최소 한 번은 웃게 되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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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마감] 9기 신간평가단 마지막 도서를 발송했습니다.

 

 

예전에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 오프닝에서 이런 내용을 들은 기억이 난다. 대략 "그 여자는 6개월에 한 번 꼬박꼬박 치과에 스케일링을 받으러 가는데,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고 나서 깨닫는다. 6개월에 한 번 스케일링을 하기 시작한 이후 그녀에게 시간은 6개월 단위로 흘러, 스케일링을 2번 하고 나면 1년이 가는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나도 첫 직장에서 보내는 3년 반 동안은 시간이 그런식으로 6개월 단위로 흘러갔고, 1년에 한 번 있는 시험을 준비하던 때나, 연간행사를 진행해오는 몇 년 전부터는 행사 한 번 치르고 나면 1년이 가고 1살을 먹는 식으로, 시간이 뭉터기로 쑥쑥 흘러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던 와중에 다시 나의 시간을 그나마 절반으로 쪼개어 인식시켜주고, 다시 그 시간을 1달에 한 번 돌아오는 기쁨과 설렘으로 돌려준 사건이 일어났으니, 그건 바로 운 좋게도 '9기 소설분야 신간평가단'이 된 것이었다. 1달에 2권씩 새로 나온 책을 선물받으면서 시간을 한 달 단위로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개인적으로 마음이 부대끼는 일을 겪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도 내가 신간평가단이 됐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그냥 피식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로 정말 너무 기분이 좋았다. 여기 서재 어디였는지, 내 계정의 SNS를 통해서였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사랑해요 알라딘'이나 '알라딘 덕에 산다' 같은 낯 간지러운 말을 흘리기도 했는데, 흔히 아부성 발언이기 쉬운 이 문장들이 내겐 정말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추천신간도서를 고르고, 또 어떤 책이 선정될까 기다리고, 언제 책이 도착할까 기다리고, '알라딘 증정'이라는 예쁜 글자가 꽝 박힌 책 두 권 중 뭐부터 읽을까 책장을 넘겨보고, 실제로 한 권 두 권 책을 읽으면서, 참 행복했다. 

때로는 일이 바쁘거나 개인사로 바쁘거나 아니면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며칠씩 이어져 마감날짜를 지키지 못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고 실제로 마감연장 요청이메일을 보내기도 하여 미안한 마음 감출 길 없었으나, 그것조차 기분 좋은 스트레스였다.  

지금까지 책을 읽고 그냥 덮어둬 과연 내가 이 책을 읽었는지 기억이 희미한 경우가 많았는데, 적어도 6개월 동안 읽은 12권의 책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들춰보고 내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누가 이렇게 책임을 넘겨줘야 더 책임감을 느끼는 게으른 사람이니까.  

 

간평가단 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은 어디 보자... 목록을 쭉 훑어보니 김인숙 작가의 [미칠 수 있겠니]인 것 같다. 솔직히 굉장히 기발하다거나 뒤통수를 탁 치는 크나큰 반전이 있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잔잔하게 마음을 파고드는 책이었다. 분명히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실제로 있었던 가슴아픈 사고와 그 사고가 일어난 곳을 배경으로 해서 더 몰입하게 됐던 것 같고, 당시 나의 마음상태나 장마철이라는 날씨도 [미칠 수 있겠니]를 절절하게 받아들이는 데 한 몫 했던 것 같다. 마치 생생한 영화를 보듯이 애써 '이건 소설에 불과해'라고 자꾸 스스로 되뇌어도 마음이 아파 죽겠는 걸 어쩔 수 없는 그런 책이었다.  

김인숙 작가의 책은 처음으로 읽어본 거였는데,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9기 신간평가단으로 내가 읽은 책은 총 12권이다. 내가 읽은 순서대로 나열하자면 미치오 슈스케의 [달과 게], 정유정의 [7년의 밤], 조지 오웰의 [숨 쉬러 나가다], 페넬로피 라이블리의 [문타이거], 김인숙의 [미칠 수 있겠니], 최인호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발 맥더미드의 [인어의 노래], 루이즈 페니의 [스틸라이프], 구병모의 [고의는 아니지만], 짐 퍼커스의 [천 명의 백인신부], 알베르토 망구엘의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 그리고 존 어빙의 [네번째 손]이다. (아, 나는 얼마나 복 많은 사람인가) 

이 중 아무리 내 맘대로라지만 좋은 책 베스트 5를 꼽자니 좀 미안하고 그렇다. 그래도 꼽는다. 

가장 좋았던 책은 구병모의 [고의는 아니지만]이었다. 구병모 역시 처음 읽는 작가였는데, (그러고 보면 나의 독서편식 때문인가, 12권 중 조지 오웰을 빼고는 모두 책을 처음 읽어보는 작가들이었다) 이상하게 나는 문학상 수상으로 떠들썩하게 데뷔한 젊은 작가들의 책은 선뜻 읽어보게 되지 않는다. 못된 심보지만. 그래서 궁금은 하였으나 한 번도 읽어보지는 않고 있다가 [고의는 아니지만]을 통해서 구병모를 만났다. 

그녀는 기발하면서도 차분하고, 냉정하면서도 따뜻하고, 암튼 굉장히 재능이 있으면서도 단지 소설을 자기 재능을 드러내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는 인상을 줬다. 각 단편들마다의 발상과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 그리고 제목들, 하다못해 표지까지도 가장 좋았다. 

두 번째는, 조지 오웰의 [숨 쉬러 나가다]. 이건 뭐 ‘역시’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작가, ‘역시’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통찰력과 문장력과 인물 묘사였다. 

세 번째는, 김인숙의 [미칠 수 있겠니]인데, 가장 기억에 남는 책으로 꼽아놓고는 세 번째에 두자니 좀 머쓱하지만 두 번째부터는 순위에 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작가들은 정작 보지 않겠지만;) 밝혀두고 싶다. 

네 번째로는, 마지막에 읽은 존 어빙의 [네번째 손]인데, 예상치 못한 이야기의 흐름과 패트릭 월링퍼드라는 인물의 변화, 미스테리하고도 매력적이고도 약간은 무서운 여인 클로센 부인의 매력, 그리고 존 어빙의 유머감각이 어우러진 멋진 작품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가장 처음 읽은 미치오 슈스케의 [달과 게]를 꼽고 싶다. 순진해서 위험한 ‘어림’의 감정을 너무 잘 썼다. 애들 이야기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책을 덮은 후에도 마음이 쓰이고 걱정되게 하는 아련하고도 짠한 유년기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책을 쓴 작가들, 출판해준 출판사들, 그리고 신간평가단에 나를 끼워준 알라딘,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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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스킨 2012 먼슬리 다이어리 소프트커버 _ 라지
Moleskine S.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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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스킨. 처음 알게 된 후 지금까지 매년 쓰고 있어요. 예쁘고 실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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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공감]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공간 공감
김종진 지음 / 효형출판 / 2011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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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즈음이었나? 김덕수 씨가 사물놀이 40주년을 기념해 [미스터 장고]라는 앨범을 낸 적이 있다. 오현란, 신해철, 정원영, 이하늘 등 대중가수들도 함께 참여해 국악을 무척 현대적인 느낌으로 풀어낸 명반인데, 이 음반에서 가장 좋아했던 곡 중 하나가 바로 2번 트랙 <공간>이라는 곡이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공간>이라는 곡을 들으면, 이 ‘공간’이라는 곡이 만들어주는 나만의 ‘공간’ 안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공간은 음악을 들을 때마다 조금씩 달라졌지만, 공통적으로 평화와 신비가 공존하는 듯한 그런 공간이었다.

이렇게 음악을 통한 공간 지각 말고 ‘기억에 의한 공간 지각’은 정말이지 시시때때로, 언제나 갑자기, 불현듯, 더 자주 일어났다. 멀쩡하게 일하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과거 여행지의 한 길모퉁이가 생각난다든지, 누군가와 함께 있었던 음식점에서의 어느 순간이 떠오른다든지, 시끌벅적했던 술집에서의 기억들이 나를 찾아온다든지 하는 경험은 그야말로 일상이 됐을 정도로 나에겐 친숙하다.

기억하기 위해 많은 공간들의 사진을 열심히 찍어뒀지만, 정작 내가 시시때때로 불러내는 공간들은 사진 속에 박제해둔 곳보다는 무의식에 저장해둔 곳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그 때의 마음, 그 때 내 눈이 보고 내 귀가 듣고 내 코가 냄새 맡고 내 피부가 느낀 것들의 총집합일 것이다. 

[공간 공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하는 것도 바로 이런 것들이다. 사람에게 ‘공간’은 단지 물리적인 장소나 눈에 보이는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감의 짬뽕이 만들어내는 체험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수많은 아름다운 공간들을 소개하고 그 공간에 대한 저자만의 해설을 들려주고 있는데, 가장 많이 언급되는 공간 중 하나가 바로 옛 화력발전소를 개조해 만든 영국의 테이트 모던 갤러리. 테이트 모던의 탄생 배경과 저자가 생각하는 테이트 모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공간은 오감의 공감에 의한 것이라는 말이 더 실감이 났다.

2004년 12월 테이트 모던에 가 본 적이 있다. 내 기억에 이곳은 내리막길이 있는 노오오오옾은 중앙홀 때문에, 건물 전체가 길고 좁고 높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테이트 모던을 다시 보니, 내 기억과 달리 홀 부분만 그런 모양새일 뿐인 게 아닌가.

당시 나는 아주 적은 여비를 가지고, 아주 타이트한 스케줄 안에서, 최대한 많은 곳을 구경하고 싶은 가난한 배낭여행객이었다. 혼자 낯선 런던의 거리를 떠돌다가 테이트 모던 갤러리의 홀에 들어섰을 때는, 무거운 배낭여행을 돈 주고 맡긴 후 가벼운 몸으로 갤러리를 즐길 것인가, 돈을 아끼기 위해 그냥 좀 더 배낭 무게의 고통을 참을 것인가를 여전히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 마음으로 홀 입구에 들어섰기 때문이었는지, 나는 지금껏 그 홀의 모양이 건물 전체의 모양인 것처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표지에 나오는 그림도 그냥 표지로만 보았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어떤 곳에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이라는 느낌보다는 그냥 책표지 정도로만 인식됐다. 하지만 책 속에서 이 공간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읽고 나니, 이 공간이 느껴졌다. 창과 창 사이로 스민 빛이라는 걸 몰랐을 때는 벽에 그려진 무늬로만 보였던 이곳이 지금은 아무리 다시 봐도 움푹 팬 창이 있는 공간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곳을 가본 적은 없지만 이곳을 잘 아는 저자의 설명으로 인해 나는 이 공간에 대한 공감각이 생겼다.

더불어 책을 읽고 나니 ‘김종진’이라는 저자도 마치 내가 가 본 하나의 공간처럼 인지가 된다. 테이트 모던에 대한 기억처럼 주관적으로 왜곡된 인상일지는 모르겠지만 내 느끼기에 저자는 지적이고 날카롭지만 따뜻하고 열린 사람인 것 같다.

공간을 바라보는 편협하지 않은 시선도 좋고 책 중간 중간, 그리고 책의 장이 마무리될 때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부연해놓은 지혜로웠던 앞 세대들의 철학을 풀어놓은 부분도 굉장히 좋았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존재는 네 가지 특질이 한데 겹쳐질 때 진정으로 생성된다고 설명한다. 네 가지는 '땅 위에 있음', '하늘 아래에 있음', '신성함을 마주함', '죽음의 운명 속에서 살아감'이다. p.43

이리도 명쾌할 수가! 특히 땅 위에 있음, 하늘 아래에 있음 너무 좋다. 쉽고, 모든 사람에게 똑같고. 

완전한 침묵이란 존재할 수 없기에 침묵도 소리라고 말한 현대음악가 존 케이지가 무반향실에서의 체험 이후 쓴 글을 인용한 부분도 역시 좋았다.

"나는 두 개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나는 높은 음이고 다른 하나는 낮은 음이었습니다. 음향 엔지니어에게 물었더니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높은 음은 내 몸속의 신경 시스템이 작동하는 소리이고 낮은 음은 피가 순환하는 소리라고 말이죠." p.195

소리가 전혀 울릴 수 없도록 했음에도 내 몸속의 신경 시스템이 작동하는 높은 음이 들리고, 피가 도는 낮은 음이 들리는 경험. 어떻게 보면 전적으로 인간의 오감과 체험을 통해 인지하는 공간을 주로 이야기하는 것이 굉장히 인간중심적인 사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란 실제로 스스로의 감각 중 일부를 통제해 일부만으로 뭔가를 느낄 수는 없기 때문에 지극히 당연한 생각이기도 하다. 

[공간 공감], 결코 건축가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다시 보게 해주고, 새롭게 알게 해주는 것들이 많아 참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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