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국도 Revisited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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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비틀스의 그 음반을 내게 판 뒤, 이제는 기타를 연습하는 것만으로는 외로움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그리하여 이제 자신이 영원히 외로우리라는 걸 깨달았다.-61쪽

술자리에서 재현은 쉴새없이 떠들었다. 그 시절에는 나도 꽤 떠들었다. 우린 앞다퉈 자기 이야기만 했다. 떠들어대지 않을 때는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누구도 우리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또 우리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으므로.-71쪽

스무살 무렵의 기억은 웬일인지 너무나 희미하다. 스무살이라는 나이가 내뿜는 광채가 너무 눈부시니까 그 빛에 가려져 그때 내가 어디에 있었고, 무슨 일을 했으며,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 듯.-1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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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국도 Revisited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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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청춘. 외로움.에 대한 소설. 

의도였는지, 정말 치기 어린 청춘의 힘으로 써내려간 소설인지 모르겠지만 스무살 무렵의 청춘이 읽기에 적합한 소설인 게 조금은 낯설었다. 평소 느꼈던 소설가 김연수, 인간 김연수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들어서이다. 그런데 김연수건 누구건 대개 청춘이란 건 이런 모습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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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아바
키란 데사이 지음, 원재길 옮김 / 이레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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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재미있는 책, 특히 소설은 다 읽고 나서 돌아보면 굉장히 간단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경우가 많다. 대신, 그 간단한 아이디어는 간단한 만큼 기발해야 한다. 

세상에 염증을 느껴 구아바 나무 위로 올라간 삼파드는 아버지의 욕심과 뜻대로 성인인 척하는 속물이었다가, 또 어떤 측면에서는 성자였다가, 대체로는 무엇도 하기 싫어하는 귀차니스트인데, 이런 복합적인 캐릭터가 이야기를 더 개성있게 만들어준다. 

스파이는 결국 원숭이 요리를 위해 끓고 있던 큰 솥에 빠지고, 삼파드는 구아바 열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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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학 개론 - 개정판
한진만 외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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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미디어환경에 꼭 필요했던 개정판! 두껍지만 가벼운 종이로 만들어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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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대
헤르타 뮐러 지음, 김인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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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헤르타 뮐러 | 저지대

 

이런 책을 읽으면 특히 세계의 모든 언어의 네이티브이고 싶다는 욕망이 강렬해진다. 헤르타 뮐러의 작품은 스토리이기보다는 상황이다. 시적인 묘사 속에 이야기가 숨어있어서 집중해 그 상황을 그려내지 않으면 이야기가 선명하게 보이질 않는다. 물론, 처음부터 명확한 형태로 이야기를 숨겨놓은 것 또한 아니다. 

단편집 <저지대>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저지대’ 역시 헤르타 뮐러에 대한 사전정보가 없었다면 그저 너무 지루하고 가난해서 끔찍한 한 마을의, 한 여자아이의 삶을 그렸다는 정도로밖에 받아들이지 못했을지 모른다. 왜 루마니아 독재 정부가 그녀의 작품을 싫어했고 출판을 금지했고 그런 작품을 썼다는 이유로 그녀를 괴롭혔는지 잘 모르거나, 독재 정부이기 때문에 너무 민감했던 거라고, 그 정도 생각하고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누구 때문인지 말하지 않아도, 그 원인제공자가 너무나 명확한 경우에는 그저 그렇다고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비난이 될 수 있다. 헤어진 직후 자신의 힘든 상황을 공개적으로 토로하는 것 자체가 남들에게는 전 연인에 대한 비난으로 비춰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헤르타 뮐러가 독재에 대해 저항하고 이야기하는 방식은 참으로 고상하고 멋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이렇게 끔찍한 상황을 담담하게 묘사하는 것이, 작가 개인의 삶과 작품이 쓰여진 시대적 상황에 대한 사전정보 없이도 좋은 작품의 요건이 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 요즘 같은 정보홍수 속에서 유명한 작가의 유명한 작품에 대한 사전정보가 없다는 것이 오히려 더 불가능한 일이지만, 사전정보 전혀 없이 오로지 작품만 읽었을 때도 ‘저지대’는 훌륭한 작품인가? 

대답은 그렇다,는 것이다. 상황만 알려주는데 사람들의 심정이 올라오고, 묘사만 하는데 이야기가 드러난다는 것은 이 작품이 언제 어디에서 읽혀도 독자에게 끔찍하고 황량한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해준다. ‘저지대’ 속의 삶은 말 그대로, 그냥, 별 일 없이도 끔찍하다. 너무 지루해서 끔찍하다. 

 

<저지대>에는 아주 짧은 이야기에서부터 ‘저지대’ 같은 중편까지 많은 단편이 실려 있다. 그 중 제일 먼저 실린 ‘조사’ 역시 아주 인상 깊었다. 어떤 잘못을 했던 사람도 죽고 나면 살아있는 사람의 평가는 관대해지기 마련이다. 죽음 직후에는 그 사실에 대한 애석함이 그 어떤 감정보다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 속 문상객들은 그 감정에 압도되지 않는다. 여전히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그의 삶을 평가한다. 

그 평가가 아주 단편적이라는 한계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입사 시험에서 압축된 방식으로 사람을 평가해 합격자를 정하듯, 한 개인의 삶에 대한 평가 역시 어쩔 수 없이 단편적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여러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단편적인 평가들이 모아졌을 때, 그나마 진실에 가까운 평가가 되는 것일 거다. 그런 점에서 남겨진 유족에게는 문상객들의 태도가 잔인한 것일 수 있지만 또 가장 진실일 수 있다는 점을,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실제로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나 또한 그렇게 냉정하고 객관적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자신이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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