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번잡한 거리는 물론이고 극장가나 대형 쇼핑몰마다 자리를 차지 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그건 바로 뽑기 기계들로 가득 찬 ‘가챠’숍이다.

가챠 숍은  무심코 들려서 딱 한 번만 뽑아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들어 갔다가 뽑고 싶은 귀여운 것을 갖고 싶은 욕망에 불타오르게 만들어서 지갑을 탈탈 털어내는 개미굴과 같은 곳이다.

작고 앙증 맞은 것을 손에 쥐기 위해서 한끼 식사 가격을 눈 깜짝 할 사이에 날리게 만드는  ‘가챠’숍은  ‘찰캉찰캉’이라는 뜻의 일본어 ‘가챠가챠(ガチャガチャ)’에서 유래 했다.

가챠는  캡슐토이를 뽑는 기계에 동전을 넣고 레버를 돌릴 때 철 부딪히는 소리가 나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한 손에 쥐어지는 캡슐 안에 미니피규어·인형문구류 등 다양한 장난감이 담겨 있다.

일본 경제 부흥기인 1965년에 가챠숍이 등장하기 전 뽑기 기계는  1880년대 미국 뉴욕에서 시작되었다.

껌이나 사탕 같은 것을 구입하기 위해 무인 자판기에 동전을 넣었던 뉴욕의  무인판매기는 음료수나 신문,잡지 같은 소비재 상품을 취급하는 기계로 발전했지만  일본으로 건너 오면서  손 안에 쥘 수 있는 장난감을 뽑는 기계로 바뀌었다.

대형 쇼핑몰에 장난감을 납품하던 일본 회사는 소비자들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샘플 장난감을 작은 플라스틱 모형에 넣어서 뽑는 방법을 시도 했다가 기계 앞에서 떼를 쓰는 아이와 원하는 걸 뽑기 위해 아낌없이 동전을 쏟아 붓는 부모의 심리를 알아차렸다.

폭발적인 소비자들 반응에 중소 규모의 장난감 납품 회사는  장난감 전용  뽑기용 기계를  만들어서  일본 전역에 퍼뜨렸다.

이 뽑기 기계는 1985년 한국 땅으로 건너 와서 구멍가게나 문방구 앞에 설치 되었고 이 기계는  어린이들의 호주머니를 탈탈 털었다.

21세기 최첨단 시대가 도래하자 아날로그 시절 어린이들의 놀이 문화였던 뽑기 기계가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 되었다.

나이와 세대를 불문하고 소비자는 귀여운 것에 열광하고, 깜찍함에 지갑을 열고 한시적으로 판매되는 굿즈를 손에 넣기 위해 오픈런을 하거나 웃돈을 주고 구매하는 열성을 보인다.

손 안에 비서 같은 인공지능이 24시간 상주 하는 시대이지만 소비자들의 심리를 빠르게 파악한 기업들은 앞다투어서 작고, 귀엽고  예쁘고 앙증맞은 다양한 상품의 굿즈를 출시 하고 있다.

사람들은 좋아하는 연예인의 모습을 본뜬 인형 굿즈나 콘서트에 가서 열광하고 응원하는 스포츠 팀의 굿즈 키링을 가방이나 휴대폰에 매달고 다니면서  취향과 정체성을 드러낸다.

 이처럼 작고, 귀엽고, 순수한 것들을 부적처럼 매달고 다니는 인간의 삶에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걷고 움직이고 활동하는 휴머노이드가 등장 했다.

중국 전기차 기업 샤오펑이 광둥성 광저우에서 열린 2025 AI 데이 행사에서 선보인  휴머노이드 로봇 2세대 아이언이  걷는 모습을 세상에 공개 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미국 로봇 기업 피규어AI가 개발한 휴머노보이드는  물류센터 현장에 투입되어서 인간 노동자들 틈에 끼여서 함께 일하고 있다.

2016년 3월 한국의 바둑 기사 이세돌과 알파고가 세기의 대국을 펼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어느 새 우리 곁에 인간을 뛰어넘는 초지능 단계의 기계 인간이 등장했다.

이 기계 인간은 위험한 작업을 하는 공장부터 인간의 손으로 움직여야 하는 노동 시장에도 투입 될 것이고 스포츠 무대에서는 인간을 대신해서 경쟁을 벌이게 될 것이고 그리고 무기를 장착 하면 전쟁터로 뛰어들어 터미네이터 같은 괴물이 될 것이다.

머지않아 사람들은 로봇 청소기와 스팀 건조기를 구입하듯 집안의 도우미를 상주 시키듯 로봇 인간을 구입하며 집집 마다 기계 인간과 동거하는 가구 수가 늘어 나게 될 것이다.

로봇이 상주 하는 미래의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고 숙제를 함께 봐주고 집안 구석 구석을 청소 해 주는 상주 로봇의 옷을  반려 동물의  옷을 구입 하듯 로봇의 옷을 구입할 것이고 아이는 언제나 함께 있어주는 로봇에게 인형 옷을 입히듯 역할 놀이를 하게 될 것이다.

돌봄과 학습 그리고 인간을 대신 하는 노동 현장에서 함께 공존하게 될 미래의 반려 로봇과   여행을 하며 교감을 나누는 모습은 상상 너머의 일이 아닌 실현 가능한 현실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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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채널을 빠른 속도로 돌리다 보면 거의 비슷한 주제, 배경, 상황 그리고 익숙한 얼굴의 예능인들, 배우들, 가수들, 스포츠 선수들의 여행-명사 초청 토크쇼-먹방-집 구하기-스포츠 게임-노래와 춤 오디션 방송 프로그램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스토리를 따라 갈 필요도 없고 깊이 있는 지식이나 정보를 제공하지도 않고 극적인 재미나 눈물을 쏙 뺄 정도로 감동을 자아 내지 않지만 일단 틀어 놓기만 하면 그들이 먹고 마시고 즐기고 장사하고 운동하고 산 속에서 생활하는 이야기에 중독되어 버린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예능 프로그램들이 한국 공중파 방송에서 보여주는 것 만큼 넘쳐 나지 않는다.

영국은 스릴러, 탐정, 서스펜스 물 드라마 시리즈 물이 큰 인기를 끌 정도로 BBC라디오 채널에선 항상 서스펜스와 스릴러 물의 라디오 드라마들이 매 시즌 청취율 상위권에 자리 잡고 있다.

반면 미국은 좀비와 공포물에 심취한 시청자들이 아주 많은데 서점에서도 공포물 장르 코너에는 다양한 작품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을 정도로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다.

 영유아를 상대로 한 실험에서  아기를 웃게 만드는 것보다   공포감을 줘서 울리는 게 더 쉽다는 사실이 여러 차례 실험을 통해 증명 되었다.

그만큼 인간의 감각과 지각 능력엔 위험과 공포를 감지 하는 능력이 타고났다는 증거 일 것이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는 달콤한 멜로물 보다 스릴이 넘치거나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영상물에 시선이 고정된다.

하지만 이따금씩 공포물을 찾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조직 생활이 불러 일으킨 소통의 단절의 벽에 부딪쳤을 때 공포물을 찾아 본다.

가령 나는 어제 이런 스토리에 집중했다.

1994년, 18세기부터 사람들을 죽여온 초자연적 존재 블레어 위치에 대한 전설을 취재하러 갔다가 사라진 3명의 영화학과 학생들이 바로 그 신비의 블레어 위치가 있는 버키츠빌 숲에 들어간 후 실종된다. 그리고 1년 후 그들이 찍은 필름이 발견되고  사라진 젊은이들이 남긴 영상이 영화로 만들어진다. 

스토리가 전개 되는 동안 영상은 심장 박동 보다 더 빠르게 흔들리면서 또렷하지 않은 사람의 형체가 공포심을 불러 일으킨다.


공포물의 대가 스티븐 킹은 공포의 차원을 다음과 같이  세 단계로 구분했다.

-역겨움

잘린 목이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것을 볼 때, 조명이 꺼진 상태에서 뭔가 끈적거리는 물질이 팔에 닿았을 때.

-무서움

초현실적 상황, 공룡 크기의 거미들이나 죽은 사람들이 주변을 돌아다닐 때, 조명이 꺼진 상태에서 거대한 집게발 같은 것이 당신 팔을 잡아 당길 때

-두려움

집에 돌아와 보니 물건들이 모두 비슷한 물건으로 바뀌어 있음을 보았을 때 조명이 꺼진 상태에서 누군가 등 뒤에 있는 것 같다.


스티븐 킹이 구분한 세 단계 공포 중에서  내가 느끼는 가장 큰 공포감은 '두려움'이다.

오늘 출근 길의 두려움, 업무에 대한 두려움, ....

여러 일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

까지 일일이 모두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내 안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 하고 있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달이 바뀔 때마다 모든 것들이 야금 야금 오르고 있다.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 할 때면 지난달 보다 몇 백 원 숫자가 더 찍혀 있다.

마트와 편의점에 들어가 늘 상 구입했던 물건의 가격표를 보고 놀란다.

몇 묶음, 몇 덩어리, 몇 상자들이 이제는 몇 개와 몇 알만 구입하게 되었다.

더 열심히 부지런히 성실하게 일하며 착실하게 세금을 내며 오늘은 무사히 버텨 냈다 해도 내일의 삶은 어떤 두려움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세계 한 곳에서는 전쟁과 기근, 재난 상황으로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는 오늘 내가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에 비하지 못하지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 이 세상은 초자연적인 세상에서 발생하는  어떤 공포물보다 더 공포스러울 때가 많다.

내가 죽어가던 아침 나절 벌떡 일어나

날계란 열 개와 우유 두 홉을 한꺼번에 먹어 댔다.

그리고 들로 나가 우물물을 짐승처럼 먹어 댔다.

얕은 지형지물들을 굽어보면서 천천히 날아갔다.

착하게 살다가 죽은 이의 죽음도 빌려 보자는 

생각도 하면서 천천히

더욱 천천히

-김종삼의 <또 한 번 날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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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적이고 감각적인 마케팅으로 성장한 스웨덴 보드카 브랜드 앱솔루트는  1986년 앤디 워홀과 협업 하는 마케팅을  시작으로 현대 미술계에서 떠오르는 아티스트나 거장과 함께 앱솔루트의 시그니처 보틀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 왔다.

영원히 썩지 않게 보존하는 포름알데히드를 가득 채운 유리 진열장 안에 뱀상어 사체를 넣은 작품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데미언 허스트는  앱솔루트 브랜드를 대중들에게 깊이 각인 시키는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영원히 썩지 않게 보존하는 포름알데히드 약품을 이용하는 데미언 허스트와 달리 세상을 향한 정치적 사회적 비판의 목소리를 담벼락에 하고 있는 뱅크시(Banksy)는 얼굴과 본명 모두 베일에 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수집가가 앞다투어 작품을 구입하고, 여러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언제 어디서 무엇에 관한 작품을 그릴지 예고 없이 낙서처럼 그리는 뱅크시는 공공장소의 공공시설에서  쓰다 남은 철근으로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담벼락,이나 전봇대 스텐실 기법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길거리에서 많이 보는 화려한 그래피티와는 조금 다른 뱅크시가 사용하는 이 스텐실 기법은 글자나 무늬 모양을 오려내고 뚫린 부분에 물감이나 스프레이 라커를 뿌리는 기법으로 빠른 시간 내에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볼 수 있는 뱅크시의 작품은 수집가들과 예술 애호가들의 가장 갖고 싶은 작품이면서도  가장 많이 훼손되는 작품이다.

누군가 훼손하기 전에 뱅크시의 그림이 그려진 구역 담당 직원들이   공공 장소 외관 질서 규정에 어긋나기 때문에 영구적으로 보존 하지 않고  곧바로 지워버린다. 이런 희소성 때문에  언제  사라질 지 모르는 작품에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효과를 가져 오기도 한다.

국가에 소속된 미술관이나 고급 갤러리에 갇혀 있는 ' 영구 보존 예술'의 권위와 큐레이터들의 작위적인 설정과 설명을 거부한 뱅크시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거리로 뛰쳐나가 그래피티 아트를 새기듯 

다양한 오브제로 그의 예술관이 담긴 패러디들이 끊임없이 제작 생산되고 있다.

오로지 그림으로 세상의 편견을 거둬내기 위해 거리 낙서를 시작 했던 키스 해링은 공공기물 훼손으로 여러번 경찰에 연행되었지만 세상은 그의 작품에 놀라워 했다.

키스 해링은 높은 가격에 팔리는 유명 작가가 되었어도 그는  언제나 거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며 반핵, 반전,인종 차별 반대. 에이즈 차별 반대, 성소수자 인권에 앞장서며 모든 걸 세상에 주고 갔다.

팝아트 특유의 명료한 선과 색채로 인종과 언어를 벗어나 전 세계 누구든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고 함께 그릴 수 있게 만든 키스 해링의  그림을 오마주한 토스트 영상을 제작해 보았다.

도마 위 네 개의 토스트에  선명한 원색으로 채워지는 키스 해링의 팝아트가 많은 시청자들이  시각적 카타르시스를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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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3월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는 1978년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ellow Magic Orchestra)의 창립  맴버로 1980년에 발매한 싱글 “Riot in Lagos”는 초기 일렉트로닉과 힙합 장르의 요체가 되었다.

이 앨범을 시작으로  전 세계  전자 음악과 하우스 장르 음악의 붐을 일으키게 만들었던 사카모토 류이치는  1980년대 미래 과학 기술이 인간 개인의 삶을 통제 하는 것을 비판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노래 가사에 담았을 정도로 시대를 예견 했던 선구자였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던 사카모토 류이치는  베르나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영화음악을 담당하며 아시아인 최초로 오스카상을 타면서  전 세계인들이 그의 이름을 기억 하게 되었다.

2015년 일본 치쿠마 출판사 문고본으로 발행된  <skmt 사카모토 류이치는 누구인가>라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하나의 음으로 음악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두 개 이상의 소리가 있어야 합니다. 둘 이상의 소리에서 멜로디나 양식이나 비트가 생겨나서 음색의 조합에 의해서 순간적으로 어디론가 이동하는데  두 개의 음 이상을 넘어서면 소리의 여파가 이어지면서 비로소 하나의 음악으로 완성됩니다. 따라서 음악은 시간의 예술입니다. 시간이라는 직선 위에 작품의 시작 점이 있고 종착점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래서 제게 시간은 오랫동안 중요한 테마였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1952-2023)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가 남긴 음악은  빛의 입자가 되어 공명의 시간 속으로  부유 하는 먼지가 되어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유전적인 질환으로 서른 살 무렵 부터 시력에 이상이 생겼던 드가는 왼쪽 눈 시력을 완전히 잃고 나서 염료를 섞거나 광택을 내지  않아도 되는 파스텔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파스텔로 겹겹이 색의 층을 만들어서 입체적인 회화 효과를 내기 시작한 드가는 지속적으로 실험적인 작업에 몰두 했고  밀랍과 찰흙을 만지면서 자신이 즐겨 그리던 작업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형해 나갔다.

오페라단의 하급 발레 무용수로  무대 뒤 소품 같은 존재 였던 무용수 마리는 3년 동안 드가의 모델이자 뮤즈 였지만 소녀의 인생은 안타깝게도  비루하고, 참담했다. 

쏟아지는 악평과 비난에 드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작업실 옷장  속에 갇혀 있었던 작은  밀랍상은 조각가 알베르 바르톨로메의 손을 거쳐 청동상으로 주조 되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무용수가 되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 하지만 언젠가 자신이 죽게 된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생의 한복판에서도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경고를 담은 바니타스 회화의 전통을 이어받은 데미언 허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예술은 약과 같다. 사람을 치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의학은 믿으면서 예술은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묻지 않은 채 말이다."

-데미언 허스트

자연의 생명 주기에 맞춰 탄생한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제각기 다른 생의 시간을 갖고 있다.

영장류인 인간은 이를 가리켜 '운명'이라고 말하며 한 순간이라도 생명의 기능이 연장 되기를 바란다.

죽음의 시간은 내가 어느 날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 될 수 있고, 그리고 돌연 몸에 병이 생겨 서서히 끝을 향해 가고 있을 지 모른다.

어떤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 하지 말라고 외치고 어떤 이들은 종교의 힘, 믿음으로 버티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그저 하루 하루 먹고 사는데 열중하느라 생의 끝자락까지 바라 볼 여유조차 없이 살아 간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Ars longa, vita brev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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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데미언 허스트 (무선) - 현대미술계 악동과의 대면 인터뷰
김성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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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영국 런던 그룹 전시회장에    온갖 잡동사니를 조각 조각 붙여낸 대형 작품이 등장했다.

텔레비전, 녹음기, 진공청소기 등 첨단 가전제품과 햄 통조림 등의 사진을 짜깁기해 채운 거실에 싸구려 잡지 광고에서 가위질한   근육질 남자와 가슴 풍만한 여자의 알몸 이미지로 들어찬 이 작품의 제목은 <무엇이 현대의 가정을 이다지도 색다르고 매혹적으로 만드는가?>

당시 전 세계 예술계를 지배하고 있던  난해하면서 요란한 추상그림을 비웃기라도 하듯  내 걸린 이 작품은 물질 만능 주의 시대에 범신론적인 존재인 소비재 상품을 예술의 선반 위에 올려 놓았고 수 년 후 전 세계 예술계를 강타하게 된다.

전후 경제번영기를 맞아 삶의 단면이나 실제 사물에 대한 묘사를 금기시하고 순수 추상만을 고집한 모더니즘 미술 시장에서 리처드 해밀턴의 <무엇이 현대의 가정을 이다지도 색다르고 매혹적으로 만드는가?>는 1960년대 전 세계 예술계를 강타한 팝아트의 선언문이 되었다.

1960년대 팝아트의 태동은 대량으로 생산된 상품과 텔레비전이라는 시각적 매체에서 퍼져 나간 대중 문화의 폭발력에서 분출 되면서 미디어가 끊임없이 쏟아내는 이미지들이 예술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팝아트의 선언문 같은 작품이 가장 먼저 내걸렸던 곳은 영국 이였지만 팝아트가 꽃을 피운 곳은 대서양 건너 미국이였다.

광고계에서 부터 경력을 쌓기 시작했던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클래스 올덴버그 모두 대중들이 소비하는  상품을 오브제로 삼고작품을 전시장에서 내걸었지만 이들의 예술적 뉘앙스는 서로 달랐다.

가장 먼저 대중 매체의 만화와 광고 이미지를 차용한 리히텐슈타인과 도저히 팔 수 없을 정도로 추하게 변형된 물건을 상품이라고 전시한 올덴버그와 달리 앤디 워홀은 슈퍼마켓에 물건을 진열 하듯 상품을 전시장 중심에 등장 시켰다.

196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페루스 갤러리 등장한  워홀의 다섯 점의 캠벨 수프 그림은 오랫동안 관행처럼 벽에 걸린 그림이 아닌 선반 위에 캠벨 수프 깡통이 올려졌다.

악평이 쏟아지더니 캠밸 수프가 100달러 가격에 팔리고 있다는 것에 분노한 딜러가 진짜  캠벨 수프를 29센트에 판매 하겠다고 나서면서 대중들과 미디어 관심이 쏟아졌다.

온 세상이 워홀의 캠벨 수프 깡통으로 들썩이는 동안 워홀은 서른 두 점의 캠벨 수프 그림을 완성했고 이 그림은 대형 창고형 매장 진열 방식처럼 여덟 점씩 4열로 전시 됐다.

워홀이 상품을 작품의 기본 프로토콜로 사용하면서 미술계는 수레를 끌고 슈퍼마켓으로 들어가 온갖 상품을 담아 전시장에 내놓기 시작했다.

앤디 워홀은 자본주의 사회의 무한한 상품 생산이 가져온 시대를 "코카콜라 민주주의 "라고  정의 했다.

한 때 소수만 누렸던 상품들이 대량으로 생산 되면서 여왕도 대통령도  거리의 노숙자도 마실 수 있게 되었듯이 상품이 예술이 되는 순간 그것은 필연적으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들의 소비면모를 드러내는 매개체가 되었다.

1990년대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급속하게 진행되었던 세계화 물결 속에 등장한 영국의 젊은 작가 군단 yBa(young British artist)이   '죽음과 몸'이라는 담론으로 세계 미술 시장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동물의 사체를 미술관에 전시 해 놓고 삶의 무상함과 덧없음, 생의 한복판에서도 죽음을 기억하라는 Memento Mori라는 메시지를 담은 바니타스 회화의 후계자로 자처한 데미언 허스트는 1995년 영국 현대미술의 최고 영예인 터너상 수상하는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그는 술에 취해 수상 소감조차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그는 “당시 받은 2만파운드의 상금조차 어디로 사라졌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회상 할 정도로  술을 음미하는 수준의 애주가가 아니였다. 

젊은 시절 부터 오로지 취하기 위해 술을 섞어 마셨던 데미언 허스트는 한 때 코카인까지 곁들여서 음주를 즐겼던  방탕한 중독자였다.

1998년 데미언 허스트는 영국 테이트 모던에서 아스피린 모양의 의자와 약장, 약국을 테마로 한 독특한 벽지를 바른 전시장에 프라다가 디자인한 수술복을 입고 볼타롤 지연제, 러시아산 퀄루드, 마취제 화합물 같은 파격적인 이름의 시그니처 칵테일을 서빙하는 직원들을 등장 시켰다.

전시장에  ‘파머시(Pharmacy)’라는 레스토랑을 열은 허스트는 이듬해 칼튼 런던 레스토랑 어워드에서 최고의 디자인 레스토랑 상을 받았지만, ‘약국’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영국 왕립 약학회와 갈등을 빚었다.

그가 방탕한 중독자 생활과 결별하고 예술에 집중 하게 된 계기는 2002년에 찾아왔다. 

전설적인 펑크 록 밴드 더 클래시의 조 스트러머, 예술가 마이클 주프와 밤샘 작업을 하던 어느 이른 아침  담배를 찾던 그의 시야에 일곱 갑의 빈 말버러 라이트가 들어왔다.

 140개비 모두 자신이 피운 담배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그는 그길로 금연을 결심했고, 담배를 피우고 싶게 만드는 술까지 함께 끊어내며 방탕한 과거와 작별했다.

2016년 그는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에 허스트는  정통 영국 요리와 함께 보드카 브랜드 블랙 카우(Black Cow)를 활용한 칵테일을 제공했지만 대중과 평단의 반응은 싸늘했다.

1986년 앤디 워홀을 시작으로 키스 해링, 에드 루샤, 루이즈 부르주아 등의 거장들과 협업 하면서  공격적이고 감각적인 마케팅으로 성장한 스웨덴 보드카 브랜드 ‘앱솔루트'는 데미언 허스트의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을 보드카의 투명한 액체 병에 담았다.

 ‘영원히 썩지 않게 보존한다’는 포름알데히드의 속성은 앱솔루트의 시그니처 보틀 브랜드의 영속성을 드러내는 헌사가 되어 보드카 시장에서  소비량을 치솟게 만들었다.

알콜과 약물 중독에서 빠져 나온 허스트는 자신의  스폿 페인팅(Spot Painting)을 독일의 맥주 브랜드 벡스의 한정판 라벨에 붙였다.

벡스의 이 한정판 보틀은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고, 현재는 영국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뮤지엄(V&A)에도 소장돼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작가의 고유한 손길 대신 기계적인 정확성을 선택한  앤디 워홀처럼  데미언 허스튼 기술보다 개념을 판매하며 인간의 고통을 치유하려는 현대 의학의 차가운 시스템을 상징하듯  작품마다 LSD, 비소, 모르핀 같은 화합물 및 약품명을 붙이고 있다.

 모든 것이 상품처럼  팔리는 자본주의 시대에 데미언 허스트는 예술을 캔버스 밖으로 꺼내 술병에 담았고, 레스토랑으로도 만들어 우리 삶의 영역에 의도적으로 침투해 왔다.

어쩌면 손 끝 터치 하나로 빠르게 주문하고 대량으로 폐기되고 있는 현 시대에  1972년 듀안 핸슨의 작품 <슈퍼 마켓 구매자>에 등장하는 여성처럼 쇼핑카트에  인스턴트 식료품을 산더미처럼 쌓고 힘겹게 끌고 가는 모습이 오히려 더 예술적 가치가 더 클지 모르고 이에 대한   평가는 아마도 전시장을 찾은 관람자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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