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3년 3월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는 1978년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ellow Magic Orchestra)의 창립 맴버로 1980년에 발매한 싱글 “Riot in Lagos”는 초기 일렉트로닉과 힙합 장르의 요체가 되었다.
이 앨범을 시작으로 전 세계 전자 음악과 하우스 장르 음악의 붐을 일으키게 만들었던 사카모토 류이치는 1980년대 미래 과학 기술이 인간 개인의 삶을 통제 하는 것을 비판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노래 가사에 담았을 정도로 시대를 예견 했던 선구자였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던 사카모토 류이치는 베르나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영화음악을 담당하며 아시아인 최초로 오스카상을 타면서 전 세계인들이 그의 이름을 기억 하게 되었다.

2015년 일본 치쿠마 출판사 문고본으로 발행된 <skmt 사카모토 류이치는 누구인가>라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하나의 음으로 음악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두 개 이상의 소리가 있어야 합니다. 둘 이상의 소리에서 멜로디나 양식이나 비트가 생겨나서 음색의 조합에 의해서 순간적으로 어디론가 이동하는데 두 개의 음 이상을 넘어서면 소리의 여파가 이어지면서 비로소 하나의 음악으로 완성됩니다. 따라서 음악은 시간의 예술입니다. 시간이라는 직선 위에 작품의 시작 점이 있고 종착점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래서 제게 시간은 오랫동안 중요한 테마였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1952-2023)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가 남긴 음악은 빛의 입자가 되어 공명의 시간 속으로 부유 하는 먼지가 되어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유전적인 질환으로 서른 살 무렵 부터 시력에 이상이 생겼던 드가는 왼쪽 눈 시력을 완전히 잃고 나서 염료를 섞거나 광택을 내지 않아도 되는 파스텔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파스텔로 겹겹이 색의 층을 만들어서 입체적인 회화 효과를 내기 시작한 드가는 지속적으로 실험적인 작업에 몰두 했고 밀랍과 찰흙을 만지면서 자신이 즐겨 그리던 작업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형해 나갔다.
오페라단의 하급 발레 무용수로 무대 뒤 소품 같은 존재 였던 무용수 마리는 3년 동안 드가의 모델이자 뮤즈 였지만 소녀의 인생은 안타깝게도 비루하고, 참담했다.
쏟아지는 악평과 비난에 드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작업실 옷장 속에 갇혀 있었던 작은 밀랍상은 조각가 알베르 바르톨로메의 손을 거쳐 청동상으로 주조 되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무용수가 되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 하지만 언젠가 자신이 죽게 된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생의 한복판에서도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경고를 담은 바니타스 회화의 전통을 이어받은 데미언 허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예술은 약과 같다. 사람을 치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의학은 믿으면서 예술은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묻지 않은 채 말이다."
-데미언 허스트
자연의 생명 주기에 맞춰 탄생한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제각기 다른 생의 시간을 갖고 있다.
영장류인 인간은 이를 가리켜 '운명'이라고 말하며 한 순간이라도 생명의 기능이 연장 되기를 바란다.
죽음의 시간은 내가 어느 날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 될 수 있고, 그리고 돌연 몸에 병이 생겨 서서히 끝을 향해 가고 있을 지 모른다.
어떤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 하지 말라고 외치고 어떤 이들은 종교의 힘, 믿음으로 버티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그저 하루 하루 먹고 사는데 열중하느라 생의 끝자락까지 바라 볼 여유조차 없이 살아 간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Ars longa, vita brev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