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잡한 파리를 벗어나 기차로 한 시간 쯤 달리면 도착하는 곳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

초록빛 들판과 언덕 그리고 우아즈 강이 흐르는 풍경이 펼쳐지는 이곳은 19세기 혁명적인 이동 수단인 기차 길이 뚫리면서 먼 곳에서 외지인들이 찾아오는 마을이 되었다.

1890년 5월,  남프랑스 생레미드 프로방스의 요양원을 떠나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에서 에서 단 70여일을 머물렀지만, 그는 하루에 한 점을 그려낼 정도로 빠른 붓질을 하며 마지막 생애 예술의 혼을 불태웠다.


고흐가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 프랑스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그린 평온한 분위기의 말년의 명작 고흐의  '오베르의 우아즈 강가' 작품을 직접 미술관에서 촬영해서 영상으로 제작했다.

갑갑한 요양원을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예술을 발전 시킬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부풀었던  빈센트 반 고흐

전 세계 수십억 인구의 시선을 확 끌어 당기는 대담한 색채와 역동성 그리고 심오함까지 품고 있는 고흐의 작품은 그가 남긴 예술 작품 뿐 만 아니라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에도 많은 사람들이 매료되고 감동한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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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마른 장마가 물러 나고 시작된  푹푹 찌는 여름은 8월에 닥쳐올 엄청난 폭염의 예고편에 불과 했다.

8월에 들어서자  이른 아침부터 태양의 열기는 뜨겁게  달아 올라 한 낮의 온도가 37도를 넘겼고 새벽녘에도 27도를 경신하며 연일 무시 무시한 폭염이 지속 되고 있다.

냉방기가 작동하는 실내를 벗어나 밖을 나가기 두려울 정도로  무덥고 습한 열기에 눈 앞이 어질 어질 할 정도로  뜨겁다.

 뜨거운 화마에 집어 삼켜버릴 것 같은 열기에, 가로수들의 무성하게 뻗어 나온 잎사귀들 아래 드리워진 그늘 조차 뜨거운 열기를 식혀 주지 못한다.

지금으로 부터 130여년 전 1824년 여름, 다산 정약용은 ‘소서팔사(消暑八事)’라는 시를 통해 후손들에게  무더위를 이기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

-‘솔 밭에서 활 쏘기’(松壇弧矢)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네 타기’(槐陰●遷)

- ‘넓은 정각에서 투호 하기’(虛閣投壺)

- ‘대 자리 깔고 바둑 두기’(淸●奕棋)

- ‘연못의 연꽃 구경’(西池賞荷)

-‘숲 속에서 매미 소리 듣기’(東林聽蟬)

- ‘비 오는 날에는 한시 짓기’(雨日射韻)

-‘달밤에 탁족 하기’(月夜濯足)




기후 위기로 수백년 전 조선 시대와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워진 여름을 살아가는 후손들에게 자연의 위대함과 소중함을 명화로 남긴 불멸의 조선 화가 겸재 정선이 그린 금강산

영상에서 보는 것 만으로도 더위를 잠시 잊게 만든다.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자연의 순환 주기에 맞춰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수많은 모습으로 나타나 끊임없이 변한다.

싹이 트고 줄기에 잎사귀가 달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듯이 자연은 인간과 달리 순환 주기에 절대로 어긋나지 않게 살아가 가고 있다.

‘구름은 하늘과 멀리 걸려 있고 나뭇가지에 바람 한 점 없는 날

누가 이 찜통 더위를 벗어날 수 있을까

더위를 식힐 음식도, 피서 도구도 없으니

조용히 앉아서 책 읽는 게 제일이구나.’

조선 숙종 시대의 학자 윤증의 ‘더위(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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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고통과 열정 속에서 보낸  70일 동안, 고흐는 현대 미술의 흐름을 영원히 바꾼 70여 점의 명작을 남겼습니다.

카미유 피사로의 예언과  고흐의 마지막 예술 여정 속에서 만난 가셰 박사와의 특별한 교류, 그리고 오베르의 생동감 넘치는 풍경까지—서른 일곱의 천재 화가가 불태운 마지막 예술의 혼을 @Scott-MoveableFeast 채널 영상에서 직접 확인해보세요. 

"화가의 미래는 색채에 있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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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대영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집트 유물은 안내 책자에 총 11만점을 소장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1753년 부터 영국의 부유한 귀족들이 이집트 원정 탐험을 떠나서 야금 야금 가져 온 것들과 기둥과 신전 석가래까지 전부 뽑아서 가져 온 것들이 개인 당 최소 1만점에 이르기 때문에 전문연구가와 학자들은 실제 소장품은 더 많이 있을 거라 확신하고 있다.

특별 전시회를 제외하고는 박물관 입장료가 무료이기 때문에 학부 때 시간이 날 때마다 수시로 박물관을 드나들었다.

 친구들 중에서 고고학과 인류학을 전공자들이 이곳에서 인턴 근무를 해서 관광객들이 덜 붐비는 요일과 시간을 알려 줘서 한적한 시간에 여유롭게 구경 할 수 있었다.

1759년 1월15일 일반인들에게 개방했을 당시 의사이자 박물학자이며 컬렉터인 한스 슬론 경이  자신의 소장품 7만1000여건을 정부에 기증 하면서 대영 박물관의 역사가 시작 되었다.

대영 박물관의 소장 유물의 범위와 수준 ,규모는 세계 최고로 이곳에 가면 고대 이 고대 이집트의 람세스 2세 석상과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여왕의 수금(하프)도 볼 수 있고 심지어  신라 왕이 착용한  금제 귀걸이 장식까지 볼 수 있다.

로제타 스톤까지 볼 수 있는 대영 박물관의 고대 유물 상당수는 대영제국 시절에 약탈하고 강탈한 것들이여서 현재까지 반환 문제 제기로 국가 외교 관계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영 박물관의 이집트 관을 둘러 보는 데 평균 관람객이 소요 하는 시간은 평균 몇 십 분에서 2-3시간 정도이지만 제대로 보려면 일주일, 한 달도 부족할 정도로 방대하다.

어느 해 봄,부활절 방학 기간 동안 고고학과 인류학을 전공하는 친구들이 이집트로 여행을 갈 때 한 사람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여행을 취소해서 이집트 여행길에 따라 가게 되었다.

앞서 이집트 여행을 했던 친구들이 3월이여도 그곳 태양은 사람을 태울 정도 이고 풍토병도 있으니 예방 주사와 응급 의료품을 필시 준비하고 챙겨 가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그 해 3월의 이집트  카이로의  날씨는  이른 아침에 서늘할 정도로 11도 정도였고 한 낮엔 23도에서 25도 사이를 오고 가서 런던의 5월 초순 정도의 기온이여서 활동하기 딱 좋았다.

시내와 유적지를 오고 가는 동안  뜨거운 태양에 타 죽는 경험은 해보지 못했지만 태양의 열기는 일개 섬나라에서 내리 쬐는 세기와 전혀 차원이 달랐다.

기원전 5000년경 나일 강 유역에서 농경 생활을 했던 고대 이집트에 ' 문명’이 꽃 피울 수 있었던 이유는 ‘날씨’ 때문이었다.

오래 전 고대 이집트 땅의 기후는 서늘한 온도와 온화한 온도 사이를 오고 가다   8월이면 나일 강이 범람해 땅이 비옥해졌다.

천혜의 기후 덕택으로 씨앗만 뿌리면 곡식들이 풍성하게 열렸고  매년 풍년이 계속되니 영토는 점점 확장 되어 바다 건너 유럽 대륙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한 문화가 발전했다.

하지만  기원전 2000년경 부터  온화했던 기후가 뜨거운 공기로 가득 차면서  찌는 듯한 무더위로 바뀌었고, 비가 내리지 않아 강줄기가 말라버리고 나무와 식물들이 죽자 땅이 점점 사막으로 변했다. 


가뭄이 계속되어 흉년이 발생하자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났고 굶주린 부모들 중에서 자식까지  잡아먹는 일까지 생겼을 정도로 사회의 모든 규범이 무너져버렸다.

결국 고대 이집트인들은  살던 땅을 버리고 여기저기로 흩어져서 강대국의 노예로 팔려갔고 찬란했던 고대 이집트 왕국은 거친 모래 바람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인류 문명사에서 최초로 효모 빵을 만들었고 맥주를 음료 처럼 마셨던 이집트인들은 기후 재앙이 닥치기 전까지 모든 계층이 즐겨 먹었던 음식이였다. 

밖을 나가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역대급 무더위와 폭염의 기세에 전국이 펄펄 끓어 오르고 있다.

이 끔찍한 폭염이 지속적으로 순환 구조로  이어져서 겨울의 길이가 점점 짧아 지게 되면 한강 물도 말라 버리고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꽃과 나무들 마저  버텨 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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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워 - 기후 위기 시대, 자원과 에너지를 향한 거대한 생존 전쟁
아서 스넬 지음, 노승영 옮김 / 리더스북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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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라 해도 남극의 여름은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추위가 이어지지만, 겨울보다는 바람이 덜 세고 태양의 길이도 좀 더 길다. 

북극 반대쪽 남극에는 짧은 여름이 시작되는 12월이면  5~6월 겨울 초입에 태어난 알을 수컷에게 맡기고 바다로 떠났던 암컷 황제 펭귄이 돌아오지만 상당수는 바다 사자에게 잡아 먹히거나 조류에 휩쓸려 가버린다.


암컷이 돌아 올 때까지 수컷 펭귄들은 6개월 가량 극한의 추위 속에서  얼음조각을 주둥이로 잘게 부숴 목을 축이고  알을 품으며 매서운 바다갈매기로 부터 필사적으로 새끼를 지켜내는데 헌신한다.

황제펭귄은 키가 최대 122㎝에 달하는 대형 펭귄으로 극한의 추위 속에서 암수 한 쌍이 돌아가며 알을 품고, 나머지 한 쪽은 바다로 나가 먹이를 구하는 양육 방식으로 극한의 땅에서 살아 남았다.

펭귄 중에 가장 체형이 크고 지능이 높은 황제 펭귄은 불의의 사고로 자기 새끼를 잃어버리면  남의 새끼를 납치해서 키우는 습성이 있다.

자기 새끼를 잃어버린 펭귄 부부는 필사적으로 무리들 틈에서 자신들의 새끼를 찾아내 납치해간 펭귄 부부와 대판 싸우기도 할 정도로 자신의 종족 보존을 위해서라면 온 몸을 던진다.

황제 펭귄은 저마다 다른 소리의 고유 주파수가 있다.

이 주파수로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먹이를 구하러 바다 속으로 들어간 암컷이 내지르는 주파수를 남편 수컷이 알아 듣고 필사적으로 새끼를 품속에서 지켜내는 생명체들이다.

황제 펭귄들의 보금자리가  지구 온난화의 여파로 빠르게 줄어들면서 멸종 위기에 내몰렸다. 

2016년에는 두 번째로 큰 서식지인 남극 북쪽 핼리 만의 얼음이 급작스럽게 깨지면서 수영을 잘하지 못하는 새끼 펭귄 1만 마리가 익사 해 버렸고 바다 산성화로 주요 먹이인 크릴새우 개체 수가 감소해서 굶어 죽은 펭귄 숫자가 늘어 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서 남극과 북극의 거리는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멀게 느껴지기에 황제 펭귄의 새끼 1만마리가 몰살 당했다는 것 조차 안타까운 마음만 느낄 뿐이다.

하지만 펭귄 새끼들의 죽음 곧 우리에게 닥쳐올 비극일지 모른다.

북극과 남극의 얼음이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고 있어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는 얼음 덩어리까지 완전하게 녹아 버리면 높아진 해수면이 인간들이 살고 있는 육지를 덮칠 것이다.

매년 한반도 면적의 10배에 해당되는 얼음이 사라지고 있다.

아기 황제펭귄들은 태어난 지 4개월 이상이 되어야 방수 깃털을 갖추고 헤엄칠 수 있는 근육이 발달하게 된다. 그 전에 물속에 빠지면 익사 하거나 털이 젖어서 동사 한다.

세상 밖으로 태어나는 순간 부터 우리는 죽음이라는 공포와 더불어 공포를 이겨내는 법을 터득한다.

걷기 시작하는 아이는 숱하게 쓰러지고 일어서는 과정을 반복하며 완전하게 두 다리가 바닥에 균형을 잡고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수 많은 두려움과 공포에 떨었을 것이다.

나의 몸

나의 마음

나의 가족

나의 국가

그리로 우리 모두의 지구로 확장해 나가면 나와 너/ 당신과 우리

그리고 이 세상이라는 하나로 귀결 된다.

소리 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어떤 생명체는 세상 밖으로 나오고 어떤 생명체는 흙으로 돌아가 소멸해버린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한 물이 흐르고 흘러 마지막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이 물은 비구름을 뚫고 대지 위를 적셔서  늪을 지나 어떤 둑을 무너뜨려서 넓고 광활한 대지를 가로 질러 어느 대도시의 하수구 안에 모여 있다가 무사히 바다까지 흘러 들어 왔다.

물이 모래 사막에 다다르면 흘러가지 못하고 모래 알갱이들 속에 흡수 되어 태양의 열기에 증발해 버린다.

그러니 사막에서 물을 찾아 낼 수 없다.

뜨거운 태양에 달궈진 모래 사막에는 오로지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다.

물이 물이라는 형체를 잃어 버리는 순간 곧 그것은 물이 아니게 된다.

우리 모두의 삶도 사막을 만난 물줄기 일지 모른다.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고 자연의 위대함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인간이 앞으로 맞이 하게 될 운명은 사막의 모래 깊은 곳으로 흘러 들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우리가 공기가 된 너를 실어날라 그 산으로 데려다주마.

그러면 너는 거기서부터 다시 물이 되어 흐르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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