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미국 콜로라도의 오지 중에 오지인 캐슬락에서 목장 주의 아들로 태어난 남자가 있었다.

이 남자는 척박한 오지에서 소와 양떼를 키우며 가업을 일으킨 아버지 세대와 달리 태생적으로 유약 하고 힘쓰는 걸 싫어 했다.

학교 체육 시간에도 급우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다닐 때 이 남자는 몰래 인근 숲으로 도망쳐서 그 곳에서 디킨스와 마크 트웨인 책에 푹 빠져 살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이 남자는 미국 동부에 있는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 하고 싶었지만 태어나기 일 년 전인 1920년에 불어 닥친 경제 대공항으로 집안의 가세가 기울어서 부모의 지원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다행히 이 남자는 고등학교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서 장학금을 받고 콜로라도 주립대학에 입학한다

그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삼촌들 처럼 아들이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해서 변호사가 되기를 바랬다. 남자는 아버지의 바램대로 법학을 전공하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경제학 전공으로 바꾸지만 수업은 영문학과 수업을 청강 했다.

학과 성적이 좋지 않아 졸업마저 불확실해 졌을 때 군 입대 통지서가 날아 온다.

1940년 대동아 전선에 뛰어든 일본의 침공이 태평양으로 확대 되고 미 해군은 서부 버클리 대학에 일본어 랭귀지 스쿨을 개설한다. 이 소식을 들은 남자는 미 해군 통역관으로 군 생활을 편하게 하고 싶다는 바램 하나로 버클리 대학에서 일본어 수업을 신청한다.

2년 동안 버클리에서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한 남자는 일본이 미국 하와이 진주 항만을 침공하자 교수들의 추천을 받아 맥아더 장군의 직속 통역관으로 선발 되어 미 해군 기지 함선에 올라탄다.

하지만 군 장성 집안 출신도 아니고 사관학교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 남자는 장군의 직속 통역 최종 선발 심사에서 탈락한다.

1942년 일본 나가사키 항구에 도착한 남자는 주변의 수상한 동태나 정보를 수집이나 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고 어촌 마을을 떠돌아 다닌다.

남자는 어촌 마을에서 일본 민간인들과 접촉하면서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는 살아 있는 일본어를 배우게 되고 뜻밖에도 적군인 미군에게 친절하게 다가와 먹을 것을 주는 일본인들의 마음에 감동 받는다.

임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간 남자는 미 해군으로 부터 미국 서부 수용소에 갇힌 일본인 포로들을 심문하라는 임무를 부여 받는다.

미 해군은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 하와이에 거주 하고 있던 15만 명에 달하는 일본인들을 서부 강제 수용소로 몰아 넣었고 이 곳에 스파이나 조력자가 있을지 모른다며 미국은 수용자들을 강하게 심문하며 이중 간첩 색출 작전을 벌이고 있었다.

일본인 포로들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심적인 고통을 겪은 남자는 임무를 마치고 미국 워싱턴 국무부에 찾아가 외교관 시험에 응시한다. 필기 시험에 통과 한 남자는 면접 자리에 나온 담당 교수로 부터 콜로라도 촌놈이라는 소리를 듣지만 일본 신문과 방송을 능숙하게 번역하고 통역하는 실력으로 단번에 합격한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을 선언 한 후 남자는 전쟁 당시 그림자 조차 목격한 적 없었던 맥아더 장군의 직속 통역사이자 외교관 자격으로 다시 일본 땅에 밟는다.

끝없이 밀려 드는 서류 작업과 전범 재판소 기록물을 번역하는 일에 싫증을 느낀 남자는 2년 동안의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미국으로 돌아간다.

외교관을 그만 둔 남자는 대학에서 일본어 강의를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대학원 박사 과정에서 일본 문학을 공부 한다.

1956년 미국 포드사가 지원하는 장학 프로그램 대상자가 된 남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대학에서 헤이안 시대 문학과 일본 현대 문학을 공부 한 후 예수회 재단 학교인 소피아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면서 일본 현대 작품을 번역하기 시작한다.

강사 월급으로 턱없이 부족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번역 작업은 곧바로 미국 출판사에 출간 되어서 1960년대 미국 독자들은 일본 문학의 3대 거장이라고 불리고 있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 다니자키 준이치로,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영어로 읽게 되었다.

8년의 시간이 흘러 1968년 이 남자는 스웨덴 스톡홀롬 왕궁에서 열리는 노벨문학상 수여식 자리에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바로 옆에 서게 된다.

​

1968년 12월 노벨문학상 시상식장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수상 소감에서 "이 노벨문학상의 절반은 사이덴스티커의 몫"이라고 밝혔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노벨 재단에서 받은 상금 6만 크로네에서 절반을 뚝 떼어서 '설국'을 영어로 유려하게 번역한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Edward George Seidensticker1921-2007)에게 주었다.

일본 언론은 노벨 문학상 수상에 큰 기여를 한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가 일본 건국 기념일인 2월 11일에 태어났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노벨 문학상 발표 당시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는 한국 지리산 노고단을 등정 하고 있었다.

태평양 전쟁 동안 일본 전역을 돌아 다니며 정보를 수집했던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는 일본의 역사와 문화, 습성을 뼛속까지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아 도쿄에 집을 마련하게 되자 그는 본격적으로 한국 유물을 수집했다.

불운한 경제 대공황에서 태평양 전쟁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일본어 공부로 인생 역전을 맞이했어도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건 한국의 전통 문화 예술이였다.

그는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은 태생적으로 싸우기를 좋아하고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목소리가 크고 마늘 냄새가 나는 더러운 종족이라 비하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조선 백자를 너무나도 사랑해서 밀 반출한 도자기를 일본 정부가 마련해준 도쿄 저택에 숨겨두기도 했던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는 한국을 자주 드나들면서 만난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다정하면서도 품위 있는 말과 행동을 갖춘 심성이 부드러운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일 그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번역 하지 않았다면 노벨 문학상 수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강 작가의 작품을 세계에 널리 알린 1등 공신은 그녀의 작품 <채식주의자> 영어로 처음 번역한 영국 출신의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다.

데버라 스미스가 영어로 번역한 한강의 <채식주의자Vegetarian >는 2016년 맨부커 국제상을 받기 전에는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수상 이후 비평가와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부커 상 수상 이후 데버라 스미스가 영어로 번역한 한강의 책은 프랑스어 독일어를 비롯해 스웨덴어로 번역되어 출판 되는 동안 많은 학자들이 오역을 지적하면서 원본을 왜곡하고 한국문학을 배신했다고 주장했다.

한국에서 영어 번역을 평가하는 위치에 있는 학자들은 원본에 충실한 번역의 잣대로 문학번역에서 오역을 했는지 안 했는지, 충실한지 아닌지, 정확한지 아닌지에만 초점을 맞춘다.

영어와 한국어 두 문화와 언어가 달라서 1대 1 직역 번역을 하게 될 경우 한국어 맛을 살리는 번역은 실제 영미권 독자들에게 와 닿지 않게 된다.

한국 학자들은 해외 심사위원들과 독자들이 한강의 작품을 한국어 원본과 영어 번역본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서 읽지 않고 오로지 그들의 언어로 작품으로 읽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 하고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영어로 번역한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도 과감하게 의역을 해서 한동안 일본의 영문학자들 사이에 비판이 일어 났지만 일본 내에서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영어 번역을 해서 전 세계인들에게 소개한 번역가의 공로는 높이 칭송했다.

1937년에 출간된 <설국>은 일본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지 못해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던 1960년대까지도 1쇄를 넘기지 못했다.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던 시기에 일본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작가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미시마 유키오였다.

바둑대전이 열리는 날이나 바둑 전문 잡지에서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글이 실렸을 뿐 일본 독자들은 시적인 언어로 함축된 그의 작품을 지루 하다고 생각했다.

반 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미국 명문대인 스탠퍼드·미시간·컬럼비아대학 등에서 일본문학을 강의하며 최고의 교수로 이름을 날렸던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는 10년이 넘는 작업 끝에 일본 최고 고전인 '겐지이야기'를 영역을 완수한다.

그는 생애 마지막 시기에 출간한 회고록에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언어구조가 완전히 다른 언어를 영어로 번역하려면 뭔가를 끊임없이 내다 버려야 하는 가차 없는 일"이라며 “작품을 시작하고 끝 맺는 단락에는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사람들이 가장 많이 주목하고 흠을 잡는 부분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한강 작품의 영어 번역을 원본과 한 문장씩 대조 하면서 오역을 지적하는 세미나를 열었던 영문학자들 중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의 지대한 공을 세운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의 번역을 깊이 있게 분석한 논문을 쓴 학자들이 없다.

번역가에게도 상금을 수여하는 부커상 수상식에서 데버라 스미스는 단어를 선택할 때, 그 단어가 얼마나 많은 음절이 있는지, 독자들이 읽었을 때 어떻게 보이고 느껴지는지 어떤 소리로 들리는지를 생각하면서 원문에 있는 함축적 의미와 이미지들을 깊이 고민하면서 번역한다는 말을 했다.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 하기 전까지 그동안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 날짜가 가까워질 때마다 해외토픽에 실릴 만큼 기이한 장면이 여러 매체에 줄줄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느 시인의 집 앞으로 기자가 대거 몰려가 있는 모습이라든지 이번에도 한국의 **시인의 수상은 유력한가?라는 기사 제목부터 영국의 한 도박 사이트에 **시인은 몇 번째 올라가 있는가?라는 기사까지 노벨 문학상 발표 직전까지 쏟아졌다.

이런 장면들이 20년 동안 이어지는 동안 한국 학자들과 학계는 번역가들을 양성하는데 투자하지 않고 오히려 번역가의 자질과 오역을 지적해 왔다.

한강의 기적이 일으킨 K문학의 르네상스가 더 넓게 뻗어 나가려면 번역을 창작으로 보고 번역가에게도 문학적 자율성을 허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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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노벨상 계절이 시작 되었다.

10월  5일 생리의학상   발표를 시작으로 6일 물리학상  7일 화학상  8일 문학상 9일 평화상     12일  경제학상이 발표 된다.

발명으로 거부가 된 노벨의 기부로 시작된 노벨상은 스웨덴 한림원에서 철저하게 후보를 공개 하지 않고 어떻게 후보를 선정하는지도 알려진 바가 없어서 영국 도박사이트 나이서오즈(Nicerodds)에서 유력 후보를 선정해서 배당률 순위를 집계하고 있다.

 미식축구, 야구, 경마, 아이스하키 등 유럽 스포츠 결과를 예측해서  순위별로 집계한 배당률에 돈을 거는 일종의 도박 멀티숍인  나이서오즈(Nicerodds)는  매년 10월  한시적으로 '노벨문학상 배당률'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꽤 적중률이 높고 배당률 후보에 오르는 후보 중 상당수는 몇 년 안에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도 높아서 전 세계인들이 이 사이트를 클릭 하며 실시간 후보 배당률을 살펴서 출판사를 비롯해 언론사들이 수상 시기에 맞춘 기사와 출판물을 쏟아 내기 위해 예의 주시 하고 있다.

철저하게 후보작 선정 과정 부터 심사까지 베일에 쌓아 놓고 신비주의를 고수하는 노벨상 주최국이자 위원회인 스웨덴 한림원은 수상자 선정에 있어서 정치적 색채가 농후 하지만  여전히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지만 노벨상은 1901년 첫 시상 이후 123년의 세월 동안  가뭄의 콩 나듯 여성들에게 상을 수여 해왔다.

 물리학 분야 같은 과학 분야는 각각 3명 정도의 여성 수상자에게 영광이 돌아갔고 문학상은 2024년까지 121명의 수상자 가운데 2024년 한국 작가 한강을 포함해서 여성 수상자는 불과 18명에 불과 하다.

역대 노벨 수상자들 성비율로 비교 해보면 각 분야 수상자 8명 중에서 7명 정도가 남성이라면 여성 수상자는 단 1명에 그치고 있고 8년에 한 번 정도 노벨상에 여성 수상자들이 포함 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특히  백인 수상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서  서구 보수주의적인 색채가 강한 노벨상은 정치 경제 여러 상황을 고려해서 선심을 쓰듯 비 서구권에서 수상자가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런 비난을 의식 했는지 2012년 부터 남성 수상자와 여성 수상자에게 번갈아 상을 수여 했던 스웨덴 한림원은 2019년 미투 운동 촉발로 2년 동안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았다.

2016년과 2017년에 남성이 연달아 수상한 것을 제외 하고 2022년 아니 에르노가 상을 받은 다음 해에 노르웨이 남성 극작가 욘 포세가 수상했다. 

1945년 남미 출신의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은 칠레 태생의  혼혈 백인이었고, 2007년에  수상한 도리스 레싱은 이란 태생이지만  영국인 부모를 둔 백인이었다.  

1993년 흑인 최초이자 여성인 토니 모리슨이 수상 한 이후로 아시아 여성으로서 첫 수상이자  백인, 남성이 주류인 세계 문학계에서 유색인종 여성으로서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의 수상은 의미가 크다. 

성별 안배를 고려한 영국의 베팅 사이트들은  2026년 노벨 문학상 유력한 수상 후보로 중국의 카프카와 보르헤스로 불리고 있는 <찬쉐>를  내세웠다.

 문화평론가 수전 손택도 “중국에 노벨상 수상의 유일한 가능성이 있다면 그는 바로 찬쉐”라고 평가한 적 있어서 현재 찬쉐 수상 가능성에 가장 높은 베팅을 하고 있고 래드브룩스 기준으로 유력 후보 2위는 노벨 문학상 ‘단골 후보’인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 그 다음 순위로  미국의 토머스 핀천과 호주의 제럴드 머네인이 차지 하고 있다.

찬쉐와 하루키를 제외 하고 수상 가능성이 높은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들 모두 90세를 바라 보고 있어서 이번 수상 기회가 생애 마지막 일 수 있다.

영국 베팅 사이트들은 물론이고   2016년 소설 『채식주의자』로 부커상을 수상한 한국 작가 '한강'의 수상 예측을 한 영미권 언론은  없었다.

1890년에 사망한 알프레드 노벨은 유언장에 '문학 분야에서 이상적인 방향으로 가장 뛰어난 작품을 창작한 사람에게 수여한다'는 문장을 남겼다.

그동안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이 유언장에 언급한   '이상적인 방향(스웨덴어 idealisk riktning)'을 어떻게 해석할지를 두고 여러 갈래의 해석을 하며 수상 후보를 골라 왔다.

노벨이 유언장에 언급한 '이상적인 방향(스웨덴어 idealisk riktning)'은  '예술적 이상' 일 수도 있고 '인류의 삶에 기여할 이상적인 정신성'으로 넓게 해석 할 수 있지만  지난 100년의 시간 동안 노벨 문학상은 한없이 가벼운 통속적인  스토리나 영어권 국가 출신에 백인 남성 작가의 작품 중 영어로 번역된 작품이 많은 유럽, 북미 작가들에게 상을 집중적으로 수여해 왔다.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언어, 특히 영어나 프랑스어로 작품을 쓰는 작가를 정기적으로 선택하고 있는 스웨덴 한림원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언어가 최근 3년간 헝가리어, 한국어, 노르웨이어 작가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엔 영어·프랑스어 작가일 가능성도 있다.
 
예술적 이상의 추구든 이상사회의 구현이든, 문학을 통해 자기만의 이상과 신념을 일생에 걸쳐 펼쳐온 작가가 202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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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10-01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써 노벨상의 계절이라니 정말 시간이 후딱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세트]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상.하 세트 - 전2권 ㅣ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시오노 나나미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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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4년 12월 26일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예시라는 작은 마을 광장 천막안에서 세상 밖을 나왔다. 

붉은 수염의 신성 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와 황후 콘스탄체가 결혼 8년 만에 태어난 아이, 성탄절 팔레르모 대성당에서 '시칠리아 왕'의 왕관을 쓴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떨어져 움브리아 지방에서 세살까지  살던 꼬마 프리드리히 세례식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 하인리히를 만난다. 

1년 후  하인리히 황제는 건강 이상으로 서른 두살의 나이로 사망하고 그의 예상치 못한 죽음으로 유럽 전역에 권력의 지각 변동이 시작된다. 

가장 처음 남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반란이 종교계의 최고의 권력자 로마 교황의 죽음으로 더욱 혼란이 가중된다.

 황후 콘스탄체는 이제 네살이 채 안된 아들 프리드리히 2세를 권력의 왕좌에 앉히기 위해 왕실 최고 회의를 소집한다. 

1198년 1월, 로마 교황으로고 서른 여덟 살의 인노켄티우스 3세가 선출되고 황후 콘스탄체는 그에게 접근해 교황이 시칠리아 왕국에서 어린 프리드리히의 왕위를 인정해 주면 혈통상 프리드리히에게 권리가 있는 독일의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겠다는 조건을 내건다. 

교황 입장에서는 골치 덩어리 독일을 관리 하지 않아도 되니 황후의 조건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1198년 5월 17일, 겨우 네 살이 된 프리드리히는 팔레르모 대성당에서 시칠리아 왕으로 즉위 한다. 

나폴리까지 공략해온 로마 교황의 영토와 국경을 접한 남부 이탈리아 전역의 통치권이 4살짜리 프리드리히 황제 손에 들어갔다.

 반년 후 1198년 11월, 황후 콘스탄체는 병상에 눕게 되고 자신의 죽음이 임박해왔다는 사실을 직감하며 아들의 후견인으로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를 선택한다. 



교황은 죽음이 임박한 황후에게 다음과 조건을 요구한다.


첫째, 시칠리아 왕국이 로마 교황의 영유지 라는 것을 인정할 것.

둘째, 꼬마 프리드리히 황제가 성인이 될 때까지 자신의 후견인 비용을 낼 것. 

단, 후견 비용의 납부 시기는 성인이 된 다음에 할 것


황후 콘스탄체는 이 모든 조건을 받아들이고 며칠 후 눈을 감는다.


자, 이제  천애고아가 된 4살 꼬마황제 프리드리히 앞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황후가 사망 한 후 교황의 신경은 온통 제 4차 십자군을 동방에 보내는데 쏠려 있었다.

꼬마 프리드리히 황제 옆에는 성직자나 학자 출신도 아닌 굴리에모 프란체스코라는 일반인에게 맡겨진다. 

어느 누구도 황제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10년 동안 꼬마 프리드리히 황제는 자신의 호기심이 가는 데로 거의 전 분야를 독학해 나간다.

무엇을 배울지 스스로 선택했던 꼬마 황제는 라틴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그리스어, 아랍어를 차례 차례 익혀 나간다. 황제 프리드리히는 수행원이나 시종 없이 팔레르모 시내를 마음껏 돌아 다니며 서민들의 언어와 문화까지 익힌다.

황후의 사망 이후 단 한번도 꼬마 황제 프리드리히를 만난 적이 없었던 교황은 십년의 세월이 흐른 후 카푸아 대주교의 보고서를 통해 꼬마 황제가 어떻게 성장 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카푸아 대주교가 교황에게 보낸 보고서는 다음과 같다.


-키는 중간 정도로  또래들 보다 크지 않다. 단단한 체격에 지구력이 강하다.

-칼과 창, 활을 평균 이상으로 잘 다룬다.

- 무술에 집중 하고 있을 때 자세가 유연하고 몸을 자유자재로 써서 약점을 내보이지 않는다.

-승마를 아주 즐긴다. 아무리 거칠고 성질 머리가 나쁜 말 위에 올라 타도 압도적인 속도와 기세로 말을 길들인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밤 까지 절대로 가만히 앉아 있지 않는다. 미친 듯이 움직이고 돌아 다닌다.

-유일하게 가만히 앉아 있을 때는 독서를 할 때 뿐이다. 역사 책을 주로 탐독 하지만 뭐든 손에 잡히는 데로 읽는다. 한번 책에 빠지면  새벽까지 이어진다.

-피로 하다 거나 지겨워 한 적이 없다. 하지만 황제 의복으로 갈아 입고 나면 순식간에 근엄한 모습으로 돌변한다. 

-어느 누구나 눈이 휘둥그레지는 미소년은 아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넓은 이마는 넓은 마음을 드러내고  눈빛은 소년의 눈빛이지만  상대를 바라 볼 때는 강한 열정을 드러낸다. 단, 가끔 황실 사람들이 전혀 알아 듣지 못하는 서민들 언어로 말해서 시종들을 난감하게 만들때가 있다.

- 무엇이든 미리 정해진 데로 움직이지 않고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 어린 나이지만 시종이나 하인을 부리지 않고 어떤 곳도 스스로 찾아가고 어려운 일도 스스로 척척 해낸다.


소년 프리드리히 황제가 살던 시기에 팔레르모는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가 뒤섞인 무법지대로 독일과 이탈리아 세력이 끊임없이 충돌하며 언제 어떤 식으로 살해 될지 모르는 곳이였다.

황제의 후견인 교황도 이곳은 손도 대기 싫은 곳이지만 황제 프리드리히를 자신의 손안에 쥐고 흔들며 시칠리아 왕국 전체로 세력을 확장 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그가 첩자로 파견한 사제들과 대주교들은 황제 프리드리히를 24시간 감시 하며 수시로 교황에게 보고서를 보냈다.

완벽하게 감시 당하면서 완전하게 방치돼 버린 황제 프리드리히는 일곱 살 무렵 독일 세력들에 의해 납치 될뻔한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

소년 프리드리히는 자신이 기거 하고  있는 노르만인의 궁전으로 쳐들어온 독일 세력들 앞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자신의 몸에 피가 나도록 마구 할퀴며 짐승처럼 큰 소리로 울부 짖었다.

소년 프리드리히가 미쳐 버렸다 생각했던  독일 세력들은 곧바로 현장에서 줄행랑을 치고 이를 바로 눈앞에서 목격한 교황의 비밀 첩자 사제는 이날의 사건 보고서를 작성한다.


'소년 황제가 독일 세력들 앞에서 보인 행동은 극도의 공포심이 아닌 이름만 황제 뿐인 자신의 처지를 절망과 분노로 표출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소년 프리드리히는 자신이 신뢰 할 수 있는 사람만 곁에 두고 팔레르모 전역에 세워진 예배당의 서고들에 보관된 책들을 독파 하기 시작한다.

1208년 소년 프리드리히가 13살 생일날 삼촌 필립이 살해 당하고 소년은 호엔수타우펜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가 된다.

1209년 12월 26일  14살 소년 프리드리히가 스스로 성인이 되었음을 선포 하자 이 사실을 알게 된 후견인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전혀 예상치 못한 사실에 크게 놀란다.

'그 꼬마가 자신의 나이보다 월등한 능력을 키웠군, 소년의 모습이지만 인지 능력은 성인을 넘어 섰다니.'


가만히  14살 황제의 움직임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던  마흔 아홉 살의 교황은 성직자 임명권을 놓고 서로 대립하지만 어린 황제의 대응에 맞서기 보다 너그럽게 이해하는 태도를 취한다.

 14살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자신에게 맞서지 않고 공손하게 한 발자국 물러서는 교황의 속내를 파악하기 위해 주변 동태를 살피는 동안 교황은  황제보다 열 살이나 많은 아라곤 왕의 딸 콘스탄체를 눈앞에 데리고 와 결혼을 종용한다.

당시 아라곤 왕의 딸 콘스탄체는 헝가리 왕과 결혼 했지만 아들이 죽자 자신의 고향 스페인으로 돌아 간 상태였다. 

빠른 속도로 헝가리 왕과 이혼 절차를 마치게 한 교황은 1209년 8월 15일 자신의 꼭두각시 콘스탄체와  황제 프리드리히 결혼 혼사를 직접 주관하며 14살 짜리 황제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는 계략을 짠다.

황제 프리드리히와 결혼식을 올리던 날 콘스탄체는 결혼 지참금으로 무려  오백명의 기사를 끌고 온다.

14살의 황제 보다 삶의 경험이 많았던 콘스탄체는 교황의 검은 꿍꿍이를 꿰뚫어 보았고 그의 바람대로  남편 프리드리히 황제가 꼭두각시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왕국 통치 질서를 확립하는데 적극적으로 협력한다. 

콘스탄체가 이끌고 온 오백명의 기사들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가기 전, 교황은 황급히 독일 작센주 지역의 전폭적인 지원을 요청 한다.

당시 독일 작센 주는 황제 프리드리히의 삼촌 필립이 죽고 난 후 그 자리에 작센공 오토가 물려 받았다. 

작센공 오토는 교황파의 우두머리이자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의 손과 발이 였다. 

교황은 자신의 수족이나 다름 없는 오토가 절대로 시칠리아 왕국을 손에 넣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 굳게 믿고 있었다.

1209년 10월, 스물 일곱 살의 오토는 신성 로마제국 황제에 올라서고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북쪽 독일은 오토가 남쪽 시칠리아 왕국은 14살의 프리드리히가 통치 해야 자신의 안위도 챙기고 권력도 자신이 쥐락 펴락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황제 오토는 대관식을 마치자 마자 교황청 영토의 북쪽과 국경을 맞댄 토스카나 지방으로 군대를 이끌고 가 시칠리아 왕국의 영토 지역인 남부까지 진격한다.

이 사실에 교황은 크게 격노 하지만 일개 종교인으로  군사력이 없으니 오토를 암살 할 첩자 사제들을 급파 한다.

 이를 절대로 모를 일이 없었던 황제 오토는 첩자들을 색출해 내고 교황청의 북쪽 영토 카푸아, 나폴라, 살레르노, 아말피 까지 차례 차례 점령하며 교황의 암살단 사제들에게 에워 쌓여 있었던 황제 프리드리히를 구출하는데 성공한다.

자신의 사제를 모조리 몰살 시켜 버린 것에 크게  분노한 교황은 1210년 10월 신성 로마제국 황제 오토를 파문 시킨다고 공표한다. 

하지만 이미 교황청 영토를 정복 한지 1년을 넘겨 버린 시점이라 황제 오토는 파문 당하는 것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오토가 교황과 기 싸움을 벌이는 동안 한층 여유가 생긴 황제 프리드리히는 남유럽 전체의 방위군을 키우는데 주력 하고 있었다.

더 이상 암살단 사제들도 별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교황은  남부 이탈리아 지역의 충직한 대주교인 서른 세 살 배라르도를  팔레르모 대주교로 임명한다.

교황이 대 주교 배라르도에게 준 임무는 팔레르모 땅을 지배 하고 있는는 열여섯살 짜리 황제 프리드리히를 곁에서 보좌 하며 감시해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자신에게 보고 할 것을 명했다.

교황은 일개 지방 구석진 곳에서 벼락 출세한 배라르도가 자신에게 충성 하기 위해  야생마 같은 황제를 노련하게 조련 할 것이라 큰 기대를 품고 있었다. 

매일 아침 교황에게 보고서를 보냈던 베라르도는 차츰 시간이 흐를수록   로마 교황청에도  교황에게도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는다.

매일 아침 교황은 베라르도의 보고서가 도착하기를 기다렸지만   소식조차  없게 되자  시칠리아 왕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열여섯살짜리 황제가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 전혀 알 방법이 없이 로마 교황청에 홀로 고립된다.

과연  베라르도 대 주교는 야생마 같은 황제 프리드리히에게 무릎을 꿇었던 것 이였을까? 아니면 온갖 뇌물에 포섭 당해 버린 것이었을까?

서른 세 살의 베라르도 대주교는 열 여섯살 황제의 운명을 읽고 있었다.

1년 후 황제 프리드리히는 북부 독일로 향하고 그의 곁에 동행 하는 사람은 바로 베라르도 대 주교, 그는 이제 황제 프리드리히 인생에 가장 소중한 은인이자 파트너가 된다.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최대 적은 자신의 후견인인 교황도 아니였고 국경 너머 이교도 군대들도 아니였다. 

그가 이룩하려는 법치 국가를 세우는데 절대적으로 '시간'이 필요 했고 그 법치 국가를 이룩 하려면 절대적으로 '평화'를 유지 해야만 했다. 

'평화'는 꿈 만으로 유지 시키지 못한다. 

이 세상의 분쟁이란 꿈을 꾸듯 평화롭게 해결 할 수 없다.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꿈꾸는 세상. 평화를 유지하기 이전에 평정의 상태로 만들려면  압도적인 군사력이 필요 했다.

중세 시대에 병력을 거느리고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봉건 '제후'들 뿐이다.

그렇다면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군사력을 내세우지 않고  어떻게 평화를 유지해서 법치 국가를 세울 수 있었을까?

1236년 마흔 한 살에 접어든 황제 프리드리히 2세에게  '시간'은 그가 설계하는 미래를 재촉하고 있었다.

조류를 이용한 사냥에 관한 책을 쓰면서 내가 명심한 것은 아래 한 가지다.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그리고 본 그대로 쓸 것

왜냐하면 이 방침을 관철해야만, 책을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해보고 처음으로 이해한 지식의 통합이라는 지금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과학의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라 믿어서이다.

-프리드리히 2세의 조류를 이용한 사냥에 관한 고찰 (De Arte Venandi cum Avibus)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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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단편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에서 화자인 '나'는 일 평생 세 번 결혼 한다.

그녀의 첫 번째 남편은 최고 대학을 나온 지식인이였지만 겉과 속이 다른 <속물俗物>적인 인간이였다.

‘그는 겁쟁이이고, 비겁하고 거짓말쟁이였다. 순 엉터리였다. 그의 본심은 돈과 명예에 기갈이 들려 있었고 T시와 T대학 강사 자리를 지긋지긋해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이런 곳에서 썩긴 너무 아까운 존재라고 억울해했고, 서울의 일류대학에서 자기의 명성을 흠모하고 모시러 오지 않는 것에 앙심을 품기도 했다. 그의 명성에 대한 자신이란 것이 또 사람을 웃겼다. 자기의 전공 공부에는 게으르고 자신도 없는 주제에 잡문 나부랭이나 써가지고 지방 신문을 통해 매명을 부지런히 해쌓는 것으로 그런 엉뚱한 자만을 갖는 것이었다. 더욱 웃기는 것은 그는 그의 글을 통해 결코 도시 돈 명예에 대한 그의 절실한 연정을 눈곱만큼도 내비치는 일이 없이 늘 신랄한 매도를 일삼는다는 거였다. 도저히 구제할 수 없이 비비 꼬인 남자였다.’

-박완서의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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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 俗物]이라는 단어를 국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정의 되어 있다.

-교양이 없으며 식견이 좁고, 세속(世俗)적 이익이나 명예에만 마음이 급급한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

순 우리말에는 원래 '속물'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영어에서 '속물'을 의미 하는 단어는 snob이다.

영국인들이 처음 만난 이들에 대한 뒷담화 같은 걸 할 때 '저 사람은 속물(snob)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거들먹거리나 거만스러운 이들에게 snob이라고 한다.

snob이라는 단어는 잉글랜드 지역에서 널리 통용되었던 단어가 아닌 뜻밖에도 스코틀랜드어로 처음 의미는 속물이 아닌 하인(servant)이나 상대의 지위가 낮을 경우 남성(boy)을 얕잡아 볼 때 쓰는 단어였다.

19세기 영국 산업혁명 시기에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이자 독일 작센 공국의 알버트 공(Prince Albert of Saxe-Coburg and Gotha)은 상공업으로 부를 일으켜서 영국 산업 전반에 큰 투자로 기술 혁명을 이끈 신흥 부르주아들의 자녀들에게도 캠브리지 대학 입학 기회를 열어 주었다.

이 시기 부터 영국 귀족들은 캠브리지나 옥스퍼드 대학 졸업 특혜를 받은 평민 출신들이 자신들의 특권 영역에 침범 하자 그들의 행태를 얕잡아 보면서 평민을 의미 하는 단어인 'sinenobilitate'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길게 내뱉지 않고 축약해서 snob이라고 내뱉으면서 널리 통용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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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들이 사용하는 snob에는 여러 다층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오로지 먹고 마시며 흥청망청 쓰는데만 몰두 하는 인간이라는 의미와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거나 모두가 좋다고 하는 걸 무조건 선망하는 인간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인간을 가리킬 때 이 단어를 쓰고 있다.

따라서 미국에서 쓰는 snob과는 의미가 상당히 멀고 이민자들이나 외국인들 그리고 십대들은 '저 인간 **없다'라는 의미로 아주 많이 쓰고 있지만 영국 본토인들이 쓰는 이런 은어적 의미를 전혀 모르는 외국인들이 많다.

한국에서 속물俗物이라는 단어는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일본은 영어 snob에 한자어를 조합해 속물俗物이라 명명했는데 속인(俗人)스러운 인간의 의미로 6세기에 일본에 전파된 불교에서 널리 통용되었던 단어였다.

박완서의 단편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의 주인공의 두 번째 남편은 지방신문사에서 유명한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던 인물로 돈이나 명예 같은 건 초월하고 오로지 취재와 글쓰기에 몰두 해 보이는 남자였다.

두 번째 남편 역시 또 다른 종류의 <속물>이라는 걸 깨닫고 세 번 결혼하는데 그녀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세 번째 남편은 어떤 부류의 남자였을까?

'과연 그는 그의 철저한 배금주의를 조금도 위장하러 들지 않았다. 한 밑천 잘살아보자 그의 동분 서주는 이 한마디에 요약 됐다.'

세 번의 결혼 모두 이혼 도장을 찍어버리는 주인공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자신이 선택한 세 명의 남자와 도저히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일까?

주인공은 전쟁 통에 아버지를 잃고 동생들과 피난을 다니는 동안 굶주림과 가난에 허덕이게 되자 어머니의 등에 떠밀려서 미군들을 상대하는 일을 하게 된다.

태생적으로 조그만 실수에도 부끄러워 하고 자잘한 칭찬에도 창피함을 느꼈던 주인공은 전쟁-가난 그리고 세 번의 이혼으로 어느 덧 부끄러움 같은 걸 느끼지 못하는 뻔뻔한 성격이 된다.

세 번의 결혼에서 이혼 도장을 찍고 다시 혼자가 된 주인공은 어느 날 종로 한 복판에서 일본 관광객을 이끌고 다니던 한 가이드가 '소매치기를 조심하세요'라는 일본어를 듣게 되자 그녀의 가슴에 '부끄러움'이란 등불이 켜진다.

그녀의 속물스러운 세 명의 남편들 모두 태생부터 속물적인 인간은 아니였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부끄러움으로 무장 했지만 전쟁이 터지고 악착 같이 살아남아 잿더미와 폐허 속에서 삶을 일구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속물>적인 인간이 되었다.

살기 위해 부끄러움을 버린 남자들 그 남자들을 세상에서 독하게 살아남게 만든 어머니들의 모습이 세파에 시달리면서 서로 다른 인생의 갈림길에서 실타래처럼 엮여져 있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툭하면 '이 웬수 같은 놈의 새끼들' 하며 아이들을 불문곡직하고 흠뻑 두들겨 패주는 버릇이 생겼다. '이 웬수야 뒈져라 뒈져, 칵 뒈져' 하며 정말 전생의 원수라도 노려보듯이 아이들을 노려보며 삿대질을 하던 무서운 어머니와 아이들의 악머리 끓듯 하던 울음소리를 나는 지금도 끔찍스러운 지옥도의 한 폭으로 생생하게 기억한다.'

-박완서의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중에서

영미권 국가와 달린 한국의 뿌리 깊은 전통 문화와 관습에서는 가족이라는 공동체 울타리 속에서 '부끄러움'에 대한 교육이 철저했다.

누구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게 행동해야 했고 역사 앞에서 후대인들에게 부끄러운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 내놓기도 했다.

'부끄러움'은 사회에서 나와 관계를 맺게 되는 모든 것들과 연결 되어 있다.

가족끼리 '부끄러움'을 모르면 드러나지 않게 상처를 입게 되고 학교에서 '부끄러움'을 모르면 폭력, 왕따등의 험하고 위험한 행위로 이어지고 직장에서 자신이 저질러 놓은 것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모르게 된다면 회사에 막대한 피해를 주거나 속해 있는 팀원 전체에게 큰 불이익을 주게 된다.

이 '부끄러움'이 가정과 학교, 사회로 확장해 나가게 되면 우리 사회 곳곳에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로 인해 무고한 이들이 얼마 만큼의 피해를 입고 있는지 각종 사건, 사고를 통해 훤히 드러나고 있다.

애초에 '부끄러움'이 뭔지 모르면 누구보다도 떳떳하게 살게 된다.

죄를 지어도 그 죗값에 맞는 형벌을 받지 않게 되니 피해자에 대한 사죄나 부끄러움 조차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는 상식보다는 음모, 이성보다는 분노,탐욕, 기회주의, 불안감이 얽히고 설켜서 ‘내편’과 ‘네편’을 가르고, 네편을 비판할 때는 합리적 잣대를 들이대지만 내편 비판에는 애써 눈을 감는다.

사회에 중심이 되어야 할 정치인과 지식인층은 자기편에게 불리한 사법 판단이 나오면 불복과 인신공격으로 대응하고, 반대편에게 불리한 사법 판단에는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낯 뜨거운 언행이 일상화 되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뻔뻔한 모습을 전 국민에게 자랑하듯 보여 주고 있다.

여기에 더해 유튜브를 기반으로 하는 사이비 언론과 이에 부화뇌동하는 일부 전통 미디어 매체가 이런 추세에 기름을 부어 불을 더 지피고 있다.

부끄러움은 인간을 인간 답게 하는 기본적인 요소다. 부끄러움을 알면 개과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부끄러움을 모르면 금수와 다를 바 없다

앞으로 이 사회에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만 살게 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까?

​

'부끄러움은 학습할 수 없다.

어디서 배워 얻는 것도 아니다.

부끄러움을 타는 사람,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보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

혹은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사람이 나을꺼다.'

-박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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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9-29 1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거 한국은 체면과 남의눈을 많이 의식했다면 현대는 빠른 도시화와 개인주의 확산으로 부끄러운 행동을 하더라도 나에게 이득이된다면 상관없다는 극단적인 실리적 사고가 고착되어 부끄러움이나 수치는 개나 줘버린 세상이 된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은 누가 뭐래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입니다.

입을 똑바로 보면 웃음기가 사라지고, 눈이나 뺨으로 시선을 옮기면 입꼬리가 올라가 보이는 모나리자는  사람의 눈이 정면으로 볼 때와 곁눈으로 보는 시선이 관람자를 따라오는 듯한 착시를 불러 일으키는 신비한 초상화로  전 세계에서 이 그림을 보기 위해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섬세한 붓놀림으로 영혼을 표현 할 뿐 아니라 보는 이의 시선까지 빼앗는 신비한 초상화 모나리자가 세상에 등장하기 전 시칠리아 동북쪽 항구 도시 메시나에서 태어난 천재 화가가 남긴 작품이 있습니다.

인간이 진짜로 바라 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  왜 인간이 사람의 얼굴을 그리는지 그 의미를 되돌아 보게 만든  <수태고지의 마리아>

직접 촬영한 현장 사진과 도판 그리고 정성껏 쓴 에세이를 토대로 제작한 영상 Scott Bonnard - YouTube 채널에서 감동의 깊이를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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