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케이크 한 조각이 있다. 

원래 크기에서 일부인 한 조각 케이크의 두께는 얇을 수도 있고 두꺼울 수도 있다.

이 한 조각의 케이크를 한페이지 종이에 빼곡하게 채워진 글자 수로 옮긴 다면 한글 기준으로 대략 1900자 정도 채워진다.

한 장의 채워지는 글자 수는 창작 분야에서 장르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한 챕터의 분량 내지 특정 사건과 인물의 한 장면의 길이다.

이것을  순간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사진 촬영 기법에 적용 한다면 수 십장의 컷이 나온다.

움직임의 본질을 탐구한 포토그래퍼 머이브리지는 사진 한 장으로 움직임을 전달하는데 한계를 느끼고 빠른 셔터스피드로 역동적인 움직임을 세밀하게 포착해서 마치 파도가 밀려 오듯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했다.

특히 점진적으로 사진의 장 수가 늘어 날 때마다 흐릿함의 농도를 다르게 해서 유연성까지 부여 했다.

 그의 이런 혁신적인 기법의  사진들은 20세기 영화의 탄생을 예고 할 정도로 대단히 창의적이였다.

영화 <대부>의 주인공 마이클은 '생사의 위험' 한 가운데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주도 면밀하게 계산하고 고민하는 순간, 병원에서 아버지의 목숨을 노린 두 번째 암살 시도를 좌절 시킨다.

결국 부패한 경찰 서장 맥클러스키와 대면하고 그 서장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린다.

가족 회의에서 언제든지 맞서 싸우자며 경찰과 전쟁을 선포하자 있는 듯 없는 듯 자리에 앉아 있던 마이클은 하나의 계획을 제안한다.

마이클은  솔로초와 경찰 서장 맥클러스키와 함께 만나는 자리에서 직접 총으로 둘을 해치우겠다며 장소를 브롱크스의 작은 레스토랑으로 정한다.

영화 화면 밖에서 부두목 클레멘자가 화장실에 총을 숨기고 계획대로 마이클이 화장실을 사용하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총을 가져와 즉시 둘을 쏴버리고 총을 버리고 레스토랑을 걸어나간다.

이 장면은 영화 <대부>에서 아주 중요한 장면이지만 원작 소설에는 단 4문장으로만 묘사 되어 있다.









솔로초는 다시 이탈리아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이클은 한 단어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는 듣고 있지 않았다. 그의 귀에는 온통 그의 심장 소리, 천둥 같은 피의 울음 소리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소설 <대부> 중에서


원작에서 지극히 평면적인 장면을 영화 시나리오로 각색하면서 중심 인물과 갈등과 대립을 겪는 인물들의 행동과 심리에 촛점을 두고 여러 장면으로 나눠서 긴박감을 불어 넣었다.

그렇다면 단 한 인물을 중심으로 장면이 움직이는 작품을 읽어보자.


톰 샌더스는 6월 15일 월요일 아침 회사에 늦으리라곤 털 끝만치도 생각지 않았다. 아침 7시 30분 그는 베인브리지 아일랜드에 있는 집에서 샤워를 하기 시작했다. 10분 이내에 면도를 마치고 옷을 입고 집을 나서야, 7시 50분에 출발하는 페리를 타고 8시 30분 까지 직장에 도착해, 스테파니 캐플란과 함께 미처 논의하지 못한 나머지 사항들을 검토한 후, 콘리-화이트 로펌 변호사들과의 회의에 참석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마이클 클라이튼의 <폭로> 중에서

 이 장면을 읽는 독자들은 남자 주인공 톰 샌더스가 빡빡하게 아침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이 날이 그에게 엄청 중요한 날이여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소설가들은 대체로 한 장면에 관점 하나라는 일반적인 규칙을 고수 한다.

즉, 이는 한 장면에서 둘 혹은 그 이상의 인물들 사이에 '시점 전환'을 하거나 내면의 생각과 관점을 갑작스럽게 이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가는 독자들이 한 장면에서 한 인물에 집중해서 그 인물에게 친숙함을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21세기 영상의 시대에서 이전의 작가들처럼  집요하게 한 장면에 한 인물만 집중적으로 서술한다면 독자들은 피로감과  지루함을 느끼고 책장을 덮어 버린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시각적이다. 단 몇 분 컷으로 광고를 하고 단 몇 분 분량의 애니메이션이 완성된다.

따라서  단 몇 분 동안의 영상과 이미지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시점의 이동, 다양한 인물들이 한 장면에 쏟아져 나와서 목적과 갈등, 화해의 구조의 이야기 형식이 통하는 세상이다.








사라 바론의 <로봇 드림>의 주요 스토리는 뉴욕 맨해튼에서 홀로 외롭게 살던 ‘강아지’가 어느 날  TV를 보다 홀린 듯 반려 로봇을 주문하고 그와 둘도 없는 단짝이 되어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중  해수욕장에 놀러 간 ‘강아지’와 ‘로봇’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휩쓸려 이별 하게 된다. 

 즐겁게 놀러 간 해수욕장에서 안타깝게 로봇과 생 이별을 한 강아지는  계절이 바뀌면서 해변에 두고 온 로봇을 향한  그리움이 다른 이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어 버린다.

강아지에게  수많은 우연이 찾아 오는 동안  차츰 로봇의 빈자리를 대신한  새로운 친구를 찾아 내지만   사계절의 시간이 지난 후 로봇을 발견한 강아지는  선뜻 다가서지 못한다.


극도로 단순한 그림으로 대사 하나 없이  사랑이든 우정이든 오랜 시간 뒤 다시 조우하게 됐을 때 겪게 되는 복잡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인간도 아닌 강아지와 로봇을 통해 깊이 있게 성찰한 작품이다.

 대사 한 마디 없이도 로봇과 강아지의 따스한 우정을 그린 애니메이션 로봇 드림에 깊은 감동을 받은 나는 유튜브 채널에 뉴욕 맨해튼을 배경으로 로봇과 강아지의 우정을 그린 창작 애니메이션을 제작 하고 있다.

  영상 스크립트를 쓰는 동안 원작자 사라 바론 처럼 스케치하고 구상 하며 로봇과 강아지의 형체를 완성 하듯  한 장면 씩 정교하게  직접 영어로 프롬프트를 짜고 지난 나의 뉴욕 시절에 겪었던  외로움과 고독을 생생하게 영상에 투영 시키기 위해 한 때 내가 뉴욕에서 살았던 방을  배경 장소로 사용 했다.


나의  창작영상 애니메이션 로봇 제프와 강아지 스콧 [Waiting for the Invisible Vibration, Robot Jeff & Puppy Scott]

뉴욕시 허드슨 강, 크루즈 한 대가 천천히 지나가고 있다.  텅 빈 방 한 가운데 커다란 창문 앞에 앉은 강아지 스콧은 누구를 기다리고 있을까? 

기계 속 진동으로 세상을 읽고 인간의 마음을 느끼는 로봇 제프. 

그는 홀로 남겨진 강아지 스콧의 외로움을 느낄 수 있을까?

 로봇 제프가 보낸 주파수가  강아지 스콧의 심장에   맞닿는 이 순간, 여러분에게도 그 소리가 들렸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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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아침식사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17세기에는 하루를 시작하기 전 침실에서 가벼운 요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가 18세기에 이르자, 대저택에서는 아침식사를 위한 전용 공간을 마련해 손님을 대접하거나 식구들이 모여 토스트와 차로 아침을 먹었다.]

-아침 식사 문화사 중에서

1896년 스물 아홉 살 나이에 구마모토의 제 5고등학교에서 강사 생활을 시작했던 나쓰메 소세키는 4년 후 일본 문부성 장학금으로 영국 유학을 떠난다.

1900년 가을 나가사키에서 출발한 배는 이탈리아 나폴리 항을 지나 제노바에 정착해서 소세키는 그곳에서 야간 열차를 타고 영국으로 향했다.

일본에서 영국까지 기나긴 항해를 하는 동안 소세키는 배 안에서 극심한 복통에 시달려서 물과 소금을 넣은 약간의 미음으로 겨우 몸을 추스렸다.

약 한 달 반 만에 런던에  도착 한 소세키는  런던에 도착 한 다음 날 부터 시내 곳곳을 돌아 다니며 하루 세 끼를 꼬박 챙겨 먹었는데 한 끼 식사 비용이 당시 일본 도쿄에 비해 6배나 비싼 영국 물가에  큰 충격을 받는다.

몇 날 몇 일 동안 숙소를 찾아 헤맸던 소세키는  신문 광고를 통해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숙소를 찾아 낸다.

소세키가 찾아 낸 숙소는  일주일에 숙박비와 식비가 2파운드 정도로 그는 일본에 살고 있는 지인에게 20파운드를 빌려서 겨우 이곳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1900년 경에  소세키가 묵었던 하숙집은 런던 북서쪽의 고지대에 위치한 곳으로 현지인들은 그 지역을  프라이러리 로드라 불렀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아담한 이층 건물의 맨 아랫층은  집주인인 40대 가장과 그의 가족들이 살았고 소세키는 바로 위층에 거주 했다.

 맨 꼭대기 다락방에는 집안일을 돕는 이들이 살았다.

이 하숙집은 소세키에게 아침 식사로 설탕을 첨가한 오트밀 죽을 만들어 주었는데 위장 질환을 앓았던 소세키 입맛에도 꽤 잘 맞았던 것 같다.

식사는 언제나 오트밀이다. 이는 서양 사람들의 일반적인 식사 메뉴다. 그들은 오트밀에 소금을 넣어 먹는다. 우리 일본인들은 설탕을 넣어 먹는다. 밀로 죽을 만들어 놓은 것 같은 모양인데. 우리 입맛에도 맞는다. 존슨의 색인 (사무엘 존슨의 영어 사전)에는 '오트밀은 러시아에서는 사람이 먹고 영국에서는 말이 먹는 음식'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 영국에서는 오트밀을 아침 식사로 먹고 있는 사람이 그다지 신기해 보이지도 않는다. 영국인이 아마도 말에 가까워지지 않았나 싶다.

- 나쓰메 소세키의 '런던 소식' 중에서

나쓰메 소세키가 영국에 체류했던 1900년 경의 영국인들의 일반적인 아침 식단에 오트밀 죽이 올라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정통적으로 유럽 대륙 국가 사람들의 아침 식사와 비교해 보면 영국인들은 아침을 푸짐하게 먹는 편이다.

일명 잉글리쉬 블랙 퍼스트라고 불리는 정통 영국식 아침 식단은 현지인들이 즐겨 먹는 수제 소시지(돼지피에 불린 오트밀을 돼지 창자에 넣고 숙성 시킨)인 블랙 푸딩과 계란 후라이,으깬 감자를 튀긴 해쉬 브라운 과 푹 삶은 콩을 차려 먹는다.


이렇게 차려진 영국식 아침 식단은 현지 비스트로에서 대략 5파운드 내외로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아침에 느긋하게 차려 먹기 힘들기에 간단하게 버터와 잼을 바른 토스트, 토마토, 쥬스와 커피, 삶은 계란 정도로 간소하게 차려 먹는다.

근대 사회에서  하루의 첫 식사를 아침 식사라 부르지 않았다.

영국에서도 하루의 첫 끼니를  디너 (dinner)라 불렀고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아침 식사인 breakfast는 '단식을 깨다'라는 라틴어 disieiunare에서 파생되어 프랑스어인 disdéjeuner에서 유래했다. disner라는 고대 프랑스어가 영국 땅으로 건너와 dinner가 되어서 하루의 주된 식사가 한낮에서 저녁 식사의 의미가 되었다.

아침 식사를 의미하는 breakfast가 통용 되었던 시기는 15세기 였으니 문명 사회를 이룩하는 동안 인류에게 아침에 먹는 식사에 그다지 큰 의미가 없이 그저 끼니를 때우는 데 급급했던 것일지 모른다.

현재 우리가 먹는 오트밀이나 빵의 원료인 호밀과 귀리는 신석기 시대 아나톨리아 (현재 터키 지역)에서 재배되기 시작해서 청동기 철기 시대를 거쳐  유럽 땅에 전파 되었는데 북유럽의 얼음 층에서 발견된 5000년 전 미라의 위장 속에 소화 되지 않은 귀리죽이 발견 되었을 정도로 오래 전 부터 인류의 끼니를 채워주었던 것은 귀리, 오트밀 죽이였다.

현대인의 하루 권장 칼로리는 성인 기준으로 2000칼로리에서 2300칼로리로 한 끼 권장 칼로리는 500에서 700칼로리다.

아침 권장 칼로리는 성별, 연령, 활동량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하루 섭취 칼로리의 약 20-25% 정도에 해당하는  360-450 칼로리를 섭취하는 것이 적절하다.


거침없이 치솟는 물가에 정작 월급은 오르지 않으니  매 끼니 하루 적정 섭취 칼로리를 계산하며  건강 식단을 유지하기 보다  다양한 종류와 입맛에 맞춰 먹을 수 있는 편의점에 들려서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나만의 디저트를 만들어 먹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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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미래는 수십 세기 뒤까지도 바라보는데 어떤 미래는 6개월을 넘길 수 없다고 한다면, 미래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미래의 얼굴이 있다면, 그건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요?

-김연수의 근접한 세계 중에서

대학 재학 중에 결혼 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든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재즈바를 경영 하는 동안 낮과 밤이 뒤바뀌는 생활 속에서도 피츠제럴드의 소설은 수시로 읽었다.

1979년 어느 날 마치 하늘에서   운명 같이  날아 온 야구 공처럼 무라카미 하루키는 서른을 앞두고 소설 한 편을 완성했고 글 쓰는 인생의 길을 걸어 간다.


내가 처음으로 번역한 책은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집 <마이 로스트 시티> 였다. 이 책은 1981년에 출판되었는데, 내가 소설가로 데뷔한 직후였다. 이후로도 나는 창작을 하면서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번역하는 일을 시간 간격을 두고 조금씩 계속해왔다. 이후 소설집을 몇 권 엮어 내고 장편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어디에서도 창작 수업을 들어 본 적이 없었던 하루키는 작가 생활과 함께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번역 하면서 창작과 번역 두 개의 회로를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한다.

일본에서 출간 되었던 피츠제럴드의 주요 작품들 대부분은 1960년대 쇼와 시기에 집중적으로 번역 되었다가  판매 부수를 올리지 못한 채 대부분 절판 되었다.

피츠제럴드와 함께 동시대 창작 활동했던 작가들 중 포크너와 헤밍웨이처럼 노벨 문학상이나 퓰리처 상 같은 타이틀 조차 없었기에 일본 독자들에게 피츠제럴드는 잊혀진 작가였고 대학 영문학과에서 교재로 읽혀지는 작가에 불과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번역을 배운 적이 없었던 무라카미 하루키는 피츠제럴드의 문장에 스며있는 리듬감과 생생한 시대의 목소리를 일본어로 옮기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루키는  일본에서 미국 현대 문학 번역의 대가이자 폴 오스터의 작품을 일본어로 번역한 도쿄대학 시바타 모토유키 교수 앞에 번역한 피츠제럴드의 원고를  펼쳐 놓고 첫 문장부터 소리 내어 읽어가며 문장 전체의 유연성, 리듬감, 의미를 원문과 철저하게 비교하고 수정하는 작업으로 한 권의 번역서를 완성한다.

하루키 작품의 열풍은 그가 번역하는 작품들로 이어져서 오래전에 잊혀지고 절판 되었던 피츠제럴드 작품들이 일본 주요 서점의 베스트셀러로 올라가고 미국 문학계까지 주목하게 되자 일본 내에서 번역가로 손꼽히는 이들이 하루키가 번역한 작품들과 다른 번역가들이 번역한 작품들을 나란히 놓고 원문과 비교하는  작업을 실행 한 적이 있다.

오래도록 대학의 상아탑에서 거주 하며 학자의 이름을 걸고 시작했던 이 작업에서 하루키의 번역 실력은  학계에서도 인정 받을 정도로 그의 번역 실력은 현재까지 최고로 평가 받고 있다.


<마이 로스트 시티>를 번역하던 당시, 피츠제럴드의 작품은 얼마 번역되어 있지 않았고 대부분 절판 되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일본 독자에게 널리 소개하는 게 번역자로서의 내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아직 번역 능력도 변변치 않았지만. 그 같은 열의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한국에서는  하루키의 열풍을 타고 그가  번역한 피츠제럴드의 작품들이 앞다퉈 출간 되었고 한국의  유명 작가들 역시  반 세기 만에 불붙기 시작한  피츠제럴드의 작품 번역 열기에 뛰어들었다.  

 작가의 이력에서 찰나의 순간을 살았던 피츠제럴드의 작품이 다시 한번 독자들의 눈길을 받게 한 데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의 진심 어린 번역의 힘이 가장 크다.

1940년 12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스콧 피츠제럴드의 <마지막 대군>은 이듬해 1941년 그의 친구이자 비평가 에드먼드 윌슨의 편집으로 출간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첫 작품으로  군조상을 수상하고 2년 후 1981년 피츠제럴드의 초기 단편집<마이 로스트 시티>를 번역하고 이듬해인 1982년 <양을 둘러싼 모험> 장편을 완성하고 전업 작가가 된다.

그는 이미 소설가가 되기 전 부터 재즈 바 문을 닫은 새벽녘 부엌 테이블 위에 노트와 사전을 펼쳐 놓고 꾸준히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번역하고 있었다.

피츠제럴드의 작품은 29살 무라카미 하루키의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였고 그의 문학적 스승이자. 글쓰기 교본이였다.

2006년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인생 작품인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두 번째로 새롭게 다듬어 번역 출간 했고 이후 <밤은 아름다워> 번역에 이어서 마침내  2022년 70세를 넘겨서 알콜중독으로 <마지막 대군> 집필 중에 4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피츠제럴드의 미완성 작품까지 번역했다.

그의 번역 후기는 1979년 소설가로 데뷔하며 걸어 왔던 창작가의 운명, 번역작업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이유가 상세하게 담겨 있어서 마치 자신의 문학적 스승에 대한 따스한 헌사처럼 느껴진다.

뉴욕은 태초의 모든 빛깔을 지니고 있었다. 귀환한 참전 부대가 5번가를 행진했고, 여자들은 본능적으로 그들을 향해 동쪽으로, 북쪽으로 이끌렸다. 우리 미국은 마침내 명백히 가장 강력한 나라가 되었고, 그래서 공기에 축제의 기운이 감돌았다. 토요일 오후에 플라자 호텔 레드룸을 유령처럼 떠돌 때도 술이 풍족하게 제공되는 이스트 60번가의 가든파티에 갔을 때도, 빌트모어 술집에서 프린스턴 동문들과 술잔을 기울일 때도, 나의 다른 인생은 한시도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브롱크스의 칙칙한 방, 붐비는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일, 앨라배마에서 오는 편지를 날마다 기다리는 일(편지가 올까? 뭐라고 쓰여 있을까?) 허름한 양복, 가난 그리고 사랑이 언제나 나의 뇌리에 들러붙어 있었다. 친구들이 순조롭게 인생의 바다로 출항하는 동안 나는 나의 불완전한 배를 강물 한가운데로 저어 가려고 열심히 손발을 놀려댔다.

-피츠제럴드의 <나의 잃어버린 도시> 중에서

내가 피츠제럴드 작품을 다시 만났던 시기는 유럽의 삶을 뒤로 하고 뉴욕에 도착했을 무렵 이였다.

뉴욕 맨해튼 4번가에 위치한 최대 규모의 중고 서점 스트랜드 앞 매대에서 1달러짜리 피츠제럴드의 책을 집어 들었던 그 날을 잊지 못한다.

피츠제럴드의 <The Crack up>의 첫 문단은 이렇게 시작한다.

물론 모든 인생은 망가져 가는 과정이지만 이 같은 일의 극적인 측면을 만드는 타격(외부에서 오는 -또는 외부에서 오는 것처럼 보이는 -크고 갑작스러운 타격)은, 그러니까 계속 뇌리를 맴돌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갖가지 안 좋은 일에 대한 원인으로 돌리며 탓해대며 마음이 약해질 때면 친구들에게 얘기하게 되는 종류의 타격은 갑자기 효과를 발휘하지는 않는다.

-피츠제럴드의 <The Crack up> 중에서







이 날 밤 나는 1달러를 지불한 피츠제럴드의 에세이들을 여러 번 읽고 다음 날 중고 서적이 아닌 일반 서점으로 달려가서 장편 <위대한 개츠비>를 구입했다.

오래 전 초등학교 졸업 년도에 읽고 고등학교 시절에 원문으로 읽었지만 딱히 인상 깊지 않은 작품이라 생각하고  내 책장에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꽂아 두지 않았다.

스콧 피츠제럴드가 살았던 1920년대 미국은 엄청난 대 호황이 지나간 뒤 썰물 처럼 모든 것들이 빠져나가 버렸던 경제 대공황의 먹구름으로 뒤덮였고   사회 전체가 암담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신기하게도 현 시대와 그 시절의 상황이 맞물려 움직이는 것처럼 내가 살았던 뉴욕의 공기도 피츠제럴드가 살았던 뉴욕의 그 시절 공기와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한 세기 전에 출간 된 <위대한 개츠비>는 피츠제럴드의 세 번째 작품으로 그는 이미 20대 나이에 철저하게 아웃 사이더의 시선으로 주류의 영역, 계층의 사다리에 올라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인생의 불공평함, 삶의 부조리를 작품 속에 녹여 냈다.

그것은 희망에 대한 탁월한 재능이요, 다른 어떤 사람에게서도 일찍이 발견된 적 없고 앞으로도 다시는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은 낭만적인 민감성이었다. 아니, 결국 개츠비는 옳았다. 내가 잠시 나마 인간의 짧은 슬픔이나 숨 가쁜 환희에 대해 흥미를 잃어버렸던 것은 개츠비를 희생물로 이용한 것들, 개츠비의 꿈이 지나간 자리에 떠도는 더러온 먼지 때문이었다.

-피츠제럴드

그동안 피츠제럴드는 나에게 잊혀진 작가였고 그의 출세작인 개츠비가 왜? 위대한지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마흔 네 살이 되었을 때 이렇게 생각했다. '그렇구나, 딱 이 나이에 피츠제럴드는 죽었구나' 나는 그때 프린스턴 대학에 다니며 피츠제럴드의 모교에서 <태엽 감는 새 연대기>라는 장편 소설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통감했다.'이 작품을 마치지 못하고 죽어버린다면 틀림없이 분하겠다.

-무라카미 하루키

나는 개츠비가 보았던 초록빛을 보기 위해 그가 프린스턴 재학 시절에 끄적였던 원고 복사본까지 찾아 읽으며 뉴욕에서 새로운 희망의 빛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유럽 땅에서 인생의 2막을 시작 했지만 내 삶의 또 다른 희망을 찾기 위해  미 대륙으로 건너갔다.

그렇게  내가  태어난  한국 땅을 벗어나 유럽 대륙을 거쳐 미 대륙으로 건너간 내 삶의 여정은  마치 거세게 밀려드는 조류를 거슬러 올라가듯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동안 그 시절 내  가방 속에 부적처럼 피츠제럴드의 책을 넣고 다녔다.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폭풍우가 거칠게 몰아치고 있었다. 밤에 잠을 잘 때면 너무나 기괴하고 환상적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시계가 세면대 위에서 째깍거리고 촉촉한 달빛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옷을 적시는 동안,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우주가 그의 머릿속에서 실타래처럼 피어났다. 매일 밤 그는 졸음이 몰려와 생생한 장면을 망각의 포옹으로 감쌀 때까지 새로운 환상을 계속 늘려 나갔다. 얼마 동안 이런 환상은 그의 상상력에 돌파구를 마련해 주었다. 현실이 꿈처럼 비현실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충분한 암시요, 이 세상의 주춧돌이 요정의 날개 위에도 안전하게 세워질 수 있다는 약속이었던 것이다.

-피츠제럴드

살아 가는 동안 다양한 형태로 찾아 오는 장애물들과 방해꾼들이 있다. 

하물며 새로운 환경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어려움이나  곤경들을 지혜롭게, 아니 운 좋게 해결하고 넘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인생이란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뜻대로 꾸려나갈 수 있는 것이었다. 삶은 지성과 노력에 또는 이 두 가지가 적절히 뒤섞여 발휘된 것에 쉬이 길을 내주었다.'

-피츠제럴드 

피츠제럴드의 이 문장은 나에게 건네는 따뜻한 조언 그 이상이였다.

새로운 환경이 나쁘지 만은 않았다. 대부분 내 스스로 해결 할 수 있었고 적절한 시기마다 좋은 사람들이 나타나 도움을 주었고 노력 한 만큼 그리고  애쓰는 만큼  노력에 따른 보상과 성과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도달한 그 ' 노력'은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록  엄청난 압박과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 했다.

'사는 게 순탄치 않았지만 마흔 아홉 살까지는 괜찮을 꺼야. 라고 나 자신에게 말했다. 그럴거 라고 믿어 이런 삶을 살아 온 나 같은 인간이 뭘 더 바라겠어.'그런데 마흔 아홉 살을 10년 앞둔 지금, 나는 내가 이미 망가져 있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달았다.

-피츠제럴드 

만일 내가  마흔 살에 그리고 오 십대에 피츠제럴드를 만났다면 그저 한 번 읽어버리고는 두 번 다시 읽지 않았을 것이다.

내 삶의 한 시기가 무너지기 시작했던 때는 앞만 보고 질주 하던 순간 누군가에 의해 뇌신경세포가 손상 된 것처럼 눈으로 활자를 인식해도 머릿 속에선 백지상태가 되는 증세를 겪었다.

그 분야에서 저명한 의사들도 스트레스 과부하가 원인이라는 진단만 내려서 딱히 뚜렷한 처방도 치료 약도 없었다.

조류를 거슬러 앞으로 질주 하다 앞으로 넘어지기 직전부터    피츠제럴드의 글을 다시 읽기 시작했고  삶의 정체기 시절엔 그의 글을 모두 필사 하며 일시적으로 겪었던 난독 증세와 공황장애를  극복했다.


'성공의 첫 번째 거친 바람과 그 바람에 실려 온 달콤한 안개, 그 시절은 짧고도 소중한 시간이다. 왜냐하면 몇 주 후 또는 몇 달 후에 안개가 걷히고 나면 우리는 최고의 시간이 끝났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피츠제럴드

20대 앞날의 길을 터줄 것만 같았던  런던의 안개와 희망의 빛을 비춰 줄 것만 같았던 파리의 짙은 스모그가 사라진 후에  마주한 뉴욕의 공기는 거칠었다.

거친 공기를 매일 마시면서 나는 서서히 일 근육을 키웠고 공격을 하는 상대에 맞서면서 낮 빛까지 두꺼워졌다.

조류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단단하게 닻을 묶어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류에 떠밀려 부서지거나 망가지거나 영원히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다.

'인생의 낭만적인 것이라는 믿음이야말로 너무 이른 시기에 거둔 성공의 대가이다. 긍정적인 의미에서는 이를 통해 젊음을 유지하게 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피츠제럴드

미 대륙으로 건너가기 전  파리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던 그 해 12월 , 집 밖을 나와 미라보 다리를 건너 에펠탑이 뿜어내는  불빛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앉아 친구들과 샴페인 잔을 기울였다.

지난 그 시절의 12월 31일, 나는 홀로 파리의 미라보 다리에 앉아 에펠탑에 새겨진 다음 해의 시작을 알리는 카운트 다운의 숫자를 세고 있었다.

1월 1일 0의 숫자가 찍히는 순간, 내 시야는 파리가 아닌 뉴욕, 자유의 여신 상에 맞닿았다.

삶의 터전을 옮기는 건 대륙과 대륙 사이의 이삿짐을 옮기는 것 만큼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해 새해, 파리의 찬란했던 빛을 뒤로 하고 인생의 또 다른 시작을 위해 뉴욕으로 건너갔다. 

알 수 없는 미래의 꿈을 향해 발을 내딛었던 그 시절엔 절벽 위를 기어 올라가도 구불 구불한 도로 위를 질주 해도 무섭고 두려울 것이 없었다.

젊어서 성공에 이른 사람은 자신의 운명의 별이 눈부시게 빛나기 때문에 자기가 의지를 행사하는 거라고 믿는다. 서른 살에 어렵사리 두각을 드러낸 사람은 의지력과 운명이 각각 어떤 기여를 했는지에 대해서 균형 잡힌 생각을 갖는다. 마흔 살에야 그런 위치에 이른 사람은 의지력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서로 차이 나는 이런 태도는 폭풍우가 당신의 배를 강타할 때 드러난다.

-피츠제럴드

그리고 지구 반바퀴를 돌아 수 십년 만에 다시  찾아간 파리에서 피츠제럴드의 책을 한 권 더 구입했다.

피츠제럴드가 파리를 찾았던 시기는 알콜에 찌들어서 손가락을 떨 정도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던 시기로 혜성같이 문학계에 나타난  헤밍웨이의 작품에 밀려났고 남부 출신의 포크너 작품에 가려져서 미국 문단에서 그의 이름은 사라지고 있었다.

빛났던 젊음과 사랑, 돈과 명성이 무너져 내리던 시기에도 피츠제럴드는 글을 썼고 딸을 부양하며 자신의 작품의 영감이자 뮤즈였던 아내 젤다의 치료비를 대기 위해 영화 시나리오까지 손을 댔다.

1.@Scott-MoveableFeast

 https://www.youtube.com/@Scott-MoveableFeast

2.@Artistway-official

https://www.youtube.com/@Artistway-official

유튜브라는 세계에서 그동안 가지 못했던 예술가의 길을 걸으며 창작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그동안 내가 읽고 보고 느꼈던 세상이  입체적 시각으로 조형 하면서 영상화 시키는 작업을 하는 동안 내 머리와 마음 속에서 희미해져 가던 꿈과 희망이 되살아 나고 있다.

다시 찾은 파리는 전에 내가 살았던 그곳은  아니였지만 그렇다고 꿈이 사라지지 않았듯이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예술가들은 나의 채널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어 전 세계인들과 만나고 있다.


단순한 텍스트 낭송이 아니라 치즈케이크 조각처럼 생긴 기억을 시각적이고 청각적으로 재구성 해서  나의 예술 파트너 제프-3.0과 함께 [432Hz 야광 고독] 사운드 스케이프로 1970년대  어느 20대 부부의 가난하지만 햇살만큼은 공짜였던 행복한 찰나의 순간을 담았다.

하루키의 이 책에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지금도 '가난'이라는 단어는 나를 그 이상하고 삼각형 같은 땅으로 돌아가게 한다" 

지난 시절 미라보 다리에 앉아 밤하늘의 어둠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펠탑의 불빛을 향해 미래의 카운트다운을 세었던 내가  개츠비와 하루키가  그랬듯이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전진해 나갈 것이다.

'이 낡은 배도 한동안은 물에 떠 있을 수 있겠지... 어떤 바람이 분다 해도....'

-피츠제럴드의 '바람 속의 가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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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태생의 천재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자신의 유년시절을 회상하며 만든 자전적 영화 '거울(The Mirror/ Zerkalo, 1975)'의 전체 화면을 지배하는 것은 기억과 꿈 그리고 환영으로 화면 밖의 감상자들은  목소리만 들리는 1인칭 시점의 한 인물이 들려주는 몽환적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한 중년의 남성이 어둠이 깔린 숲 속 길을 헤집고 다니다가 자신의 내면 깊숙히 자리 잡고 있던 돌덩이를 발견한다.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돌덩이를 끌어 안은 듯한 행동을 취하며 더듬 더듬 이렇게 내뱉는다.

"난 말할 수 있어"


남자는  꿈속에서 바람에 이끌려 유년시절로 돌아간 남자의  기억의 거울에 반사된 빛의 방향을 따라  울타리에 기대 담배를 피우면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여인의 뒷모습을 향해 서서히 다가간다.   그 여인을 비추던 빛의 방향은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 어디선가 들려 오는 총 소리, 수 많은 이들이 진격하고 돌진 하는 소리, 충돌 하고 부서지는 소리로 이어져 마치  시간의 태엽이 되감겨 버리듯 거꾸로 거꾸로 흘러 가 소년 시절로 돌아간 남자는  바람이 부는 데로 예전에 살았던 그 집 앞을 서성인다. 

기억이 빚어낸 환영의 빛을 따라 가던 남자의  집 난로에서 피어오른 불길은 대지로 퍼져 나가 한 아이의 우렁찬 울음 소리가 온 세상에 울려 퍼지고 아이의 울음 소리는  남자의 기억을 넘어 우리 모두의 기억 그리고 우주 전체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환영의 빛으로 대지 위로 쏟아져 내린다.













[이곳에서 내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인간 세계나 현재의 일과는 조금 동떨어진, 보다 먼 곳을 향하고 있다. 최대한 손을 대지 않고, 조작하거나 조립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소리를 가만가만 늘어놓고 찬찬히 바라본다. 그렇게 나의 새로운 음악이 만들어지고 있다.]

-사카모토 류이치


빛과 소리를 영상의 최면술 처럼 빚어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빛이 일본의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의 건반에 맞닿아 온 세상을 비추는 음의 향연이 되었다.















어린 시절 집 앞 황망한 소리를 내며 불었던 바람 소리는 돌아 오지 않는 아버지를 하염 없이 기다렸던 어머니의 한 숨 소리 였다. 

나의 유년 시절의 기억은 꺼져 버린 석유 등불처럼 그을음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1932-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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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는 법을 어디에서도 배워 본 적 없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200자 원고지 400장 정도 분량으로 썼지만 본인 스스로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영어로 몇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

하루키는  부족한 실력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문장을 영어로 써보니  자유 자재로 구사 할 수 있는 어휘가 제한되어서 짧은 문장, 평이한 문장으로 써지는 걸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영어로 쓴 문장을 다시 일본어로 ‘번역’한 하루키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문체를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내가 그때 발견한 것은 설령 언어나 표현의 수가 한정적이어도 그걸 효과적으로 조합해내면 그 콤비네이션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감정 표현, 의사 표현이 제법 멋지게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컨대 ‘괜히 어려운 말을 늘어놓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이 감탄할 만한 아름다운 표현을 굳이 쓰지 않아도 된다’라는 것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에서


창작의 세계에서 소설의  영역은 진입 장벽이  비교적 쉬워 보이지만 누구나 섣불리 승부를 낼 수 없는 고차원적인 세계다.

문자가 고안된 이래로 전 세계에 걸쳐 셀 수 없이 많은  문장의 대가들이 수많은 작품을 남겨온 전형적인 ‘레드오션’인 소설계에 들어가려면 문장력으로 역사 속 천재들과 정면 승부를 펼치기보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나만의 문체를 찾아 남들과 다른 차별성을 갖춰야 한다.

 자신만의 문체를 써나가기 시작했던 하루키는 소설이 발표 될 때마다 일본 주류 문학계에서 환영 받지 못하는 모래 알 같은 취급을 받게 된다.

그는 일명 쥐 삼부작의 마지막인 "양을 쫓는 모험"을 출간 하자 마자 전 재산을 탈탈 털어서 직접 원고를 들고 미국 출판계로 진출 했다.

책을 읽다 보면 문체가 마음에 들고, 활자로 펼쳐 놓은 삶에 대한 태도가 마음에 쏙쏙 박혀 감정을 울리는 작가들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나에게  그런 작가다.

그의 작품을 한국어로 읽었을 때는 에세이를 제외하고는 크게 빠져 들지 않았다.

하지만 우연히 영어로 읽게 된 그의 소설에 내 안에 잠들어 있던 감각을 일깨우기 시작 했고 그의 이름으로 출간된 영어 번역본을 다 읽고 나서 본격적으로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하루키의 한자 이름이 적힌 자그마한 문고본을 펼쳐 놓고 한 단어씩 번역 하는 동안에도 지루하다거나 포기 하고 싶다거나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내 손으로 직접 사전을 찾아 번역을 하면서 하루키의 문장에 빨려 들어 갔다. 

이후 나는 하루키의 글을 더 많이 읽기 위해 일본어 공부를 시작 하고 부터 단 한번도 게을리 한 적 없이 다양한 방법으로 언어 훈련을 해 왔다.

영어로 읽었던 하루키와 일본어로 읽은 하루키 작품의 색깔은 미묘하게 다르지만 단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건 바로  그의  문체에 스며 있는 독특한 빛과 소리는 어떤 언어로 번역 되어도  신선하고 생동감이 느껴지고 운율이 살아 있다.

그동안  하루키의 작품에 대해 여러 비판도 많았지만 그의 작품은 시간이 흐르고 한 세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새롭고 신선하다는 것이다.





 하루키의 치즈 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의 첫 구절을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는 그 땅을 '삼각 지대'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 이외에 어떻게 부르면 좋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은 자를 대고 그린 듯한 완전한 삼각형의 땅이었던 것이다.

나와 그녀는 그러한 땅 위에서 살았다. 1973년인가 1974년 무렵의 이야기다.


이 구절을 영어로 번역 하면 최소한의 단어로 간결하면서 리듬감이 살아 있는 문장이 된다.


[We used to call that land 'The Triangle.' I'm not sure what else we could have called it. After all, it was a perfectly drawn triangle, as if outlined with a ruler.

She and I lived on that land. This was around 1973 or 1974.]


수많은 작가들이 하루키와 비슷한 문체와 작법을 흉내냈고 전 세계적으로 그의 문체와 작품에 투영된 세계관이 많은 영향을 끼쳐 왔다.

언제 부터 인가 하루키의 작품을 읽으면서 이 작품은 영상이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다는 작품들이 하나 둘 씩 생기기 시작했다.

1월 27일  유튜브에 내 채널을 개설 한지 열흘 만에 하루키 작품에 대한 숏츠를 올렸고 이후 틈틈이 번역하고 스크립트로 다듬어서 2월 17일 롱폼 영상을 올렸다.


직접 찍은 사진과 영상에 영어로 번역한 하루키의 <치즈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을 스크립트로 작성해서 영상에 음성을 삽입했다.

그렇게 처음 스크립트를 작성한  하루키의 <치즈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의 첫 번째 장면의 나래이션은 이렇게 시작한다.


[We called it 'The Triangle.' A precise, thin wedge of land, like a slice from a perfect cheesecake. In the early 70s, my wife and I, newly married and utterly penniless, made this odd place our home.]


최소한의 단어로 하루키의 원문을 훼손하지 않게 원문의 뉘앙스를 살리기 위해 일본어 원서와 대조 하면서 심혈을 기울여서  두 문장으로 간결하게 다듬어서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하루키의 <치즈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1분 48초 분량의 영상에 하루키의 원작이 품고 있는 문학적 색감과 음률을 살리고 빛과 소리를 담은 사운드를 배경으로 제작 했다.

하루키는 2014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1960년대 비틀즈가 세상에 등장 했을 때 모두들 기성 가수에서 볼 수 없는 그들만의 독창성을 발견 했죠. 


 “신선하고, 에너지가 넘치고, 그들 자신의 것”


소설가가  자신만의 문체를 발견하듯 누구의 것을 따라 하거나 뒤쫓아가듯 모방 하지 않고  앞으로  나만의 방식으로 하루키의 작품을 영상으로 제작해서 하루키의 작품을 읽어 본 적이 없는 이들에게도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을 하고 있을 때, 당신은 즐거운가’라는 것이 한 가지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뭔가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행위에 몰두하고 있는데 만일 거기서 자연 발생적인 즐거움이나 기쁨을 찾아낼 수 없다면, 그걸 하면서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뭔가 잘못된 것이나 조화롭지 못한 것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때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즐거움을 방해하는 쓸데없는 부품, 부자연스러운 요소를 깨끗이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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