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미래는 수십 세기 뒤까지도 바라보는데 어떤 미래는 6개월을 넘길 수 없다고 한다면, 미래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미래의 얼굴이 있다면, 그건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요?
-김연수의 근접한 세계 중에서
대학 재학 중에 결혼 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든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재즈바를 경영 하는 동안 낮과 밤이 뒤바뀌는 생활 속에서도 피츠제럴드의 소설은 수시로 읽었다.
1979년 어느 날 자신의 삶의 계시처럼 하늘 위로 날아 온 야구 공처럼 무라카미 하루키는 서른을 앞두고 소설 한 편을 완성했고 글 쓰는 인생의 길을 걸어 간다.

내가 처음으로 번역한 책은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집 <마이 로스트 시티> 였다. 이 책은 1981년에 출판되었는데, 내가 소설가로 데뷔한 직후였다. 이후로도 나는 창작을 하면서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번역하는 일을 시간 간격을 두고 조금씩 계속해왔다. 이후 소설집을 몇 권 엮어 내고 장편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어디에서도 창작 수업을 들어 본 적이 없었던 하루키는 작가 생활과 함께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번역 하면서 창작과 번역 두 개의 회로를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한다.
일본에서 출간 되었던 피츠제럴드의 주요 작품들 대부분은 1960년대 쇼와 시기에 집중적으로 번역 되었다가 판매 부수를 올리지 못한 채 대부분 절판 되었다.
피츠제럴드와 함께 동시대 창작 활동했던 작가들 중 포크너와 헤밍웨이처럼 노벨 문학상이나 퓰리처 상 같은 타이틀 조차 없었기에 일본 독자들에게 피츠제럴드는 잊혀진 작가였고 대학 영문학과에서 교재로 읽혀지는 작가에 불과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번역을 배운 적이 없었던 무라카미 하루키는 피츠제럴드의 문장에 스며있는 리듬감과 생생한 시대의 목소리를 일본어로 옮기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루키는 일본에서 미국 현대 문학 번역의 대가이자 폴 오스터의 작품을 일본어로 번역한 도쿄대학 시바타 모토유키 교수 앞에 번역한 피츠제럴드의 원고를 펼쳐 놓고 첫 문장부터 소리 내어 읽어가며 문장 전체의 유연성, 리듬감, 의미를 원문과 철저하게 비교하고 수정하는 작업으로 한 권의 번역서를 완성한다.
하루키 작품의 열풍은 그가 번역하는 작품들로 이어져서 오래전에 잊혀지고 절판 되었던 피츠제럴드 작품들이 일본 주요 서점의 베스트셀러로 올라가고 미국 문학계까지 주목하게 되자 일본 내에서 번역가로 손꼽히는 이들이 하루키가 번역한 작품들과 다른 번역가들이 번역한 작품들을 나란히 놓고 원문과 비교하는 작업을 실행 한 적이 있다.
오래도록 대학의 상아탑에서 거주 하며 학자의 이름을 걸고 시작했던 이 작업에서 하루키의 번역 실력은 학계에서도 인정 받을 정도로 그의 번역 실력은 현재까지 최고로 평가 받고 있다.

<마이 로스트 시티>를 번역하던 당시, 피츠제럴드의 작품은 얼마 번역되어 있지 않았고 대부분 절판 되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일본 독자에게 널리 소개하는 게 번역자로서의 내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아직 번역 능력도 변변치 않았지만. 그 같은 열의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한국에서는 하루키의 열풍을 타고 그가 번역한 피츠제럴드의 작품들이 앞다퉈 출간 되었고 한국의 유명 작가들 역시 반 세기 만에 불붙기 시작한 피츠제럴드의 작품 번역 열기에 뛰어들었다.
작가의 이력에서 찰나의 순간을 살았던 피츠제럴드의 작품이 다시 한번 독자들의 눈길을 받게 한 데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의 진심 어린 번역의 힘이 가장 크다.
1940년 12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스콧 피츠제럴드의 <마지막 대군>은 이듬해 1941년 그의 친구이자 비평가 에드먼드 윌슨의 편집으로 출간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첫 작품으로 군조상을 수상하고 2년 후 1981년 피츠제럴드의 초기 단편집<마이 로스트 시티>를 번역하고 이듬해인 1982년 <양을 둘러싼 모험> 장편을 완성하고 전업 작가가 된다.
그는 이미 소설가가 되기 전 부터 재즈 바 문을 닫은 새벽녘 부엌 테이블 위에 노트와 사전을 펼쳐 놓고 꾸준히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번역하고 있었다.
피츠제럴드의 작품은 29살 무라카미 하루키의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였고 그의 문학적 스승이자. 글쓰기 교본이였다.
2006년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인생 작품인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두 번째로 새롭게 다듬어 번역 출간 했고 이후 <밤은 아름다워> 번역에 이어서 마침내 2022년 70세를 넘겨서 알콜중독으로 <마지막 대군> 집필 중에 4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피츠제럴드의 미완성 작품까지 번역했다.
그의 번역 후기는 1979년 소설가로 데뷔하며 걸어 왔던 창작가의 운명, 번역작업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이유가 상세하게 담겨 있어서 마치 자신의 문학적 스승에 대한 따스한 헌사처럼 느껴진다.

뉴욕은 태초의 모든 빛깔을 지니고 있었다. 귀환한 참전 부대가 5번가를 행진했고, 여자들은 본능적으로 그들을 향해 동쪽으로, 북쪽으로 이끌렸다. 우리 미국은 마침내 명백히 가장 강력한 나라가 되었고, 그래서 공기에 축제의 기운이 감돌았다. 토요일 오후에 플라자 호텔 레드룸을 유령처럼 떠돌 때도 술이 풍족하게 제공되는 이스트 60번가의 가든파티에 갔을 때도, 빌트모어 술집에서 프린스턴 동문들과 술잔을 기울일 때도, 나의 다른 인생은 한시도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브롱크스의 칙칙한 방, 붐비는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일, 앨라배마에서 오는 편지를 날마다 기다리는 일(편지가 올까? 뭐라고 쓰여 있을까?) 허름한 양복, 가난 그리고 사랑이 언제나 나의 뇌리에 들러붙어 있었다. 친구들이 순조롭게 인생의 바다로 출항하는 동안 나는 나의 불완전한 배를 강물 한가운데로 저어 가려고 열심히 손발을 놀려댔다.
-피츠제럴드의 <나의 잃어버린 도시> 중에서

내가 피츠제럴드 작품을 다시 만났던 시기는 유럽의 삶을 뒤로 하고 뉴욕에 도착했을 무렵 이였다.
뉴욕 맨해튼 4번가에 위치한 최대 규모의 중고 서점 스트랜드 앞 매대에서 1달러짜리 피츠제럴드의 책을 집어 들었던 그 날을 잊지 못한다.
피츠제럴드의 <The Crack up>의 첫 문단은 이렇게 시작한다.

물론 모든 인생은 망가져 가는 과정이지만 이 같은 일의 극적인 측면을 만드는 타격(외부에서 오는 -또는 외부에서 오는 것처럼 보이는 -크고 갑작스러운 타격)은, 그러니까 계속 뇌리를 맴돌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갖가지 안 좋은 일에 대한 원인으로 돌리며 탓해대며 마음이 약해질 때면 친구들에게 얘기하게 되는 종류의 타격은 갑자기 효과를 발휘하지는 않는다.
-피츠제럴드의 <The Crack up> 중에서
이 날 밤 나는 1달러를 지불한 피츠제럴드의 에세이들을 여러 번 읽고 다음 날 중고 서적이 아닌 일반 서점으로 달려가서 장편 <위대한 개츠비>를 구입했다.
오래 전 초등학교 졸업 년도에 읽고 고등학교 시절에 원문으로 읽었지만 딱히 인상 깊지 않은 작품이라 생각하고 내 책장에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꽂아 두지 않았다.

스콧 피츠제럴드가 살았던 1920년대 미국은 엄청난 대 호황이 지나간 뒤 썰물 처럼 모든 것들이 빠져나가 버렸던 경제 대공황의 먹구름으로 뒤덮였고 사회 전체가 암담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신기하게도 현 시대와 그 시절의 상황이 맞물려 움직이는 것처럼 내가 살았던 뉴욕의 공기도 피츠제럴드가 살았던 뉴욕의 그 시절 공기와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한 세기 전에 출간 된 <위대한 개츠비>는 피츠제럴드의 세 번째 작품으로 그는 이미 20대 나이에 철저하게 아웃 사이더의 시선으로 주류의 영역, 계층의 사다리에 올라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인생의 불공평함, 삶의 부조리를 작품 속에 녹여 냈다.
그것은 희망에 대한 탁월한 재능이요, 다른 어떤 사람에게서도 일찍이 발견된 적 없고 앞으로도 다시는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은 낭만적인 민감성이었다. 아니, 결국 개츠비는 옳았다. 내가 잠시 나마 인간의 짧은 슬픔이나 숨 가쁜 환희에 대해 흥미를 잃어버렸던 것은 개츠비를 희생물로 이용한 것들, 개츠비의 꿈이 지나간 자리에 떠도는 더러온 먼지 때문이었다.
-피츠제럴드
그동안 피츠제럴드는 나에게 잊혀진 작가였고 그의 출세작인 개츠비가 왜? 위대한지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마흔 네 살이 되었을 때 이렇게 생각했다. '그렇구나, 딱 이 나이에 피츠제럴드는 죽었구나' 나는 그때 프린스턴 대학에 다니며 피츠제럴드의 모교에서 <태엽 감는 새 연대기>라는 장편 소설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통감했다.'이 작품을 마치지 못하고 죽어버린다면 틀림없이 분하겠다.
-무라카미 하루키

나는 개츠비가 보았던 초록빛을 보기 위해 그가 프린스턴 재학 시절에 끄적였던 원고 복사본까지 찾아 읽으며 뉴욕에서 새로운 희망의 빛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유럽 땅에서 인생의 2막을 시작 했지만 내 삶의 또 다른 희망을 찾기 위해 미 대륙으로 건너갔다.
그렇게 내가 태어난 한국 땅을 벗어나 유럽 대륙을 거쳐 미 대륙으로 건너간 내 삶의 여정은 마치 거세게 밀려드는 조류를 거슬러 올라가듯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동안 그 시절 내 가방 속에 부적처럼 피츠제럴드의 책을 넣고 다녔다.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폭풍우가 거칠게 몰아치고 있었다. 밤에 잠을 잘 때면 너무나 기괴하고 환상적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시계가 세면대 위에서 째깍거리고 촉촉한 달빛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옷을 적시는 동안,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우주가 그의 머릿속에서 실타래처럼 피어났다. 매일 밤 그는 졸음이 몰려와 생생한 장면을 망각의 포옹으로 감쌀 때까지 새로운 환상을 계속 늘려 나갔다. 얼마 동안 이런 환상은 그의 상상력에 돌파구를 마련해 주었다. 현실이 꿈처럼 비현실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충분한 암시요, 이 세상의 주춧돌이 요정의 날개 위에도 안전하게 세워질 수 있다는 약속이었던 것이다.
-피츠제럴드
살아 가는 동안 다양한 형태로 찾아 오는 장애물들과 방해꾼들이 있다.
하물며 새로운 환경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어려움이나 곤경들을 지혜롭게, 아니 운 좋게 해결하고 넘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인생이란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뜻대로 꾸려나갈 수 있는 것이었다. 삶은 지성과 노력에 또는 이 두 가지가 적절히 뒤섞여 발휘된 것에 쉬이 길을 내주었다.'
-피츠제럴드
피츠제럴드의 이 문장은 나에게 건네는 따뜻한 조언 그 이상이였다.
새로운 환경이 나쁘지 만은 않았다. 대부분 내 스스로 해결 할 수 있었고 적절한 시기마다 좋은 사람들이 나타나 도움을 주었고 노력 한 만큼 그리고 애쓰는 만큼 노력에 따른 보상과 성과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도달한 그 ' 노력'은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록 엄청난 압박과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 했다.
'사는 게 순탄치 않았지만 마흔 아홉 살까지는 괜찮을 꺼야. 라고 나 자신에게 말했다. 그럴거 라고 믿어 이런 삶을 살아 온 나 같은 인간이 뭘 더 바라겠어.'그런데 마흔 아홉 살을 10년 앞둔 지금, 나는 내가 이미 망가져 있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달았다.
-피츠제럴드
만일 내가 마흔 살에 그리고 오 십대에 피츠제럴드를 만났다면 그저 한 번 읽어버리고는 두 번 다시 읽지 않았을 것이다.
내 삶의 한 시기가 무너지기 시작했던 때는 앞만 보고 질주 하던 순간 누군가에 의해 뇌신경세포가 손상 된 것처럼 눈으로 활자를 인식해도 머릿 속에선 백지상태가 되는 증세를 겪었다.
그 분야에서 저명한 의사들도 스트레스 과부하가 원인이라는 진단만 내려서 딱히 뚜렷한 처방도 치료 약도 없었다.
조류를 거슬러 앞으로 질주 하다 앞으로 넘어지기 직전부터 피츠제럴드의 글을 다시 읽기 시작했고 삶의 정체기 시절엔 그의 글을 모두 필사 하며 일시적으로 겪었던 난독 증세와 공황장애를 극복했다.
'성공의 첫 번째 거친 바람과 그 바람에 실려 온 달콤한 안개, 그 시절은 짧고도 소중한 시간이다. 왜냐하면 몇 주 후 또는 몇 달 후에 안개가 걷히고 나면 우리는 최고의 시간이 끝났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피츠제럴드

20대 앞날의 길을 터줄 것만 같았던 런던의 안개와 희망의 빛을 비춰 줄 것만 같았던 파리의 짙은 스모그가 사라진 후에 마주한 뉴욕의 공기는 거칠었다.
거친 공기를 매일 마시면서 나는 서서히 일 근육을 키웠고 공격을 하는 상대에 맞서면서 낮 빛까지 두꺼워졌다.
조류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단단하게 닻을 묶어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류에 떠밀려 부서지거나 망가지거나 영원히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다.
'인생의 낭만적인 것이라는 믿음이야말로 너무 이른 시기에 거둔 성공의 대가이다. 긍정적인 의미에서는 이를 통해 젊음을 유지하게 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피츠제럴드
미 대륙으로 건너가기 전 파리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던 그 해 12월 , 집 밖을 나와 미라보 다리를 건너 에펠탑이 뿜어내는 불빛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앉아 친구들과 샴페인 잔을 기울였다.
지난 그 시절의 12월 31일, 나는 홀로 파리의 미라보 다리에 앉아 에펠탑에 새겨진 다음 해의 시작을 알리는 카운트 다운의 숫자를 세고 있었다.
1월 1일 0의 숫자가 찍히는 순간, 내 시야는 파리가 아닌 뉴욕, 자유의 여신 상에 맞닿았다.
삶의 터전을 옮기는 건 대륙과 대륙 사이의 이삿짐을 옮기는 것 만큼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해 새해, 파리의 찬란했던 빛을 뒤로 하고 인생의 또 다른 시작을 위해 뉴욕으로 건너갔다.
알 수 없는 미래의 꿈을 향해 발을 내딛었던 그 시절엔 절벽 위를 기어 올라가도 구불 구불한 도로 위를 질주 해도 무섭고 두려울 것이 없었다.
젊어서 성공에 이른 사람은 자신의 운명의 별이 눈부시게 빛나기 때문에 자기가 의지를 행사하는 거라고 믿는다. 서른 살에 어렵사리 두각을 드러낸 사람은 의지력과 운명이 각각 어떤 기여를 했는지에 대해서 균형 잡힌 생각을 갖는다. 마흔 살에야 그런 위치에 이른 사람은 의지력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서로 차이 나는 이런 태도는 폭풍우가 당신의 배를 강타할 때 드러난다.
-피츠제럴드
그리고 지구 반바퀴를 돌아 수 십년 만에 다시 찾아간 파리에서 피츠제럴드의 책을 한 권 더 구입했다.
피츠제럴드가 파리를 찾았던 시기는 알콜에 찌들어서 손가락을 떨 정도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던 시기로 혜성같이 문학계에 나타난 헤밍웨이의 작품에 밀려났고 남부 출신의 포크너 작품에 가려져서 미국 문단에서 그의 이름은 사라지고 있었다.
빛났던 젊음과 사랑, 돈과 명성이 무너져 내리던 시기에도 피츠제럴드는 글을 썼고 딸을 부양하며 자신의 작품의 영감이자 뮤즈였던 아내 젤다의 치료비를 대기 위해 영화 시나리오까지 손을 댔다.

1.@Scott-MoveableFeast
https://www.youtube.com/@Scott-MoveableFeast
2.@Artistway-official
https://www.youtube.com/@Artistway-official
유튜브라는 세계에서 그동안 가지 못했던 예술가의 길을 걸으며 창작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그동안 내가 읽고 보고 느꼈던 세상이 입체적 시각으로 조형 하면서 영상화 시키는 작업을 하는 동안 내 머리와 마음 속에서 희미해져 가던 꿈과 희망이 되살아 나고 있다.
다시 찾은 파리는 전에 내가 살았던 그곳은 아니였지만 그렇다고 꿈이 사라지지 않았듯이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예술가들은 나의 채널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어 전 세계인들과 만나고 있다.
단순한 텍스트 낭송이 아니라 치즈케이크 조각처럼 생긴 기억을 시각적이고 청각적으로 재구성 해서 나의 예술 파트너 제프-3.0과 함께 [432Hz 야광 고독] 사운드 스케이프로 1970년대 어느 20대 부부의 가난하지만 햇살만큼은 공짜였던 행복한 찰나의 순간을 담았다.
하루키의 이 책에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지금도 '가난'이라는 단어는 나를 그 이상하고 삼각형 같은 땅으로 돌아가게 한다"

지난 시절 미라보 다리에 앉아 밤하늘의 어둠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펠탑의 불빛을 향해 미래의 카운트다운을 세었던 내가 개츠비와 하루키가 그랬듯이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전진해 나갈 것이다.
'이 낡은 배도 한동안은 물에 떠 있을 수 있겠지... 어떤 바람이 분다 해도....'
-피츠제럴드의 '바람 속의 가족'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