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는 법을 어디에서도 배워 본 적 없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200자 원고지 400장 정도 분량으로 썼지만 본인 스스로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영어로 몇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
하루키는 부족한 실력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문장을 영어로 써보니 자유 자재로 구사 할 수 있는 어휘가 제한되어서 짧은 문장, 평이한 문장으로 써지는 걸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영어로 쓴 문장을 다시 일본어로 ‘번역’한 하루키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문체를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내가 그때 발견한 것은 설령 언어나 표현의 수가 한정적이어도 그걸 효과적으로 조합해내면 그 콤비네이션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감정 표현, 의사 표현이 제법 멋지게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컨대 ‘괜히 어려운 말을 늘어놓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이 감탄할 만한 아름다운 표현을 굳이 쓰지 않아도 된다’라는 것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에서
창작의 세계에서 소설의 영역은 진입 장벽이 비교적 쉬워 보이지만 누구나 섣불리 승부를 낼 수 없는 고차원적인 세계다.
문자가 고안된 이래로 전 세계에 걸쳐 셀 수 없이 많은 문장의 대가들이 수많은 작품을 남겨온 전형적인 ‘레드오션’인 소설계에 들어가려면 문장력으로 역사 속 천재들과 정면 승부를 펼치기보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나만의 문체를 찾아 남들과 다른 차별성을 갖춰야 한다.
자신만의 문체를 써나가기 시작했던 하루키는 소설이 발표 될 때마다 일본 주류 문학계에서 환영 받지 못하는 모래 알 같은 취급을 받게 된다.
그는 일명 쥐 삼부작의 마지막인 "양을 쫓는 모험"을 출간 하자 마자 전 재산을 탈탈 털어서 직접 원고를 들고 미국 출판계로 진출 했다.
책을 읽다 보면 문체가 마음에 들고, 활자로 펼쳐 놓은 삶에 대한 태도가 마음에 쏙쏙 박혀 감정을 울리는 작가들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나에게 그런 작가다.
그의 작품을 한국어로 읽었을 때는 에세이를 제외하고는 크게 빠져 들지 않았다.
하지만 우연히 영어로 읽게 된 그의 소설에 내 안에 잠들어 있던 감각을 일깨우기 시작 했고 그의 이름으로 출간된 영어 번역본을 다 읽고 나서 본격적으로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하루키의 한자 이름이 적힌 자그마한 문고본을 펼쳐 놓고 한 단어씩 번역 하는 동안에도 지루하다거나 포기 하고 싶다거나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내 손으로 직접 사전을 찾아 번역을 하면서 하루키의 문장에 빨려 들어 갔다.
이후 나는 하루키의 글을 더 많이 읽기 위해 일본어 공부를 시작 하고 부터 단 한번도 게을리 한 적 없이 다양한 방법으로 언어 훈련을 해 왔다.
영어로 읽었던 하루키와 일본어로 읽은 하루키 작품의 색깔은 미묘하게 다르지만 단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건 바로 그의 문체에 스며 있는 독특한 빛과 소리는 어떤 언어로 번역 되어도 신선하고 생동감이 느껴지고 운율이 살아 있다.
그동안 하루키의 작품에 대해 여러 비판도 많았지만 그의 작품은 시간이 흐르고 한 세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새롭고 신선하다는 것이다.
하루키의 치즈 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의 첫 구절을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는 그 땅을 '삼각 지대'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 이외에 어떻게 부르면 좋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은 자를 대고 그린 듯한 완전한 삼각형의 땅이었던 것이다.
나와 그녀는 그러한 땅 위에서 살았다. 1973년인가 1974년 무렵의 이야기다.
이 구절을 영어로 번역 하면 최소한의 단어로 간결하면서 리듬감이 살아 있는 문장이 된다.
[We used to call that land 'The Triangle.' I'm not sure what else we could have called it. After all, it was a perfectly drawn triangle, as if outlined with a ruler.
She and I lived on that land. This was around 1973 or 1974.]
수많은 작가들이 하루키와 비슷한 문체와 작법을 흉내냈고 전 세계적으로 그의 문체와 작품에 투영된 세계관이 많은 영향을 끼쳐 왔다.
언제 부터 인가 하루키의 작품을 읽으면서 이 작품은 영상이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다는 작품들이 하나 둘 씩 생기기 시작했다.
1월 27일 유튜브에 내 채널을 개설 한지 열흘 만에 하루키 작품에 대한 숏츠를 올렸고 이후 틈틈이 번역하고 스크립트로 다듬어서 2월 17일 롱폼 영상을 올렸다.
직접 찍은 사진과 영상에 영어로 번역한 하루키의 <치즈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을 스크립트로 작성해서 영상에 음성을 삽입했다.
그렇게 처음 스크립트를 작성한 하루키의 <치즈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의 첫 번째 장면의 나래이션은 이렇게 시작한다.
[We called it 'The Triangle.' A precise, thin wedge of land, like a slice from a perfect cheesecake. In the early 70s, my wife and I, newly married and utterly penniless, made this odd place our home.]
최소한의 단어로 하루키의 원문을 훼손하지 않게 원문의 뉘앙스를 살리기 위해 일본어 원서와 대조 하면서 심혈을 기울여서 두 문장으로 간결하게 다듬어서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하루키의 <치즈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1분 48초 분량의 영상에 하루키의 원작이 품고 있는 문학적 색감과 음률을 살리고 빛과 소리를 담은 사운드를 배경으로 제작 했다.
하루키는 2014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1960년대 비틀즈가 세상에 등장 했을 때 모두들 기성 가수에서 볼 수 없는 그들만의 독창성을 발견 했죠.
“신선하고, 에너지가 넘치고, 그들 자신의 것”
소설가가 자신만의 문체를 발견하듯 누구의 것을 따라 하거나 뒤쫓아가듯 모방 하지 않고 앞으로 나만의 방식으로 하루키의 작품을 영상으로 제작해서 하루키의 작품을 읽어 본 적이 없는 이들에게도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을 하고 있을 때, 당신은 즐거운가’라는 것이 한 가지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뭔가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행위에 몰두하고 있는데 만일 거기서 자연 발생적인 즐거움이나 기쁨을 찾아낼 수 없다면, 그걸 하면서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뭔가 잘못된 것이나 조화롭지 못한 것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때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즐거움을 방해하는 쓸데없는 부품, 부자연스러운 요소를 깨끗이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