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론은 어쩌다
아밀(김지현) 지음 / 비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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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을 고를 때 누군가의 추천에 솔깃 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끌리는 데로 책을 선택 할 때가 있다.

단순히 책 제목이 좋아서, 또는 책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만듦새가 좋아서 그리고 작가의 이력이 독특해서 등등의 이유로 전혀 알지 못하는 작가나 장르의 작품을 선택 할 때가 있다.

무더운 여름에 출간 된 아밀 작가의 <멜론은 어쩌다>의 책을 선택한 건 제목이 내포한 청량한 과일의 맛이 아닌 작가의 독특한 이력 때문이였다.

'아밀'이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발표하고 '김지현'이라는 분명으로 영미문학을 번역하고 있는 이 작가는 창작과 번역, 현실과 환상 사이를 두 개의 서로 다른 이름으로 오고 가며 작품을 출간 하고 있다.

단편 소설 <반드시 만화가만을 원해라>로 대산청소년 문학상 동상을 수상 하고 단편 소설 <로드킬>로 2018년 SF 어워드 중 단편 소설 부문 대상 을 수상 했다 2021년 첫 소설집 <로드킬>은 2025년 영국에서 번역 출간 되었다.

이 정도 이력을 갖춘 작가의 역량에 큰 기대를 갖고 선택한 단편집 <멜론은 어쩌다>를 읽기 시작했다.

총 8편이 수록된 이 단편집에는 수록된 단편들의 제목만 읽어도 이 책의 장르를 하나로 규정 할 수 없다.

-이성애자 인간과 레즈비언 뱀파이어 사이의 복잡 미묘한 우정을 담아낸 〈나의 레즈비언 뱀파이어 친구〉

-첫사랑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섹스 로봇을 집에 들인 부치의 일상을 기록한 〈어느 부치의 섹스 로봇 사용기〉

-가늘고 길게 살고 싶을 뿐 별다른 야심 없는 마녀가 위험한 의뢰에 휘말리며 발생하는 사건을 다룬 〈인형 눈알 붙이기〉

수록된 단편 중에 가장 긴 J라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야간 산책>까지 읽고 나면 도대체 작가가 추구 한 이야기의 서사와 세계관이 무엇?인지 종 잡을 수 없는 혼돈에 사로잡힌다.

책 뒤표지에 새겨진 추천사를 찬찬히 읽어 보면 "엉뚱하면서도 독특한 인물들의 활약이 눈길을 사로잡는 가운데 더욱 경쾌하고 능청스러워진 서사가 빛난다."

“갓 씻어낸 제철 과일처럼 신선한 상상력과 곧 그 껍질을 저며낼 칼처럼 예리한 시선이 공존하는 이야기” 사이를 유영하다 보면 오래도록 기다려온 “마녀의 소설”의 탄생에 함께 축배를 들게 될 것이다."

추천사에 등장한 [경쾌하고 능청스러워진 서사] [ “마녀의 소설”의 탄생]이라는 문구를 확인하고 맨 첫장 부터 읽어 보면 전부 3인칭 시점으로 등장인물의 생각과 행동 상태를 묘사한 문장들을 주욱 나열 한 단편 부터 전지전능한 시점으로 설명조로 등장 인물의 상황을 속사포 같이 쏟아 낸 단편 그리고 편지 형식의 단편까지 다양한 시점과 문체를 실험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8편 중에 그나마 완성도가 있어 보이는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윤은 손이 유난히 작았다. 피아니스트로서는 치명적인 핸다 캡이었다. 만약 누가 여덟 살의 나윤에게 너는 일찍 초경을 할 것이고 성장판이 일찍 닫힐 것이고 그래서 열두 살 이후로는 키가 크지 않을 것이고 손도 더 크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더라면 나윤은 피아노를 포기 했을까. 그런 생각을 종종 했다. 그 대신 여덟 살의 나윤이 들었던 말은 "어쩜 그렇게 잘 치니" "신동이구나" "엄마 아빠가 어떻게든 뒷받침 해줄게. 열심히 하렴"이었다.]

-아밀의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중에서

이야기의 흐름은 첫 문단에 등장 시켰던 손이 작은 여자 아이가 피아노를 배울 정도로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불구하고 피아노를 포기 하지 않고 열심히 피아노를 쳐서 세계 무대로 나간다.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우는 나윤이가 교습소에서 배우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원에 들어가서 국제콩쿠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그리고 유명 음반사와 계약을 맺어 앨범을 출시하고 무대에서 연주를 하는 이야기로 흘러 간다.

이 이야기의 흐름 속에 여성, 인종 차별, 남들과 잘 융합하지 못하는 성격의 나연이 피아니스트로 어떻게 성장해서 험난한 세상에서 어떤 상태로 살다가 사랑을 하고 딸을 낳고 사십대에 접어드는 모습을 보여 준다.

손이 작은 피아니스트 나윤은 대중에게 잊혀져서 레슨으로 생계를 잇고 있다.

자신처럼 손이 작은 아이가 좋은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찾아 온 어느 날 나윤은 야무진 꿈이 있던 지날 시절에 만났던 차원이 다른 마녀를 생각하며 자신 앞에 있었던 넘을 수 없는 벽이 무엇이었는지 되돌아 본다.

마지막에 실린 분량이 가장 긴 편지 형식의 단편 <야간 산책>은 설정은 독특하다.

동성애가 당연한 세상에서 이성과 비밀 연애를 시작한 여성이 등장한다.

중학생 시절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폭언에 시달릴 때면 밤마다 공원에 가서 아코디언을 든 악사 조각상과 대화를 하고 왈츠를 춘다.

학교가 끝나자 마자 혼자 그 공원에 가서 그 악사 조각상이 따라주는 뜨거운 차를 마시 기도 하고 속 깊은 대화를 나누며 기이한 감정의 교류를 하게 된다.

이 여성의 편지 형식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읽다보면 동성끼리 결혼해야 하는 세상에 이성인 남성에게 육체적 끌림을 느끼는 여성이 망상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남편이 등장한다.

여성은 지겹고 흉측하고 같이 있기가 따분해서 견딜 수 없는 생물 같은 남편,숨겨둔 애인이 있고 아내 몰래 내연녀와 여행을 떠난 남편 ,얼굴도 모르고 존재 하지 도 않는 허구의 남편의 모습을 떠올리며 학창 시절의 동성 친구에게 편지로 망상속에 자리 잡고 있는 그 남자에 대한 심정을 고백한다.

결국 독자는 마지막 그녀가 J라는 친구에게 부치지 못하는 이 편지글이 동성과 결혼 하는 세상에 이성과의 결혼을 꿈꾸는 어느 망상가의 독백 수기라는 걸 깨닫게 된다.

마지막 단편을 완독하고 나서 책 뒤표지에 적힌 추천사를 다시 한번 읽어 보았다.


[범상치 않지만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운 인물들이 눈앞의 벽을 제각기 방식으로 훌쩍 뛰어넘는 모습은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거대하고 깊이 있는 서사나 묵직한 감동을 느끼기 위해서 이 책을 선택 하지는 않았다.

문학의 다양성이 풍부해져서 독자들에게 책 읽는 맛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 많이 출간 되는 것은 실로 기쁜 일이다.

하지만 흥미 위주의 서사나 독특한 설정의 장르도 좋지만 차근 차근 읽는 맛을 느끼게 하면서 사유를 쌓아 올릴 수 있는 작품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일례로 넷플릭스를 왜 보나. 차라리 이 책을 읽으면 되는데 라고 말할 수 있는 한국 작가들의 책이 많이 출간 되었으면 좋겠다.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 받는 멜론바, 여름에 먹어도 가을에 먹어도 맛있는 멜론바

그러나 이 책은 <멜론은 어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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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5-09-21 0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이 책 샀어요^^
메로나는 정말 맛있죠 ㅎㅎㅎ

scott 2025-09-21 12:53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메로나는 언제 먹어도 맛있지만
이 책은 ....
 
가라앉는 프랜시스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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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알고리즘 영상으로 밥 딜런이 기타를 메고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다큐멘터리가 떠서 호기심에 보기 시작했다.

영상의 시작은 1970년대 정치적 사회적으로 대 혼란에 휩싸였던 거리 시위와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모습이 등장 하다 불쑥 불쑥 밥 딜런이 이야기를 하거나 공연을 하는 모습의 장면들이 교차 시키면서 흘러간다.

첫 등장에서 밥 딜런은 이미 40여년 전에 있었던 공연 일 뿐 별 의미가 없었다며 스치듯 말한다.

1975년 롤링 선더(thunder revue) 투어에 탑승한 이들은 밥 딜런을 비롯해서 조니 미첼, 시인 엘렌 긴즈버그, 조안 바에즈, 패티 스미스 등 30여 명의 예술가들과 함께 미국 전 지역의 무대를 누볐다.

당대 청춘의 화신으로 불리며 청년들의 우상으로 자리 잡았던 밥 딜런은 화려한 무대가 아닌 소형 무대에서 손을 뻗으면 관객에게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투어에 나섰던 공연이 열린 지역마다 밥 딜런은 가장 후미진 곳에 자리한 소극장에서 노래를 불렀다.

공연에 나선 연주가들의 명성에 비해 표값이 싸서 무대에 오르는 아티스트들에게 돌아가는 수익이 거의 없었다.

식비 정도만 벌 수 있는 무대에서 밥 딜런은 4행으로 이어지는 대화 같은 노래( isis)를 읊조린다.


그녀는 말했지. "당신, 어디 있었던 거야?" 난 말했지. "그냥 여기저기."

그녀는 말했지. "당신, 달라 보여." 난 말했지. "음, 그런가."

그녀는 말했지. "당신은 떠났잖아." 난 말했지. "자연스러운 거야."

그녀는 말했지."머무를 거야?" 난 말했지."당신이 원한다면, 그럴게."


노래의 절정은 위에 언급한 대화체 가사가 끝나고 나서 청중을 향해 "YES"를 크게 외친 후에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공연을 이어 가던 밥 딜런은 '여러분에게 정치적인 영향력이 있다면, 다시 이 사람이 거리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말한 뒤,'Hurricane'을 부른다. 밥 딜런이 지칭한 이 사람은 1960년대 허리케인이라는 별명의 복싱 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루빈 카터를 일컫는다.

1966년 복싱 선수 루빈 카터는 살해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근거가 없는데도 단지 사건이 발생했던 장소에 있었던 흑인이라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당시 시민들은 그가 흑인이기 때문에 범죄 혐의를 뒤집어 썼다며 분노의 여론이 들끓어 올랐었다.

밥 딜런은 거리 시위에 동참하지 않았지만 무대에서 관객들의 눈을 바라 보며 인종 차별로 얼룩진 세상의 부조리를 노래에 실었다.

다큐멘터리는 롤링 선더 투어를 떠났던 밥 딜런의 모든 공연을 연도별로 보여주면서 같은 무대에서 함께 노래를 불렀던 음악가들과 시인들의 모습을 마치 기념비에 이름을 새기듯 교차 시켜 펼쳐 보인다.

그 시절 밥 딜런과 함께 연주 하고 노래를 불렀던 연주가들과 시인들은 부스스한 머리카락에 헝클어지고 구겨진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기타 하나만 달랑 메고 무대에 올랐다.

무대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보여 줬던 그 시절의 음악가들과 시인들은 큰 수익을 가져다 준다거나 명성을 드높이는 무대가 아니여도 세상을 유랑하며 대중들과 소통했다.

밥 딜런은 별 의미가 없었던 공연이라 했지만 그가 이끌었던 선더 레뷰 투어 시절에는 음악과 시 그리고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존재 했던 시대였다.

20세기에 살았던 밥 딜런 세대는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려면 직접 발로 뛰고 버스에 올라타서 공연장에 찾아 가야 했지만 21세기에는 손 안에 영상으로 때와 장소, 시대를 넘나들 수 있다.

음악이나 영화를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듯이 손으로 터치만 하면 순간 이동이 가능해져서 손으로 만지고 넘기는 책도 읽지 않고 보는 행위가 되었다. 휘리릭 빠른 속도로 무엇이든지 재생하고 터치 하다 보니 무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귀찮아 졌다.

세상을 찬찬히 읽기 보다 가방이나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톡 메시지창을 열고 스레드 피드백을 보다 여기 저기 앱 창을 터치 하며 분당 수십건의 이미지들이 영사기처럼 눈으로 스쳐 지나갈 뿐이다.

이런 행위가 연속으로 이어지는 동안 나는 과연 어제 그리고 그저께 무엇을 읽고 보았을까...

20세기 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책을 읽거나 종이 신문을 읽었지만 21세기에는 폰으로 재미와 흥미를 주는 짧은 영상을 보거나 시즌 드라마와 영화를 보며 혼자 키득 거린다.

우연히 지하철 옆 좌석에 앉은 사람이 키득 거려서 슬쩍 그의 손에 들려 있는 폰의 영상을 보았다. 낚시꾼이 낚시 바늘에 고기 밥을 꿰어 강물에 던지더니 순식간에 팔뚝 크기 만한 물고기를 낚아 올리는 장면이 나왔다.

그 낚시꾼이 강물에 낚시대를 던질 때마다 최상 크기의 대어가 걸려 들었다.

영상에서 그 낚시꾼은 이렇게 소리 질렀다.

"여기가 천국이라고!"

문득 그 영상을 훔쳐 보던 나는 읽다 멈춘 책으로 다시 돌아 왔다.

우리는 모든 것이 가능한 곳에,

그러나 가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는 곳에 살고 있다.

-닥터로우

폰만 열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이고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입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그 모든 것들이 내가 갖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값져 보인다.

휴대폰이라는 것이 없던 시대에 태어나 청춘을 보냈던 밥 딜런은 연주장에서 만나는 팬들에게 불친절했고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며 뚜렷한 목적이나 사상 없이 바람이 부는 데로 노래 하면서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삶이 아닌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았다.

그는 지금도 변함없이 어디에서든 바람처럼 노래를 부르고 글을 쓰고 있다.

바람이 부는 데로 노래를 부르는 밥 딜런은 무대에 오를 때 마다 원곡의 멜로디를 심하게 변형해서 그의 오랜 팬들 조차 알아 듣지 못하게 할 때가 있다.

평론가들은 밥 딜런이 나이를 먹어서 목소리가 이전 같지 않다며 전성기를 지난 퇴물로 가는 중이라고 혹평을 날리기도 하고 노환으로 성격이 바뀌었다는 등의 조롱을 해댄다.

밥 딜런은 전성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무대에 오를 때 마다 천 개의 버전을 부르는 가수로 자신의 원곡을 원석을 다듬듯이 끊임없이 다듬으며 단 한 순간도 멈춰 선 적이 없이 스스로를 끊임없이 단련한다.

다듬지 않고 야생적이고 즉흥적으로 무언가 시도하고 실패 하기도 했던 그 시절을 살아 본 적이 없는 나는 무심코 알고리즘 추천 영상으로 뜬 걸 봤을 뿐인데 불쑥 불쑥 내면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출 퇴근 지하철을 탈 때 마다 폰 영상으로 밥 딜런이 부르는 노래를 흥얼 거렸다.


그녀는 말했지. "당신, 어디 있었던 거야?" 난 말했지. "그냥 여기저기."

그녀는 말했지. "당신, 달라 보여." 난 말했지. "음, 그런가."

그녀는 말했지. "당신은 떠났잖아." 난 말했지. "자연스러운 거야."

그녀는 말했지."머무를 거야?" 난 말했지."당신이 원한다면, 그럴게."


같은 곡을 시대에 맞게 고치고 음을 변형 시키는 밥 딜런이 음반에 새겨진 음악이 아닌 노래를 부르기 위해 세상을 유랑한 모습을 시공간을 초월해서 보던 나는 뜨거운 태양빛이 내리 쬐는 한 여름에 책을 읽으려고 기차를 탔다.

홋카이도 행 기차에 올라 탔을 때 딱 한 권의 책만 가져갔다.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한 마쓰시에 마사시의 <가라앉은 프랜시스>의 첫 장을 펼치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물살을 타고 납작한 무언가가 떠내려 오고 있다.

젖은 콘트리트 벽에 먼저 오른쪽 발꿈치가, 이어서 골반의 튀어나온 부분이 조금 늦게 오른쪽 어깨가 접안에 실패한 작은 배처럼 부딪힌다. 그것이 만일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다면 회색 구름이 드문드문 떠 있는 하늘을 역광의 실루엣으로 가로질러 가는 잠자리가 보였을 것이다. 주변에 인기척은 없다.

사람이 없으니까 떠내려 온 것을 보고 놀라는 목소리도 없다.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 소리가 무표정하게 관망하는 투명한 덩어리가 되어, 벽에 눌려 붙어 있는 양 어깨를 냉정하게 쑥 밀어 낸다.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몸이 물살을 탄다.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 어둠을 향해서 아득히 먼 곳에서 온 거야' 라고 하듯이 속도까지 덧붙여서 나란히 뻗은 발끝부터 망설임 없이 취수로로 미끄러지듯 빨려 들어간다.

-마쓰시에 마사시의 <가라앉은 프랜시스> 중에서


강물에 시체 같은 무언가가 떠내려 오는 장면으로 시작 되는 이 작품의 다음 장을 넘기면서 누군가가 죽어서 곧 경찰이 출동하겠지라고 짐작하며 이야기의 방향이 살인 추리극으로 이어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 수록 물가에 비추던 빛이 일렁이다 점점 그 소리가 커져서 학교 수영장에서 반 학생 전원이 발장구를 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빛의 방향이 역류하다가 급격하게 증폭 되는 순간 우편물을 배달 하기 위해 한 여성이 배달차에 오르는 장면이 등장한다.

배달할 코스를 머릿속 빨간 펜으로 한달음에 그리면서 편지를 배달하는 그녀의 이름은 무요 게이코

서른다섯 살에 그녀는 사귀던 남자와 헤어지고 십삼 년간 일한 도쿄의 종합상사를 퇴사했다.

중학 시절 삼 년 간 홋카이도로 전근을 가게 된 아버지를 따라 동부에 위치한 에다루에서 살았던 기억을 갖고 있었던 게이코는 아이누어의 울림이 남아 있는 그 곳이 울고 싶을 만큼 그리워서 퇴사 후 홋카이도의 작은 산촌마을 안치나이로 터전을 옮긴다.

비정규직 우편배달부로 홋카이도에서 제2의 삶을 시작한 게이코는 머릿 속에 지명을 읽어 가며 우편물을 배달한다.

호로카나이-오토이넷푸-도마코마이-시무캇푸-바시쿠루-아칸-사로마-맛카리

게이코가 배달하는 지역은 육 백명 남짓한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홋카이도에서 천혜의 자연이 살아 숨쉬는 오지다.

오래 전 척박한 홋카이도 땅에 원주민을 몰아낸 일본 정부가 타지역 주민에게 땅을 개척하면 소유권을 주겠다는 제안에 혹해서 자발적으로 이주한 이들이 정착해서 살고 있는 곳이였다.

우편물을 배달하는 게이코는 휴일이면 낚시용 운동화를 신고 강가로 나가 플라이 낚시대를 던지지만 곤충 모양 미끼를 매달은 낚시대에는 자그마한 산천어만 낚였다.

기차는 달리고 나는 책장을 넘기며 게이코의 시선이 이동하는 방향에 따라 구름의 움직임을 보고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고 거목으로 무성한 나무로 빽빽하게 들어찬 원시림 속으로 들어 간다.

들리는 것도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지만 활자 속을 유영하면서 눈 앞의 세계가 전부 내가 보고 있는 세상으로 펼쳐졌다.

한 여름의 홋카이도의 들판엔 게이코가 마주 했던 사슴떼가 아닌 양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서 풀을 뜯고 있었다.

달리는 열차밖 풍경을 바라보던 나는 초록 빛으로 일렁 거리는 저 드넓은 초원을 정처 없이 걸어가면 숲 속 어디 쯤에 있는 게이코를 만날 수 있겠다는 상상을 하기에 이르렀다.

집집마다 불평과 하소연을 하는 노인들에게 우편물을 배달 하던 게이코에게 어느 날 강가에 자리한 목조 가옥에 수수께끼 같은 "프랜시스"와 함께 살고 있는 가즈히코를 만난다.

세상의 온갖 소리를 채집해서 오디오로 재생 시키는 가즈히코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게이코는 그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알래스카의 빙하가 무너지는 굉음 소리를 듣고 런던 교외 증기기관차가 내지르는 기적 소리를 듣고 열광적인 남미 축제의 군중 소리를 듣는다.

가즈히코의 목조 가옥에 있는 오디오가 재생되는 동안 나는 그 곳의 온도와 습도, 바람 그리고 나지막이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열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역을 빠져 나온 나는 가즈히코가 게이코에게 요리 해 준 그 음식을 먹으러 가기 위해 제미나이에게 묻고 지도앱을 켜서 알려주는 방향을 따라갔다.


한 소끔 삶은 소꼬리를 넉넉한 물로 파의 녹색 부분과 같이 끓인다. 끓기 시작하면 기름을 걷어내고 약한 불로 약 네 시간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마쓰시에 마사시의 <가라앉은 프랜시스> 중에서


징기스칸이라는 전용 냄비에 어린양고기를 구워서 파를 가득 넣은 요리를 먹은 나는 가즈히코가 들려주었던 프랜시스 터빈을 떠올리며 길을 나섰다.


태양이 꽤 기울어서 계곡의 그늘에는 이미 밤의 색깔이 번져 있었다.

강의 소리가 차다. 집과 오두막 사이는 경사가 져 있어서 발께에 있는 완만한 층계가 횡목으로 만들어져 있다.


게이코가 발밑을 살펴 보면서 내려가는 동안 나는 가즈히코가 자물쇠를 따고 미닫이 문으로 들어가는 그의 시선을 따라간다.

계단 몇 개를 내려가니 오두막 바닥에 중앙에 굵은 파이프에 연결된 기계가 보였다.

암모나이트 내부에 대향의 차가운 물이 두께와 중량을 수반하고 흘러 들어 오면 고저 차가 속도를 내어 힘으로 물을 출력 시킨다. 전력이 부족한 홋카이도 오지의 전력을 책임지는 이 기기를 가즈히코는 수차 기계를 발명한 프랜시스 터빈의 이름을 차용해서 프랜시스라 불렀다.

의문의 시신이 물에 떠오르는 장면으로 시작한 《가라앉는 프랜시스》는 삼십대의 여자와 남자가 우연히 만나 서로 사랑하며 갈등하고 고뇌 하는 이야기로 흘러간다.

기다리고 있던 눈이 내리고 봄 안 개가 어슴푸레하게 하얗게 밝은 하늘 위로 펼쳐 지고 시커먼 흙이 햇빛의 열을 축적해서 붉고 옅은 초록빛을 띤 열매를 맺는 여름, 장마가 없는 홋카이도의 푸르른 대지에서 들려오는 벌레 울음소리에 귀를 쫑긋 세운다.

게이코는 가즈히코가 들려주는 소리에 푹 빠져 있던 어느 날 마을 전체의 불이 꺼지고 완벽한 어둠이 내려앉는 순간 세상의 수 많은 소리들이 활자 밖으로 튀어 나온다.

갑자기 불빛이 없어졌다.

집과 발전소를 포함한 주변 일대가 암흑에 휩싸여다.

그 직후였다. 눈 앞에 펼쳐진 안치나이 마을 전체가 몇 초 차이의 파도를 보이면서 차례차례 빛을 잃어갔다. 밀밭을 쓸어가는 바람보다 훨씬 더 빨리 안치나이의 불빛이 전부 사라졌다.

프랜시스가 물에 가라앉은 것이다.

가즈히코가 수집한 세상의 다양한 소리들은 홋카이도의 뜨거운 햇살 아래 청량한 여름 바람을 지나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처럼 흩어져서 새 하얀 눈처럼 흩날린다.

두텁게 얼어 붙은 얼음이 서서히 녹아 내리는 순간 , 몇 억이라고도 몇 조라고도 할 수 있는 수 많은 별빛들이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춘다.

몇 천 년 전에도 몇 만년 전에도 밤 하늘에 빛났던 별빛은 홋카이도의 원시림을 내려다 보며 아낌없이 온 세상에 빛을 쏟아 붓고 있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살면서 필요한 것들이 모두 배낭 하나에 전부 다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사는데 필요한 모든 걸 배낭에 짊어지고 떠난 길에서 마주한 세상은 현실에 내가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내고 잊게 만든다.

폰으로 본 세상이 아닌 내 발이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마주한 땅과 하늘 그리고 별빛들은 숨을 쉴 때 마다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이 모든 것들이 나를 둘러싼 세상의 진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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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9-08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 딜런이 노래로 세상을 바꿀수 있으리라 믿었던 시대가 실제로 별다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해 절망하고 힘들었겠죠. 그래서 지금 별거 아닌 공연이었다고 스스로 폄훼하는지도 모르구요. 하지만 자기가 할수 있고 좋아하는 일로 세상이 더 나아진다고 믿을 때 인간은 얼마나 행복한 지요. 그리고 그런 행동들은 생각보다 세상을 더 많이 변화시켰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룬 것들에 대해서 폄하하는 경향이 있는듯 해요. 하지만 저는 제 세대가 잘못한 것도 많지만 이룬것도 분명 많다고 생각해요. 제가 살았던 세상과 제 딸이 살아가는 세상은 분명 다르니까요.

홋카이도 다녀오셨군요. 저는 겨울 홋카이도만 다녀왔었는데 여름 홋카이도도 좋네요. 이런 여행과 책 이야기를 읽다보면 혼자만의 호젓한 여행이 믹 부러워지는데 저는 또 여행은 막 같이 하는게 좋아서 아마 꿈만으로 그칠거 같습니다. ㅎㅎ

scott 2025-09-21 12:54   좋아요 0 | URL
꿀맛 같은 방학 있는 사회인이 부럽습니다 ㅋㅋㅋ
시간 쪼개고 쪼개서 여행을 가도
내집 내방이 최고 ^^
 
삼체 0 : 구상섬전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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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잃은 과학자 천이 그 비밀을 밝히기 위해 무기에 매혹된 장교 린윈 천재 물리학자 딩이와 함께 집요하게 탐구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구상섬전은 구救 의 실체에 가까워질수록 기존의 물리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잇따라 나타나게 되는데 삼체 세계관의 완벽한 입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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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5-09-03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는 지금 삼체2권 읽고 있는데 이제 입문서가 나왔네요? 이런….ㅋㅋㅋ
이 책도 방대하겠군요?

2025-09-21 1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1954년이 시작되자 마자 물리학 학술지 <피직스 레터스 Physics Letters>에 물리학의 용어를 영원히 바꿔 버리는 짧은 논문 한 편이 실렸다.

질량 패턴과 새로 발견된 수 십여개 입자들의 상호작용을 연구 하고 있었던 24살의 물리학자 머리 겔만(Murray Gell-Mann)은 양성자와 중성자처럼 익숙한 입자는 물론이고 낯선 핵 입자들도 그보다 더 작은 입자들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했다.

물리학자 머리 겔만(Murray Gell-Mann)은 아주 작은 입자를 가리키는 용어로 '쿼크(Quark)'라는 신조어를 사용했다.

2쪽짜리 짧은 논문에 등장한 새로운 용어 '쿼크(Quark)는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Finnegans Wake)"에 나오는 구절에서 차용했다.

제임스 조이스 특유의 언어 유희로 가득 채워진 "피네간의 경야"에 나오는 '쿼크(quark)' 구절은 다음과 같다.


"Three quarks for Muster Mark!

Sure he hasn't got much of a bark

And sure any he has it's all beside the mark."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Finnegans Wake)"의 이 구절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머스터 마크에게 쿼크 세 개! 분명 그는 짖는 소리가 변변찮고 그리고 그가 짖는 소리는 전부 요점을 벗어나 있어." 라고 해석 할 수 있다.

물리학자 머리 겔만은 제임스 조이스가 언어 유희로 사용한 단어 '쿼크(quark)'가 모호한 소리처럼 느껴진다며 자신이 발견한 입자의 특성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겔만은 '쿼크(quark)'라는 입자에 관한 논문을 투고 한지 3주 만에 학술서로 출간하고 5년 후 노벨상 위원회는 그에게 노벨물리학상을 수여 했다.

그렇게 물리학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새로운 입자 '쿼크(quark)'는 세상을 요동치게 만드는 다른 입자들이 등장 할 때 마다 그 힘들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개념들을 창출해서 학자들이 10년 동안 연구한 끝에 '쿼크(quark)'의 행동에 관한 이론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물리학자들은 이 이론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 주는데 머리 겔만의 문학적 상상력과는 동떨어진 지극히 평범하면서 단순한 이름인 '표준모형'이라 불렀다.다.

자연의 기본적인 네 가지 힘들 가운데 전하를 끌어당기거나 밀어내는 힘, 핵입자가 원자핵으로 똘똘 뭉치는 힘, 핵의 일부가 방사능에 의해 붕괴되는 힘 이렇게 세 가지를 아우르는 '표준모형'은 전자에서부터 철저히 통제된 실험에서만 모습을 드러내는 특성을 갖고 있다.

거의 모든 테스트에서 예측이 결과와 99퍼센트 이상 맞아 떨어지는 뛰어난 정확성을 갖춘 '표준 모형'은 과학사를 통 털어서 가장 평범한 이름을 가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흥미로운 결과를 이끌어 냈다.

하지만 뛰어난 정확성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이후 부터 물리학계의 각종 복잡한 실험 결과를 해석하고 새로운 질문으로 인도하는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해왔던 '표준모형'에도 불완전성이 존재 했다.

천체 수준에서 가장 중요한 힘인 중력에 대해 어떤 결과를 도출하거나 예측하지 못한 표준 모형을 보완 하기 위해 물리학자들은 대칭성 방법을 도입한다

대칭성은 특정 시스템을 뒤흔들거나 비틀어도 변형할 수 없는 성질로 마치 피아노 건반을 누를 때 해머가 정확하게 음의 위치를 때리는 소리처럼 음과 음 사이의 상대적 거리는 그대로 유지되지만 곡의 성질은 변하지 않게 한다.

따라서 표준 모형의 불완전성을 보완 하는 역할을 한 대칭성은 물질의 성질이 바뀌고 추가 되고 변형 되더라도 원래 물질이 바뀌지 않는다.

이렇게 물리학에서 처음과 다르게 바꾸는 것을 국소 변환(local transformation)이라 하고 위치나 성질에 상관 없이 오랫동안 바꾸지 않는 것을 전역 변환(global transformation)이라 한다.

미세한 입자인 쿼크는 국소 변환(local transformation)과 전역 변환(global transformation)의 대칭성에 적용 받지 않을 때 고정된 위치에 가만히 잊지도 않았고 강제적으로 고정 시켜도 튕겨져 나가버렸다.

하지만 이 두 개의 대칭적 성질을 가진 변환들은 아주 작은 입자인 쿼크의 전하를 상쇄하는 보완적인 역할로 만들어서 어떤 쿼크의 전하도 새지 않아 핵력의 대칭이 위협 받지 않게 만들었다.

겔만이 처음 생각해낸 아주 작은 입자 쿼크가 현실적인 계산으로 도출 되기 까지 실로 어마어마한 실험이 이어져서 2008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강력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양성자 질량에 대한 이론적 예측을 실험 데이터와 비교 할 수 있게 되었다.

예측과 데이터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고 계산까지 딱 맞아 떨어져서 빈 공간에서 바글 거렸던 원자들이 무한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질서 정연하게 무게를 갖고 대칭성을 유지해서 현 시대의 <표준 모형>이 되었다.

이렇게 지난 세기 물리학자들은 특정 물질의 입자를 일컫는 용어 부터 보정하는 역할을 지닌 핵력이나 전체적인 대칭을 보장하는 특별한 입자들을 가정 해서 그 입자들이 보정해야 하는 변환들이 무엇인지 실제로 존재한다고 했을 때 지녀야 할 성질들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규정했다.

물리학 중에서 입자 물리학은 광범위한 대칭성과 정교한 수학적 구조에서 도출 되기까지 작은 물질 조각들이 엄청난 에너지를 싣고는 무자비하게 충돌하기 때문에 물리학자들은 이 입자들을 우아하면서도 난폭한 것들이라 부른다.

물리학자들에게 우아하면서도 난폭한 것들이라 불리는 입자 물리학은 과학과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눈에도 보이지 않을 뿐더러 피부에 와 닿지도 않는다.

심지어 데이터에 기록되는 작은 입자들의 충돌이 얼마나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 물리학자들에게 대단한 사건이라 하더라도 용어 자체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입자 물리학이 눈을 뜨고 숨을 쉬고 활동할 때 없어서는 안되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물리학과는 전혀 관련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스마트 폰에 자연어를 기반으로 하는 대화형 인공지능이 폰에서 작동 하는 원리를 알게 되면 입자 물리학이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게 된다.

입자 물리학에서 두 가지 상반된 변형으로 새로운 쿼크 입자들의 몸부림을 최소화 하면서 원래 쿼크의 전하를 최대한 많이 상쇄해서 자연스러운 균형점에 이르게 만드는 대칭성의 원리가 인공지능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통제 불능의 미세 입자인 '쿼크(Quark)'를 제어하고 통제하고 조정하듯 인간이 대화를 통해 요구 조건을 입력하면 인간을 대신해서 직접 코딩하는 인공지능은 입자 물리학의 대칭성의 원리를 적용해 사용자의 언어를 이해하고 해석 해서 방대한 정보를 분류하고 찾아주며 스스로 생성한 코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원리를 인간에게 설명하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여기에 더 나아가서 인간이 작성한 코드를 분석해서 실수를 고쳐주는 디버깅 작업까지 해서 기존 코드를 다른 프로그래밍 언어로 변환까지 하는 인공지능은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인간 프로그래머들이 사용하는 파이선, C, 자바(Java) 언어뿐 아니라 시스템 반도체 설계에 사용하는 언어인 베릴로그(Verilog)로도 코딩을 해냈다.

인간이 대화로 요구한 심층 인공 신경망 DNN(Deep Neural Network) 코딩 과제도 파이선으로 직접 작성할 줄 아는 인공지능의 현재 코딩 수준은 소프트웨어를 전공하는 대학 2~3학년 수준이다.

성인 대졸 학력의 지능을 갖춘 생성형 인공지능에는 컴퓨터나 반도체 사이에 주고받는 고속 디지털 데이터 통신과 똑같이 상호 균형과 대칭 원리가 사용된다.

예를 들면 전기 배선으로 디지털 신호 ‘1′을 보낼 때, 바로 옆에 전기 배선을 대칭으로 추가 설치하고 디지털 신호 ‘0′ 을 동시에 같이 보내는데 이렇게 ‘1′과 ‘0′을 바로 옆에 동반하고 대칭을 이루는 쌍으로 만들어 보낼 때 비로소 데이터를 빛의 속도로 보낼 수 있게 된다. 이를 차동신호(Differential Signaling) 통신이라고 부른다.

수학의 벡터 형태를 갖춘 인공지능망의 테이터는 디지털 숫자의 집합으로 학습과 판단 과정에서 수많은 벡터와 행렬의 곱셈이 일어나서 정교한 알고리즘을 엮어 나간다.

인간이 구사하는 언어로 문장을 입력하고 입으로 말하면 인공지능은 인간의 문자가 아닌 숫자로 파악하고 해독해서 광범위 알고리즘을 구현한 인공지능망(Deep Neural Network)에서 결과를 도출해 낸다.

수많은 벡터와 행렬의 곱셈에서 도출한 인공지능망의 최종 출력에 사용되는 수학은 선형대수와 미분으로 최종 결과는 확률 함수로 도출되는데 이 함수 역시 좌우 대칭적이다.



수없이 반복된 실패와 실험, 그리고 복기 끝에 비로소 하나의 결론처럼 떠오른 수, 그게 바로 정수다. 감각이 아니라 축적, 즉 시간의 밀도에서 나오는 응답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수많은 오수 속에서 정수를 쌓으며 바둑의 뼈대를 세우려 애써왔다. 화려한 수는 순간적인 기지로 남지만 바탕이 되는 수는 그 사람의 바둑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세돌 '무너지지 않는 기준을 세우다.'


한국의 이세돌과 상대한 알파고가 사용한 1202개의 중앙 처리 장치(CPU)와 176개의 그래픽 처리 장치(GPU)도 이와 같은 대칭적 신호 방식으로 소통하고 연결되고 협동해서 그 협력의 결과로 인간을 이겼다.

물리적 배선도 대칭이고 신호의 논리적 상태도 대칭이고 생성형 인공 지능의 학습 방법도 대칭이다.

수십 년 간 개념으로만 존재 했던 앨런 튜링이 고안한 <모방 게임>은 학습을 위한 하드웨어 발전, 트랜스포머와 같은 알고리즘의 등장으로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근접한 AI를 탄생 시켰다.

그동안 AI가 인간을 초월한 존재가 되는 것은 공상 과학소설에나 나오는 환상으로만 치부 되어왔다.

2016년 알파고가 인간을 상대로 바둑 게임에서 이기고 난지 10년도 채 안된 기간 만에 인간과 맞먹는 글쓰기 능력을 갖추고 동시 대화가 가능한 챗GPT가 등장 했다.

그동안 인간의 고유 능력이라 여겼던 창의력은 생성형 AI가 마치 상호 대칭성에 통제를 받는 입자 쿼크처럼 아이디어를 이루는 패턴을 파악한 뒤 작은 단위로 분해해 새롭게 조합해서 인간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지구 상에 등장한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인류는 인간의 손과 발, 눈과 귀가 되어주는 것과 동시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을 침범해서 그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는 단계까지 도달 했다.

인공지능(AI)을 상대 할 때 마다 평범함을 넘어선 전문가의 능력을 갖추었다는 믿음이 점점 강해지고 있을 정도로 그 발전 속도는 상상 이상이다.

결점투성이인 인간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공지능(AI)이 기특하고 대단 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인 나보다 더 뛰어난 인공지능의 능력에 자괴감과 무력감을 느낀다.

타인과의 교감을 통해 정체성을 확인하고 의미를 찾는 인간 감정의 기저에는 인정 욕구가 있다.

반면 AI는 인간과 달리 인정욕구가 없어서 불안과 공포도 초월한 존재다.

만일 인공지능(AI)을 인간과 동일한 선상에 놓아 둔다면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과 같은 존재가 될까? 아니면 ‘어벤져스’에 등장하는 악당 같은 존재가 될까?



근미래 기술이 우리 삶과 사회의 소중한 가치들을 훼손하는 것은 내게 당대 현실의 문제로 다가왔다. 공기처럼 소중하지만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그 가치들의 존재감을 SF의 방법론을 활용해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장강명의 <먼저 온 미래> 중에서 


다양한  디지털 서비스가 탑재된 챗 GPT는 인간에게 만능 학습 보조 교사이자 동료이고 든든한 조력자가 되었지만  정작 인간의 고유의 영역 이였던  읽기와 쓰기에 대한 논쟁의 불을  활활 붙이고 있다. 어떤 창작자의 글이 AI가 썼는지 아닌지를 구별 하는 문제 뿐만 아니라 사고하고 글 쓰는 능력까지 퇴화 하게 되었다. 바야흐로 문해력이 퇴화 되는 시대가 도래 했다. 인간이 동굴에 살았던 시절 부터 행해 왔던 구술과 필사, 인쇄 기술은 챗GPT는 1분이 채 걸리지 않게 학습 하고 발전 시켜서 인간처럼 읽고 쓰며 로봇 사피엔스가 되고 있는 동안 정작 인간의 문해력은 퇴화 하면 자연스럽게 쓰는 능력까지 저하 되고 있다. 

챗 GPT가 글을 써주는 시대에 나는 투비컨티뉴드에  2025년 2월 21일 부터  새 시리즈 <AI 시대에 글 쓰는 법>을  연재를 시작해서 2025년 7월 투비 선정 2차 인증 작가가 되었다.


- <AI 시대에 글 쓰는 법>

https://tobe.aladin.co.kr/s/14415


지금까지 총 9회 분량의 글이 발행 되었고 8월 25일 투비컨티뉴드의 활자 정거장에 <핫 토픽> 발행 글에 선정 되었다.


-투비컨티뉴드의 활자 정거장 

https://tobe.aladin.co.kr/event/293454


앞으로 20회 분량을 목표로  연재 할 예정인 <AI 시대에 글 쓰는 법> 시리즈는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에 새 글이 올라 온다.

지금까지 우리 인간이 발명한 그 무언가 같이 사용 여부를  각자 선택하면 되는 도구에 불과 한것이 아니다. 앞으로 인공지능은 스마트폰이나 소셜미디어보다  인간의 삶에 더 큰 변혁을 가져다 줄 것이다.

 <AI 시대에 글 쓰는 법> 이 근 미래에 불어 닥칠 인공지능 생태계에서 유용하게 활용되는 소중한 지식 자산이 되었으면 좋겠다.


 <AI 시대에 글 쓰는 법> 


-제 1회 한 번에 한 단락씩, 한 쪽씩 쓰기 

https://tobe.aladin.co.kr/n/318262


-제 2회 글쓰기는 두 단계로 이루어진 과정이다.

https://tobe.aladin.co.kr/n/452318


-제 3회 무명작가와 AI의 창의적인 글쓰기 배틀전

https://tobe.aladin.co.kr/n/456516

-제 4회 AI는 어떻게 창의적으로 사고 하는가

https://tobe.aladin.co.kr/n/461149


-제 5회 AI의 추리력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다.

https://tobe.aladin.co.kr/n/465236


-제 6회 AI가 인간의 언어를 번역하다.

https://tobe.aladin.co.kr/n/469583


-제 7회 AI의 창조적 영감은 어디서 오는가 

https://tobe.aladin.co.kr/n/473426


-제 8회 인간에 의해 탄생할 마지막 발명품 호모테크니쿠스

https://tobe.aladin.co.kr/n/477099


-제 9회 질문하는 창의성 시대가 도래 하다.

https://tobe.aladin.co.kr/n/481579


-제 10회 AI 맞춤형 개인교사가 되다.

https://tobe.aladin.co.kr/n/485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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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버스 운전기사가 있다.



미국 뉴저지주 패터슨시(市)의 23번 버스 운전기사 패터슨은 월요일 아침 6시 10분과 15분 사이에 알람 소리 없이 일어나 아내에게 ‘굿모닝 키스’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정확한 시간에 아침 식사를 마친 패터슨은 아내가 챙겨준 점심 도시락을 갖고 자신의 일터인 23번 버스에 올라 탄다.

버스에 시동을 걸기 전에 그는 수첩을 꺼내 시를 끄적인다.


또 다른 하나

네가 어렸을 때

너는 세 개의 차원이 있다는 것을 배운다:

높이, 너비 그리고 깊이

마치 신발 상자처럼.

그러다 나중에 너는

네 번째 차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간.

흠.

그러다 누군가는 말한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차원...

나는 일을 해치우고

바에서

맥주를 마신다.

나는 내 맥주잔을 내려다보며

기쁨을 느낀다.


그는 버스 백미러에 비친 이들이 자신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늘어 놓거나 푸념할 때도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이며 정해진 정거장을 따라 운행 시간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 온 패터슨을 자신을 반기는 애완견 마빈을 쓰다듬고는 아내의 하루를 묻는다.

지난 밤 자신의 꿈 이야기를 늘어 놓던 아내는 매일 수첩에 시를 끄적이는 남편에게 시를 출판 하지 말라는 말을 한다.

그는 아내의 잔소리를 흘려 듣고 애완견 마빈을 데리고 산책을 나선다.

산책 중에 그는 잠시 들리는 술집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간다.











우리의 별 볼 일 없는 이들

그 끔찍한 얼굴의

아름다움이

나를 흔들어 그리하라 하네.

까무잡잡한 여인들,

일당 노동자들—

나이 들어 경험 많은—

푸르딩딩 늙은 떡갈나무 같은

얼굴을 하고선

옷을 벗어던지며

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사과」, 『꽃의 연약함이 공간을 관통한다』중에서


그 다음날도 패터슨의 일상은 어제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시시각각 변하는 건 오늘의 날씨와 차장 밖으로 보이는 풍경, 그리고 그가 운전 하는 23번 버스에 올라타는 승객들만 바뀔 뿐이다.

패터슨은 매일 운행되는 버스 노선 시간표에 맞춰 살아가면서도 마치 찰나의 순간에 수면 위로 살포시 떨어지는 꽃잎의 모습을 포착 하듯 버스 시동을 켜기 전 시를 쓰고 있다.


꽃잎 가장자리에서 하나의 선이 시작된다

하염없이 가늘고 하염없이

단단한 그 강철의 존재가

은하수를

뚫고 들어간다

접촉도 없이—거기에서

올라간다—매달리지도 않고

밀지도 않고—

멍 들지 않은

꽃의 연약함이

공간을 관통한다.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그 장미」, 『꽃의 연약함이 공간을 관통한다』중에서


버스 기사 패터슨은 대단한 기대나 거대한 야망을 품고 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패터슨은 한번 쯤은 늦게 일어나고 싶은 날도 있었을 것이고, 버스가 고장 나 일정이 변경되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어느 날 그에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상처를 주거나 배신을 했던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지극히 평범하면서 지루할 정도로 무미 건조한 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반복 속의 적지 않은 충돌과 갈등이 수도 없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

인간이 무수히 내뱉는 말은 매일 바뀌는 날씨처럼 생각이나 기분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마음에 상흔을 남겨서 하루에도 여러 번 요동치는 감정들은 마치 시의 운율처럼 움직인다.

그러니 인간의 삶은 매 순간이 연을 이루는 행과도 같아 일주일의 삶은 7연으로 쓰인 시(詩)일 것이다.


시를 쓰며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패터슨도, 컵케이크를 굽고 기타를 치는 그의 아내 로라도, 패터슨의 단골 바에서 매일 밤 패터슨이라는 도시의 역사를 들려주는 주인장도, 이 영화를 보는 우리 모두도 각자의 일상을 시어로 빚어내는 예술가들이다.

일상의 삶을 예술 작품으로 빚어내며 2024년 2월 1일부터 100회 완결을 기획하고 쓰기 시작한 창작 소설 <굿바이, 부다페스트>가 1년의 시간을 지나 2025년 8월 21일 82회를 발행했다.

-굿바이부다페스트

긴 시간 동안 100회 완결을 향해 고군 분투 하면 쓴 무명 작가가 쓴 창작 소설 <굿바이, 부다페스트>을 읽어주고 응원 해 주는 독자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어 주고 있다.

-제 82회 덫에 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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