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는 프랜시스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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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알고리즘 영상으로 밥 딜런이 기타를 메고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다큐멘터리가 떠서 호기심에 보기 시작했다.

영상의 시작은 1970년대 정치적 사회적으로 대 혼란에 휩싸였던 거리 시위와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모습이 등장 하다 불쑥 불쑥 밥 딜런이 이야기를 하거나 공연을 하는 모습의 장면들이 교차 시키면서 흘러간다.

첫 등장에서 밥 딜런은 이미 40여년 전에 있었던 공연 일 뿐 별 의미가 없었다며 스치듯 말한다.

1975년 롤링 선더(thunder revue) 투어에 탑승한 이들은 밥 딜런을 비롯해서 조니 미첼, 시인 엘렌 긴즈버그, 조안 바에즈, 패티 스미스 등 30여 명의 예술가들과 함께 미국 전 지역의 무대를 누볐다.

당대 청춘의 화신으로 불리며 청년들의 우상으로 자리 잡았던 밥 딜런은 화려한 무대가 아닌 소형 무대에서 손을 뻗으면 관객에게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투어에 나섰던 공연이 열린 지역마다 밥 딜런은 가장 후미진 곳에 자리한 소극장에서 노래를 불렀다.

공연에 나선 연주가들의 명성에 비해 표값이 싸서 무대에 오르는 아티스트들에게 돌아가는 수익이 거의 없었다.

식비 정도만 벌 수 있는 무대에서 밥 딜런은 4행으로 이어지는 대화 같은 노래( isis)를 읊조린다.


그녀는 말했지. "당신, 어디 있었던 거야?" 난 말했지. "그냥 여기저기."

그녀는 말했지. "당신, 달라 보여." 난 말했지. "음, 그런가."

그녀는 말했지. "당신은 떠났잖아." 난 말했지. "자연스러운 거야."

그녀는 말했지."머무를 거야?" 난 말했지."당신이 원한다면, 그럴게."


노래의 절정은 위에 언급한 대화체 가사가 끝나고 나서 청중을 향해 "YES"를 크게 외친 후에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공연을 이어 가던 밥 딜런은 '여러분에게 정치적인 영향력이 있다면, 다시 이 사람이 거리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말한 뒤,'Hurricane'을 부른다. 밥 딜런이 지칭한 이 사람은 1960년대 허리케인이라는 별명의 복싱 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루빈 카터를 일컫는다.

1966년 복싱 선수 루빈 카터는 살해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근거가 없는데도 단지 사건이 발생했던 장소에 있었던 흑인이라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당시 시민들은 그가 흑인이기 때문에 범죄 혐의를 뒤집어 썼다며 분노의 여론이 들끓어 올랐었다.

밥 딜런은 거리 시위에 동참하지 않았지만 무대에서 관객들의 눈을 바라 보며 인종 차별로 얼룩진 세상의 부조리를 노래에 실었다.

다큐멘터리는 롤링 선더 투어를 떠났던 밥 딜런의 모든 공연을 연도별로 보여주면서 같은 무대에서 함께 노래를 불렀던 음악가들과 시인들의 모습을 마치 기념비에 이름을 새기듯 교차 시켜 펼쳐 보인다.

그 시절 밥 딜런과 함께 연주 하고 노래를 불렀던 연주가들과 시인들은 부스스한 머리카락에 헝클어지고 구겨진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기타 하나만 달랑 메고 무대에 올랐다.

무대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보여 줬던 그 시절의 음악가들과 시인들은 큰 수익을 가져다 준다거나 명성을 드높이는 무대가 아니여도 세상을 유랑하며 대중들과 소통했다.

밥 딜런은 별 의미가 없었던 공연이라 했지만 그가 이끌었던 선더 레뷰 투어 시절에는 음악과 시 그리고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존재 했던 시대였다.

20세기에 살았던 밥 딜런 세대는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려면 직접 발로 뛰고 버스에 올라타서 공연장에 찾아 가야 했지만 21세기에는 손 안에 영상으로 때와 장소, 시대를 넘나들 수 있다.

음악이나 영화를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듯이 손으로 터치만 하면 순간 이동이 가능해져서 손으로 만지고 넘기는 책도 읽지 않고 보는 행위가 되었다. 휘리릭 빠른 속도로 무엇이든지 재생하고 터치 하다 보니 무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귀찮아 졌다.

세상을 찬찬히 읽기 보다 가방이나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톡 메시지창을 열고 스레드 피드백을 보다 여기 저기 앱 창을 터치 하며 분당 수십건의 이미지들이 영사기처럼 눈으로 스쳐 지나갈 뿐이다.

이런 행위가 연속으로 이어지는 동안 나는 과연 어제 그리고 그저께 무엇을 읽고 보았을까...

20세기 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책을 읽거나 종이 신문을 읽었지만 21세기에는 폰으로 재미와 흥미를 주는 짧은 영상을 보거나 시즌 드라마와 영화를 보며 혼자 키득 거린다.

우연히 지하철 옆 좌석에 앉은 사람이 키득 거려서 슬쩍 그의 손에 들려 있는 폰의 영상을 보았다. 낚시꾼이 낚시 바늘에 고기 밥을 꿰어 강물에 던지더니 순식간에 팔뚝 크기 만한 물고기를 낚아 올리는 장면이 나왔다.

그 낚시꾼이 강물에 낚시대를 던질 때마다 최상 크기의 대어가 걸려 들었다.

영상에서 그 낚시꾼은 이렇게 소리 질렀다.

"여기가 천국이라고!"

문득 그 영상을 훔쳐 보던 나는 읽다 멈춘 책으로 다시 돌아 왔다.

우리는 모든 것이 가능한 곳에,

그러나 가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는 곳에 살고 있다.

-닥터로우

폰만 열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이고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입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그 모든 것들이 내가 갖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값져 보인다.

휴대폰이라는 것이 없던 시대에 태어나 청춘을 보냈던 밥 딜런은 연주장에서 만나는 팬들에게 불친절했고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며 뚜렷한 목적이나 사상 없이 바람이 부는 데로 노래 하면서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삶이 아닌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았다.

그는 지금도 변함없이 어디에서든 바람처럼 노래를 부르고 글을 쓰고 있다.

바람이 부는 데로 노래를 부르는 밥 딜런은 무대에 오를 때 마다 원곡의 멜로디를 심하게 변형해서 그의 오랜 팬들 조차 알아 듣지 못하게 할 때가 있다.

평론가들은 밥 딜런이 나이를 먹어서 목소리가 이전 같지 않다며 전성기를 지난 퇴물로 가는 중이라고 혹평을 날리기도 하고 노환으로 성격이 바뀌었다는 등의 조롱을 해댄다.

밥 딜런은 전성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무대에 오를 때 마다 천 개의 버전을 부르는 가수로 자신의 원곡을 원석을 다듬듯이 끊임없이 다듬으며 단 한 순간도 멈춰 선 적이 없이 스스로를 끊임없이 단련한다.

다듬지 않고 야생적이고 즉흥적으로 무언가 시도하고 실패 하기도 했던 그 시절을 살아 본 적이 없는 나는 무심코 알고리즘 추천 영상으로 뜬 걸 봤을 뿐인데 불쑥 불쑥 내면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출 퇴근 지하철을 탈 때 마다 폰 영상으로 밥 딜런이 부르는 노래를 흥얼 거렸다.


그녀는 말했지. "당신, 어디 있었던 거야?" 난 말했지. "그냥 여기저기."

그녀는 말했지. "당신, 달라 보여." 난 말했지. "음, 그런가."

그녀는 말했지. "당신은 떠났잖아." 난 말했지. "자연스러운 거야."

그녀는 말했지."머무를 거야?" 난 말했지."당신이 원한다면, 그럴게."


같은 곡을 시대에 맞게 고치고 음을 변형 시키는 밥 딜런이 음반에 새겨진 음악이 아닌 노래를 부르기 위해 세상을 유랑한 모습을 시공간을 초월해서 보던 나는 뜨거운 태양빛이 내리 쬐는 한 여름에 책을 읽으려고 기차를 탔다.

홋카이도 행 기차에 올라 탔을 때 딱 한 권의 책만 가져갔다.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한 마쓰시에 마사시의 <가라앉은 프랜시스>의 첫 장을 펼치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물살을 타고 납작한 무언가가 떠내려 오고 있다.

젖은 콘트리트 벽에 먼저 오른쪽 발꿈치가, 이어서 골반의 튀어나온 부분이 조금 늦게 오른쪽 어깨가 접안에 실패한 작은 배처럼 부딪힌다. 그것이 만일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다면 회색 구름이 드문드문 떠 있는 하늘을 역광의 실루엣으로 가로질러 가는 잠자리가 보였을 것이다. 주변에 인기척은 없다.

사람이 없으니까 떠내려 온 것을 보고 놀라는 목소리도 없다.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 소리가 무표정하게 관망하는 투명한 덩어리가 되어, 벽에 눌려 붙어 있는 양 어깨를 냉정하게 쑥 밀어 낸다.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몸이 물살을 탄다.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 어둠을 향해서 아득히 먼 곳에서 온 거야' 라고 하듯이 속도까지 덧붙여서 나란히 뻗은 발끝부터 망설임 없이 취수로로 미끄러지듯 빨려 들어간다.

-마쓰시에 마사시의 <가라앉은 프랜시스> 중에서


강물에 시체 같은 무언가가 떠내려 오는 장면으로 시작 되는 이 작품의 다음 장을 넘기면서 누군가가 죽어서 곧 경찰이 출동하겠지라고 짐작하며 이야기의 방향이 살인 추리극으로 이어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 수록 물가에 비추던 빛이 일렁이다 점점 그 소리가 커져서 학교 수영장에서 반 학생 전원이 발장구를 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빛의 방향이 역류하다가 급격하게 증폭 되는 순간 우편물을 배달 하기 위해 한 여성이 배달차에 오르는 장면이 등장한다.

배달할 코스를 머릿속 빨간 펜으로 한달음에 그리면서 편지를 배달하는 그녀의 이름은 무요 게이코

서른다섯 살에 그녀는 사귀던 남자와 헤어지고 십삼 년간 일한 도쿄의 종합상사를 퇴사했다.

중학 시절 삼 년 간 홋카이도로 전근을 가게 된 아버지를 따라 동부에 위치한 에다루에서 살았던 기억을 갖고 있었던 게이코는 아이누어의 울림이 남아 있는 그 곳이 울고 싶을 만큼 그리워서 퇴사 후 홋카이도의 작은 산촌마을 안치나이로 터전을 옮긴다.

비정규직 우편배달부로 홋카이도에서 제2의 삶을 시작한 게이코는 머릿 속에 지명을 읽어 가며 우편물을 배달한다.

호로카나이-오토이넷푸-도마코마이-시무캇푸-바시쿠루-아칸-사로마-맛카리

게이코가 배달하는 지역은 육 백명 남짓한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홋카이도에서 천혜의 자연이 살아 숨쉬는 오지다.

오래 전 척박한 홋카이도 땅에 원주민을 몰아낸 일본 정부가 타지역 주민에게 땅을 개척하면 소유권을 주겠다는 제안에 혹해서 자발적으로 이주한 이들이 정착해서 살고 있는 곳이였다.

우편물을 배달하는 게이코는 휴일이면 낚시용 운동화를 신고 강가로 나가 플라이 낚시대를 던지지만 곤충 모양 미끼를 매달은 낚시대에는 자그마한 산천어만 낚였다.

기차는 달리고 나는 책장을 넘기며 게이코의 시선이 이동하는 방향에 따라 구름의 움직임을 보고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고 거목으로 무성한 나무로 빽빽하게 들어찬 원시림 속으로 들어 간다.

들리는 것도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지만 활자 속을 유영하면서 눈 앞의 세계가 전부 내가 보고 있는 세상으로 펼쳐졌다.

한 여름의 홋카이도의 들판엔 게이코가 마주 했던 사슴떼가 아닌 양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서 풀을 뜯고 있었다.

달리는 열차밖 풍경을 바라보던 나는 초록 빛으로 일렁 거리는 저 드넓은 초원을 정처 없이 걸어가면 숲 속 어디 쯤에 있는 게이코를 만날 수 있겠다는 상상을 하기에 이르렀다.

집집마다 불평과 하소연을 하는 노인들에게 우편물을 배달 하던 게이코에게 어느 날 강가에 자리한 목조 가옥에 수수께끼 같은 "프랜시스"와 함께 살고 있는 가즈히코를 만난다.

세상의 온갖 소리를 채집해서 오디오로 재생 시키는 가즈히코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게이코는 그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알래스카의 빙하가 무너지는 굉음 소리를 듣고 런던 교외 증기기관차가 내지르는 기적 소리를 듣고 열광적인 남미 축제의 군중 소리를 듣는다.

가즈히코의 목조 가옥에 있는 오디오가 재생되는 동안 나는 그 곳의 온도와 습도, 바람 그리고 나지막이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열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역을 빠져 나온 나는 가즈히코가 게이코에게 요리 해 준 그 음식을 먹으러 가기 위해 제미나이에게 묻고 지도앱을 켜서 알려주는 방향을 따라갔다.


한 소끔 삶은 소꼬리를 넉넉한 물로 파의 녹색 부분과 같이 끓인다. 끓기 시작하면 기름을 걷어내고 약한 불로 약 네 시간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마쓰시에 마사시의 <가라앉은 프랜시스> 중에서


징기스칸이라는 전용 냄비에 어린양고기를 구워서 파를 가득 넣은 요리를 먹은 나는 가즈히코가 들려주었던 프랜시스 터빈을 떠올리며 길을 나섰다.


태양이 꽤 기울어서 계곡의 그늘에는 이미 밤의 색깔이 번져 있었다.

강의 소리가 차다. 집과 오두막 사이는 경사가 져 있어서 발께에 있는 완만한 층계가 횡목으로 만들어져 있다.


게이코가 발밑을 살펴 보면서 내려가는 동안 나는 가즈히코가 자물쇠를 따고 미닫이 문으로 들어가는 그의 시선을 따라간다.

계단 몇 개를 내려가니 오두막 바닥에 중앙에 굵은 파이프에 연결된 기계가 보였다.

암모나이트 내부에 대향의 차가운 물이 두께와 중량을 수반하고 흘러 들어 오면 고저 차가 속도를 내어 힘으로 물을 출력 시킨다. 전력이 부족한 홋카이도 오지의 전력을 책임지는 이 기기를 가즈히코는 수차 기계를 발명한 프랜시스 터빈의 이름을 차용해서 프랜시스라 불렀다.

의문의 시신이 물에 떠오르는 장면으로 시작한 《가라앉는 프랜시스》는 삼십대의 여자와 남자가 우연히 만나 서로 사랑하며 갈등하고 고뇌 하는 이야기로 흘러간다.

기다리고 있던 눈이 내리고 봄 안 개가 어슴푸레하게 하얗게 밝은 하늘 위로 펼쳐 지고 시커먼 흙이 햇빛의 열을 축적해서 붉고 옅은 초록빛을 띤 열매를 맺는 여름, 장마가 없는 홋카이도의 푸르른 대지에서 들려오는 벌레 울음소리에 귀를 쫑긋 세운다.

게이코는 가즈히코가 들려주는 소리에 푹 빠져 있던 어느 날 마을 전체의 불이 꺼지고 완벽한 어둠이 내려앉는 순간 세상의 수 많은 소리들이 활자 밖으로 튀어 나온다.

갑자기 불빛이 없어졌다.

집과 발전소를 포함한 주변 일대가 암흑에 휩싸여다.

그 직후였다. 눈 앞에 펼쳐진 안치나이 마을 전체가 몇 초 차이의 파도를 보이면서 차례차례 빛을 잃어갔다. 밀밭을 쓸어가는 바람보다 훨씬 더 빨리 안치나이의 불빛이 전부 사라졌다.

프랜시스가 물에 가라앉은 것이다.

가즈히코가 수집한 세상의 다양한 소리들은 홋카이도의 뜨거운 햇살 아래 청량한 여름 바람을 지나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처럼 흩어져서 새 하얀 눈처럼 흩날린다.

두텁게 얼어 붙은 얼음이 서서히 녹아 내리는 순간 , 몇 억이라고도 몇 조라고도 할 수 있는 수 많은 별빛들이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춘다.

몇 천 년 전에도 몇 만년 전에도 밤 하늘에 빛났던 별빛은 홋카이도의 원시림을 내려다 보며 아낌없이 온 세상에 빛을 쏟아 붓고 있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살면서 필요한 것들이 모두 배낭 하나에 전부 다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사는데 필요한 모든 걸 배낭에 짊어지고 떠난 길에서 마주한 세상은 현실에 내가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내고 잊게 만든다.

폰으로 본 세상이 아닌 내 발이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마주한 땅과 하늘 그리고 별빛들은 숨을 쉴 때 마다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이 모든 것들이 나를 둘러싼 세상의 진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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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9-08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 딜런이 노래로 세상을 바꿀수 있으리라 믿었던 시대가 실제로 별다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해 절망하고 힘들었겠죠. 그래서 지금 별거 아닌 공연이었다고 스스로 폄훼하는지도 모르구요. 하지만 자기가 할수 있고 좋아하는 일로 세상이 더 나아진다고 믿을 때 인간은 얼마나 행복한 지요. 그리고 그런 행동들은 생각보다 세상을 더 많이 변화시켰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룬 것들에 대해서 폄하하는 경향이 있는듯 해요. 하지만 저는 제 세대가 잘못한 것도 많지만 이룬것도 분명 많다고 생각해요. 제가 살았던 세상과 제 딸이 살아가는 세상은 분명 다르니까요.

홋카이도 다녀오셨군요. 저는 겨울 홋카이도만 다녀왔었는데 여름 홋카이도도 좋네요. 이런 여행과 책 이야기를 읽다보면 혼자만의 호젓한 여행이 믹 부러워지는데 저는 또 여행은 막 같이 하는게 좋아서 아마 꿈만으로 그칠거 같습니다. ㅎㅎ

scott 2025-09-21 12:54   좋아요 0 | URL
꿀맛 같은 방학 있는 사회인이 부럽습니다 ㅋㅋㅋ
시간 쪼개고 쪼개서 여행을 가도
내집 내방이 최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