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평범한 가족
마티아스 에드바르드손 지음, 권경희 옮김 / 비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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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서남부에 위치한 룬드는 몇 세기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한 때 덴마크의 통치를 받으며 가톨릭 신앙의 중심지였지만 스웨덴 왕국에게 편입된 이후 루터파 스웨덴 국교회의 주교구가 세워진  도시다.

이처럼  중세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종교의 도시이면서 매년 찾아 오는 여름철 백야 동안에는 전 유럽의 음악 밴드들이 이 도시로 몰려와 도시 곳곳마다 젊은이들의 음악 소리가 넘쳐 나는 곳이다.

이토록 멋지고 활기가 넘치는 도시에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아버지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국교회 소속 목사 아담 , 유능한 변호사인 아내 울리카 그리고 외동딸 스텔라로 구성된 단란한 가정의 삶이 어느 날  송두리 채 뒤 흔들린다.


'우리는 그야말로 평범한 가족이었다.'


평범한 한 가족의 이야기의 첫 시작은 목사이자 가족을 책임지고 이끌고 있는 아버지 아담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아버지 아담은 도시에서 믿음과 신앙의 표본으로 각계 각층의 유명인들과 폭넓게 교류하며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공연과 스포츠 관람 그리고 멋진 곳에서 외식을 하는 나날을 보냈던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면서도 소박한 일상을 살아갔던 가족이였다.

교구당 신도들에게 신임을 받고 있는 목사 아담은 변호사 활동으로 바쁜 아내와의 신뢰와 사랑까지 돈독해서 함께 생활한 지 이 십 년 만에 얼마나 서로 사랑하고 있는지 재 발견할 정도로 그는 아내에 대한 사랑으로 넘쳐 나는 남편이다.

반면 두 사람 사이에서 낳은 단 하나 밖에 없는 딸 스텔라는 부모의 간섭을 싫어 하며 핸드볼 팀 리더로 어느 누구의 통제를 받기 싫어 할 정도로 독립적인 십 대다.

부모는 아이의 18살 생일을 멋진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소소하게 선물을 주며 축하를 해주지만 열 여덟 살 스텔라는 어딘지 모르게 불만으로 가득 찬 태도와 말투로 부모의 마음 한 구석을 섭섭하게 만든다.

딸의 이런 태도에도 불구하고 이해 하며 어떤 도움이 필요할 때면 일 핑계로 외면 하지 않고 항상 경청할 자세가 되어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 밤 중에 멍한 표정으로 흐느끼는 딸에게 섣불리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못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아버지 아담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그야말로 평범한 가족이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 모든 게 바뀌었다.'


이토록 평온하면서 평범한 가족의 삶을 바꾸게 만든 건 무엇이였을까?

자, 이제 10대 스텔라의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이 구치소에서 제일 짜증 나는 건 몸을 뒤척이지 못할 정도로 돌처럼 딱딱한 침대가 아니다.

침침한 조명도 아니다. 심지어 변기에 고리 모양으로 눌러 붙은 역겨운 오줌 자국도 아니다. 가장 괴로운 것은 냄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다양한 직종의 아르바이트 생을 거쳐서 H&M에 취직한 스텔라는 여름 휴가도 없이 가게에 종일 붙어 있을 정도로 몹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겨울 휴가철에 친구들과 아시아로 장기 여행 계획을 세워 놓고 열심히 여행 경비를 모으며 부유한 부모에게 손을 내민 적이 없을 정도로 알뜰한 십대다.

그러던 중 어느 날고등학교 시절 핸드볼 팀에서 함께 뛰었던 단짝 친구 아미나와 댄스 클럽에 갔던 날 어떤 남자가 춤을 추고 있는 스텔라와 아미나를 향해 샴페인 잔을 들어 보인다.

돈 걱정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 남자는 십 대 청소년인 아미나와 스텔라 앞에서 서로의 나이를 맞춰 보게 하며 부모의 직업, 여행 가 본 곳등으로 화제를 돌리며 은근 슬쩍 여러 개의 회사 대표라며 자신의 부를 과시한다.

서른 세 살의 크리스토퍼 올젠과 함께 신나게 춤을 추는 동안 스텔라와 아미나는 어느 새 그를 크리스라 부른다.

무슬림의 엄격한 규율을 내세우는 아버지가 무서워서 클럽에서 먼저 자리를 뜬 아미나와 달리 스텔라는 술 기운에 비틀거리다 택시를 세워 두고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하는 크리스에게 별다른 의심 없이 다가간다.

그리고 얼마 후 스텔라는 크리스가 거주 하고 있는 빌딩에 찾아 가 그가 건넨  마약 성분이 들어간 물인 줄 모르고 단숨에 마셔 버린다.

크리스는 그 자리에서  전 여자친구의 여러 정신적인 문제들을 이야기 하며 자신은 여자와 거리를 두는 타입이라는 말을 하고 스텔라는 그의 말을 철썩 같이 믿는다.

스텔라가 자신의 말에 확 빠져 버리자 크리스는 전 여자친구가 자신을 학대범이자 강간범으로 고소장을 제출했다는 사실을 말하고 스텔라는 크리스에게 동정 어린 마음을 품으며 그에게 점점 빠져든다.

빠른 속도로 스텔라에게 접근한 크리스는 그녀에게 넘겨 받은 집 주소를 들고 집까지 찾아 가 환심을 사고 달콤한 문자를 보내고 선물을 주며 2주 동안 멋진 오픈카를 몰고 나타나 그녀를 데리고 스칸디나비아 해변 곳곳을 누비며 덴마크 까지 넘어가 화려한 호텔에서 달콤한 연애의 맛을 맛보게 한다.

만난 지 2주 만에 사랑에 빠져 버린 스텔라는 그의 집, 밀실 같이 폐쇄적인 집을 드나 드는 동안 자신의 페이스 북을 통해 그의 전 여자 친구 린다로부터 그에 대한 끔찍한 이야기를 알게 된다.


[사이코패스에게 섹스는 권력을 쥐기 위한 것이다.

사이코패스는 처음엔 섹스 하는 동안 파트너에게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는 흥분과 변주에 이끌린다. 곧 그는 더 자극적인 섹스를 원하며 파트너에게 불편하게 여겨질 행동들을 자주 요구한다. 사이코패스는 파트너를 서서히 한계점으로 몰아넣으며 그 과정에서 권력을 얻으려 한다. 파트너가 제안을 거부하면, 사이코패스는 파트너에게 죄의식이 들게 하거나 다른 사람을 찾겠다고 위협하는 식으로 반응한다.]


크리스의 사악한 덫에 걸려든 스텔라는 그의 전 여자친구의 지속적인 충고와 경고를 들으면서도 쉽사리 그에게 헤어 나오지 못한다.


자신의 덫에 걸려든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 잡은 사이코패스 크리스는 서서히 목을 졸라 죽이듯 폭력적인 섹스를 하며 또 다른 사냥감인 온순한 아미나에게 짐승 같은 욕망을 드러낸다.

크리스가 어떤 남자인지 서서히 파악해 가던 스텔라는 그에게 당한 만큼 복수 하겠다는 전 여자친구 린다의 말을 100퍼센트 믿지 않으면서 혹시라도 친구 아미나가 크리스와 사귀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한다.

부모님과 함께 18살 생일 파티를 한 그 날 스텔라는 문자 한 통을 받는다.


[모든 게 ok 자고 있었어. 내일 봐.<3]


학교 시절 내내 서로 붙어 다녔던 친구 아미나는 문자에 마침표를 찍거나 오케이를 소문자로 보낸 적이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크리스 집을 찾아간 스텔라, 문을 두드려도 아무 반응이 없다.

그리고 다음 날 스텔라의 직장으로 경찰들이 찾아 오고 그 날 이후 스텔라는 살인 혐의를 받고 체포되어 구치소에 수감 되고 수갑을 찬 모습으로 법정에 출두 한다.

서른 세살의 사업가 크리스토퍼 올센은 놀이터 바닥에서 칼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되고 검찰은 스텔라를 강력한 살해 용의자로 지목하고 친구 아미나를 증인석에 세운다.

검찰은 시신에 짓눌려진 발자국에 스텔라의 신발 자국이 찍혔다는 증거를 제출하고 스텔라의 부모는 최고의 변호사를 고용해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벌이기 시작한다.

룬둔의 최고 연봉을 받고 있던 스텔라의 엄마 울리카는 법정에 서있는 자신의 딸을 향한 미안함과 죄책감, 무심했던 자신을 원망하며 그동안 영리함과 성공으로 기세등등했던 모습에서 한 풀 꺾여 버린다.

아내와 달리 세상의 모든 도덕 규범을 지키는 문제에 대해 한 치의 양보를 하지 않았던 목사 아담은 어떤 일이 딸에게 닥쳐 오게 된다면 법정에서 거짓말이라도 할 수 있을 정도로 핏줄에 대한 사랑과 방어로 단단하게 무장한다.

가족만 지킬 수 있다면 윤리와 도덕 따위는 얼마든지 치워 버릴 수 있는 남편과 아내


'한 사람이 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 다른 두 사람은 부모라는 존재로 바뀐다. 자녀를 향한 사랑은 법 앞에 복종하지 않는다.'라며 서로의 손을 맞잡고 주기도 문을 외운다.


스텔라의 무죄를 입증하려면 그 날 살해 장소에 있었던 아미나의 증언과 딸의 휴대폰에 대한 아버지 아담의 증언이 결정적이다.

검찰은 여러 증거를 내놓으며 탄탄한 법리를 들고 스텔라를 강력한 살해 용의자로 몰아가고 아버지 아담은 천역덕스러운 태도와 순발력으로 검찰의 송곳 같은 질문을 교묘하게 피해 간다.

상황은 잠재적 가해자가 두 명인 상황에서 그 둘 중 누가 살인을 저질렀는지 번갈아서 그들이 공모 했음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두 명 모두 살인죄로 판결 받지 않고 스텔라는 무죄로 풀려 나올 수 있다.

변호사인 엄마 울리카는 장래 의과 대학 진학 목표를 두고 있는 아미나를 설득하고 아미나는 크리스에게 강간 당했던 그 날 그가 챙겨온 바구니 속에 칼이 들어 있었다는 증언을 한다.

증인들의 적극적인 방어 태세와 교묘한 법리를 빠져 나가는 태도에 잔뜩 약이 오른 검찰측은 아미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크리스토퍼 올센을 살해 했습니까?'


반면 재판부는 살해 된 장소에 스텔라와 아미나는 함께 있었고 그를 해칠 동기와 이유 그리고 도구(호신용 스프레이)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도 입증 된 것이 없다고 판단한다.


'주문. 법원은 피고인 스텔라 산델에 대한 모든 혐의를 무죄로 인정하며, 이에 피고인의 구금을 즉시 기각한다.'


스텔라와 아미나 그리고 전 여자친구 린다는  강간 데이트를 즐겼던 사이코패스 크리스토퍼 올젠에 대한 어떤 살해 혐의가 없다고 재판부는 사건을 종결 시켜버린다.

열 여덟 살 스텔라 산델은 무죄로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사이코패스 성향의 강간범 크리스 올젠은 누구의 칼에 의해 살해 되었을까?


[가치 있는 인생을 구축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만 , 망치는 건 한순간이면 족하다. 한 사람의 가감 없는 현재를 만드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린다. 그 여정은 거의 늘 우회적인데,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시행착오가 쌓여 이뤄지는 법이니까. 우리는 우리가 한 시도와 시련에 의해 빚어지고 만들어진다.]


한 생명을 낳고 키우고 지켜주며 온전한 성인의 모습으로 키워 내는 부모 노릇이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 말한다.

다른 모든 인간관계에서는 옳고 그름, 싫고 좋음을 표현하고 거부 할 수 있지만 혈연 관계인 가족에게서는 이러한 선과 악 , 정의를 확실하게 구분 짓고 선을 긋기 힘들다.

사랑과 애증,분노와 오해의 감정의 파고가 수시로 밀려 들었다 사그러드는 가족이란 울타리 안 에서 모두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서로의 모습과 행동에 눈을 반 쯤 감고 살아야 한다.

설사 피를 나눈 부모를 버리고 형제 자매와 등을 돌리고 살아도 법 앞에서는 혈육이라는 관계로 묶여져 있다.

누군가를 조건 없이, 이유 없이 사랑하는 게 인간에게 가장 큰 어려운 일로 세상의 모든 사랑 앞에는 책임감이 뒤따른다.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라'라는 예수의 말이 어떤 가족의 일에도 통할 수 있을까?


살인자를 끝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자식을 폭행하고 위협한 강간범을 용서 할 수 있을까?


여기 스웨덴의 아름다운 도시 룬둔의 한 평범한 가정에서 발생한 이야기가 있다.

매일 신의 이름을 부르며  정의와 사랑, 행복과 안락을 기원하는 기도를 하는 목사 아버지, 스웨덴의 가장 유명한 변호사 중 한 명인 엄마, 두 사람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다른 부모들과는 달라. 우리는 약물을 남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식인이며 고소득자다. 우리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건강하다. 우리는 주변부로 밀려나 사회경제 문제들로 고민하는 결손 가정이 아니다.

우리는 그야말로 평범한 가족이었다. 우리는 이런 자리에 않는 가족이 아니어야 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자리에 있었다.'


인간은 부모 자식의 입장에 서면 언제나 진실을 제대로 직시 하지 못하는 존재다.

그런 가족이 여기,  무서울 정도로 완벽하게 평범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지극히 평범한 목사 아버지의 고백이 담긴 목소리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딸 스텔라 그리고 유능한 변호사인 어머니의 목소리를 지나면 마지막 두 장에서 엄청난 진실이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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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7-03 16: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엄청난 진실이 뭘까요!! 요즘 북유럽도 마약이 많이 퍼졌나 봅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스토리에 담긴 걸 보면요...(그 여정은 거의 늘 우회적인데,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시행착오가 쌓여 이뤄지는 법이니까. 우리는 우리가 한 시도와 시련에 의해 빚어지고 만들어진다.)이 부분 좋네요^^

2023-07-03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3-07-03 2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유럽 완전 좋아합니다. 스웨덴 하면 Kent~!! 스웨덴도 백야가 있나 보군요.

리뷰를 보니 여름에 잘어울리는 스릴러 같습니다 ~!!

scott 2023-07-04 10:20   좋아요 1 | URL
백야가 아주 길기로 유명합니다 ㅋㅋ
밤 9시에도 오후 5시 같은 밝기로 낮과밤의 경계가 모호해집니다
새파랑님 프로필 사진 처럼 한 밤중에도 하늘에 저런 오색빛깔 줄이 쫘악 ^^

이 책 정말 재밌습니다
이런 서스펜스물 여름에 읽어야 ^^

희선 2023-07-05 0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처음엔 평범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그렇지 않을 듯하네요 평범하다 믿고 싶은 거겠습니다 제목과는 다른... 사이코패스가 여자를 죽이려나 했는데, 그 반대였군요 사이코패스가 죽는... 그 사람을 잡아 넣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은 그렇다 해도 현실에서는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희선

2023-07-05 1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