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청주에서는 충북중앙도서관과 관내 공공도서관, 평생학습기관이 참여하는 충북평생학습축제가 열리고 있다. 사서 입장에서는 도서관의 본질이 평생학습이 아니기에 내심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3일간 축제가 열리고, 각 도서관에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의 작품도 전시하며  체험행사등에도 참여하고 있다.

내가 맡은 업무는 '독서골든벨 진행'
사서 몇몇이 학습동아리를 운영하고 있는데 기회가 되어 동아리 차원에서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고, 후배 한 명과 함께 사회를 맡게 되었다. 대상은 청주시내 초등학교 4,5학년이고, 학교장 추천을 받아 110명이 참여하였다.

보림이도 5학년이고 독서동아리 활동을 하기에 선생님께 나간다고 했단다. 고민은 이때부터....보림이에게 문제를 알려주면 안되는거지? 혹시라도 골든벨을 울리게 되면 어쩌지? 결국 지나가는 투로 몇 문제 물어보고 답은 스스로 찾아 보게 했다. 물론 난이도 있는 문제는 알려주지 않았다.

오늘. 오후 3시 시작임에도 2시 57분에야 헐레벌떡 도착한 보림이와 친구들. 그때부터 내 마음엔 짜증이 일었나 보다. 엄마가 다 챙겨주어서일까 매사에 느긋한 보림이. 능동적이기 보다는 늘 수동적이다. 분명히 책을 읽어 아는 문제일텐데 어이없이 틀렸다. '돌아온 진돗개 백구에 나오는 문제의 정답 '멧돼지' 를 '맷돼지'라고 썼고, 장려상과 1명 차이로 떨어진 보림이를 발견했을때 정말 우울해졌다. 그때 내 얼굴을 지켜본 후배가 '인상 무진장 구겨졌다' 는 표현을 썼다. 

물론 그 이유로 행사 진행이 삭막했거나, 엉망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시상식전 공백을 이용해서 '즉석 장기자랑'시간도 마련하는 센스도 발휘했다. 행사가 끝난뒤 한 선생님은 내 손을 꼭 잡고 '아나운서 같으세요. 어쩜 그렇게 진행을 매끄럽게 잘하세요. 넘 감동이었습니다. 며칠전 다른곳 독서골든벨 지켜 보면서 실망했는데 그 분들이 와서 배웠으면 좋았을껄 그랬어요....' 한다. 음..

행사가 끝나고 정리를 하면서 여유가 생길 즈음 그때부터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럴줄 알았으면 좀 알려줄껄, 엄마 바쁘다고 넘 무신경했어, 엄마가 잘 나가면 뭐하냐고 애들이 잘 되어야지....'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난 왜 이리 감정 기복이 심한걸까? 나이는 거꾸로 먹나 보다)  

결국 보림이에게 할말 안할 말 쏟아내고, 급기야는 이번 중간고사 성적 92점 이하로 내려가면 핸드폰은 무조전 해지라는 말까지 했다. 과외하러 가는 보림이 어깨가 축 쳐졌더라. 휴. 내가 너무 심했나?


이때까지만 해도  기분 좋았었다....(리허설중)
   

독서골든벨 행사는 잘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내 기분은 아직도 우울하다. 뒷풀이로 먹은 삼겹살도 소화가 되지 않는듯. 요가나 가야겠다.

여우꼬리) 1. 이런 내 마음을 아셨는지 방금 고마운 알라딘님이 예쁜 선물을 보내주신다고 해서 살짝 풀어지기는 했다. ㅎㅎㅎ (선물에 한없이 약한 나!)

2. 보림이 친구가 '넌 좋겠다. 엄마가 사회도 보셔서..' 또 다른 친구는 '너네 엄마 동안이다. 32세로 밖에 안보여' 하는 소리에 힘이 났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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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 2007-10-19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운내세요!!
아나운서 같이 잘 하셨다니, 멋져요~~^^

세실 2007-10-19 22:44   좋아요 0 | URL
ㅎㅎ 토트님 그러게 말입니다. 에휴..보림이도 잘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위로 감사합니다^*^

순오기 2007-10-19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엄마 마음이 다 그러죠~~~ 그저 자식들이 잘되면 입이 귀에 걸리고, 뭔가 안 풀리면 기분이 한없이 우울하고... 세실님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확실한 '엄마'이십니다.
앗싸~~ 아나운서가 되셨던 오늘, 기분까지 '나이스 굿'이면 남들이 배 아플거에용!!

세실 2007-10-19 22:45   좋아요 0 | URL
그쵸. 순오기님. 아이로 인해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하늘 높이 올라가고. 그게 부모 마음인가봐요. 왜 점점 제 인생보다 아이 인생에 더 우의를 두는지 원...내 인생은 나의 것, 네 인생은 너의것인데 말입니다. 헤헤
위로 감사합니다~~

울보 2007-10-19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우리 보람이도 오늘 기분이 많이 우울하겠네요
보람이랑 기분푸시구요,
주말 잘보내세요,,

세실 2007-10-19 22:46   좋아요 0 | URL
그러게 뙈지가 저녁까지 굶고 잠을 잤네요.
지금은 뭐 규환이랑 신나게 놀고 있습니다. 엄마 닮아 금방 풀어지네요.

행복희망꿈 2007-10-19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림이도 실망이 크겠죠?
격려 많이 해주시고 다음번에 더 좋은 모습 보여주겠지요.
사진을 보니 30살 정도로 밖에 안보이시는데요.(사진이 너무 이쁘게 나왔네요.)
사회 보시는 모습이 정말 멋있었을 것 같아요. 기분 푸세요.

세실 2007-10-19 23:40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보림이 기분도 헤아려 주어야 하는데 넘 제 기분만 신경쓴 듯.
에휴..왜 순간을 참지 못하고 쏟아내는지..
ㅎ 서른살 감사합니다^*^ 나이가 드니 좋은 점은 대처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프레이야 2007-10-19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2살 아니고 25살로 보여요, 세실님^^
보림이 땜에 속상하셨어도 참으시지 그러셨어용~~
에궁 그래도 지금 싹 기분 풀리신거죠? 보림이한테 미안해서 그러시는 거 다 알아요ㅎㅎ

세실 2007-10-19 23:44   좋아요 0 | URL
에이 혜경님 넘 억지다..ㅎㅎ 그래도 기분은 좋은걸요~~
그러게 말입니다. 휴.. 다행히 엄마의 뽀뽀에 편안하게 잠드는 보림이를 지켜보며 미안한 마음 들었습니다. 뭐 그리 대단하다고..그쵸?

joule 2007-10-20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틀린 걸 틀렸다고 한 분에게 왜 '눈치없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하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네요. 제가 눈치없는 건가요.

세실 2007-10-20 09:04   좋아요 0 | URL
뭐 저의 억지죠. ㅎㅎ
그 후배를 탓하기 보단 제가 문제죠 뭐...
그냥 남을 탓하는 그 맘 있잖아요. 에이...

소나무집 2007-10-20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 마음 다 이해가 갑니다.
그래도 보림이에게 너무 부담 주신 것 같애요.
그냥 무심한 척해주시지...

세실 2007-10-20 23:48   좋아요 0 | URL
그쵸? 다행히 지금은 친구같은 사이로 돌아갔습니다.
아침에 우유 한잔씩 하면서 '치얼스' 하니 규환이가 '우린 꼭 친구같아' 그러네요. 제가 추구하는 컨셉입니다.
앞으론 좀 느긋하게 가야겠습니다.

네꼬 2007-10-20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꼬리 둘을 보니까 우울 날리셔도 되겠는데요? (^^)

세실 2007-10-20 23:49   좋아요 0 | URL
헤헤... 그쵸? 지금도 보림이에게 미안한 마음 있지만 오늘 친구들이랑 실컷 놀게 한 것으로 미안한 맘 조금은 씻었습니다.

뽀송이 2007-10-20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충분히 이해가 되어요.
엄마가 '독서골든벨' 사회도 보는데 보림이가 조금 잘 해줬으면 하는 맘은 당연해요.^^
그치만 모든 걸 다 잘하려면 우리 아이들이 넘~ 힘들거에요.^^;;
저도 두 아들 녀석에게 무진장 기대하다가 속 상한 적 더러 있어서...ㅡ,.ㅡ
세실님^^ 그래도 멋진 행사 잘 치루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이~~~뽀~~~요~~~님^^

세실 2007-10-20 23:51   좋아요 0 | URL
예. 제가 아직도 환상 혹은 기대치가 넘 높은듯도 하옵니다. ㅠㅠ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닐진데 왜 이리 모든 것을 연관지으려 하는지....
그깟 골든벨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그쵸?
님의 위로 감사합니다.

홍수맘 2007-10-21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사람들 앞에서 행사를 진행하시는 느낌이 어떨가요?
어째 연예인 또는 아나운서를 만나는 기분이 아닐까 싶어요.
넘 멋진 세실님!!!
지금쯤은 보림이랑도 잘 지내고 계시겠죠?
아마 잠깐의 속상함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ㅎㅎㅎ

세실 2007-10-22 23:27   좋아요 0 | URL
처음 많은 사람앞에 섰을땐 떨리기도 했는데 요즘은 뭐 그런데로 차분하게 진행합니다. 헤헤~~ 연예인 까지야. 저야 뭐 2% 부족한 순수한 아마추어지요.
보림이랑 친구처럼 잘 지내고 있습니다. 노력중^*^

antitheme 2007-10-21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했지만 자랑하고픈 독서골든벨로 보입니다.

세실 2007-10-22 23:27   좋아요 0 | URL
에잉..우울함을 달래려고 오버해서 자랑한 느낌은 안 드시나요?

책읽는나무 2007-10-22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뮈에요? 32세면 저보다 더 어리시잖아욧!..ㅡ.ㅡ;;
보림이가 큰아이다보니 기대치가 커서 그럴꺼에요.둘째라면 모든 것이 용서가 될터인데 말입니다.요즘 저도 이웃언니와 매번 얘기하는 것이 큰아이를 대할적엔 너그러움과 인내심이 사라지게 되는 비뚤어진 마음들에 대해 대화를 많이 하곤합니다.
암튼...큰아이를 대할적엔 여유롭고,느긋하게 대하려 노력해야만해요.저도 요즘 성민이를 완전 잡거든요.이제 여섯 살밖에 안되었는데 말입니다.ㅎㅎ

모쪼록 보림이도,세실님도 화이팅입니다.^^

세실 2007-10-22 23:30   좋아요 0 | URL
호호호 마음은 20대 이옵니다. 님도 제 나이 되어 보세욧^*^
맞습니다. 큰아이에게는 기대치가 넘 높은것도 있죠. 작은 아이는 받아쓰기 70점을 맞아와도 기특하니...ㅎㅎ 왜 이리 관대한걸까요?
님은 쌍둥이를 키우느라 더 힘드실듯. ^ 성민아 씩씩해야 돼!

2007-10-22 1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07-10-22 23:31   좋아요 0 | URL
호호호~ 눈치도 빠르셩. 제 컨셉을 어찌 하시고.
뭐 안보셨으니 다행이지 봤다면 분명 예리한 지적 하셨을듯. 하긴 도움이 되었겠죠?
캄사합니다^*^ 아름다운 밤이예요~~

2007-10-24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07-11-28 12:42   좋아요 0 | URL
ㅎㅎ 감사합니다. 실제 보면 주름많은 아줌마....
님 피부가 부러워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