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재황 옮김, 루이스 스카파티 그림 / 문학동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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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동안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붙잡고 매달렸다. 아이들과 문학고전 수업을 하려고 읽은 것까지 하면 세 번 정도 정독했다. 이번에는 느낌이 너무 강렬하고 작품의 문제의식이 전부 이해되는 것 같아서 어리둥절했다. 카프카의 소설작품은 환상과 현실이 종잡을 수 없이 펼쳐지기 때문에 난해했지만 이번에는 하나도 난해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건이 터져버렸다. 


나는 요즘 책을 읽고 좀처럼 독후감을 남기지 않지만 기념비적인 사건이 터진 시점과 내가 《변신》을 덮은 시점이 묘하게 일치하고 그 내용의 유사성 때문에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정치인의 몰락과 그에 대한 반응을 보면서 영화 <터미네이터2>의 마지막 장면인 T-1000의 최후를 떠올렸다. 


우리는 서로를 괴물로 만들면서 살아간다. 괴물로 만들지 않을 도리가 없고, 괴물을 만들 만한 동기는 충분하다. 


피해자는 차기 대통령감으로 지목된 절대권력자인 도지사에게 성폭행을 당했을 뿐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진 부드럽고 감성적인 억압과 폭력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을 것이다. JTBC 인터뷰에서 '다른 피해자'를 언급한 것을 보면 자신의 처지와 같이 고립된 사람들을 위해서 용기를 냈던 것으로 보인다. 용광로에서 죽어가며 여태까지 자신이 변신(살해)한 사람으로 한번씩 몸부림친 T-1000. 하루 아침에 벌레로 변신한 카프카 소설 《변신》의 첫 장면. 이 두 장면이 그 정치인에게 비로소 도달했다.  



정치인이 괴물로 변신한 순간 쏟아진 반응은 아버지 유형, 어머니 유형, 여동생 유형으로 나뉜다. 


어머니 유형 : 안타까워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레고르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리라는 희망과 그럴 리 없다는 절망속에서 불안하게 흔들린다. 피해자를 공격하고 가해자를 두둔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에는 믿고 싶은 사실이 사라지는 것이 두렵다. 사람들은 진실보다는 믿고 싶은 것을 더 선호한다는 점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가구를 모두 치워버리면, 그애의 병세가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모두 포기하고 매정하게 그앨 혼자 내버려두는 것처럼 보이지 않겠니? 방은 예전 그대로 놓아두는 게 좋겠어. 그러면 그레고르가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을 때 그앤 모든 게 전과 달라진 게 없음을 확인하게 될 테고, 그럼 그 동안의 일을 그만큼 더 쉽게 잊을 수 있을 거야."(프란츠 카프카,

 《변신》 본문)


아버지 유형 : 집안의 가장 자리를 빼앗겨 숨죽이며 살았던 2인자가 뜻밖의 불행으로 1인자의 자격을 되찾으며 정치적 보복을 가한다. 故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천막 안에서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던 정치인들처럼, 도지사의 몰락은 매우 큰 정치적 기회이기도 하다. 정치인은 본인의 죽음만 빼면 모두 이용한다는 항간의 말처럼. 


두 여자가 양쪽에서 겨드랑이 아래에 팔을 넣고 일으켜세울 때가 되어서야 그는 눈을 번쩍 뜨고는 어머니와 여동생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하곤 했다. "이것이 인생이야. 이것이 내 말년의 휴식이로군." 두 여자의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키며 아버지는 마치 그 자신이 스스로에게 더없이 무거운 짐이라도 되는 듯 귀찮아했다. 그렇게 두 여자의 손에 이끌려 가다가 방문 옆에 이르면 아버지는 그만 물러가라고 손짓하곤 혼자서 걸어 들어갔지만 어머니와 여동생은 각기 바느질감과 펜을 황급히 던져 놓고는 계속 뒤따라 들어가 아버지를 거들어주었다. (프란츠 카프카, 《변신》 본문)


여동생 유형 : 뒤바뀐 현실에 매우 민감하고 유연하게 반응하며 활로를 모색한다. 특히 버릴 건 확실히 버리는 유형. 그것이 오빠일지라도.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여동생 유형에 들 것이다. 


"내쫓아야 해요." 여동생이 소리쳤다.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어요, 아버지. 저것이 오빠라는 생각을 버리셔야 해요. 우리가 그토록 오랫동안 그렇게 믿어왔다는 것 자체가 바로 우리의 진짜 불행이에요. 도대체 저것이 어떻게 오빠일 수 있겠어요? 저것이 정말 오빠라면 우리가 자기와 같은 짐승과는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쯤은 벌써 알아차리고 제 발로 나가주었을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계속 살아가면서, 오빠는 비록 잃어버렸을망정 오빠에 대한 기억은 소중히 간직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그런데 저 짐승은 우리를 못살게 굴고, 하숙인들을 쫓아내고, 나중엔 틀림없이 이 집 전체를 독차지하고서 결국 우리를 길거리에서 잠을 자는 신세가 되도록 만들 거예요."(프란츠 카프카, 《변신》 본문)


결국 여동생의 마지막 발언을 들은 괴물 그레고르는 죽음을 재촉하고 말았다. 


《변신》이 발표된 시기는 일제시대였던 1912년. 지금으로부터 100년 조금 넘었다. 지금 우리가 땅을 밟고 숨쉬는 현대 사회 구조를 매우 섬세하게 그려낸 소설작품이다. 평론가들에 의하면 카프카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형상화한 거라고 하는데, 나는 미투 운동으로 몰락한 정치인의 사건을 독후감으로 소환함으로서 현대 정치사회 구조를 가미하고 싶었다. 


개인은 무력하다. 경제적 또는 정치적 능력을 상실하면 삶 전체가 위기에 처하고 목숨이 끊어지는 것도 감당해야 한다. 미투 캠페인이 위대한 까닭은 정치적 경제적 터전을 모두 상실당할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기회에 현실을 합리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하면 용기를 낸 사람들 모두 괴물의 탈을 뒤집어써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괴물 폭탄 돌리기'라는 위험한 놀이를 죽을 때까지 해야 할지도 모른다. 방아쇠는 당겨졌고 전쟁은 시작되었다. 과연 누가 괴물이 될 것인가. 칼을 잡고 있는 그들이 장애물들을 하나씩 격파하면서 선량한 사람들을 하나씩 괴물로 만드는 마술을 회복할 것인가, 쪽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괴물을 하나씩 찾아내 공기를 정화시킬 것인가. 전쟁 없는 변화가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건 이미 헛된 희망이 되어버렸다. 우리 모두 마음의 군복을 꺼내입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진짜 전쟁은 바로 《변신》 전체와 우리 현실 전체에 흐르는 비열한 공기다. 촛불이 바꾼 것은 훌륭한 민주정치의 반쪽일 뿐이다. 차악이 최악을 제거하고 스스로 최악에 등극하는 악순환은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 하루 아침이든 서서한 시간 동안이든 괴물로 변신한다는 사실 자체가 무거운 과제다. 일상생활에서 집안에서 일터에서 마시는 공기는 전혀 민주적이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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