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네트워크가 토론 등 사회의 작동 방식을 파괴하고 있다

20억 명에 달하는 사용자를 끌어들이는 데 도움을 준 것에 엄청난 죄책감을 느낀다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여러분의 행동은 프로그램화되고 있다

(차마스 파리하피티야 전 페이스북 부사장의 스탠퍼드 강연)


페이스북이 아이들의 머릿속에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는 오직 신만이 안다(페이스북 초대 회장을 지낸 션 파커)



신속하면 부정확해진다


당신은 책 한 권을 빨리 읽기를 원하나요? 아니면 책 한 권을 맛있게 읽기를 원하나요? 보통의 사람들은 책을 맛있게 읽기 어렵습니다. 많은 책들이 이미 머리속에 있기 때문에 읽어야 할 책이 읽고 있는 책을 밀어내는 압력을 견디기 어렵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책을 읽고 나서 남는 게 왜 하나도 없을까? 하지만 그건 사소한 고민일 뿐입니다. 새로운 책장을 펼치면 흥분할 만한 내용이 펼쳐지니까요.


가끔 시장을 지나면서 양말 파는 아저씨를 봅니다. 아저씨는 마치 양치기 또는 목동 같고 행인들은 소나 말, 양 같아 보여요. 한 시도 멈추지 않고 말하고 빠른 속도로 콩을 튀기듯 소리를 칩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멈춰서서 양말을 한두 켤레 사갑니다. 꽤 장사가 잘 되는 편입니다. 그 분들 중에서 집에서 양말을 사야겠다고 계획한 이가 얼마나 될까요? 사람의 중추신경이라는 것은 아주 약하기에 조그만 자극에도 흔들리고 무너지기 쉽습니다. 양말 장수는 인간의 그 특성을 잘 알고 있지요. 양말 장수뿐만 아니라 대중을 상대하는 미디어 기업이나 출판업자에게 양말 장수의 지식은 생존의 필수 조건입니다.


빠른 속도에 의존하는 이 시장은 꽤 넓은 편입니다. 이런 시장이 가능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사람들이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고 나서 머리속이 하얘지거나 남는 게 없는 이유는 당연합니다. 신속한 것은 부정확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산책을 하다가 나무 아래 또는 풀꽃 옆에서 걸음을 멈추고 땅을 유심히 살펴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5초 정도 정지해서 집중하면 그때야 개미의 세계가 보입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절대 보이지 않는 세계입니다. 나는 독서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서하는 시간 안에 그저 빨리 읽으려고만 한다면 책의 5%도 읽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과 명확히 단절되는 것입니다.




정신적인 좀비 인간의 탄생



책을 읽거나 신문을 읽는 등 정보를 이런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게 무서운 까닭은 또 있습니다. 책이 책을 밀어내는 압력보다 더 강한 압력은 신문이 신문을 밀어내는 것입니다. 세월호, 故 이민호 군 사건이 우리의 관심사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 생각해 보세요. 신문이 우리의 중추신경에 있는 중요한 가치들을 다 밀어내었기 때문입니다.


포털 뉴스를 클릭하면서 빠르게 받아들이면 비판정신을 가지고 신문을 보는 기회를 얻을 수 없습니다. 마치 뇌에 들이붓는 것처럼 편협한 정보와 편협한 견해를 가진 인간이 되죠. 이런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편견이 생깁니다. 이런 과정이 쌓이면 인간은 '좀비PC' 그 자체와 같아집니다. 해커가 좀비PC를 통해서 디도스 공격을 하는 것처럼, 주류 미디어와 주류 출판업자가 좀비인간을 이용해 자신의 의도에 따라서 여론을 조작합니다.


빠르게 읽으면 미디어 리터러시는 꿈도 꿀 수 없습니다. 건강한 언론이라는 것은 정보를 심삭숙고하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독자층이 형성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니까요. 우리나라에 그런 게 있을까요? 저는 책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책을 맛있게 읽는 독자층이 존재한다면 광고비를 쓸 수 없는 출판사가 좋은 책을 냈을 때 금방 발견될 수 있을 것입니다.


출판사가 왜 베스트셀러에 목매달고,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인기 작가에게 선인세를 30억원 지불할까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며, 우리가 보여준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회에 지속적으로 필요한 존재는 선경지명을 갖춘 리더가 아니라, 의견을 갖춘 평범한 시민이라고 말했죠.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있나요? 지금 대한민국은 좀비인간을 대거 거느리고 있는 사람들과 자신이 좀비인간인지도 모르는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진 기괴한 집단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느리게 읽기의 한 가지 방법으로 제안하는 저의 메모 독서는 '자유'를 위한 도전입니다. 신문과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남의 의도에 따라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는지, 나 자신을 위해서 받아들이고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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