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책 고담총서 13
유향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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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객이 주족에게 상국 직책의 유지방안을 일러주다

주난왕 22년(기원전 293), 위나라 장수 서무가 싸움에 패하자 서주군이 상국 주족(周足)을 진나라로 보내고자 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주족에게 이같이 말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군왕에게 말하기를, ‘제가 진나라로 가면 진나라와 서주의 관계는 틀림없이 악화되고 말 것입니다. 군왕의 총신들이 진나라의 신임을 얻어 서주의 상국이 될 생각으로 진나라에서 저를 헐뜯을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되면 신은 사자의 직책을 다할 수 없습니다. 저는 상국의 자리를 내놓은 뒤 사자로 가고자 하니 군왕은 곧 상국이 되고자 하는 자를 후임으로 선발토록 하십시오. 그가 상국이 되면 두 나라 관계를 고려해 헐뜯지는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까. 그러면 군왕은 진나라의 입장을 생각해 그대를 상국의 자격으로 보낼 것입니다. 그대를 사자로 보내면서 상국의 자리를 면직시키면 그대가 말한 대로 일이 잘 이뤄지면 이는 모두 그대가 성사시킨 셈이 됩니다. 설령 두 나라 관계가 악화될지라도 군왕은 그대와 관계가 좋지 않은 자들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들에게 벌을 내릴 것입니다.”
「전국책(戰國策), 서주책(西周策) 중에서」


중국의 장기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말과 상, 포와 차의 동선은 인물의 '위치'를 말하며, 한땀한땀 옮기는 선택에는 매우 다양한 전략이 들어간다. 다른 말과 함께 의각지세[犄角之勢] 를 이루기도 하고, 살을 떼어주고 뼈를 취하는 '희생전략'을 쓰기도 한다. 때로는 나의 말을, 때로는 남의 말을 이용하는 것은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각각의 말을 '대상'으로 취급하고, 그들의 욕망을 이용하는 것이다.

위의 상황은 서주의 상국 주족이 국가적 위기상황을 해결해야 하는 '특사 파견'의 임무를 앞두고 자신의 신변을 고민하고 있다. 움직이자니 국가 간의 국면에 따라 희생당할 수도 있고, 거스르자니 상국(오늘날의 총리급)이라는 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세객이 내놓은 전술은 '자신의 위치와 상대의 욕망을 이용하라'였다. 주족이 상국 신분으로 방문하는 것과 일반인 신분으로 방문하는 것은 '외교의 본질'이 다른 것이다. 하지만 진나라는 매우 강국이고 주나라는 매우 약소하다고 했을 때 주족이 진나라에 가서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모함을 받을 수 있는 상황과 정적들이 주족에 앞서 진나라의 총애를 받고자 하는 욕망을 생각할 때 주족은 이들의 욕망을 적절히 이용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세객의 진단이 주효할 수 있었던 까닭은 주족에 비해 현재의 상황을 매우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논리를 이름붙인다면 '세객 논리' 혹은 '권모술수의 논리학' 정도 될까. 이들의 논리가 학문적 논리보다 독특한 것은 '상황'이라는 변수를 더하기 때문이다. 플로베르의 '일물일어'를 여기 적용한다면, 한 상황에서는 최선의 행위가 있기 마련이다. 이 최선의 행위를 출력해내기 위해서는 '유익한 지수'를 담아야 한다. 혹시라도 담아야 할 지수가 빠진다면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없다.

우리는 동양고전이라고 하면 고리타분하거나 진부하고 교훈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것은 공맹이나 노장 등의 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외양적인 이미지에 기인한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부여한 '이미지화'에 기인한다. 하지만 교훈적이라는 '공맹유학'조차도 현실에 대한 치열한 성찰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춘추전국 이후부터 중국의 철학은 유학, 노장학, 법가(엄격한 법률)가 매우 유연하게 교류해 왔었고, 이에 대한 결정은 '유세가'들이 해왔다. 전국책에서 공맹이 언급된 부분이 3회를 넘지 않는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권모는 누군가를 속인다는 행위로 한정지어져서는 안 된다. 그러면 국가외교는 사기술이 되며, 외교관들은 사기꾼이 된다. 차라리 매우 복합적인 지수를 가지고 연산을 해내는 '실전논리학'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바둑에서 하수와 고수가 있듯이 '권모'에도 급수가 다르다. 연암 박지원의 말마따나 '열흘짜리 전략이 있는가 하면 100년도 너끈히 견디는 견고한 전략'이 있다.

암튼 텍스트 하나 올리고 나서 말도 징~허가 많이 했다. 간만에 쓰는 거니 봐주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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