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다큐] ‘지하철 인생’도 땅 위를 달릴 때가 있습니다
입력: 2006년 07월 16일 17:25:33
 
승객들에게 팔 물건이 실린 카트를 끌고 매일 처음으로 오르는 지하철이 가장 긴장된 순간이다. 이들은 오전 10시 반 전후로 일을 시작해 러시아워가 시작될 무렵 짐을 정리해 집으로 향한다.


인파로 북적이는 아침 출근 시간대가 조금 지나 지하철을 타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월드컵 기간에는 붉은색 티셔츠를 팔고 비가 오락가락하는 장마철엔 우산을 한아름 들고 전동차 내에서 목소리를 높인다. 달리는 지하철 내의 행상. 개그 프로에 등장하는 지하철의 외로운 벤처사업가는 아니지만 밑천 하나 없이 다리품과 입담만을 무기로 승객들에게 염가의 물건을 판매하는 프리랜서 상인, 속칭 ‘기아바이’가 바로 그들이다.
승객들로 붐비는 지하철 전동차안에서 한 지하철행상이 오디오를 이용해 음악을 틀어가며 CD세트를 판매하고 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에게 잠시 양해의 말씀을 구합니다. 이번에 한국축구가 아쉽게도 16강에 못갔죠… 8강은 갈 줄 알고 만든 붉은색 티셔츠가 창고에 쌓여… 이 면티 한 장에 단돈 천원… 걸레로 써도 천원 값어치는 합니다.” 지하철 행상 한모씨(53)가 걸죽한 목소리로 외치자 여기저기서 승객들이 천원짜리 한 장을 꺼내든다. 이른바 ‘단가치기’(제품에 대한 설명을 하는 행위)가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승객들에게 내미는 물건은 1,000원~1만원 사이의 저가 생활용품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단가치기가 판매량을 좌우한다.
0대 중반의 한 상인이 불편한 손으로 돈을 움켜쥐고 있다. 천 원짜리 지폐일망정 이들에겐 소중한 땀의 결과물이다.



이들은 대부분 생계형 상인들이다. 지하철 행상으로 나서기 전엔 번듯한 직장인이거나 자영업자들이었다. 하지만 불현듯 찾아온 경제적 위기상황에 쫓겨 벼랑으로 몰리다 재기의 밑천으로 시작한 일이 지하철 행상이다. 자영업을 하다 실패해 전재산을 날리고 신용불량자가 된 뒤 행상으로 나선 오모씨(43)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죠… 처음 물건을 들고 지하철을 타던 날… 무섭더라고요… 모든 사람이 날 쳐다보고 있는데… 물건도 못 팔고 한 정거장 가서 내리고… 또 한 정거장 가서 내리고…”라고 말하며 첫경험(?)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가 승객들을 바로 쳐다보기까지는 6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힘들때면 한적한 지하철 승강장에 홀로 앉아 휴식을 즐긴다. 그래서 늘 자신과 싸워야하는 고독한 직업이다.

지하철 행상들이 하루 동안 지하철 안에서 목소리를 높여 벌 수 있는 돈은 기껏해야 5만원에서 10만원. 목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한달 평균 20일 전후로 일을 한다. IMF 이후에 생계형으로 뛰어든 사람이 많아 무제한으로 지하철 내에서 물건을 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상들 간의 규칙 중 하나가 10량짜리 전동차 안에서 한 명만이 장사를 하는 것. 그래서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지하철 전동차에 한 번 오를 수가 있다. 하지만 단속에라도 걸리는 날이면 수익의 일부를 벌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지하철 안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행상들의 행위가 원천적으로 불법이기 때문이다. 단속요원들도 이들이 생계형 상인들이라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 고충이라고 말한다.

지상구간인 구로역 승강장에서 지하철 행상들이 먼저 온 순서대로 벤치에 앉아 전동차를 기다리고 있다. 길게는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 전동차에 오르기도 한다.


지하철 행상들 대부분이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했기에 독기(?)를 품고 이 고단한 일을 감내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조그마한 사업을 하다 실패해 거리로 내몰리자 지하철 행상으로 나선 김모씨(45)는 “여기저기 손을 내밀었지만 아무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돈이 없으면 친구도 모른척하더라…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하고 사는 게 내 소원이다”라며 오늘도 햇볕이 들지 않는 어두운 지하철 속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사진·글 서성일기자 cent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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