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글샘 > 초등의 눈물ㅜㅠ... 우리는 시험 기계가 아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은 세 달 전부터 보습학원에 다닙니다. 나는 아들의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아들의 일기장을 볼 수 있도록 미리 아들과 약속을 해 두었습니다. 아들의 일기장 아래에는 선생님의 따스한 흔적이 적혀 있어서 사제 간의 끈끈한 정을 느끼게 해주므로, 일기장을 넘기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그런데 최근, 아들의 일기장이 이상합니다.

▲ 아들의 일기-아버지, 쉬고 싶어요!
ⓒ 한성수
2006. 3. 19. 월요일. 제목 : 학원
학원 다니는 것이 힘들다. 내가 힘든 이유는 공부 때문이 아니다. 내가 숙제 같은 것은 잘 까먹기 때문에 숙제를 했는데도 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내 가슴을 죈다. 그리고 항상 적응!!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한다.

나는 원래 10시에 자서 충분히 수면을 취하는데, 숙제가 많다보니 밤 12시쯤에 자서 이제 몸에 이상이 온다. 그래도 어쩌랴! 적응해야지. 적응만 하면 잘 될 것인데!! 파이팅!!

-빨리 적응이 되어서 네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선생님의 댓글입니다.)-

2006. 4. 27. 목요일. 제목: 아버지! 좀 쉬게 해주세요.
나의 일과는 아침 8시부터 시작된다. 8시에 일어나지만 피곤해서 계속 누워 있다가 어머니가 고함을 지를 때쯤이 되어야 후다닥 일어나 세수하고 이 닦고 옷을 입고 밥을 먹는다.

- 학교생활 중략 -

집에 발을 들여놓자 말자 어머니는 “숙제 없나?”라고 물어보신다. 그때부터 나는 학원의 밀려있는 숙제를 하나씩 해나간다. 그리고 허겁지겁 밥을 먹고 버스를 타려고 뛰어간다. 종이 울리면 5시 15분이 되었다는 것이다. 학원에서는 내가 제일 부담스러워하는 수학이 나를 꽉 조이는 것 같다.

간신히 학원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뛰어와도 나를 기다리는 것은 학교숙제와 학원숙제이다. 나는 지금의 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너무 피곤해서 눈도 붓고 혀에도 염증이 생겨 음식을 먹는 것이 힘들다. 그러나 우리 반 아이들 중 3/4정도가 학원을 다닌다. 나는 '힘들지 않다'고 하는데, 내 몸이 힘들다고 반항하는지 감기와 몸살까지 겹쳤다.

성적지상주의가 초등학교 6학년인 우리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 같다. 제발, 초등학교 마지막 어린이 날인 5월 5일에라도 쉬고 싶다.

▲ 아들의 일기-학원
ⓒ 한성수
일기장을 덮으며 나는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 와서 한숨을 크게 쉽니다. 아들의 글처럼 나는 그동안 아들에게 ‘공부만 잘하라’고 다그쳤지 아들의 힘든 모습은 애써 외면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보습학원에 다니는 실정을 감안하면 그냥 예전처럼 집에서 공부하게 하는 것은 아들의 성적을 뒤처지게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듭니다.

아들은 오늘도 저녁 9시가 가까워서야 집에 들어섭니다. 아들이 저녁밥을 먹은 후, 밤 11시에 우리는 자리를 마주하고 앉았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이와 대화를 나눕니다.

“우선 아버지가 네 힘든 사정을 몰라서 미안해요! 너희 반 친구들 중에서 학원에 다니지 않는 친구가 얼마나 되니?
“저희 반 학생이 36명인데, 30명 정도가 학원에 다니는 것 같아요. 나머지도 집에서 학습지를 받아 보거나 과외수업을 받고요. 특히 종합학원에 다니면서 영어, 수학 등을 단과학원에서 듣고 태권도나 피아노 등 예체능학원에 다니는 아이도 10명 정도 되는 것 같아요. 그 애들은 학교를 마치면 바로 단과학원에 갔다가 예체능학원에 가고 다시 종합학원에서 집으로 가는데, 저보다는 그 애들이 훨씬 힘든 것 같아요. 그 애들은 공휴일에는 밖에 나가는 것보다 집에서 실컷 잠이나 자고 싶대요.”

“그 친구들이 학교 수업은 제대로 하니?”
“아뇨. 그 친구들은 학원숙제를 할 시간이 없어서 학교에서 학원숙제를 하는데, 같은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은 서로 배끼기도 해요. 학원숙제를 해가지 않으면 결국 남아서 해야 하고, 학원 선생님에게 맞아야 되거든요. 학교 청소당번인데도 '학원에 가야한다'면서 청소도 하지 않고 그냥 가는 아이들도 있어요.”

“선생님한테 혼이 나지는 않니?”
“학원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도착하지 않으면 바로 집으로 연락을 하니, 우리는 어쩔 수가 없이 학원이 우선이지요. 그런데 저희 담임선생님은 ‘학원은 학교교육을 보충하는데 불과하므로 학교 일이 우선’이라고 하시면서 사정을 봐 주시지 않아요. 또 진도도 빼먹지 않고 처음부터 차근차근히 가르쳐 주세요. 우리는 학원에서 미리 배웠지만 복습이 되니까 좋아요.”

“힘이 들면 학원을 그만두고, 집에서 공부하는 것이 어떻겠니?”
“지금까지 집에서 자유롭게 공부하다가 학원에 다니니까 적응하는 것이 힘들어서 그렇지 곧 적응을 할 거예요. 또 친구들 중 대부분이 종합학원이나 단과학원, 과외나 학습지를 받아서 공부하는데 저만 안할 수는 없지요. 학원선생님은 ‘부모님이 돈이 많아서 너희들 학원 보내는 것이 아니다’고 했는데, 저도 내년에는 중학생이 되니 열심히 해 볼게요.”

▲ 방과후 아들의 학원시간표
ⓒ 한성수

지금 아내는 아들을 무릎에 뉘고 입안 염증에 연고를 바르고 있습니다. 가난한 말단 공무원의 빠듯한 살림살이에 아이들 학원비가 참으로 버겁기도 하거니와 '어린이날'에라도 쉬고 싶다는 아들을 계속 학원에 보내야 하는 것인지, 참으로 가슴이 아리고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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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한국에서 교사로 존재한다는 것은 큰 고민을 떠안고 가슴 답답해 하는 것이다.
끝없는 경쟁 체제로 돌입한 시대에, 이젠 초등학생마저 공부에 시달리고 있다.

놀이터엔 아이들이 없다.
도로엔 승합차에 오르는 아이들이 빵쪼가리 하나를 물고 있다. 과자를 우물거리거나...

초, 중, 고 생이 모두 이 지경이다.

고3은 고생해도 되고, 아니, 고등학생 정도는 입시에 몰두해 보는 것이 좋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초 중학생마저 제대로 된 교육의 혜택을 보지 못하고, 온갖 사교육에 휘둘리는 현실은,
정말 암담하기만 하다.

일부는 <교사>가 제대로 못가르쳐서 <학원>으로 가지 않는가? 하는 논리를 편다.
일부는 <교육부>가 교육 정책을 개판으로 짜서 그렇다고 주장한다.
입 가진 사람은 교육에 대해서 모두들 성토하고 침을 튀길 수 있다.

현 사태를 과연 누구의 책임으로 몰 수 있을 것인지...
교육<인적 자원>부의 말씀대로, 교사를 평가하면 아이들이 행복해 질 수 있단 말인가?
아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교사 평가 아니라 뭐라도 좋다.
사람을 목적으로 보지 못하고, 고작 <인적 자원>의 수단으로 보는 자들에게서 철학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한 일인지도 모른다.

결국은 <학부모>의 철학의 문제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말인즉 옳다. 학부모가 학원 안 보내면 된다. 학부모가 아이들을 자유롭게 놀라고 하면 된다.
학부모가 아이들에게 스스로 공부하도록 시키면 된다.
엄마가 아이를 99% 만든다고 한다. 말로는 다 옳다. 너도 옳고, 너도 옳고, 개도 옳다.

자기 자식만을 사랑해서 그렇다고 한다. 그럼 자기 자식 사랑하지 말랴?
인격을 기르고 독서를 시키면 과외 안 시켜도 된다고도 한다. 당신이 초딩이라면 학원 안 가고 노는 동안에 독서 할 성 싶은가? 카트라이드가 얼마나 재미난 것인지... 초록 장갑을 향한 집녑이 어떤 것인지... 모르면서...

한국이란 땅덩이는 너무도 좁다. 50년대 원조 지원국가에서 21세기 오이씨디 가입국으로 발돋움했다.
그 원동력은 뭐니뭐니해도 <인력 자원> 이었다.
그 인적 자원은 <고급 인력>이 아닌, 공업 입국의 <기술 인력>, <노동 인력>이었다.
이제 부가 가치의 시대, 고급 인력의 시대가 열렸다.
그런데도 한국의 교육은 공업 입국 시대의 <조국 근대화의 기수>를 양산하고 있다.
토익 시험을 초딩부터 만점 받고, 한자급수를 1급을 따고, 컴활 1급을 딴다.

아이들이 <시험 기계>로 전락하고 말았다.
문제를 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그러지 않고는 토익을 만점 받긴 어렵다.
컴퓨터 필기 문제가 바로 그렇다.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답이 나오는 메커니즘이다.
한자 능력 시험이 그렇다.

90년대 중반까지 학교에서 담당하던 <시험 기계> 양성이 이젠 <사교육>으로 넘어간 느낌이다.
당연히 사교육 열풍을 잠재울 수 있는 방안은 없다.
박정희 아들이 공부를 못해서, 고등학교 평준화가 이루어졌고,
전두환 아들이 공부를 못해서, 온갖 과외를 철폐했는데,
이젠 독재 시대가 아니라서 사교육에 철퇴를 가할 수는 더이상 없다.

아이들을 살리는 길은 무엇일까?
내 생각은 이렇다.
아이의 싹수를 보아야 한다.
글쓰기를 잘 하는지... 외국어를 흥미있어 하는지... 운동을 엄청 좋아 하는지...
독서를 좋아하는지... 과학에 귀재든지... 인간 관계에 탁월하든지...
게임에 미친 놈이든지...

Everyone can do something well.
모든 사람은 뭔가 하나는 잘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걸 찾는 것이 부모가 할 일이고,
나머지는 그 길로 달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지 못하면서, 그저 나중에 뭐가 되더라도, 공부만 잘 하면 된다는 생각은, 이제 오산이다.
그리고 학급당 30명 중에 1등 해봤자, 잘 하는 공부도 아니다.

초등학생들을 과외에서 풀어주어야 한다.
중학생들의 교과서를 과감하게 줄여야 한다.

수학, 사회나 과학 교사들은 안다. 정말 교과서가 어렵다는 사실을...
그 모든 지식은 99% 사람들에게 쓸모 없는 것임을...

아버지는 말하셨죠. 인생을 즐겨라~~~

요즘 애들에게 말하면, 눈을 흘기면서 "즐~~" 할거다.

그리고, 교사로서... 아이들을 사지로 몰아 넣지 않도록 정부와 싸우는 길을 두려워하지 말아야한다.
아이들이 죽는 것을 보면서 더 이상 나는 <교사>도 <선생>도 더욱이 <스승>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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