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가 강조되는 시대다 보니까, 말에 있어서도 '높임'을 많이 쓰게 된다.

'높임법'은 다른 말로 하면 '대우법'이라고도 하는데, 그 이유는 자신은 낮춤으로써 상대방을 높일 수도 있고, 높여야 할 대상의 선후가 있으면 한 쪽은 상대적으로 덜 높여야 하는 등 여러 가지 경우가 있기 때문에 '대우해준다'는 식의 '대우법'을 쓰도록 하였는데, 일리 있다.
이 표현의 역사는 '이이'의 '경敬 사상'으로까지 가는데, 이이는 무조건 높이는 것을 '공恭', 경우에 맞게 대우하는 것을 '경敬'이라 하여 합쳐서 '공경'이라 표현했다. 그러니까 '공恭'은 상대방이 나보다 나이가 많으므로 나이만큼은 당연히 높여야 하고, 존댓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敬'은 나의 판단이 들어간다. 임금이라 하더라도 그 직분을 다하지 않으면 마음으로 존경할 수 없다. 물론 당시의 임금은 절대적 대상이었겠지만, 자신의 입장에서 공경할 만한 상대를 공경한다는 사상은 참으로 유연한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손님을 최고로 대우하고,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 존칭 표현을 쓰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것도 알고 쓰지 않으면 오히려 상대를 낮추는 것은 물론 '낮잡아보는' 지경에 이를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1. 손님, 이 책은 만 이천 원이십니다.
=> 책이 '만 이천 원'이시라구? 서점에 특히 이런 점원들이 많은데, 조심해야 한다. 멀쩡한 손님 놔두고 '책'을 높인 거 아닌가. 아무리 황금만능주의에다 물질주의라고 하지만, 어찌 손님을 낮추고 '돈'을 높일 수 있을까. 그래서 용기를 내고 서점 직원에게 '돈을 높이면 안 돼요'라고 말해 주었는데....
시큰둥한 표정.. '이 놈이 손님만 아니면 기냥' 하는 표정이어서 무섭기도 했다.
당연히 '손님 만 이천 원입니다.'라고 해야 한다. 돈에게 절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2. 사장님실, 회장님실
=> 이것도 역시 '물질숭배'의 또다른 병폐이다. 특히 군대에서 이런 말을 자주 쓴다.
사실 이것 역시 '방'을 높이면서 넌짓이 '사람'을 낮잡아본 표현이 아닐까. 이것을 이렇게 표현하면 훨씬 명확하다.
'사장님실에 사장님이 계십니다.'
사장님과 사장님실을 같은 격으로 놓음으로써 사장님을 낮추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사장실'이라는 어엿한 표현을 두고 그 사이에 '님'을 붙일 정도로 허술한 문법 체계를 가지고 있는 우리말이 아니다.

3. 저희 나라
=> 이 말은 나쁘게 말하면 거의 '매국' 수준이므로 조심해서 쓰든가 아예 쓰지 않든가 해야 한다. 오늘 하인스 워드 선수가 방한했을 때 한 기자가 '저희 나라에 얼마나 머물다 가실 생각이신가요?'라고 질문하는 것을 보았다. 이건 정말 아니다. 하인스 워드를 '외국인' 취급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저희나라'로 격하시킨 것 아닌가. 공중파 방송에서 그런 표현을 쓰다니 참으로 안타깝다. 우리나라는 '조국'으로 남에게 함부로 낮출 수 있는 성질의 표현이 아니다. 누구든 자국민이라는 자긍심으로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거 아닌가.

할아버지를 욕되게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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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06-04-04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뽀뽀 님//제 맘을 어찌 아셨나요. 대통령님, 교수님 등도 쓰려고 하다가 말았습니다. '관습맞춤법'이라고나 할까요^^;;;;;;

승주나무 2006-04-04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나라는 조심해서 써야 해요. 일각에서는 '우리나라'라는 말 자체도 회의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