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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음미하며 읽어야 ‘고급독자’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야 ‘고급독자’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야 '고급독자'

[주간조선 2006-02-15 09:20] 

논술,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 -
초·중학교 때 읽은 문장이 평생 글 쓰는 스타일 만들어... 상상력 자극하는 문학책 많이 읽도록


멋진 논술을 쓸 수 있는 자녀, 모든 부모의 소망이다. 그래서 한국독서교육개발원 홈페이지에는 연일 학부모의 상담이 쇄도한다. 상담의 80% 이상이 빨리 논술을 잘 쓰는 비법에 대한 것이다. 이런 부모님에게 보낼 수 있는 답변은 하나뿐이다. “독서가 입력이라면 논술은 출력입니다. 고급 논술은 고급독자만이 쓸 수 있습니다.”

학과 공부는 학원 선생이 가르쳐주는 대로 달달 외워서 점수를 맞을 수도 있다. 밤 새워 한 벼락치기 공부로 점수를 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논술공부만은 벼락치기 공부나 달달 외워서는 되지 않는다. 논술 공부는 꾸준한 독서로 기초체력을 기르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글쓰기의 기초체력은 무엇일까? 대통령이면서 스스로 연설문을 쓴 링컨은 유명한 책벌레였고,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유명한 마거릿 미첼은 “마을 도서관의 책을 다 읽어서 더 이상 볼 책이 없어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글쓰기 천재들에게도 행운은 없었다. 행운이란 그들의 기초체력이 된 독서 이력이었다.

우리가 글쓰기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는 그 능력은 사실은 뭉뚱그려진 하나가 아니다. 여러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자세히 분석해 보면 풍부한 배경지식 보유 능력, 그 내용을 논리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내용 구성 능력, 머릿속에 구성된 내용을 문장으로 나타내는 서술 능력, 독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표현 능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 스키마(Schema) 보유 능력, 내용 구성 능력, 문장 서술 능력, 매력적인 표현 능력은 독서 없이는 길러지지 않는다. 독서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길러지는 능력이다.

인간의 사전 경험 ‘스키마’

아이들이 글을 쓸 때 가장 많이 겪는 어려움은 쓸 내용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일기를 쓸 때나 독서감상문을 쓸 때 쓸 거리가 없어서 같은 말만 되풀이하거나 한두 줄로 그치는 아이가 많다. 하물며 어떤 사회현상이나 사건에 대한 의견을 쓰는 논술이야 얼마나 더 어려울까?

왜 같은 학년 같은 반에서 같은 선생님에게 배우는 아이들 중, 어떤 아이는 훌륭한 글을 쓰는데 어떤 아이는 빈약하기 그지없는 글을 쓰는 것일까? 그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스키마의 다소가 결정한다. ‘인간의 사전 경험’으로 해석되는 스키마란 생활이나 책 읽기를 통하여 우리 두뇌 속에 축적된다. 책을 읽다가 우연히 알게 된 지식은 머릿속에 저장되었다가 다음에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에 자료가 된다. 그래서 머릿속에 다양하고 좋은 생각이 많이 들어있는 아이는 좋은 글을 쓰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는 쩔쩔매게 된다. 특히 논술처럼 어떤 주제를 놓고 글을 써야 할 경우에는 그 주제에 대한 사전 경험이 없으면 훌륭한 글을 만들 수 없다. 글쓰기의 기초 자료가 되는 이 사전경험은 대부분 독서로부터 온다.

(A) 링컨 소년은 언제나 복숭아 뼈가 쑥 나오는 바지를 입고 다녔습니다.

(B) 링컨 소년은 가난하고, 키가 크고, 몸은 말랐고, 성격은 털털했습니다.

두 문장은 같은 내용을 전달하고 있지만 독자가 받는 영향은 다르다. (A)를 읽을 때 독자는 상상하고 추리하면서 긴장감을 느낀다. 그러나 (B)를 읽을 때는 상상할 것도 추리할 것도 없어서 독자는 지루하게 된다. 어린 시절에 읽은 책이 (A)의 문장스타일이었다면 그 사람은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맛있는 글을 쓰게 된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 주로 읽은 책이 (B)의 스타일을 가진 책이었다면 그 사람은 설명형의 문장을 쓰게 될 것이다. 전자는 문학책을 많이 읽은 경우이고, 후자는 교과서와 참고서 외에는 독서이력이 빈약할 것이다.

자녀가 좋은 문장을 쓰게 되기를 희망하는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일은 좋은 문장으로 이루어진 명작을 많이 읽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그 책의 저자들이 아이의 문장 스타일을 형성해 줄 것이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문장의 틀이 있다. 이 틀은 개수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다. 어떤 사람은 다양하고 어떤 사람은 단조롭다. 또 어떤 사람은 가지고 있는 틀대로 사용하지만, 어떤 이는 틀을 창의적으로 변형하여 쓴다.

중요한 것은 한 인간이 가지게 되는 이런 문장 스타일은 이론을 머리로 외워서 얻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에 형성된다는 점이다. 형성되는 시기는 문자를 자유자재로 읽고 쓰기를 시작하고부터 7~8년 안에 형성된다. 다시 말해서 초등학교·중학교 때 많이 읽은 책의 문장이 그 사람의 문장 스타일의 모델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그 모델은 아이들이 글쓰기를 할 때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그래서 청소년기를 지나면 문장 스타일은 좀처럼 바꾸기가 힘들다. 독수리 타법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는 사람이 다시 열 손가락으로 두들기기를 배우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자녀가 ‘알맹이 없는 독서 감상문’을 쓴다고 걱정하는 부모가 많다. 내용을 그대로 베껴놓거나 줄거리 요약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비판하거나 분석을 통하여 잘못을 지적하는 경우도 없고, 상상이나 추리를 통하여 기발한 발상을 제시하는 일도 없다는 것이다.

독서속도 점점 빨라져

그런데 이런 아이들을 살펴보면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책을 빨리 읽는다는 점이다. 4~5년 전부터 우리나라 어린이의 읽기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책 한 권을 5분이나 10분에 읽어서 어머니와 선생님을 걱정으로 몰아넣는 아이도 많다. 아무리 주의를 주어도 교정이 힘들다.


이런 아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빨리 읽어야만 하는 시스템을 경험한 아이들이 많다. 1주일에 7~8권씩 배달되어 오는 책을 읽고 돌려주어야 하는 시스템 속에 들어갔던 아이들은 책을 빨리 읽을 수밖에 없다. 한정된 시간에 읽어야 하기 때문에 읽기 속도가 빨라질 수밖에 없다. 이런 아이들이 책으로부터 얻어내는 결과는 줄거리뿐이다.

또 속독훈련을 받은 아이들은 책을 빨리 읽는다. 키워드만 골라 읽게 하는 속독은 아이들의 독서속도를 의도적으로 빨리 한다. 키워드를 골라 추려내는 결과물은 줄거리뿐이다.

그러나 책 속에는 줄거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줄거리는 독자가 책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장 작은 선물이다. 책 속에는 줄거리가 줄 수 없는 많은 보물이 들어있다. 천천히 책을 읽으면 어휘력이 향상되고 비판력, 추리력, 상상력을 동원하여 문자로 쓰여 있지 않은 언간(言間)의 의미를 캐낼 수도 있다. 그리하여 판단력, 창의력, 문제 해결력을 기르고 덤으로 집중력도 기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능력은 속독으로 빨리 읽을 때는 기대하기 힘들다. 천천히 생각하는 독서를 할 때만 얻을 수 있는 보물이고, 이런 능력은 바로 책을 읽으며 비판하고, 추리하고, 상상하고, 분석하여 자기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게 해준다.

나는 저급독자인가, 고급독자인가? 두 부류의 독자가 쓰는 글의 유형은 다르다. 빨리 읽음으로써, 줄거리만을 읽는 독자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내용밖에는 글 속에 담을 수 없다. 즉 어디선가 본 듯한 글, 심심한 글, 매력 없는 글을 쓰게 된다. 그러나 천천히 읽는 고급독자는 평소에 기른 풍부한 독서능력을 통하여 글 속에 갖가지 자기만의 이야기를 넣게 된다. 그래서 깊이 있는 글, 재미있는 글, 창의적인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독창적인 생각 가져야

기자 : “논술고사 채점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입니까?”

교수 : “학생들의 글이 서로 비슷비슷하다는 점입니다. 100명의 수험생 중에 똑같은 문장으로 시작되는 글이 수십 개나 발견되기도 합니다. 똑같은 문장은 아니더라도 거의 모든 학생이 비슷한 내용을 전개하고 있어서 채점이 불가능해지기도 합니다.”

기자 : “왜 그런 현상이 생기게 되는 것일까요?”

교수 : “논술에 정답이 있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입니다. 논술에는 정답은 없습니다. 잘 쓴 글과 못 쓴 글이 있을 뿐입니다.”

2006학년도 논술고사가 끝나고 S대학 채점위원장의 인터뷰 내용이다. 교수가 걱정하는 학생들의 논술은 학원에서 배운 대로 쓴 경우를 말한다.

글짓기 대회가 끝나면 자신의 아이는 글을 잘 쓰는데 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는지 모르겠다고 문의하는 부모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학생의 공통점도 어디선가 본 듯한 글, 누구 것을 베껴놓은 것 같은 글을 쓴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이 문제의 해결방안 역시 독서에서 찾을 수 있다.

학생들은 똑같은 교과서를 가지고 공부한다. 폭 넓은 독서를 하지 않고 교과서만 달달 외우는 학생, 학원에 가서 교과내용만 배우는 학생은 모두가 비슷한 내용의 스키마를 소유하게 된다. 즉 학교와 학원에서 교과서를 공부하고, 예상문제집으로 공부한 학생들은 붕어빵처럼 똑같은 스키마를 소유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제목만 같으면 같은 내용의 글이 모든 아이들에게서 자동적으로 쏟아져 나오게 된다.

글짓기 대회에서 실망하는 어린이의 경우도 자신만의 생각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흔한 스키마, 누군가에게 배운 보편적인 스키마밖에 갖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만의 글을 쓰지 못하는 어린이다. 그러나 다양한 책을 통하여 다양한 세상을 경험한 아이들은 다양한 스키마를 가지고 있어서 알고 있는 정보를 가지고 스스로 변형시켜 창의적인 글을 쓰기 때문에 똑같은 글을 쓸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우리가 넓은 세상을 두루 여행하면서 이국의 경치를 감상할 수는 있지만, 그 나라 사회의 깊숙한 전통과 아픔을 보기는 어렵다. 또 아무리 여행을 해도 100년 전, 1000년 전의 세상을 구경할 수 없다. 그러나 독서는 그런 공간적·시간적 제약을 넘어서 생생하게 당시의 세상을 구경시켜준다.

특히 문학 서적은 간접 경험의 보고다. 어린 독자들은 책 속에서 왕자가 되어보기도 하고, 거지가 되어보기도 한다. 무서운 정글을 탐험하기도 하고, 맹수와 대화를 나누어 보기도 한다. 책을 통하여 행복한 사람도 되어보고, 불행한 사람의 마음도 경험한다. 이렇게 얻은 스키마는 세상을 살아가는 능력이 되기도 하지만 글을 쓰고, 논술을 쓰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독서량이 빈약한 아이들이 단조로운 글을 쓸 때, 독서량이 풍부한 아이는 독창적인 글을 쓰게 된다.

◆ 논술 채점관이 점수 주기 싫어하는 글


1. 국화빵 논술(같은 제목에 같은 내용의 글을 쓰는 것)

2. 자신의 생각은 보이지 않고 책의 내용이나 지식을 잔뜩 써 놓은 글

3. 내용은 옳지만 논리가 서지 않고 횡설수설인 글

4. 논리는 서지만 독창성이 없는 글

5. 독창적인 생각을 논리적으로 전개했지만 문장력이 보잘 것 없는 글


남미영 ㈜클애들교육 부설 한국독서교육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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