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렁에 빠진 美 끝나지 않는 ‘부시의 전쟁’
입력: 2006년 03월 17일 07:27:08 : 4 : 0
 
미국이 바그다드에 미사일 세례를 가하는 것으로 시작한 이라크전이 오는 20일로 3주년을 맞는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며 내세웠던 갖가지 이유와 명분이 무엇이든 이라크 침공 3년을 맞는 이 시점에서 남은 것은 유혈 정파갈등이다. 지금 이라크는 사실상의 내전에 접어들었고, 새 정부 구성은 총선을 치른 지 3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표류하고 있다. 이라크 정파를 한데 묶을 구심점이 사라진 것이다. 이 때문에 연방단위로 이라크를 분할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이 준비없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놓은 결과다.

종파갈등은 시아파가 아끼는 아스카리야 사원이 지난달 폭탄테러 공격으로 훼손되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사건 직후 최소 200여명의 시민이 시아·수니파간 보복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교수형되거나 손이 묶인 채 총살되는 등 처참하게 살해된 시신이 요즘도 거의 매일 발견된다. 공격은 조직적이다. 후세인 시절 탄압당했던 시아파는 전후 11만 군·경조직을 장악한 채 수니파를 탄압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이라크 내무부청사에서 고문·감금된 수니파가 170여명이나 발견됐고, 살해된 수니파 성직자가 지난해 5월 이래 60여명에 이른다.

분리 움직임은 지역별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전체 인구 15%를 차지하는 북부 쿠르드족은 사실상 독자적인 군사력 보유까지 가능할 정도로 자치권을 확보했다. 독자적으로 외국기업과 원유개발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인구 60%인 시아파는 남부에 엄격한 이슬람식 제도를 주민에게 적용하는 등 신정(神政)사회를 건설 중이다. 모두 자치를 선언할 적당한 시기만 기다리는 형국이다. 석유 없는 척박한 땅 중부에 고립된 수니파는 시아파에 맞서는 저항세력의 온상 역할을 하고 있다. 종파갈등의 안전장치가 붕괴점에 도달한 상태라는 진단까지 나온다.

이들을 통합할 중앙정부의 위상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새 의회는 선거후 꼬박 3개월 만인 지난 16일 개원했다. 원래 지난 1월 예정이던 정식 정부출범은 총선후 석달이 넘도록 교착상태다. 시아파 총리지명자인 이브라힘 알 자파리의 인준문제를 놓고 정파간 씨름이 이어지고 있다. 내각구성에 합의한다 해도 산적한 현안들을 처리할 수 있는 기능이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식된 민주주의’의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난 셈이다. 특히 전후 미국의 보호하에 구성됐던 임시·과도정부 주도세력들이 정파이익에 매몰되면서 중심이 흔들렸다. 미국은 이런 정치상황에서 어떤 견제 또는 통합역할도 하지 못한 채 방관자로 전락했다.

이라크 정계가 권력투쟁의 장으로 변질되는 동안 이라크의 민생은 도탄에 빠져들었다. BBC방송은 “이라크에서 법과 질서가 붕괴된 ‘정치공황’ 상태가 계속돼 매달 수백명이 고문 등으로 불법처형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라크 보디카운트에 따르면 민간인 사망은 전쟁 1주년때 6,331명, 2주년 1만1천3백12명이었고 이번 3주년에는 1만2천6백17명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납치산업은 번성하고, 치안불안으로 만인이 무장하는 상황이 됐다. 미·영연합군이 ‘안정적인 민주주의 향유’를 약속했던 이라크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로 꼽히고 있다.

이라크 전후 불안한 상황은 미국이 꼽은 ‘악의 축’인 시아파 신정국가 이란에 호재를 안겼다. 이라크 시아파의 대표적 지도자인 압둘 아지즈 알 하킴 등 과거 이란망명 인사와 남부 시아파 세력을 중심으로 이라크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는 양상이다.

대량살상무기(WMD)도 발견되지 않고, 재건의 가능성도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 이라크에서 발을 빼려는 연합군의 움직임은 올해들어 더욱 가시화되고 있다. 연합국수는 개전 당시 35개 다국적군에서 올해 26개국으로 줄게 된다. 최대 규모 파견국인 영국과 한국도 병력규모 축소에 나섰다. 이런 움직임에 맞춰 미국에서도 철군 목소리가 높다. 민주당은 13만 이라크 주둔 미군을 연말까지 전원철수하는 전략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이라크전의 실수로 중동 전체에 퍼져나간 반미, 반서방의 기류를 뒤집기에는 때늦은 결정이다. 1920년대 이라크를 점령했던 영국의 역사가 ‘통제 불가능한 정파갈등의 수렁’을 예고했는데도 강행된 전쟁. 3년이 지난 지금, 과연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는지 세계는 묻고 있다.

〈최민영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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