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여자 살인 사건 2 | 소설 사건과 사람 2006/02/2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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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판이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마치 그들의 거짓말 대회를 보는 느낌이었다. 잠시 후 김용국의 처 가 따라왔다.

  “남편이 진실하지 못할까봐 마음이 조마조마 했어요”

  긴장한 얼굴이었다. 가난해도 정직한 사람을 보면 맑은 샘물을 본 것 같다. 나는 그녀의 남편 김용국이 어떤 부분은 의도적으로 숨기는 걸 느끼고 있었다. 재판장도 계산된 정직성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오늘 방청 온 회장 측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내가 궁금해 하면서 물었다. 연극 같은 법정보다 그 뒷 무대가 그들의 저의를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회장님이 부리는 사람들이 전부 출동했어요. 법정 내려오는 계단에서 회장님을 만났는데 저보고 ‘좋은 변호사 구했구만 잘 해봐’하고 빈정 대시더라구요. 회장님이 뒤에서 전체를 지휘하고 계시는데 친척들 말이 로펌에 거액을 줬다고 하더라구요. 자기들은 무죄로 빠져 나간대요. 로펌의 높은 변호사들이 뒤에서 검찰과 법원 고위층까지 움직일 거래요.”

  요즈음 로펌은 고위직에 있던 법조인을 영입하기도 했다.

  “남편 김용국씨를 위해 증언해 줄 친구가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회장부인이 지난번 너무 나쁘게 말했다. 그걸 희석시켜줄 어렸을 적 친구가 필요했다.

  “남편이나 마기룡을 다 아는 고등학교 동창 한 분이 보일러기사로 있어요.    그렇지만 여기 올 시간은 없을텐데.”

  “그럼 내일 같이 가 봅시다.”

  나는 움직이기로 했다. 발로 뛰어야 한 사람의 얘기라도 더 들을 수 있다. 그들의 고교시절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다음날인 토요일 인천 쪽으로 가는 오후의 지하철은 붐볐다. 나는 흔들리는 차 안에서 김용국의 처에게 물어 보았다.

  “회장부인과 싸운 적이 있어요?”

  수사기록 중에 간단히 그런 내용이 있었다.

  “남편이 잡혀 오기 전이었어요. 회장부인인 고모님이 울산의 분식점 앞에서 저를 보자고 했어요. 어떻게나 치밀한 여잔지 고모는 그때도 기록이 남는 비행기는 절대 타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자기차도 타지 않고 버스로 다녔어요. 분식점 앞에 대놓은 빌린 친척차 안에서 만나자고 해서 그 차 안으로 들어갔죠. 모자를 쓰고 커다란 썬글래스를 쓰고 있더라구요. 자신을 철저히 감추고 있는 거예요. 차안에 들어가 인사를 했는데도 도무지 말을 안 해요. 녹음이라도 할까봐 그랬나 봐요. 그때 저는 정말 화가 났어요. 남편이 베트남까지 도망을 갔는데 고모인 회장부인은 뭔가 설명이 없는 거예요. 전 그 치밀한 성격을 알기 때문에 멍청한 남편이 이용당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그 집 파출부를 좀 해봐서 인간성을 알아요. 제가 막 따졌죠. 이렇게 된 판에 이젠 고모라던가 회장부인이 저하고 무슨 상관이예요? 제가 남편을 이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어요. 진실이 뭐냐구요? 그랬더니 고모가 자기는 모른다는 거예요. 그 말에 제가 모를 리가 있느냐 뒤에서 다 시켜놓고 같이 일한 걸 아는데 그렇다면 어디 경찰서에 가서 진실을 같이 따져보자고 덤볐죠. 말하는 도중에 고모가 나보고 도대체 조카며느리라는 게 어디 이따위 버릇이 있느냐고 뺨을 한대 갈기더라구요. 저도 그동안 쌓였던 게 폭발해서 같이 덤벼 들었어요”

  어느새 차창 밖으로 부천역이란 간판이 보였다.

  “그 다음은 어땠어요?”

  회장부인은 김용국의 처가 산통을 깨지 않을까 걱정을 했을 것이다.

  “며칠 후에 시누남편을 통해 연락이 왔어요. 제 남편이 총대를 메주면 50억원을 주겠다는 거예요. 회장이 시누남편에게 그렇게 얘기했대요.”

  “그래서 뭐라고 대답 했어요”

  “나이 많으신 고모님이 죄 값을 받으시고 젊은 조카인 우리남편은 살아야 하지 않느냐면서 거절했어요.”

  “그 돈을 받고 싶은 유혹이 없었어요?”

  내가 놀라면서 물었다. 거절하기 힘든 금액이다.

  “회장부부는 철저하게 남 줄 돈 안주고 해서 부자 된 사람인걸 제가 압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제가 또 속아보세요. 평생 얼마나 한이 남겠어요? ”

그녀는 회장부부를 신뢰하지 않았다.

  “참 변호사님”

  그녀는 갑자기 어떤 생각이 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죽은 정혜경이 머리에 총을 여섯 발 맞고 죽었잖아요?”

  “그랬죠”

  난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다.

  “총을 여러 발 쏜 건 원한의 표현이 아니겠어요? 저는 그 말을 전해 듣고 처음에 회장부인이 쏜 걸로 알았어요.”

  일리가 있었다. 마기룡은 프로가 아닌 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렇게 침착하게 죽이기가 힘든 것이다.

  “사위여자관계를 폭로한 처음의 그 전화는 어디서 온거죠?”

  내가 물었다. 괴 전화를 한 사람도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사귀던 여자 아니면 중매쟁이라고 해요.”

  “그 외 이 사건에 대해 생각나는 게 없어요?”

  그들이 흘려버린 한조각의 진실이라도 발견해 내고 싶었다.

  “한참 나중에야 이해한 사실이 있어요. 회장부인이 남편과 통화를 하는데 그게 맞냐? 확실하냐? 그런 소리들을 자주 하는 걸 옆에서 들었어요. 전 그때 그 소리가 뭔지 이해하지 못했죠.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까 그건 독극물 얘기인 것 같았어요. 살인교사가 틀림없어요.”

  지하철이 어느새 중동역 플랫폼에 들어서고 있었다.


  김용국의 친구가 보일러 일을 한다는 역 근처의 허름한 빌딩은 한산했다. 3층의 제약회사 빈 사무실에서  김용국 마기룡의 고교동창이라는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용국이나 기룡이는 다 고향친구고 동창이죠. 용국이 하곤 어려서부터 불알친군데 그렇게 죄를 질 독한 애는 아닌데요. 친구들 사이에서는 마음이 넉넉한 편이었어요. 동창들 모두 뉴스를 보고 놀랐죠.”

  그의 표정과 말에서 진실이 느껴졌다.

  “김용국은 학교 때 껄렁껄렁하고 싸움을 잘했다면서요?”

고모인 회장부인은 법정에서 그렇게 몰아쳤다. 살인을 할 수 있는 성질을 암시하는 말이었다.

  “용국이 원래 싸움 못해요. 전혀 그런 소질이 없다니까요.”

  “그럼 마기룡이는요?”

  “기룡이는 덩치도 좋고 싸움도 잘하는 편이었죠.”

  “김용국을 근래에 만나 무슨 얘기를 나준 적이 없어요?”

  “글쎄요 한번은 와서 자기가 미행을 하는데 같이 하자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근무 중인 사람이 어떻게 가느냐면서 안된다고 했죠. 아마 또 다른 친구가 미행할 때 몇 번 따라갔을 거예요. 뭐라더라? 돈 받을 사람이 있다고 했던가?”
  “마기룡은 어떤 사람이죠?”

  난 그의 성격도 자연스럽게 알고 싶었다.

  “2002년 2월인가 동창회에서 본 일이 있어요. 기룡이가 잠깐 있더니 일이 있어 가야한다고 그랬던 게 기억이 나네요. 저보다는 용국이가 기룡이하고 더 친한데  서로 아웅다웅하기도 했어요. 서로 어음을 빌려주기도 한 사이고요. 그런데 기룡이는 사채일을 하면서는  친구들을 잘 만나지 않았어요.”

  “마기룡씨 성품은 어때요?”

  “글쎄요 용국이 보다는 좀 사기성이 있다고 할까? 순진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허풍이 엄청 세요. 항상 말이 일이백만원이 아니라 몇 억 몇 십억 해요. 보일러공하는 나하고는 차원이 다르니까 기가 죽어요. 말이 안 통하는 거죠.”

  “마기룡씨는 무슨 일을 한다고 합디까?”

  “어디 가서 빚 받아내는 게 전문이래요. 그것도 용국이가 전한 말이지 기룡이는 자기가  뭘 한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어요. 평소 선한 사람은 그런 일 못하잖아요? ”

  “두 사람 성격을 비교한다면 어때요?”

  “글쎄요 마기룡이는 책임을 전가하는 성격은 아니예요. 자잘한 거짓말을 한다면 그건 김용국일 겁니다.”

  그가 옆에 있는 김용국의 처를 보면서 멋쩍은 듯 말했다. 처는 아무 말 없었다. 긍정하는 표정이었다.

  삼십분 후. 나와 김용국의 처는 역 부근의 허름한 식당에서 갈비탕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남편이 착한 성격이라고 친구가 그러는데 왜 이 사건에 말려 들었을까요?”

  내가 물었다.

  “회장부인인 고모가 남편에게 자기말만 잘 들으면 뭔가 해 줄 것처럼 남편을 꾀었을 거예요. 순진한 남편이 그 말을 믿고 한 면도 있을 거구요. 그렇지만 전 돈 한 푼 받아본 적 없습니다. 지금 생활비도 제가 파출부일을 하면서 법니다.”

  그녀는 내가 돈에 대해 의심할까봐 미리 막는 것 같았다. 그녀가 잠시 무슨 생각을 하다가 불쑥 이렇게 말했다.

  “회장부인이 무기징역이라도 받으면 가장 좋은 사람이 첩일 거예요. 지금 애가 학교 갈 때가 됐는데 정식으로 그 집 사모님이 될 위치니까요. 그런 면에서 회장부인 김귀숙도 알고 보면 불쌍한 여자예요. 사랑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돈의 노예가 된 사람이니까.”

  그 말에 난 문득 짚이는게 있었다. 회장의 변호방향이었다. 재판장은 이미 노골적으로 유죄의 심증을 나타내고 있었다. 로펌의 변호사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회장측은 김용국 부부와 마기룡 그리고 심지어 죽은 여대생의 아버지 정의택 까지 오히려 자극하고 있었다. 정의택과 김용국의 처가 다음증인으로 결정되었다.

 

 

                                                   12


  2004년 1월 29일 오후2시 40분. 창문하나 없는 법정 안은 묵지룩하고 불쾌한 기운이 흘렀다. 미리 법정에 온 나는 방청석을 둘러보았다. 붉은 얼굴의 회장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앞으로 회장부인의 자매들이 앉아 있었다. 그중 한명이 나와 눈길이 부딪치자 입을 삐죽거리고 흰눈을 치켜 올렸다.  나는 내가 발견한 진실을 글로 적어 재판부에 제출했다. 검사역시 그가 알아낸 진실을 법대에 올려놓는 것이다. 판사들은 그 싸움의 심판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회장부인과 내 의뢰인인 김용국과는 정반대의 입장이었다. 난 회장 측에서 돈으로 입을 막으려는 그 사실자체도 글을 통해 폭로했다.

  회장은 재판이 끝나면 나를 고소하겠다고 김용국의 처를 통해 협박해 왔다. 청부살인도 하는 사람들에게 협박은 아무것도 아닐지 몰랐다. 이왕 나선 김에 김용국의 처를 법정에 증인으로 세워 이차로 공개적으로 확실히 할 계획이었다.

  방청석 반대편에 그들이 죽인 여대생의 아버지 정의택이 고개를 떨 군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가 피해자인데도 방청석의 대다수인 회장 측 사람들은 자기네를 피해자로 착각하고 그를 미워하고 있었다. 이제 재판시작 5분전이었다. 무료한 듯 서기가 책상 앞에서 손가락을 하나하나 다른 손으로 주무르고 있었다. 그 옆에는 빨간 립스틱을 바른 속기사가 모니터를 보면서 공상에 잠겨 있었다. 법정 벽 위에 매미같이 달라붙은 시계의 바늘이 정확히 세시를 가리켰다. 재판장과 배석판사들이 법정으로 등장했다. 벽 쪽의 문이 열리면서 회장부인의 찡그린 얼굴이 보였다. 절룩거리면서 나오는 그녀는  세상의 고통을 혼자 다 진 표정이었다. 그 뒤를 따라 구깃한  재소자복을 입은 김용국이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그 역시 입이 잔뜩 부어있었다. 바로 뒤에 마기룡이 붙어있었다.

  마기룡은 허리를 낮추고 본능적으로 주위의 공기를 살폈다.

  이윽고 죽은 여대생의 아버지 정의택씨가 증인석에 올라와 앉았다. 정말 치밀한 공작을 하려면 회장은 설사 살인교사가 없었다 하더라도 그를 설득해야 했었다. 그러나 반대였다.  회장부인의 공판담당 변호사가 일어나 정의택에게 물었다.

  “증인은 진실을 밝혀 죽은 딸의 영혼을 밝힌다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돈보다 진실이 더 중요하다고 하셨죠?”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런 분이 어떻게 해서 이 사건의 일심판결이 나기도 전에 회장부인을 상대로 24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전 재산을 압류했죠?”

  변호사는 정의택에게 모욕감을 주었다.

  “죽은 딸이 발견됐을 당시 범인들은 체포되지 않았습니다. 검사는 그런 상태에서는 회장부인을 살인죄로 걸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전 독자적으로 살인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검사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민사로라도 진실규명을 하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그런 목적인데 그렇게 거액을 청구하신건가요?”

  변호사의 어조에는 빈정거림이 묻어 있었다.

  “제가 상담한 변호사는 회장부인 같은 그런 여자는 미국같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해서 천억이나 이천억이라도 받아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에게 서 그걸 다 빼앗아야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증인은 회장부인에게는 그렇게 민사배상을 청구했으면서도 김용국이나 마기룡은 그냥 놔두셨던데 왜죠?”

  “저 두 사람은 회장부인의 돈으로 망가진 불쌍한 살인도구들입니다. 내가 그런 인간들에게 돈을 청구하기 싫었습니다.”

  회장측은 철저히 그를 매도했다. 나도 김용국의 변호사였다. 한번쯤은 회장 측의 시각으로 정의택을 의심해 봤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는 무관심한 권력과 거대한 금력 앞에서 악전고투를 하고 있었다. 그는 수사해 달라고 사정하는 초조한 아버지한테 술과 뇌물을 얻어먹으면서 탐욕의 눈길을 번들거리던 형사들을 증오했다. 차라리 시골의 순박한 형사가 조사를 다 해주었다고 했다. 그랬다. 돈은 경찰도 검찰도 변호사도 그 누구도 마취시켜 사실을 왜곡시킬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증인 한 가지 다시 참고삼아 묻겠습니다.”

  검사가 끼어들어 물었다. 그는 영향을 받은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집요한 수사의지로 회장부인은 공판정에 선 것 같았다. 변호사지만 속으로 박수를 쳐주었다.

  “회장부인인 김귀숙은 정의택씨가 언론플레이를 하는 바람에 자기가 억울하게 범인이 됐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회장부인이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언론플레이라는 말을 쓴 자체가 순수하지 못한 정치성을 느끼게 했다.

  “사건이 터지고 수많은 기자들이 접근하고 인터뷰하자고 했습니다. 제 딸이 살해된 게 뭐가 그렇게 명예로운 일이겠습니까? 대부분 거절했습니다. 한번은 동아일보에서 ‘여대생이 알고 지내는 남자의 장모 구속’이라는 제목을 봤습니다. 피가 끓어올라 제가 그 기자에게 항의했습니다.  이종 사촌 오빠를 알고 지내는 남자로 표현하느냐고 말이죠. 그런 식이면 당신 외삼촌은 알고 지내는 여자의 동생이냐고 물었죠. 다음부터 그런 원색적인 제목은 없어졌습니다. 애비로서는 정말 언론과는 얘기도 하기 싫고 힘들었습니다. 지난 설날 모란공원에 뼈로 차갑게 남아있는 딸을 보고 왔습니다. 한창 즐거워야 할 청춘에 우리애가 왜 그렇게 되어 있어야 합니까?  ”

  그는 특히 문제의 발단인 조카 김판사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그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아는 사람이 얘기해 주는데요 김판사 자기 때문에 내 딸 혜경이가 살해당하고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데도 얼마전 법원부장과 김판사 그녀석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김판사는 이 사건을 너무나 남의 일 같이 생각하는 태도라는 겁니다. 그렇게 이기적인 놈이라 대학때부터 이종사촌인 우리 혜경이가 좋아하지 않았어요. 대한민국은 그런 놈을 판사로 쓰고 있습니까?”

  그의 분노가 재판부의 가슴에 투사되고 있었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제가 이 재판 전에 이 글을 한부 드렸는데 읽으셨습니까?”

  “읽었습니다.”

  나는 내가 발견한 진실을 기도하고 적었었다.

  “잘못 쓰거나 진실에 어긋난 게 있습니까?”

  “아닙니다. 인정합니다.”

  일단 진실은 밝히고 용서를 구하는 게 태도라는 생각이다. 변호사가 돈에 취해 사실을 왜곡하면 그건 또 다른 범죄다.

  “딸의 시신을 처음 봤을 때 감정을 얘기해 주시죠.”

  “우리 혜경이가 죽은 지 열흘이 됐는데도 내가 갔는데 눈을 한쪽 번쩍 떴어요. 그리고는 입을 씰룩거렸습니다. 저는 그런 걸 믿지 않는 사람인데도 한 맺힌 딸의 영혼이 가지 못하고 나를 기다렸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말을 끝내자마자 그는 “허억”하고 마른 울음을 터쳤다. 재판장과 배석판사들이 그의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그는 철저히 침착하려고 애를 쓰면서 말을 계속했다.

  “죽은 딸의 하얀 얼굴을 보고 처음에는 총에 맞은지 몰랐습니다. 양미간에 구멍이 보여서 굵은 송곳에 찔린 줄 알았어요. 이미 경찰이 얼굴에 피를 닦아 놓은 것 같았어요. 판사님들은 수사를 하지 않으면서 민적거리는 형사반장이나 죽은 애 아버지가 사주는 밥과 술을 느긋하게 쳐 먹는 제 마음을 짐작이나 하시겠습니까? 차마 제가 세부적인 사항은 말씀 못드리겠습니다만 인터폴에 협조하는 것 까지 저 아니면 이 사건 밝히지 못했을 겁니다.”


  “이 넥타이를 보세요”

  그가 자기가 매고 있는 포도주색 넥타이를 가리켰다.

  “이건 죽은 딸 혜경이가 선물한 겁니다. 저 악마 같은 더러운 여자가 끝까지 빠져나가려고 한다면 목숨을 걸고 따라가서 우리 혜경이 복수를 할 겁니다. 그래서 저는 재판이 열릴 때마다 이 넥타이를 매고 나옵니다.”

  그가 한 맺힌 얼굴로 고개를 돌려 회장부인을 바라보았다. 기세등등하던 회장부인이 순간 움찔했다. 나는 다음질문으로 들어갔다.

  “증인역시 살해되실 뻔 했죠?”

  그 말에  정의택씨가 갑자기 고개를 휙 돌리며 소리쳤다.

  “야! 이 놈!”

  순간 마기룡의 목이 자라같이 들어갔다.

  “네가 날 죽이려고 할 때도 내가 험하게 대하지는 않았는데 어떻게 내 딸을...”

  정의택이 울부짖었다. 그가 재판장을 보면서 절규했다.

  “재판장님 저는 할 수만 있다면 제 목숨을 바쳐서 저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고 싶습니다.”

  법정에는 냉냉한 법만 아니라 그런 피해자의 격분이 있어야 했다. 그래야 사회적분노도 판사들의 가슴에 저며 든다.

  나는 그 순간 회장부인에게로 무심코 시선이 갔다. 기가 죽을 만 한데도 회장부인은 고개를 빳빳이 든 채 검은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잠깐만요”

  그녀가 손을 들면서 말했다. 재판장이 허락하거나 말거나 그녀가 소리쳤다.

  “저 사람은 말이죠. 소설을 쓰고 있어요  거짓말입니다.”

  나는 악마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13 


  회장부인의 공판담당 민 변호사가 김용국과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김용국을 몰아쳐서 회장부인이 살인을 교사했다는 그의 진술을 뒤엎어야 했다. 살인범들은 일심에서 회장측이 변호사를 붙여주고 말을 맞춰만 주면 거액을 주겠다고 유혹했었다고 내게 알렸다. 서로간의 불신 때문에 그게 뒤틀렸다. 살인 잔대금도 제때 안주는 신용 없는 여자를 어떻게 믿느냐고 그들은 투덜댔다. 회장부인만 빠져나가고 자기네만 목에 밧줄이 걸리면 억울하다는 것이다. 이젠 진흙 밭의 개싸움이었다. 때 묻은 재소자복의 김용국이 증인석에 올랐다. 결연한 표정이었다. 회장부인이 앞에서 그를 뱀처럼 노려보고 있었다. 방청석의 회장 측 사람들이 그에게 차디찬 시선을 보냈다. 김용국은 그걸 의식했는지 얼굴이 벌개 졌다. 우유부단한 그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유도신문에 넘어갈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 말을 바꿀 수 있었다.

  “잠깐만요”

  검사가 먼저 재판장에게 발언을 요구했다.

  “지금 방청석에는 회장부인의 가족들만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김용국이 아주 꺼려하는 친척들이기도 합니다. 그들을 퇴정시킨 후에 진술하게 해 주십시요.”

  “변호인 측도 한마디 하겠습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말을 시작했다.

  “검찰 측의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변호사인 저는 김용국이  그를 미워하는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진실을 말해야 더욱 신뢰를 얻으리라고 봅니다. 눈치 보면서 안 보이는데서 말하면  계산된 정직입니다.”

  “그것도 그러네요”

  재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관련자들이 다 그 자리에 있기를 원했다. 입은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순간적인 표정이나 감정이 더 정직했다. 김용국이 말을 할 때 회장부인의  반응을 보고 싶었다. 회장부인역시 죄가 없다면 눈을 부릎뜨고 김용국의 증언을 들어야 할 입장이었다. 그때 민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이 자리에 김귀숙 피고인은 있을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몸도 불편하신 분인데 퇴정하게 해 주시죠.”

  내가 즉각 일어서면서 반대했다.

  “아닙니다. 김귀숙 피고인도 이 자리에서 김용국의 증언이 사실인지 아닌지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회장부인이 순간 의심의 눈으로 나를 쏘아봤다. 재판장이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면 입회여부는 당사자의 의사에 맡기겠습니다. 김귀숙 피고인! 어떻게 할래요? 남아서 김용국이 증언하는 걸 들을래요? 아니면 먼저 교도소로 가서 쉴래요?”

  회장부인은 자기 변호사에게 다시 ‘어떻게 할까?’라고 눈으로 물었다. 민변호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 알아서 할테니 가도된다’라는 싸인을 보냈다. 회장부인이 이빨을 드러내며 다짐하듯 한마디 했다. 아픈 듯 찡그린 표정도 지었다.

  “나중에 오늘 김용국이가 한 말들을 제가 다 확인하고 진술할 수 있는 거죠?”

  “다 할 수 있어요. 걱정 마세요.”

  민 변호사가 말했다.

  “알았어요. 그럼 먼저 갈께요.”

  그녀는 천천히 법정을 빠져나갔다. 민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김용국을 노려보며 이렇게 서두를 꺼냈다.

  “김용국이가 워낙 거짓말을 많이 해서 오늘 오전법정 내내 신문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재판부에 선입견을 주려는 말이었다. 김용국이 침묵했다. 나는 항의하려다 참았다. 이윽고 민면호사가 물었다.

  “증인은 중국에서 잡혀 한국으로 압송된 4월11일 밤 정혜경을 살해한 적이 없다고 조사관 앞에서 진술했죠?”

  “그렇습니다.”

  “그런데 다음날인 4월12일에는 정혜경을 직접 죽였다고 하면서 진술서까지 썼네?”

  “그렇습니다.”

  “그러면 첫날은 거짓말을 했던 거네요?”

  “저 그게 왜냐하면 ---”

  “아니 나도 그 이유는 아는데 거짓은 거짓 아닙니까?”

  “----!!----”

  김용국이 얼굴이 붉어지면서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하루 만에 말이 그렇게 달라졌을까? 왜 그랬죠?”

  “처음에는 마기룡이가 나보고 중국에서 짠 씨나리오 대로 하자고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마기룡이를 조사한 형사가 마기룡이가 심경변화를 일으켜서 다 불었대요. 그러면서 저보고 조서를 다시 쓰자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런 줄 알고 다시 말했어요. 버티면 나만 나쁜 놈 되는 거 아닙니까?”

그때 듣고 있던 검사가 “잠깐만요”하고 끼어들어 김용국을 보면서 따지듯 물었다.

  “이봐요 김용국씨 진술을 번복하게 된 건 전화추적이나 금융거래추적을 통해 사실이 드러나니까 어쩔 수 없이 했잖아?”

  “그건 아니구요. 마기룡이가 말을 번복해서 저도 말을 바꾼 겁니다.”

  민변호사가 씩 의미 있는 웃음을 웃으며 다시 질문을 했다.

  “회장부인인 고모의 지시로 정혜경을 살해했다고 하면 선처할  수 있다고저 검사가 조사할 때 회유했죠?”

  “아니요 그런 사실 없습니다.”

  김용국이 단호히 부인했다.

  “없긴 뭐가 없어요? 일심에서 저 검사가 잘 봐주겠다고 하다가 사형을 구형하니까 당신부인이 저 검사를 따라가서 막 항의하고 당신 일심 변호사도 구형량을 줄여준다고 해서 협조했는데 왜 사형시키려고 하느냐고 따졌잖아요? ”

  “그런 거 없었다니까요.”

  “없긴 뭐가 없어요? 내가 들은 얘기가 있는데”

  민 변호사가 단정적인 어조로 추궁했다. 방청객들의 분노가 화살이 되어 검사에게 날아갔다. 검사가 발끈한 얼굴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가 재판장을 보며 소리쳤다.

  “아니 있지도 않은 사실을 가지고 변호사가 왜 저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난 항의 받은 사실이 없어요. 오히려 김용국씨 부인이 내게 고맙다고 절까지 했어요.”

  검사가 법의 도마에 올랐다. 민변호사가 날카롭게 되받았다.

  “사형시켜달라고 한 사람한테 고맙다고 절까지 했다구요? 그러지 마세요. 난 분명히 그 얘기들을 들었다니까요.”

  “그러면 그 증인을 불러 물어봅시다. 변호사가 어떻게 있지도 않은 사실을 가지고 법정에서 그렇게 말합니까?”

  멱살잡이라도 할 기세들이었다. 변호사가 한 발 물러섰다.

  “뭐 정 그러시면 검사에 관해 진술한 부분은 공판조서나 녹음에서 삭제해도 됩니다. 이만하면 됐습니까?”

  그 말에 검사도 감정을 자제하고 자리에 앉았다. 민변호사가 김용국을 보면서 신문을 계속됐다.

  “도대체 회장부인이 어떤 살해지시를 했다는 거죠?”

  “고모님이 저한테 너도 알다 싶이 이사람 저사람 써서 미행을 해 봤는데 결말이 나지 않는구나. 더 이상 어쩔 수 없지 않니? 죽여 버릴 사람을 알아보라고 하소연 했습니다. 또 어떤 때는 네 동생 같으면 이렇게 지지부진 할 수 있느냐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일을 할 수 없다고 거절해야 하는 거 아니예요?”

  민 변호사가 따졌다.

  “늦은 시각이라 그냥 알았습니다하고 돌아왔습니다.”

  김용국이 얼버무렸다.

  “그럼 바로 살인을 승낙한 거네?”

  민변호사가 곤란한 질문으로 치고 들어왔다.

  “승낙은 아니고 그냥 알았다고 한 거죠.”

  김용국이 본능적으로 방어자세를 취하면서 얼버무렸다.

  “그 정도가 살인교사의  다예요?”

  민변호사가 확인했다. 그렇다면 범죄가 아니었다.

  “아니요 차로 돌아오는데 고모한테서 핸드폰이 왔어요. 다시 하소연을 했어요.”

  살인교사가 단순한 하소연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회장부인은 무죄였다. 유일한 증인인 김용국의 진술이 번복되는 순간이었다.

  “잠깐만요 잠깐만”

  검사가 손을 번쩍 치켜들고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회장부인이 눈물을 흘리면서 하소연한 건 제발 정혜경을 죽여 달라는 애원이었잖아요.”

  검사는 김용국에게 사정조로 물었다.

  “그렇죠 저는 그렇게도 받아 들였습니다.”

  김용국이 검사의 눈치를 보면서 화답했다. 민변호사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지금 변호인 신문 중 아닙니까? 검사가 뭐가 그렇게 근심이 되서 중간에 말을 잘라먹고 그럽니까?”

  검사가 쑥 들어갔다. 민 변호사가 다시 질문했다.

  “회장부인 고모가 살인을 부탁했다고 주장하는 그 무렵 증인 김용국씨는 처와 함께 방 얻을 돈을 고모한테 얻으러 갔다가 냉정히 거절당했죠? 처가 눈물까지 흘렸다면서요?”

  수사기록에 그런 부분이 있었다.

  “그렇습니다.”

  “상당히 섭섭했겠네? 다시는 고모를 보지 않고 싶었겠네?”

  “그랬죠.”

  “고모가 살인을 지시했다고 주장하는 시기가 바로 그 직후던데 그렇게 싫어하는 고모 말을 듣고 살인을 했단 말이죠?”

  김용국이 진땀을 바작바작 흘리고 있었다.

 

 

                                 14


  2004년 1월 12일 새벽 4시. 나는 어둠이 짙은 창밖을 바라보면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하얀 모니터 안에 커서가 깜박거리고 있었다. 오늘은 변호사인 내가 회장부인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날이었다. 어떤 걸 물어도 그녀는 머릿속에 입력된 시나리오 이외에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위기가 되면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것이다. 왜 모두들 밤새 생각한 꾀가 죽을 꾀인 줄을 모를까. 잡히지만 않으면 살인을 해도 괜찮다는 의식이었다. 걸려도 증거만 없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법정은 잔꾀와 술수의 게임장이다. 오히려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이 배신자가 된다. 사람들은 거짓말 할 권리가 있다 라는 권리장전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모니터에 회장부인에게 물을 사항들을 하나하나 써 나갔다. 나는 정직하게 묻고 그녀는 마음대로 거짓말하고 각자 자유다. 며칠 전 사형장에 다녀온 검사 한사람이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내게 얘기했다. 죽기 직전까지도 거짓말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인간존재의 본질에 대해 회의를 느낀다고 했었다.


  오전 10시30분. 고등법원 304호 법정. 법정의 공기는 항상 답답하다. 악한 기들이 차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회장부인이 도끼눈을 뜨고 표독스럽게 나를 보고 있었다. 발톱을 날카롭게 세운 그녀에게서 맹수의 인광이 내게 날아왔다. 불편했다. 하지만 나의 운명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조카 김용국 부부가 댁에 자주 오는 편이었나요?”

  내가 부드럽게 물었다. 신경을 곤두세웠던 회장부인이 갑자기 탐색하는 얼굴이었다. 이윽고 그녀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타일렀다.

  “매번 단답식으로 검사나 변호사들이 묻는 바람에 내가 제대로 말을 못해왔어요. 저 사실은 말이죠 IMF로 집까지 날린 오빠내외가 불쌍해서 몇 달 동안 우리 집에 와 있게도 했어요. 그 오빠 아들이 용국이죠.”

  그녀는 머리가 비상하게 돌고 있었다. 내가 또 물었다.

  “김용국 내외는 말이죠 회장부인인 고모님 댁은 어려워서 자기네가 가고 싶다고 마음대로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 나한테 말하던데 어떻습니까?”

  “에이 그런 건 없어요.”

  회장부인이 이빨을 살짝 보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들어보니까 그동안 주위의 친척이나 친정을 잘 도와주셨다고 법정에서 말씀을 하시던데 사실입니까?”

  난 그녀에게 유리한 것만 묻고 있었다.

  “그렇게 말했죠.”

  경계하던 회장부인의 눈이 순간 깔보는 빛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감을 가지고 말을 계속했다.

  “저는 오빠내외가 힘들어 할 때 불러서 같이 살기도 하고 옆에 있는 그 아들인 용국이 내외도 기사로 썼죠.”

  회장부인이 생색을 냈다.

  “그 정도가 아니라  조카 김용국이 내외가 집을 사는데 돈도 8천만원인가 거액을 도와주셨다면서요? 지난번 법정에서 그렇게 말씀 하셨었죠?”

  수사기록에 그건 살인청부자금의 중도금으로 되어 있었다.

  “그렇죠”

  경계의 빛이 거의 사라졌다.

  “참 따뜻하신 고모네요. 참 한가지 물어볼 건 십 오년 전 친조카 김용국이 결혼할 때 결혼식장에 가셨습니까?”

  회장부인은 가지 않았다. 회장부인이  움찔했다.

  “용국이가 결혼식 때 내가 지방에 살고 있었어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느냐면”

  그녀가 즉석변명을 만들고 있었다. 난 어조를 조금 높였다.

  “먼저 가셨었나 안가셨나 그걸 먼저 대답해 주시고 불가피한 사정을 말씀해 주시면 안 될까요?”

  “모르겠네요”

  그녀는 네 질문의 저의를 안다는 표정을 지으며 빠져나갔다. 그녀의 교활한 성격의 일단이 대화를 통해 노출됐다.

  “조카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다는데 이번의 그것 말고 조카 김용국이 결혼식이후 이 사건 무렵까지 15년 동안 경제적으로 몇 번 정도 도와주셨나요?”

  살인청부자금을 주기 전에는 한번도 없었다는 기록이었다.

  회장부인은 의도를 알아채고 동문서답으로 나갔다.

  “하여튼 액수는 정확하지 않은데 8천만원쯤인가 줬는데  그 날짜는 기억 못해요.”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나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계속했다.

  “그건 이번 살인사건중간시점에 처음 주신 돈이고 그 이전 조카가 지하 단칸방에서 어렵게 살아갈 때 도와주신 적이 있어요? 단 한번도 없다고 하던데”

  “그래요. 그 사이에 도와준 건 없어요. 그런데 말이예요”

  그녀가 발끈하면서 나를 혼내려고 시작했다.

  “됐습니다. 다음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내가 그녀의 말을 막았다.

  “아니 예요. 그냥 넘어가지 마요. 여보세요 왜 나는 말을 못하게 하죠? 난 단답식으로 예 아니요 하는 대답을 못하겠다고 했잖아요?”

  그녀가 독 오른 눈으로 나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좋습니다. 그러면 하시죠.”

  내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녀는 마음의 평정을 잃고 있었

  그럴때 자연스러운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순간 재판장이 끼어들었다.

  “이보세요 김귀숙피고인! 변호인이 묻는 말에만 대답하세요”

  회장부인이 재판장의 눈치를 보고 마지못해 입을 다물었다. 흔들리는 마음의 파문이 나와야 하는데 실패했다.

  “왜 살인사건이 터진 시점 전후에야 비로서 주택자금 8천만원을 주셨을까요? 그 전에는 보증금 천만원을 조카 김용국내외가 꾸러 갔을 때도 야멸차게 거절하셨다면서요.”

  “여보세요 천만원이 아니라 삼천 만원이었어요.”

  그녀가 흥분하며 외쳤다. 그녀의 담당 변호사는 부탁을 거절당한 김용국이 살인부탁을 들을 리가 있느냐는 식으로 다구쳤다. 난 그 반대방향으로 묻고 있었다. 내가 다시 물었다.

  “참 처음 법정에서는 김용국이가 협박을 해서 8천 만원을 주셨다고 했었죠? 왜 주신돈이 협박으로 빼앗긴 돈도 됐다가 사랑하는 조카 집사는데 준 돈도 됐다가 순간순간 바뀌죠?”

  내가 물었다. 난 이미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계속 했다.

  “김용국이 외국으로 도망을 친후 지방도시에서 몰래 그 처를 만나신 적이 있죠?”

  “만났어요 왜요?”

  “수사기록을 보면 그때 차가 흔들리도록 싸웠다고 하던데--”

  “그때 조카며느리가 버릇없게 굴어서 따귀를 한대 올렸죠”

  “그때 조카며느리가 우리남편 그렇게 만들어 놓고 어떻게 할꺼냐고 따졌다면서요? 그리고 같이 경찰서로 가자고 했죠?”

  “아니예요. 그때 저년이 경찰 앞잡이가 되서 나한테 온거예요. 자기남편을 빼달라구요. 내가 직접 마기룡에게 살인교사를 한 것으로 해 주면 자기 남편은 3년6개월만 살면 되니까 그렇게 해 달라는 것이었어요.”

  방청석 뒤에서 김용국의 처가 미동도 없이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회장부인이  입가에서 허연 거품이 튀어 나왔다.

  “지금 그런 말을 듣는 조카며느리가 본 변호인에게 하는 말이 그 며칠 후 친척을 보내 총대를 메주면 50억원을 주겠다고 하셨다면서요?”

  내가 정곡을 찔렀다.

  “천만에 그런 소리 하지 마슈. 저것들이 돈 때문에 나를 이렇게 만드는 거예요. 50억이 아니라 5억만 줘도 저것들은 나가 떨어지게 돼 있다니까.”

  방청석 뒤에서 김용국의 처가 무서운 눈으로 회장부인을 보고 있었다. 점심시간이었다. 재판장과 배석판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 회장부인이 씩씩거리며 내게  경고했다.

  “당신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지마. 생각해 보니까 조금 전에 내가 이리저리 휘돌린 것 같아. 그렇게 하면 못써.”

  이미 그건 어떤 또 다른 협박이었다. 나는 조금 능글스러울 필요가 있었다.

  “알았습니다. 잘못했어요. 전 죽고 싶지 않아요. 그렇지만 어떻게 합니까? 변호사가 직업인데 물을 건 물어야죠.”

  법정을 나와 사무실 쪽으로 향하는 데 김용국의 처가 따라왔다. 그녀는 걱정이 가득한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회장부인은 어떤 수를 써서도 감옥에서 나올 여자입니다. 그렇게 석방되면 나를 꼭 죽일 거예요. 난 괜찮아요. 변호사님도 조심하세요.”

  모골이 송연했다. 직업적 일인데도 사건마다 저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는 날 까지 살면서 내 일을 하는 것이다.


  오후 재판이 시작됐다. 푸른빛이 도는 회색양복을 입은 자그마한 남자가 증언 석에 올랐다. 안경 뒤로 선한 눈이 보이는 회사원타입의 사십대 남자였다. 그는 살인범 마기룡의 선처를 위해 스스로 증언석에 올랐다. 세상이 모두 살인범 마기룡을 흉측하게 봐도 또 그렇게 인정을 베푸는 사람도 있다.

  “마기룡과는 어떤 사입니까?”

  재판장이 물었다.

  “사회친구입니다. 제가 마기룡의 총을 보관해줬다가 구속됐었습니다. 집행유예로 풀려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부탁한다고 살인에 사용한 총을 보관해 줍니까? 증인은 마기룡을 어떻게 봅니까?”

  “제 시각에서는 마기룡이 사람이 여리고 착합니다. 저는 저 친구가 좋아 면회도 두 번 갔습니다. 거짓말을 하거나 의리를 저버리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잠시 뭔가 생각하더니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제가 야채납품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마기룡은 틈이 있으면 제 야채장사를 진심으로 도와줬습니다.”

  질퍽거리는 쓰레기통에서 갑자기 한 송이 꽃을 보는 느낌이었다. 수많은 범죄 속에서도 하번 베푼 마기룡의 따뜻한 마음이 그 결실을 맺은 것이다. 난 그를 다시 보게 됐다.

 

15


  “검사 의견 진술 하시죠”

  재판장이 논고를 명령했다. 검사가 흥분한 표정의 붉은 얼굴로 일어섰다. 속에서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재판장님 이 법정에서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검사의 솔직한 심경을 얘기하고 논고문은 나중에 내겠습니다.”

  검사 대각선 방향의 피고인석에 앉은 회장부인이 독기 품은 눈으로 검사를 노려보았다.

  “회장부인은 미행만 시켰다고 하면서 살인교사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신 회장부인이 아주 교묘하게 살인범인 김용국과 마기룡을 해외로 도피시켰습니다. 정말 미행만 시켰다면 왜 범인들을 도피시키셨을까요? 도피시킨 사실 그 자체가 벌써 살인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검사생활을 해 오면서 회장부인인 이 김귀숙 같이 뻔뻔스런 여자를 정말 처음 봤습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 여자입니다.”

  김귀숙의 얼굴에 냉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사형구형을 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웃음을 짓는 인간을 나는 처음 보았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검사가 계속했다. 

  “여대생 정혜경양의 시신이 발견되고 범인들이 해외로 도피했을 때 수사검사인 저는  회장부인이신 저 여자 김귀숙에 대해 살인혐의를 걸 수 없었습니다. 증거가 없기 때문이죠. 그때 김귀숙이 저를 찾아와서 뭐라고 한 지 아십니까? 빨리 김용국이가 잡혀 와서 진상이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교양 있는 지도층인사의 부인인 양 가장했습니다. 그러다가 천신만고 끝에 김용국이 잡혀 왔습니다. 회장부인은 검찰청에 와서 김용국을 보자마자 이번에는 ‘네가 거기서 죽지 왜 이렇게 왔니?’라고 말하는 겁니다. 마치 조카인 김용국이 명문가문의 망신이라도 시킨 듯 말입니다. 이건 검사인 제가 직접 목격한 사실입니다. 김귀숙은 모든 사실을 무조건 부인했습니다. 검사인 저는 김용국과의 통화내역서를 뽑아 하나하나 들이대야 마지못해 거짓을 섞어 조금 인정하는 독한 인간이었습니다. 김귀숙은 살인청부 자금을 단 일원까지도 현찰로 줬습니다. 그것도 차 안에서 은밀히 말입니다. 김귀숙은 한번은 조카 김용국에게 실수로 10만원 짜리 수표를 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마저 얼마 후 돌려달라고 하고 만원 짜리로 바꾸어줄 정도로 증거인멸의 습관이 뼈에까지 박힌 인간입니다. 살인청부자금을 현찰로 만들어 가지고 김용국에게 전하는 모습도 007을 방불케 합니다. 몇 대나 되는 자기차를 쓰고 기사를 대동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떤 때는 혼자 변장을 하고 택시를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급할 때도 절대로 자신의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꼭 공중전화를 사용했습니다. 김귀숙은 이렇게 완전범죄를 노린 무서운 인간입니다.”

  나는 오랜만에 용기 있는 검사를 본 것 같다. 그의 집요함이 아니면 회장부인은 이미 무혐의로 석방되었을 것이다. 살인교사가 유죄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사이비 교주들이 광신자를 시켜서 사람을 살해해도 무죄였다. 살인지시를 한 조폭 두목들도 쉽게 법망에 걸려들지 않았다. 돈의 힘은 살인청부업자들만 아니라 권력의 칼도 솜방망이로 만들곤 했다. 회장부인은 바로 그 힘을 신앙같이 믿고 있는 듯 했다.

  “김귀숙 측은 참 교활하게도 범행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검찰에서 추정한 사망시점과 실제 사망시점이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걸 트집 잡으면서 혐의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뇌에 대못이 박히고도 생존한 사람의 뉴스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또 몸에 바늘이 여러 개 들어 있어도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죽은 정혜경양도 실제로는 아주 작은 공기총알이 뇌에 박혔습니다. 숨골을 건드리는 치명상이 아니고 대뇌피질에 박혔다면 즉사하지 않고 오랜 시간 고통을 받으면서 서서히 죽어갔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망시각은 총기발사시각보다 훨씬 후일 수 있습니다. 더구나 3월의 기온이 낮은 산기슭에서는 부패가 아주 늦게 진행됩니다. 회장부인 김귀숙 측은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교묘하게 사건을 흐리고 있습니다.”

  난 악마변호사란 미국영화장면이 떠올랐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승소만이 많은 돈 많이 변호사의 목표인 것이다.

  “회장부인 김귀숙측 변호인은 범인이 여러명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화내역이나 CCTV에 촬영된 걸 보면 다른 인물들이 개입됐다고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또 김용국이나 마기룡이가 다른 사람들의 죄를 몽땅 뒤집어쓰고 갈 이유도 없습니다. 다른 범인들이 있다면 죄가 훨씬 가벼워지는데 사형의 위험을 무릅쓸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또 김귀숙 측은 죽은 정혜경의 머리통에서 나온 총알이 앞이마 뿐만 아니라 뒷통수에서도 발견됐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마기룡이 한 방향으로만 총을 쐈다는데 왜 앞뒤 다른 곳에서 총알이 나오느냐는 주장입니다. 이걸 보십시오”

  검사는 손가락을 총모양으로 해서 자기 이마에 가져다 댔다.

  “동물이나 인간이나 주먹으로 맞아도 머리가 즉각 반대쪽으로 반응합니다. 앞을 쏘면 머리가 돌아가고 그러면 다음총알은 뒷통수에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반동으로 다시 머리통이 돌아와 앞에 총알이 맞을 수 있습니다.”

검사는 총구처럼 손가락을 이마에 대고 마치 서부영화의 결투장면처럼 머리를 획 돌렸다가 다시 반동으로 제자리로 돌아오는 모습을 코믹하게 연기했다. 순간 나의 눈에 방청석 끝에 있는  여대생의 아버지 정의택이 보였다. 그의 붉어진 눈에 물기가 번들거렸다. 그때 갑자기 김귀숙이 손을 번쩍 들면서 발악을 했다.

  “재판장님 저 검사가 소설을 써요 소설을.”

  “가만있지 못해요?”

  재판장이 엄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어떤 다른 힘을 광신하는 그녀에게 재판은 국가와의 게임이었다. 자기무덤을 파는 그녀에게 차라리 측은한 느낌이 들었다.

  “김귀숙은 번복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르러서야 아주 조금씩 말을 바꾸는 인간 이하였습니다. 처음에 김귀숙은 저에게 너무너무 억울하다고 했습니다. 그런 김귀숙의 태도에 검사인 저도 깜빡 속아 저도 살인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조심해서 조사를 해 갔습니다. 그래서 일단 살인혐의는 배제하고 체포감금정도로만 조사했었습니다. 김귀숙은 검사를 그렇게 현혹시키고 그 와중에 김용국과 마기룡을 도피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있는 베트남에 전화를  걸어 자신은 전혀 관여하지 않은 것처럼 말하게 하고 그걸 녹음해서 증거로 만들어 두었습니다. 그러면서 검사인 제게 와서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자기 조카인 김용국이가 빨리 잡혀야 진실이 밝혀진다고 울먹이는 연기를 했습니다. 혐의를 받고 있는 자체도 명예가 훼손되는 듯이 말입니다. 그러다 정작 김용국이 잡혀오자 독 오른 얼굴로 김용국을 죽으라고 하면서 덤비는 걸 보고 검사인 저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정말 독하고 치밀하고 잔인한 여자입니다.”

  나는 회장부인을 바라보았다. 미동도 하지 않았다. 구속된 피고인 신분이면서도 좋은 옷을 입고 있었다. 아직도 미모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어리석은 김용국의 자백만 아니었다면 그녀는 부자의 착한 사모님일 것이다.

  “저 김귀숙이가 얼마나 다구 쳤으면 김용국이나 마기룡이 가 여대생을 잡자마자 죽였겠습니까? 정말 소름끼치는 장면은 김귀숙의 남편인 회장이 주가조작으로 대구에서 구속되어 재판을 받을 때였습니다. 김귀숙의 변호인들은 남편이 구속된 상황에서 어떻게 옥바라지에 바쁜 부인이 살인교사를 할 수 있었겠느냐 주장하고 있습니다. 변호사의 그런 주장이 보통사람들의 상식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김귀숙은 그 상식선을 넘어서 그런 상황에서도 밤에 서울로 상경해서 죽은 정혜경양 아파트 앞에 와서 김용국이 보여주는 총까지 확인하고 다시 내려갔습니다. 본 검사가 항공기 탑승내역과 비행기표를 확보하지 않았다면 저 여자는 죽을 때까지 그 사실을 부인했을 겁니다.”  

난 그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봐요 검사님!”

  회장부인이 다시 손을 들면서 소리쳤다.

  “가만 있지 못해요?”

  재판장이 화를 내면서 어조를 높였다. 교도관이 와서 회장부인을 제지시켰다.  논고는  결론 쪽을 향해 가고 있었다.

  “김귀숙은 살인청부자금을 주지 않았다고 계속 잡아떼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본 검사가 김용국의 동생통장을 들이대야 비로서 조용해졌습니다. 살인수고비를 간접적으로 위장해서 준 거니까요. 물론 이 법정에서는 그 돈들이 다 친척을 도와준 따뜻한 돈으로 변신을 시켰지만 말입니다. 본 검사는 돈을 받고 죽은 정혜경양을 미행한 자들로부터 들은 사실이 있습니다. 여대생을 미행시키고 회장부인 김귀숙은 미행자를 미행하는 독한 여자였습니다. 미행자들에게 여대생 정혜경을 조금도 놓치지 말고 밀착감시하라고 했습니다. 하루는 여대생 정혜경이 가다가 자기를 따라오는 낌새가 있어 방향을 백팔십도 바꿔 돌아서서 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미행자들도 정혜경이 보는데서 백팔십도 돌아서 따라오더라는 겁니다. 그 뒤에서 회장부인 김귀숙이 눈을 부라리고 있어서 그랬다는 겁니다. 검사실에 붙잡혀온 미행자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 알량한 돈 몇 푼 때문에 그랬다고 자백했습니다. 김귀숙은 심지어 판사사위집 현관에도 실을 붙여두고 미행자의 감시를 재확인 하는 여자였습니다. 김귀숙은 백퍼센트의 완전범죄를 저지르려고 한 극악무도한 인간입니다. 지금 이 법정에서도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저 뻔뻔스런 모습을 보십시요. 단지 자신의 의심만으로 사람을 죽인 저 여자는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살인을 계속 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을 소설 속에서나 있을 엽기적이고 패륜적인 살인얘기입니다. 사람을 죽여 놓고도 죽은 여대생의 아버지에게 단 한마디 미안하다는 말도 없습니다. 또 민사소송에 걸리게 되자 그 많은 재산을 빼돌리면서도 피해자 측에 단돈 1원도 공탁하지 않는 집안입니다. 재판장님 이 자리에 서 있는 저 악마를 보십시요.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저 여자는 죽어야 마땅합니다. 사형을 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방청석이 술렁거렸다. 다음은 김용국과 마기룡에 대한 검사의 논고였다. 김용국은 뭔가 희망하는 얼굴이었다.

  “김용국의 경우는 그래도 뒤늦게나마 반성하고 진실을 말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대생 정혜경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는 걸 알면서도 중간에서 바른 처신을 하지 않고 회장부인의 꼭두각시 노릇을 한 점, 또 상황이 난처해지자 해외로 도피한 파렴치한 점이 있습니다. 마기룡의 경우는 처자식도 없는 혼자의 몸이면서도 돈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사람을 확인사살까지 했습니다. 더구나 마기룡은 해외에서 신분을 숨기기 위해 성형수술까지 한 치밀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들에 대해서도 역시 사형에 처해 주십시요.”

  김용국과 마기룡의 얼굴이 흑빛으로 변했다. 회장부인 김귀숙도 처음으로 초조한 듯 손가락을 주물렀다.

 

16


  2004년 2월 4일 고등법원 304호 법정. 붉은 주단 의자에 앉은  재판장의 표정이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담담했다. 살인교사 혐의로 기소된 회장부인에 대한 변론의 순간이었다. 대형 로펌의 거물급 변호사들이 동원된 법정이었다. 먼저 장관급을 지낸 대표 변호사가 준비된 변론문을 들고 첫 포성을 울렸다. 그들은 변론조차 나누어서 했다.

  “오랫동안 심리를 해 주신 재판장과 배석판사께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이 사건에서 검찰이 여러 가지 의문점을 발견해서 진실을 밝혀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보니 검찰의 태도는 오히려 오해를 증폭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사건은 여대생의 사체가 산기슭에서 발견되고 나서야 본격적인 수사가 됐습니다. 현장에서 혈흔도 발견되지 않았고 여대생을 담고 올라갔다는 포대자루에 총구멍도 없었습니다. 총소리를 들은 사람도 없습니다. 이런 정황을 볼 때 저희 변호인단은 여대생이 제3의 장소에서 살해되어 이동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범인들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과의 전화내역 만으로 회장부인 김귀숙을 구속했습니다. 그것도 살인죄가 아닌 체포 감금혐의정도였습니다.”

  사건이 교묘하게 변질되어 가고 있었다. 그가 계속했다.

  “중국에서 범인들이 압송되어 첫 진술을 했을 때  저희 변호인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들이 제3자에게 부탁해서 한 범행이라고 진술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음날부터 범인 김용국의 말이 번복됐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모든 수사는 김용국의 말에 꿰어 맞추는 형식으로 진행됐습니다. 김용국의 거짓말을 근거로 한 이 수사는 결국 추리소설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담당변호사가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가면서 변론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회장부인 김귀숙은 거물급 변호사의 지원사격에 비 맞은 식물처럼 되살아나고 있었다. 회장부인의 공판전담 변호사가 그 뒤를 이어 변론했다.

  “김귀숙이 살인교사를 했다는 점에 대한 증거는 오직 김용국의 진술뿐입니다. 검사의 말처럼 김귀숙이 치밀하고 독한 여자라면 범행방법이나 사체처리에 대해서도 역시 면밀히 계획을 세워 실행했어야 마땅합니다. 치밀한 회장부인 김귀숙은 미행을 시키고도 다시 그 뒤를 미행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대생을 살해한 뒤에는 그 모든 걸 김용국에게 맡기고 전혀 관여하지 않은 걸로 되어 있습니다. 성격상 과연 그게 일관성 있는 맞는 행동일까요?”

  죽은 시신을 낙엽만 덮어둔 사실도 허술했다.

  “김용국은 미행을 하면서 회장부인으로부터 차도 지원받고 돈도 얻어 썼습니다. 그렇다면 살인을 지시받았다면 얼마나 거액을 약속받았을까요? 그런데도 경찰에서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김용국은 고모인 회장부인으로부터 살인에 관해 자기는 단 한 푼도 약속도 하지 않고 돈을 받은 적도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또 그가 받은 1억5천 만원의 살인청부자금은 모두 마기룡에게 전달했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김용국이 과연 고모인 회장부인을 위해 그렇게 충성했을까요? 더구나 이 사건 살인시점은 김용국 부부가 고모인 회장부인을 찾아가서 방을 얻을 돈을 도와달라고 했다가 냉정하게 거절당했습니다. 퍽이나 섭섭했다는 감정 표현이 수사기록에 그대로 적혀 있습니다. 그렇게 섭섭한 고모의 살인부탁을  그냥 해 주었다는 게 과연  맞는 말일까요?  더구나 김용국은 살인에 직접 관여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고백한 진실은 순수한 진실이 아닙니다. 겉으로는 어눌한 모습을 하면서 철저하게 계산된 형식적인 진실입니다.”

  변호사인 나 역시 일말의 의문을 품고 있었다. 민변호사가 계속 지적해 나갔다.

  “이 사건수사의 논리적인 모순점을 대도록 하겠습니다. 김용국은 살인계약금을 이미 전달했는데 회장부인 김귀숙이 그걸 돌려달라고 하면서 안주면 아이들 학교까지 찾아가 행패를 부리겠다고 하는 바람에 살인까지 했다고 자백하고 있습니다. 이게 과연 성립할 수 있는 얘기인지 의심스럽습니다. 미행이란 건 부도덕하지만 큰 범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살인의 경우는 다릅니다. 회장부인 김귀숙이 돈을 돌려달라고 공개적으로 아우성 칠 수 있는 입장이 못 됩니다. 자신의 살인청부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녀는 사회적 지명도가 있는 상장회사들을 거느린 그룹의 회장부인입니다. 살인계약금을 돌려달라고 난리난리 쳤다는 김용국의 말이 맞는 소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이건 모두다 김용국이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방청석이 술렁댔다. 회장부인 김귀숙이 옆에 있는 김용국을 쏘아보고 있었다. 민변호사가 서서히 결론을 짓고 있었다.

  “형사재판에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입증의 정도는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신을 가지게 해야 한다는 게 대법원판례입니다. 따라서 이 사건은 무죄입니다.”

  방청석의 회장 측 사람들로부터 소리 없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결국은 연결고리인 김용국의 유일한 증언이 신빙성을 잃고 있었다.  나 역시 김용국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작은 일을 우물쭈물 하다가  큰 의심을 받는 바보였다.  다음은 나의 차례였다.

  “김용국의 변호인인 저는 이 사건을 맡으면서 한 가지 절대적인 조건을 달았습니다. 그건 김용국이나 그의 처가 진실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변호를 그만두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변호사의 임무역시 실체적 진실발견이 먼저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변호사 윤리상 의뢰인의 만족이 먼저인가 진실이 먼저인가의 선택문제가 있었다. 개인사업인 이상 고객을 만족시키고 높은 보수를 받는 것도 탓할 수는 없었다. 그런 경우 교활한 공작이 진행되기도 했다. 머리 좋은 변호사들이 모여 치밀한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증인들을 매수하고 검사의 칼날을 무디게 했다. 담당 재판장과 절친한 변호사들을 동원해서 판사의 시선을 죄인에서 친구 쪽으로 바꾸는 최면술을 걸기도 했다. 악마의 힘은 돈에서 나왔다. 대법원판례 하나를 만드는데 24억원이 들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난 그런 것들을 깨고 싶었다. 그들의 위선을 벗기고 싶었다.

  “이 사건에서 회장부인인 김귀숙은 절대로 살인을 교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심부름했던 김용국은 회장부인이 시켜서 살인을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둘 중의 한 사람은 철저히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변호사인 저는 김용국 피고인을 여러번 구치소에서 만나면서 관찰을 한 바 있습니다. 김용국은 치밀하게 살인을 계획하거나 실행할 만한 대담성이 없습니다. 그의 처나 친척을 통해 성격이나 살아온 행적을 살폈습니다. 친한 친구를 찾아가 만나 김용국 그가 어떤 성격의 소지자인가도 알아봤습니다. 그는 우유부단하고 상황에 적당히 반응하는 성질입니다. 법정에서 검사나 상대방 변호사가 날카롭게 던지는 질문에 대항할 지능도 없습니다. 증인신문들을 통해 보신 그대로 그는 자기모순의 논리에 당황하고 대답을 못한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몰아치면 판단도 없이 그대로 긍정해 버리는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회장부인인 김귀숙 측은 논리적으로 완벽합니다. 사회지도층 고상한 부인으로서 상식적으로 그럴 리가 있겠느냐는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범죄란 상식이 아닙니다. 김귀숙과 김용국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철저한 거짓말로 자신을 속이고 변호사를 속이고 대한민국 사법부를 속이고 있습니다. 저는 구태어 누가 거짓말을 했다고 단정하지는 않겠습니다. 재판부가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해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완벽한 논리 속에 진실은 없었다. 한 방울의 눈물 속에 분해서 더듬는 말속에 그리고 절망한 눈 속에 진실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으면 해 보세요”

  재판장이 최후진술을 명령했다. 회장부인 김귀숙이 다리가 아픈 듯 얼굴을 찡그리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환갑 나이에 살인죄에 연루되어 고모와 조카가 재판정에서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판사사위를 미행하다가 이렇게 나와 피고인이 됨으로써 판사 사위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법조계에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저는 지금 제 옆에 있는 살인범 김용국과 마기룡 때문에 수감생활을 하느라고 병을 얻고 가족들까지 죄인 아닌 죄인이 되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용서를 구해야 할지 어떨지 회한만 가슴에 사무칩니다. 저또한 딸을 가진 부모로서 어떻게 사람을 죽이라는 저주받을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저 또한 제2의 피해자가 되어 이렇게 서 있습니다. 재판장님께서는 검사가 쓴 소설을 보지 마시고 현명한 판단으로 저의 억울함을 풀어주시기를 간청합니다.”

  다음은 김용국 차례였다.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냥 죄송하죠.”

  김용국이 한마디로 끝냈다. 다음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마기룡이 종이 한 장을 품속에서 꺼내 읽기 시작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의 잘못이 꽃다운 생명을 없애고 그 가족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죽고 싶습니다. 저 역시 힘든 가정에서 태어나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고생하면서 자랐습니다. 남들처럼 평범한 가정을 꾸미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살아온 과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저는 죽는 것만이 속죄하는 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절망만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싶습니다. 정말 뼈저린 반성으로 살고 싶습니다.”

  결국 그는 재판장에게 목숨을 구걸하고 있었다.

  “그러면 2월5일 오후 2시에 판결을 선고하겠습니다.”

  재판이 모두 끝났다. 판사들이 퇴정을 하자 회장부인이 고개를 돌려 방청석의 가족을 보며 말했다.

  “내일 면회와”

  그녀는 사형구형을 받은 피고인의 얼굴이 아니었다. 이미  무죄를 약속받은 듯 미소 짓는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17


  사형과 무죄의 판결이 교차될 것 같았다. 살인범 김용국의 물귀신작전 같은 증언은 신뢰성이 없었다. 유일한 증언이 효력이 없다면 회장부인은 무죄였다. 대형 로펌의 거물변호사들이 로비에 전력투구할 것이다. 대법관을 지낸 선배가 내게 법원장시절의 경험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재판초기에 분명 중형을 선고해야지 하고 속으로 결심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이 되자 그의 마음은 어떻게 풀어 줄까로 자신도 모르게 바뀌어 있더라는 것이다. 제일 친한 친구가 변호사로  활동을 한 게 그런 변화를 만든지 나중에야 깨달았다고 했다. 그게 현실이었다. 먼저 증언이라는 버팀목을 없애 판사가 봐줄 수 있는 명분을 만든다. 다음으로는 강한 로비였다.

  그렇다면 물귀신 같이 살인을 지시받았다고 진술한 김용국은? 그는 사형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뒤에서 총 지휘를 하는 회장이 그런 작전을 하는 건지 의심스러운 면이 있었다. 완벽을 기하기 위해서는 그는 김용국을 계속 유혹해 그 담당변호사인 나를 배제해야 했다. 진실을 말하는 나는 그들의 눈으로 볼 때 목에 걸린 가시이기 때문이다. 또 회장은 어떤 방법을 택하든 죽은 여대생의 아버지를 진정시켜야 했다. 자신이 직접 구속도 되어본 노련한 회장이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그는 오히려 회유해야 할 인물들을 자극하고 있었다.재판장이 강한 소신파라면 어쩌면 회장부인은 영원히 감옥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위험성도 있었다. 나의 뇌리에 죽은 여대생의 빽빽하게 적힌 삶의 스케줄이 떠올랐다. 순간순간을 밀도 있게 살려고 애썼다. 오전시간을 흩트리지 않기 위해 새벽에 나갔다가 그녀는 인생전부를 도난당했다. 차디찬 이른 봄의 산기슭에서 서서히 죽어가면서 그녀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지금은 공원묘지의 납골당에서 사건과는 무관한 한줌의 재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산자의 세계는 치열했다.

  범인들은 모두 자기만 살려고 교활한 꾀를 부리고 있었다.

  여대생의 아버지는 재판장에게 저 사람들도 꼭 죽여 달라고 절규했다. 악인들은 자기의 피해자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오후 1시30분. 나는 법정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법원로비에  회장 측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나를 보는 그들의 눈길에 적대감이 가득했다. 그 중에 외딴 섬처럼 김용국의 처가 보였다. 진실을 얘기하게 해서 남편의 정상참작을 바라는 그녀는 친척들에게 배신자였다. 이기적인 그들에게는 회장부인의 석방만 보였다. 그들은 정말 인간적으로 회장부인을 동정할까.


  이윽고 나는 괴괴한 기운이 도는 법정에 들어섰다. 법정을 지키는 정리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다가와 물었다.

  “오늘 다른 심리가 있나요?”

  “아니요. 그냥 선고장면을 보기 위해 왔어요.”

  나는 선고 순간 재판장의 숨소리까지 그리고 살인자들의 얼굴에 스쳐가는 표정을 놓치지 않고 싶었다. 재판은 최대의 쑈일 수 있었다. 거짓말 하고 가짜눈물을 흘리고 위증을 하게했다. 돈을 받고 변호사는 머리를 빌려주기도 했다. 나는 차라리 범인들에게 거짓말과 한판의 쑈를 할 자격을 부여한다는 권리장전을 만드는 게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내가 더욱 흥미를 느끼는 것은 쑈가 끝난 후 배우들의 진면목이었다. 진실은 항상 무대 뒤에 숨어있었다.


  “모두 일어서 주십시오”

  정리의 외침이 들렸다. 넓적한 흰 얼굴에 콧등이 높은 재판장이 배석판사들과 함께 법정에 들어섰다. 코의 중간쯤에 걸친 돋보기를 보면서 25년 전 군인시절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나는 그와 같은 연병장을 기고 있었다.  누런 먼지를 뒤집어쓰고 온몸에 허연 소금이 붙을 정도의 훈련 중에도 그는 별로 말이 없는 성격이었다. 눈빛만 얼마 교환 했을 뿐 말을 나눈 기억이 거의 없었다. 그의 선고를 기다리는 몇 명의 잡범들이 먼저 나와 대기하고 있었다. 얼굴이 길쭉한 삼십대의 남자가 기대감으로 눈을 반짝이며 재판장인 그의 앞에 섰다. 

  “아침마다 여자만 있는 집에 들어가 강도강간을 해서 징역 7년을 받고 깍아 달라고 항소했군요. 생각해 봤는데 그 형이 적당하다고 생각했어요. 깍아줄게 없어요. 그래서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합니다. 들어가요.”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비굴하던 눈초리가 재판장을 노려보는 눈이 되었다. 다음은 작달막하고 눈이 째진 남자였다. 양손을 앞으로 하면서 겸손한 자세를 취했다.

  “당신은 검침원을 가장하고 남의 집에 들어가 강도강간을 했는데 일심의 징역10년이 무겁다고 항소했어요. 재판장으로서는 그 형이 적당하다는 의견이었어요. 항소를 기각합니다. 들어가세요. 다음”

  그 사내역시 순간 절망과 분노의 표정으로 변했다. 다음번 남자가 등장했다. 어떤 범인도 판결에 승복하지 않았다.

  “남의 차를 훔쳐 달아나다가 경찰차와 숨바꼭질을 했네? 징역2년을 선고받고 깍아 달라고 항소했는데 그 정도 형이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항소를 기각하니까 들어가세요.”

  재판장의 선고 속에서 그의 단호한 일면을 알아챌 수 있었다. 인정상 조금의 형이라도 깍아 주는 판사도 있었다. 험상궂은 청년 세 사람이 건들거리며 나와 섰다. 버릇이 된 깡패걸음은 법정에서도 버리지 못했다. 차라리 그들은 당당했다.

  “당신네들은 차를 몰고 다니면서 길 가는 여자를 납치하고 강간하고 돈을 뺐었네? 모두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억울하다고 항소했는 모양인데 저는 오히려 그 형이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중형을 받아야 마땅하죠. 그렇지만 검사가 항소를 하지 않아 더 올리지는 않겠습니다. 항소를 기각합니다.”

  그중 한명이 손으로 얼굴을 비비면서 “아! 씨팔”하고 소리쳤다. 존경하는 재판장님이 그들의 욕대로 X같은 판사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선고를 받기 위해 나왔다. 다른 사람과 달리 눈에 독기가 없었다.

  “이건 강도긴 강도인데 먹을 것이 없어 저지른 생계형 강도라고 판단했어요. 일심에서 징역1년이 선고됐는데 우리 항소심은 정상이 딱하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3월에 처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벌써 그 이상 살았는데요. 그럼 오늘 나갑니까?”

  영감이 얼굴이 환해지면서 재판장에게 물었다.

  “그럼요. 오늘 저녁 당장 나가실 겁니다.”

  재판장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선고하는 모습을 보면서 재판장의 성향을 보다 확실히 알았다. 그는 참회하는 인간에게 한없이 관대할 수 있는 판사였다. 그렇다면 회장의 변호전략은 잘못됐을 수 있었다. 자기시각으로 보지 말고 재판장의 시각으로 판단해야 오류가 없는 것이다. 나는 방청석 뒤에 있는 회장의 모습을 살폈다. 그는 손에 수첩을 들고 무엇인가 적고 있었다. 부인의 선고를 들으러 온 남편치고는 지나칠 정도로 담담한 분위기였다. 선고받은 잡범들이 모두 일어나서 대기실로 들어갔다. 그때 살짝 열린 대기실의 문틈으로 회장부인의 모습이 보였다. 나무의자에 앉아 머리를 벽에 기대고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김귀숙! 김용국! 마기룡!”

  재판장이 무거운 목소리로 그들의 이름을 불렀다. 회장부인이 초췌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이어서 얼굴에 붉은 기가 도는 김용국이 나타나고 그 뒤로 마기룡이 고개를 숙인채 곁눈질로 주변의 눈치를 살피면서 따라 나왔다. 재판장이 조용한 눈길로 그들을 내려다보면서 먼저 판결이유를 말했다.

  “회장부인인 김귀숙은 자신의 가정과 딸만을 위하는 극도의 이기주의에 물들어 있다고 봅니다. 죽은 여대생 정혜경과 판사사위의 관계를 의심해 미행을 시키다가 오히려 그 여대생측으로부터 고소까지 당하자 위신이 실추된 것으로 느낀 것 같습니다. 김귀숙은 속에서 끓는 복수심과 의심만으로 살해지시를 한 것으로 재판부는 봅니다. 사위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판사직에 있는 사위는 장모가 의심을 하고 있는 걸 알았음에도 그 오해를 풀도록 노력하는 태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피고인 김귀숙은 이 법정에서도 지금까지 조금도 뉘우치지 않고 범행을 전면부인하면서 다른 두 명에게 그 죄를 미루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재판장은 거기까지 말하고 김용국과 마기룡에게 시선을 돌렸다. 일괄해서 세 사람의 판결이유를 먼저 말할 모양이었다.

  “또한 재판부는 김용국과 마기룡에게서도 돈에 눈이 어둡고 아직도 뭔가 진실을 숨기는 듯한 태도를 보았습니다. 김용국의 경우 살해지시가 있은 지 다섯 달 후에 살인을 했는데 그 긴 시간동안 비극적인 사태를 막을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김용국과 마기룡은 서로 자신들의 책임을 가볍게 하기 위해 납치한 이후의 살해과정과 방법등 세밀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됩니다. 피고인들은 아무런 원한관계도 없으면서 오직 물질을 위해 여대생을 잔인하게 살해했다고 보여 집니다. 특히 좌측 상완골이 분쇄골절이 된 것을 보면 여대생에 대한 상당한 가혹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 지므로 그 책임이 배후에서 지시한 회장부인 김귀숙보다 가볍지 않다고 재판부는 판단했습니다.”

  공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 재판부에서는 일심에서 피고인들에게 내린 징역 20년은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는 의견이었습니다. 피고인들은 사형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의견입니다.”

  세 명의 얼굴이 검은 흙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재판장이 잠시 뜸을 들인 후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나 사형을 꺼리는 게 요즈음의 추세입니다. 재판부 역시 그렇습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고심 끝에 피고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판결을 선고하기로 했습니다.”

  재판장이 세 사람을 굳은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피고인들을 각 무기징역에 처한다.”

  결론이 났다. 재판장과 판사들은 앞에 놓여있던 서류들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제서야 제정신으로 돌아왔는지 회장부인은 다급한 표정으로 손을 들면서 소리쳤다.

  “저 재판장님 말씀드릴게 있습니다.”

  재판장은 그녀를 흘낏 보더니 소리 없이 문을 빠져 나갔다.

 

 

18


  “도대체 이해를 못 하겠어요”

  김용국이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내뱉었다. 그의 계산은 진실을 고백했는데 판사가 형을 더 올린 것이다.

  “이럴 거면 말이죠 차라리 회장부인이 부탁한 대로 말을 맞춰 줄 걸 그랬어요. 솔직히 자백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뭐가 있어요?”

  재판부는 그의 말을 계산된 정직으로 파악했다. 사실 그랬다. 그는 필요에 따라 어떤 것은 사실대로 또 어떤 점은 우물쭈물했다. 검사나 다른 변호사에게 공격받고 털어놓은 것도 있었다. 모두 그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 그 자신만 보지 못했다. 그는 나에게 비난하면서 따지는 눈길을 보냈다.

  “모두가 변호사인 내 탓입니다.”

  남의 탓으로 돌리고 싶은 그의 심정일 것이다.

  “왜 변호사님의 탓입니까?”

  그가 정곡을 찔린 듯 순간 움찔했다. 

  “일심에서 징역20년이 나왔으면 변호사는 항소심에서 확 깍아야 하는데 무기징역이 나왔으니 능력 없는 변호사의 실수가  아니겠어요? 안 그래요?”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게 이기적인 범죄자들의 심리였다.

  돈을 받았으니까 살인을 하고 돈을 줬으니까 형이 깍여야 했다. 법과 도덕보다는 돈이 우선인 생각이 범죄의 근원이다.

  판결이유를 그가 이해한다면 그는 참회하는 인간일 것이다. 나의 뒤틀린 대답에 그는 자기코드와 맞다고 느꼈는지 씩 웃으며 동조를 구하듯 털어놓았다.

  “하여튼 판사란 사람 이해하기 힘들어요. 내가 뭘 숨기고 있다고 날 보고 진실을 다 말하지 않았다는 건지 말이죠.”

  그러나 그의 눈동자는 아직 비밀이 남았다고 속삭였다.

  “저한테 말하지 않았던 다른 건 없어요?”

  나는 막이 내린 후의 진실을 기대하면서 물었다.

  “여태까지가 다지 더 이상 뭐가 있겠습니까?”

  그가 짜증스런 어조로 부인했다. 그가 침울한 표정으로 시멘트 바닥을 내려다보다가 한참 만에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얼굴에 절망의 빛이 감돌았다.

  “변호사님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죠? 이제부터라도 제가 회장부인에게 맞추어 진술하면 저를 도와주실 수 있어요?”

  또 흔들리는 그는 궤도수정에 나를 이용하려고 했다. 이제 단호할 필요가 있었다.

  “그건 제 배역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진실하자는 전제하에  이 재판에 참여했었죠. 그렇게 시나리오를 바꾸려면 저는 이쯤 연극무대에서 사라져드리는 게 좋겠네요.”

  “하긴 그러시겠죠.”

  그가 심드렁한 어조로 내뱉었다. 그가 심경변화를 일으킨 뒤에는 아직 뭔가 원격조정의 손길이 있는 것 같았다.

  “회장부인 측에서 사람을 보내 왔었죠?”

  내가 정곡을 찔러 단정하듯 물었다.

  “네 사실은 회장부인 담당변호사가 왔었어요.”

  “그가 뭐라고 했는지 내게 솔직히 말해줄 수 있어요?”

  나는 막연히 짐작을 하면서 물었다. 그들은 대법원에서 사건을 파기 환송시키고 다시 심리하려고 할 것이다.

  “그 변호사가 하는 말이 엄 변호사님이 법원에 써낸 서류들을 봤느냐고 하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모두 물을 먹었다는 겁니다.”

  난 취재한 진실을 그대로 써 냈었다. 김용국이 계속했다.

  “그 변호사가 하는 말이 전체적으로 작전을 잘못 짜서 그렇게 됐다는 거예요. 그 변호사는 선고 다음날 판사실에 갔었대요. 가서 살펴보니까 판사들이 회장 부인 측에서 낸 서류들을 하나도 보지 않았더래요. 그래서 자기네들은 다시 재판할 거래요. 그리고 나중에는 재심까지 할 거 랍니다. 이제부터는 회장부인에게 잘하라는 거예요. 엄마 같은 분이 아니냐는 거죠.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게 핏줄이고 집안 아니냐는 거예요. 만약 지금까지 돈을 대던 회장님이 이제 손을 들어버리면 모두 어떻게 되겠느냐는 거죠.”

  나는 속으로 분노가 치밀었다. 김용국이 전하는 말이 사실이라면 그 변호사는 아주 교묘하게 김용국의 위증을 유도하는 것이다.  잠시 말을 쉬던 김용국이 계속했다.

  “그 변호사님이 말하길 자기는 내가 혼자 죽여 놓고 고모에게 뒤집어씌우는 걸로 알고 있대요. 나를 공격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 말이 수시로 달라지고 거짓말을 해서 자기가 법정에서 그렇게 했었대요.”

  정말 그럴까. 속으로 진실을 알면서 그 변호사는 빠져나갈 길을 만든 건 아닐까. 회장부인을 맡은 로펌 측의 변호전략은 내가 보기에 무리가 있었다. 그런데도 불을 보고 달려드는 나방처럼 사형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아무래도 로펌의 변호사들의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회장부인은 재판장에게까지 조금도 기가 죽는 여자가 아니었다. 회장의 부와 사위가 판사라는 의식이 그녀의 머리에 꽉 차 있었다.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돈만 있으면 뭉갤 수 있었다는 경험을 그녀는 등뼈같이 주체성 같이 맹신하는 것 같았다. 회장이나 그녀의 의식 속에 로펌의 변호사들 역시 돈 주고 산 용병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전문가들의 조언이 귀에 들어갈 여지가 없다.

  김용국의 입에서 마침내 그걸 뒷받침 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회장부인 고모가 변호사들을 가만 놔둘 사람이 아니예요.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으니까. 민 변호사 그 사람도 고모가 하도 난리를 쳐서 몇 번 손을 들라고 그랬대요. 너무 힘이 든답니다.”

  내 짐작이 맞았다. 결국은 스스로들 자초한 결과였다. 

  “이 사건 말이죠. 차라리 처음부터 진실을 말하고 피해자와 합의를 했으면 정상참작을 받아서 모두 좋은 결과를 맞이했을 텐데 그런 방향으로 변호사가 제안을 하지 않았어요?”

  기록을 읽어본 변호사라면 당연히 그랬을 것이라며 물었다.

  “고모를 처음 맡았던 변호사가 그렇게 제의했다가 단칼에 잘렸어요. 고모는 무죄가 나와야지 그렇게는 안 된다는 거죠.”

  장부인 그녀는 세상을 너무 깔보는 것 같았다.

  “참 그 변호사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간다고 합디까?”

  내가 그들의 전략을 궁금해 하며 물었다.

  “죽은 여대생의 팔뼈가 부러진 걸로 봐서 이 사건은 고의적인 살인이 아니라 우발적이라는 심증이 간대요. 그런 사건인데 검찰이나 경찰의 회유로 내가 고모 쪽을 걸고넘어진 거라는 얘기죠. 자기는 그렇게 믿고 싶고 실추된 회장님 집안의 명예를 바로 잡아 드리고 싶다고 했어요.”

  그것도 회장부인의 희망사항일 것이다. 부자들에게 세상은 한판의 연극인지도 모른다. 김용국은 이제부터 꾸며지는  무대에서 또 다른 삐에로가 될 것이다. 나의 역할은 끝이 났다. 그 며칠 후 아침신문에 조그만 보도가 나왔다. 민사법원은 회장측이 죽은 여대생의 아버지 정의택에게 위자료로 6억5천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선고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아직 이 나라의 마지막 양심의 보루는 판사들이었다.

  유난히 폭설이 내리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창 밖으로 보이는 법원의 계수나무 가지에 난 작은 이파리가 연두색물감을 풀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김용국의 처로부터 핸드폰이 왔다.

  “변호사님 남편이 급히 접견을 와 달라는데요.”

  김용국의 처가 숨넘어가는 어조로 말했다. 사실 그 전에도 몇 번 그런 일이 있었다. 가보면 아무 일도 아니었다.

  “또 ‘늑대와 소년’에서 나오는 거짓말을 들을라구요? 이제는 더 이상 안 속겠습니다.”

  내가 솔직하게 대답하며 거절했다.

  “이번에는 아닌 것 같아요. 제가 면회 가서 또 변호사님을 보기위해 별 일 없으면서 가벼운 거짓말 하면 안 된다고 했더니 이번에는 정말 아니랬어요.”

이틀 후 나는 구치소로 가서 김용국을 만났다.

  “제 나름대로 풀건 풀고 가기로 했어요. 내가 여태까지와는 다른 말을 해도 변호사님 도와주실 거죠?”

  그가 먼저 다짐하면서 물었다. 그는 폭탄선언이라도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액면 그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들어보고 진실이면 돕겠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그가 내 눈치를 보더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사실은 회장부인이 여대생을 죽이라고 한 적이 없었어요. 마기룡과 둘이서 미행을 하는데 하루는 기룡이가 이렇게 힘들게 미행하지 말고 아예 잡아서 발가벗기고 비디오를 찍어 인터넷에 올리면 어떻겠느냐는 거예요. 그게 먹히지 않으면 그때 가서 약물을 쓰자는 거예요. 사채꾼들은 겁을 주는 방법으로 사람을 납치한 후에 그 사람이 보는 앞에서 독이 든 주사를 고양이한테 놔요. 고양이가 바로 뒤집어 지면서 즉사하는 걸 보게 하면서 그 사람에게 주사를 놓으려고 하면 기겁을 해서 대개 시키는 대로 다 한다는 거죠. 여대생에게도 그렇게 하려고 했어요. 사실은 기룡이가 청산가리를 항상 가지고 다녔거든요.”

  나는 불쾌감이 치솟고 있었다. 그 내용이 그동안 회장 측에서 구상한 시나리오일지도 몰랐다. 그들은 이제 나까지 연극에 몰래 동원하려는 것 같았다. 난 그냥 속아주면서 더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면 한 가지만 물어봅시다. 여대생을 죽이기 전 마지막 장면을 한번 얘기해 봐요. 법정에서 말한 거 엉터리죠?”

  내가 따지듯 물었다. 그는 사실과 거짓을 적당히 조합해서 말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 사실의 편린만을 추출해 재조립하면 숨겨졌던 진실을 엿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말이 내게 먹혔다고 생각했는지 활기차게 또 다른 사실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제 진짜가 나오고 있었다.


 

19


  김용국은  전에 없던 새로운 사실들을 폭탄같이 터뜨렸다.

  “체포될 때를 가상해서 사실 시나리오를 세 개 짰었죠. 제1단계의 안은 정 사장이란 전혀 다른 제3의 인물을 만들어 우리가 살인을 의뢰했었다고 하는 거죠. 잡힌 첫날 그렇게 불었는데 잘 안되더라구요. 형사들이 집요하게 묻고 또 묻는데  정 사장의 정체에 대해 빈틈없이 다 댈 수가 없었어요.”

  수사란 범인들과의 머리싸움이었다. 처음에는 빠져 나가려고 애를 쓰다가 마침내 손들고 어쩔 수 없는 상태에서 허탈하게 자백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그런 수사심리상태를 상정하고 계획을 짠 것 같았다.

  “형사가 마기룡이가 마침내 다 불었는데 무슨 소리하느냐고 했어요. 그건 제2단계 씨나리오로 넘어가자는 기룡이의 간접적인 신호였죠. 우리가 형사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마침내 허탈한 상태에서 자백하는 모습을 보이는 제2안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갔죠.”

  베트남에 있을 때 그들은 대학노트에 잡혔을 때 진술할 시나리오를 꼼꼼히 써서 서로 대본같이 익히고 연습했다. 그들은 치밀했다. 양파껍질같이 까면 또 거짓말들이 나오곤 했다.

  “시나리오의 제2안은 회장부인이 살인교사를 했다고 물고 늘어지는 거예요. 당시 매스컴에서 그렇게 보도를 할 때니까 사회분위기와 딱 맞아떨어지는 거죠. 어차피 회장부인은 사위가 판사고 돈도 많았죠. 나이도 있으니까 그 정도면 우리가 물어도 충분히 법망을 빠져 나갈 거라고 우리는 계산했죠. 회장부인이 시켰다고 말했더니 수사가 급진전되더라구요. 형사나 검사가 한건 했다 싶었는지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우리 진술대로 조서를 작성하더라구요.”

  그의 얼굴에는 얼핏 승리감마저 스쳐 지나갔다.

  “그러면 시나리오의 제3안은 뭐였어요?”

  나는 그의 반짝이는 교활한 눈을 보면서 물었다.

  “그건 여대생을 납치할 때 동원했던 건달들에게 덮어씌우는 거였어요. 그런데 거기까지 가지도 않고 일이 끝난 거예요. 형사나 검사가 내가 한 진술에 퍽 만족했어요.”

  “왜 집안 어른이고 고모인 회장부인을 굳이 그렇게 했죠?”  

  “그 양반은 사람이 아니예요. 제가 도망가 있으면서 도움을 많이 청했어요. 그런데 하나도 들어주지 않았어요. 거기다가 우리 집사람을 때리고 해서 감정이 생겼죠. 집사람을 달래고 위로해 줘야 할 사람이 그게 뭡니까? 그래서 오기로 덮어씌웠죠.”

  “그러면 회장부인이  주겠다고 약속한 살인청부자금 1억7천5백만원은 사실이 아니었어요?”

  “그거 다 제 거짓말이예요. 처음에 미행자금 5천만원 받았어요. 그리고 나중에 여대생을 죽이고 나서 내가 협박해서 더 받은 거죠. 회장부인이 법정에서 나한테 협박당했다고 진술했는데 그 말이 사실은 맞아요.”

  이상했다. 그의 말은 법정에서 회장 부인 측 변호사들의 추정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계부품처럼 맞아 들어갔다.

  “그러면 회장부인이 여대생의 아버지 정의택을 죽여 달라고 청부한 사실은요? 그리고 회사임원인 시동생까지 죽여 달라고 했다고 진술들도 거짓입니까?”

  “그것도 다 사실 제가 꾸며댄 거예요. 여대생 살인청부 하나만 얘기하면 신빙성이 없잖아요? 우리가 다 믿게하기 위해 덤으로 만든 얘기였어요.”

  회장부인은 검사와 그들이 소설을 썼다고 외쳤었다.

  “그러면 이제 와서 밝히겠다는 진실은 뭐죠?”

  내가 속에서 은은히 피어오르는 분노를 자제하며 물었다.

  “살인청부의 점만 틀리고 나머지는 대충 맞아요. 또 사실 우리가 여대생을 처음부터 죽이려고 한 건 아니구요.”

  그의 번복한 말대로라면 회장 부인은 이제 무죄고 그들 역시 과실치사정도였다. 사실인지 그의 희망인지 정확지 않았다.

  “하루는 미행을 하던 마기룡이가 이렇게 힘들게 미행하지 말고 아예 그 여대생을 잡아다가 발가벗기고 비디오를 찍어 인터넷에 올려버리자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기룡이한테 그래도 우리말을 안 들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죠. 기룡이는 그러면 그때 가서 약물을 쓰자고 했어요.”

  그들은 여대생에게 어떤 걸 강요했을까. 풀리지 않은 영원한 수수께끼였다. 소송에서 패소해 자존심이 상한 회장부인은 여대생 부녀에 대한 증오가 폭발직전까지 갔었다.

  “약물을 쓰다뇨? 죽이자는 거였어요?”

  내가 물었다.

  “아니 그게 아니구요. 사채꾼들이 겁주는 방법인데 납치한 사람이 보는 앞에서 고양이한테 독주사를 한방 놓는 거예요. 고양이가 뒤집어 지면서 즉사하는 걸 보게 하면서 그 주사를 사람에게 찌르려고 하면 기겁을 해서 어떤 인간도 시키는 대로 다 하는 거예요. 여대생에게도 그렇게 하자고 했어요.”

  “그 독약의 정체가 뭐죠?”

  수사기록을 보면 그 독극물이 살인청부의 유혹요소가 됐다.

  돈이 궁했던 마기룡은 먹으면 일주일 후부터 내장이 서서히 썩어 들어가기 때문에 완전범죄가 가능하다고 유혹했다.

  그러나 마기룡은 체포되자 그건 시골장터에서 산 쥐약에 불과했다고 둘러댔었다. 병리학교수들은 마기룡의 말처럼 그런 독극물은 없다고 웃었다.

  “사실은 청산가리였어요. 마기룡이가 항상 그걸 가지고 다니면서 나한테도 겁을 줬어요.”

  은폐 세부적인 사실이 조금은 드러나는 것 같았다.

  “살인 후에 깊이 매장을 하지 않은 이유는 뭐죠?”

  난 그들이 낙엽만 덮은 채 황급히 사라진 이유가 궁금했다.

  프로살인자라면 철저히 매장을 했을 것이다. 마기룡은 프로인체 했지만 사실 그는 초보자 같기도 했다. 또 표독스런 회장부인의 닦달로 그들은 정신이 빠졌을 지도 몰랐다.

  “정말 죽이려고 했다면 왜 삽을 가지고 가지 않았겠어요? 데리고 가서 겁주고 사진 찍으려고 했으니까 가지고 가지 않은 거죠.”

김용국은 ‘그것 봐라’하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면 여대생을 산기슭에 데려가 바로 쏴 죽였다는 여태까지의 진술은 어때요?  그것도 사실과 얼마간은 틀리죠?”

  “그렇습니다. 사실 납치해 가자마자 죽인 게 아니고 좀 시간이 길었어요. 산에서 뒤집어 씌웠던 쌀푸대를 벗기고 얼굴에 온통 감아놨던 청 테이프를 뗐었죠. 꽉 붙어있던 테이프를 확 떼어내니까 털이 붙어 나오고 꽤 아파하더라구요. 그런데 우리가 실수해서 그만 눈에 붙은 테이프까지 떼어낸 거예요. 그 여대생이 우리 얼굴을 봤어요.”

  난 비로서 쌀 푸대 하나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 그건 그때 없어진 것이다.

  “그때 여대생이 뭐라고 했어요?”

  “팔이 너무 아파요라고 소리치면서 울었어요. 마기룡이 그 자식이 실수해서 여대생 팔을 부러뜨린 거죠. 여대생이 울면서  돈은 요구하는 대로 줄 테니까 살려달라고 빌었어요. 저희는 당황해서 다시 테이프로 여대생의 입과 눈을 감았어요.  차라리 죽여 버리자고 기룡이가 그러더라구요. 제가 안 된다고 했더니 기룡이가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 했어요. 무서워서 내가 산에서 먼저 내려와 차에 있는데 5분후에 기룡이가 왔어요. 뺨에 피가 묻어 있었어요.”

  이제 김용국의 주장은 회장부인뿐 아니라 자기도 무죄였다.

  “말씀대로라면 총이 아니라 먼저 비디오카메라와 주사기를 가지고 올라갔어요 했는데 증거물을 보면 총만 있고 주사기하고 비디오카메라가 없던데 어떻게 된 거죠?”

  총은 살인의 고의를 증명하고 비디오카메라는 그걸 부인하는 증거물일 수 있었다.

  “내가 정신이 없어서 깜빡 잊고 총만 가지고 올라갔는데 그것들을 가지러 다시 차로 내려온 사이에 마기룡이가 여대생을 죽여 버린 거예요.”

  그게 김용국의 한계였다. 누군가 원격 조정하는 얘기들을 열심히 얘기하다가 엉뚱한 질문이 나오자 그는 당황한 것이다.

  난처해진 그는 얼른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물고 늘어지다가 사실 항소심에서는 회장부인을 풀어줄려고 했어요. 그래서 교도소 이송버스 안에서 마기룡이에게 항소심에서는 사실대로 말해  풀어주자고 했더니 나보고 빨리 회장 측에서 피해자부모와 합의나 보게 하라는 거예요.”

  “그런데 왜 합의가 되지 않았죠?”

  내가 물었다.

  “회장님이 합의를 하지 않고 변호사들을 시켜 그냥 무죄라고 내뻗어 버렸어요. 나도 이상하죠.”

  회장은 교사부분을 무턱대고 부인만 할 뿐 전혀 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았었다. 오히려 여대생의 아버지를 자극하고 내게도 적의를 보여 더 회장부인을 공격하게 만든 점이 있었다.


  “그러니까 진실을 말하겠다고 위장하고 변호사인 내게 접근해서 거짓말을 입력시키고 철저히 이용한 거네요?”

  그의 말대로라면 나는 재판이란 연극에서 그런 소도구였다.

  “그 점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가 조금도 죄송하지 않은 얼굴로 말을 계속했다.

  “회장부인 담당 변호사가 나를 조용히 찾아와서 한번 그런 식으로 계속 가보라고 했어요. 형이 더 올라 갈 테니 두고 보라는 거죠. 사실 그때 제가 겁이 나서 또 다른 사람에게 물어봤어요. 그 사람은 말을 또 번복하면 불리하니까 그대로 뻗으라고 가르쳐주더라구요. 그래서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다물었죠.”

  결국 그의 머릿속은 회장부인측 변호사의 판단이 맞다는 계산이 생겼을 것이다.

  “김용국씨! 최근에는  교도소로 누가 면회 왔죠?”

  내가 속으로 짐작을 하면서 한번 확인했다.

  “처하고 형수하고 왔어요. 내가 진술을 잘못해서 다 죽는 결과가 나왔다고 하면서 이제부터라도 말을 다시 바꾸겠다고 선언 했어요. 그랬더니 제 처가 펄쩍 뛰면서 절대 그렇게 하면 안 된대요. 회장부인이 나오면 자기를 꼭 죽일 거래요. 그런데 옆에 있던 형수는 그러지 말고 말을 바꾸라고 시키구요. 지금도 누구 말을 들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니까요.”

  다시 강한 시도가 꿈틀대는 걸 느꼈다. 그렇게 하려면 마기룡이 관건이었다. 무기징역을 받은 그가 과연 협상에 응할까?  나는 마지막으로 마기룡을 만나보기로 마음먹었다.

 

 

20


  구치소 안은 음습한 동굴 같았다. 축축하고 비릿한 공기가 가득 찼다. 그 속에서 온갖 음모가 곰팡이처럼 자라났다. 나는 마기룡을 처음으로 개인적으로 만났다. 턱수염이 무성하게 자란 창백한 얼굴이었다. 눈에서는 서늘한 빛이 흘러나왔다. 그가 본능적으로 나를 살피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주시죠.”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뭘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나의 방문목적을 살폈다.

  “이미 재판은 끝났습니다. 제가 정확히 모르고 마기룡씨를 공격한 점은 없었나요? 변호사는 더러 그런 실수를 합니다.”

  그는 내가 찾아온 목적이 순수한 걸 이제 알아챈 표정이었다.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이윽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잘 아시다 시피 전 사회에 나와서는 거칠게 살았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뜬구름 잡는 것처럼 살았죠. 배운 것 없고 기술도 없는 놈이 세상에서 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살다 보니까 사채꾼들의 세상에 들어갔고 쓰레기 같은 삶이었죠.”

  의외로 솔직했다.

  “정말 여대생 아버지 정의택씨를 죽이려고 했습니까?”

  내가 물었다. 김용국은 나를 다시 불러 사실은 그런 일이 없었다고 번복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고 싶었다.

  “정말 죽이려고 했습니다.”

  마기룡이 담담하게 내뱉었다. 아직 김용국과 말을 맞춘 단계는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발 빠르게 온 게 다행이었다.

  “그러면 굳이 그걸 자백했던 이유는 뭐죠?”

  시나리오까지 짜고 연습을 했던 치밀한 그들이었다.

  “제가 스스로 자백한 건 아니고 다른 부분하고 연결이 되다 보니까 그렇게 한 겁니다. 왜 형사들은 물은 걸 또 묻고 사람 진을 빼잖아요? 그런 속에서 다른 부분하고 관련이 되서 제가 빠져나가지 못했어요.”

  일리가 있었다. 계산상 그럴 땐 털어놔 버리는 게 유리했다.

  “재판도중 심정이 어땠어요?”

  “죽은 여대생 아버지 정의택씨를 부르는 게 정말 싫었어요. 회장측에서 합의도 안하고 사죄도 하지 않는데 나와서 무슨 좋은 소리를 하겠습니까? 오히려 그 사람 때문에 형만 더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죠.”

  회장은 죽은 여대생의 아버지 정의택을 계속 자극하는 셈이었다. 사죄도 안하고 모른다는 식이었다. 하기야 무죄라고 하면서 합의하자는 건 모순이었다. 마기룡이 계속했다.

  “그런데도 재판 받으러 가는 버스 안에서 김용국을 보면  천하태평 이예요. 그 표정에서 자기는 빨리 석방되고 나는 사형 당한다는 걸 읽었어요. 김용국이와 저는 동창이고 친구지만 이제는 그 인간 정말 신물이 올라올 정도로 싫어요. 판결문을 읽어보면 판사도 제가 우발적인 살인범이고 프로는 아닌 것 같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친구였다는 그 새끼는 뭐라고 하는지 아시죠? 나를 전문적인 살인청부업자라고 노골적으로 씹는 거예요. 정말 언젠가 살아서 만나면 서로 꼭 풀어야 할 것들이 있어요.”

  흥분해서 말하는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회장부인측은 50억을 제시하면서 김용국에게 총대를 메달라고 제의했다고 했다. 그러나 죽은 여대생의 아버지도 단순하지 않았다. 그는 김용국에게 회장부인측 변호사를 물리치고 진실을 말해 준다면 그에게만은 합의서를 써 주어 석방되도록 해 주겠다고 약속했었다. 김용국은 돈이냐 생명이냐를 놓고 저울질 했을 것이다. 일단 나를 선임해서 양심선언의 형식을 취한 그는 자유를 선택했다. 마기룡은 그걸 읽었던 것이다. 무기징역이 선고된 지금 더 이상 나는 이용가치가 없는 것이다. 김용국의 말을 알아보기 위해 몇 가지 더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김용국의 말로는 마기룡씨는 재판부의 동정을 받기 위해 고도의 심리작전으로 국선변호사를 선택했다는데 어떻습니까?”

  마기룡의 얼굴이 붉그락 푸르락 변했다. 그가 참느라고 숨을 크게 들이키더니 이렇게 내뱉었다.

  “저는 형제들조차 면회를 안 올 정돕니다. 그런 사람이예요. 그런데 누가 예쁘다고 변호사를 선임해 주겠습니까? 이 사건도 돈이 없어 쫓기다가 마지막에 맡은 겁니다.”

  나는 이제 핵심으로 들어가도 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체포된 이후를 대비해서 시나리오를 만드셨던데 그 내용을 말해 줄 수 있어요?”

  김용국은 이제와서 갑자기 사실은 시나리오가 제3안까지 있었다고 말을 바꾸었다. 그중 회장부인이 살인을 교사했다는 것은 두 번째 시나리오일 뿐이라고 했다.

  “해외로 도피하고 나서 인터넷을 통해 수사상황을 알게 됐습니다. 6일에 납치를 하고 10일 살해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더라구요. 전 죽였다고 하고 싶지 않았죠. 그래서 가공의 인물을 등장시켜 그쪽으로 책임을 떠넘기려고 했습니다.”

  “시나리오 제2안은요?”

  “제2안이라뇨?”

  마기룡의 눈이 커지면서 되물었다.

  “김용국씨가 이제야 진실을 털어놓겠다면서 시나리오의 제2안은 회장부인을 물고 늘어지는 물귀신 작전이라고 했어요. 사실 회장부인은 미행만 시켰는데 마기룡씨와 김용국이 실수로 여대생을 죽였다면서요? 그 점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마기룡의 얼굴이 흉측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미친놈 정말 개새끼네.”

  그가 거칠게 내뱉었다. 내가 계속했다.

  “제3의 시나리오는 동원했던 건달에게 살인혐의를 뒤집어 씌우는 거라고 하던데요.”

  “그런 제2안 제3안은 없었습니다.”

  그의 얼굴에 묘한 비웃음이 일었다.

  “변호사님 제가 한가지 만 말씀드릴까요?”

  그가 이제야 뭔가 눈치 챘다는 듯 씩 웃으면서 나를 보았다.

  “얼마 전 김용국이한테서 비밀쪽지가 왔습니다. 회장부인 변호사하고 엄변호사님이 우리를 구하려고 뭔가 새로이 일을 꾸미고 있으니까 식사나 잘 하고 있으라고 써 있더라구요.”

  나는 비로소 김용국이 나를 다시 부른 이유를 알았다. 그는  나를 이용하려고 장난했던 것이다.

  “다시 물읍시다. 회장부인이 살인교사를 지시한 게 사실입니까? 아닙니까?”

  내가 정색을 하고 다시 물었다. 그들의 교활성이 싫었다.

  “사실입니다. 회장부인이 살인을 시켰어요. 그 여자 절대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살인 후 잔금을 달라고 해도 주지 않았어요. 해외에 도피해 있을 때 김용국이를 이용해서 나까지 죽이려고 했어요. 어떻게 한지 아세요? 용국이가 북한사람에게서 마약을 사고 나보고 거기 이틀만 있으라고 했어요. 마약이 진품인지 확인하는 동안 인질을 잡게 돼 있거든요. 거래가 뒤틀리면 인질은 바로 죽어요. 정말 난 그때 김용국에게 속아서 죽을 뻔 했죠. 그래도 난 중국에서 도망 다니면서 용국이를 보호했어요. 그런데 회장부인과 용국이는 나까지 죽여서 이 사건을 영원히 미궁에 빠뜨리려고 공작한 거예요. 난 칼 한자루 가지고 도망 나왔었어요. 그런 인간들하곤 더 이상 거래 안해요.”

마기룡이 협조안하면 그들의 계획은 실패다. 그가 덧붙였다.

  “중국에 도망해 있을 때 같이 아파트에 있어보면 용국이 그 게으른 새끼는 하주종일 방안에 누워 뒹굴고 텔레비전만 보고 있었어요. 더러 조선족 계집애를 끼고 헬스클럽이나 다니구요. 그리고 무슨 일이나 저를 머슴같이 부렸어요. 난 담배 값도 없어서 헤매는데 말이죠. 이 사건에 대해 더 이상 감추어진 건 별로 없어요. 제 생각으로는 회장부인 측에서 뭔가 신호가 다시 온 거예요. 우리가 다 덤텡이를 쓰고 회장부인을 빼내자는 수작이겠지요. 변호사님이 왜 오셨는지 이제 알겠는데 사실대로 털어놓죠 뭐. 얼마 전 이송버스 안에서 김용국이가 나보고 어차피 이렇게 됐는데 돈이나 받아야 할 거 아니냐고 했어요. 전 싫다고 그랬습니다. 평생 감옥에서 살 텐데 돈이 있으면 뭘 합니까? 그리고 그 인간들한테 한번 더 속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한이 맺히겠어요?  재판을 받을 때는 고모 조카간 서로 죽일 것 같이 으르렁대더니 지금 모습 보세요. 이제는 나만 살인범으로 몰고 자기네들은 다 빠져나가려고 하잖아요?”

  양파껍질 같은 그들의 교활한 꾀는 어디가 진짜인지 알 수 없었다. 악마들의 블랙홀로 착하던 김용국의 처도 빨려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남편이 진실하게 하려고 애썼다. 증인으로 나와 직접 50억원의 제의를 폭로했었다. 마기룡은 김용국보다 먼저 그녀를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김용국의 처는 어떤 사람입니까?”

  내가 물었다.

  “그 여자가 사무원으로 있을 때 제가 알고 지내다 용국이에게 소개했어요. 아주 착한 여자죠. 중국에 도망가 있을 때 도 용국이에게 자수해서 진실을 말하라고 호소했었어요.”

  “지금의 그 여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죠?”

  그는 망설이는 표정을 짓다가 이렇게 대답 했다.

  “이제는 뭐라고 말 못하겠습니다.”

  내가 이 사건에서 해야 할 역할은 다 끝난 것 같았다. 


  회색 구름이 구치소 담장까지 내려와 있었다. 내가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타려고 할 때였다.

  “변호사님”

  누가 불렀다. 김용국의 처였다. 남편 김용국을 면회하러 왔다가 나를 본 것 같았다.

  “남편이 다시 말을 바꾼 거 아시죠?”

  내가 그녀에게 확인했다.

  “대충은 알아요”

  그녀의 얼굴에 묘한 우수가 스쳐지나갔다. 

  “사실입니까?”

  난 속으로 그녀가 마지막까지 버텨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진실인 것 같아요”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진실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말투도 자신이 없었다. 안타까웠다.

  “앞으로 재심 때 남편만 사형 당하는 모험을 다시 감행하시겠어요?  세상이 모두 바보는 아닌데.”

  “-----!!-----”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이미 결심한 표정이었다.

  “회장 측에서 얼마나 주겠다고 하던가요?”

  “아니 절대 그런 적 없어요.”

  그녀가 과잉반응을 보이며 부인했다. 그게 끝이었다. 며칠 후 그녀는  앞으로 이 사건에서 손을 떼 달라고 전화했다.


  그리고 일년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죽은 여대생 아버지 정의택씨 한테서 전화가 왔다.

  “저는 생명이 붙어있는 날까지 그 악마들과 싸울 겁니다.  대법원에서 뇌물 주고 장난칠까봐 지켜봤죠. 또 교도관을 매수해서 형 집행정지로 나오려는 것도 감시하고 있어요. 참 제가 변호사님에게 한 가지 사과할 게 있어요. 제가 진실을 말하면 합의서를 써 주겠다고 약속한 걸 지키지 않아서 미안합니다. 왜 그랬는지 이제는 아시죠? 악마에게는 나도 뱀처럼 교활해 질 필요가 있더라구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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