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과 몽상 -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에드거 앨런 포 지음, 홍성영 옮김 / 하늘연못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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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검은 고양이의 공포를 기억하는가. 검은 고양이의 공포는 연령대에 따라 최소한 두 가지의 장면으로 압축된다.

어린 시절의 공포는 '벽을 허물자' 아내의 시체 위에서 기분나쁜 증오의 눈빛으로 주인공을 대하며 음산한 비명을 지르는 검은 고양이의 모습이다. 그것만으로도 검은 고양이는 추리와 공포의 대명사가 되기 충분하지만, 에드거 앨런 포를 '진정한 공포의 대명사'로 만든 '공포의 장면'은 성인이 되어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검은 고양이의 주인은 불안하고 난폭하며 결여된 듯한 현대인의 심리를 잘 보여준다. 이 때의 난폭함은 피상적으로 드러난 난폭함이 아니라, 은밀히 감춰진 난폭함이다. 때문에 주인공은 치욕스럽고 고양이가 두렵다. 고양이가 낱낱이 자신의 치부를 주시하고 있는 것이 두렵다. 사건의 발단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이러한 사정을 알았을 때는 고양이가 아니라 아내를, 그것도 사소한 일인냥 도끼로 베어버린 행동들이 자연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공포스럽다. 마치 내가 달려오는 지하철을 향해 몸을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 화가 단단히 난다면 상대방의 사지를 잘라 '파고'에서와 같이 분쇄기로 갈아버리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처럼. 현대인은 치욕과 분노 등 전반적인 감정을 다루지 못한다. 스트레스로 픽픽 쓰러지는 사람들도 대개는 그렇다. 포의 시대에도 그랬으며 현대에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보들레르는 환상적인 시를 썼지만, 환상적인 소설을 무엇보다 쓰고 싶었다. 하지만, 미국에 포가 있음을 알고 '소설'을 포기했다. 그 대신 포의 소설을 줄기차게 번역해서 자국 프랑스에 소개했다. 이것이 포와 보들레르가 함께 '뜨게 된' 이유이다. 그렇지만, 포는 시도 잘 쓴다.

포가 공포만 쓴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포의 '포 다운 면모'가 드러나는 것은 '추리'와 '환상'이다. 괴도 루팡이나 셜록 홈즈는 모두 포의 추리소설에서 태어났다. 유명한 '황금곤충'은 해적의 암호를 찾는 과정을 실감나게 그려낸 작품이며, 더 유명한 '도둑맞은 편지' 역시 '역발상'을 이용한 추리소설이다.

하늘연못에서 나온 '우울과 몽상'은 포의 소설을 모두 옮겨놓은 역작으로 환상, 풍자, 추리, 공포라는 네 개의 카테고리로 작품은 분류했는데, 비교적 적절한 분류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포의 영어판 문고본 작품집을 조금 본 적이 있었는데, 추리소설을 원서로 읽으면 그 재미와 공포에 취해 영어공부가 훨씬 잘 된다는 속설이 있다.

플라톤은 그의 모든 철학을 '윤리학'으로 수렴하고 있으며, 중국의 경서들도 '실천'으로 수렴하고 있다. 포의 환상적인 이야기들도 모두 '현실'로 수렴되기 때문에 '진정한 환상'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나도 끊임없이 현실과 현재와 조우할 수 있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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