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부터 현재까지 경향신문의 기사를 집중 모니터한 결과 다량의 오탈자와 편집의 오류를 보였다.
앞으로는 일상적인 '지적' 차원에서 머무르지 않고 그 원인과 영향에 대해 조금이나마 짚어보는 시도를 하고자 한다.
장애인의 지역별 소득(단위 : 원, 자료:보건복지부) → (단위 : 만원)
☞ 도표의 제목으로 서울이 177.5, 부산 등 광역시가 162.2, 중소도시가 168.1, 읍,면이 127.5로 표기되어 있으므로 단위는 마땅히 '만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장애인들에 대한 부당한 처우에 대해서는 부각시켜도 모자랄 판국에, '만' 단위를 뺌으로써 그 단위의 의미를 무색케 하고 있다.
'06.2.15 사회 11면, '장애인의 지역별 소득'(그래프와 기사)
평소 소신을 밝힌 용기일는 발언→ 용기 있는
'06.2.18, 종합2면 '기자메모' 'FTA 조바심' 度 넘는 관료발언
비정한 사회, 따듯한 사회 → 따뜻한 사회
의견이나 캐치프라이즈 등을 인용할 때 오탈자를 낸다면 인용하는 신문사와 실제 당사자 모두 피해를 볼 수 있다. 잘못 전달된 내용이 원래 내용으로 둔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청와대나 여야 등 정치권의 내용을 전할 때 오류를 범했다면, '악의적 오류'의 혐의를 쓸 수도 있으므로 조심스러워야 한다.
'06.2.25 기획 5면, 청와대 '개헌논쟁' 뭘 노리나
중국이 끼여들 여지는 없다 → 끼어들 여지
'끼다'의 피동형은 '끼이다'이며 '끼여'는 '끼이어'의 준말이기 때문에 이 경우는 '끼어들'이라고 해야 맞다. 이는 능동과 수동을 구분하지 못하는 부정확성에서 나온 결과이므로, 단순오탈자라 보기 힘들다. 게다가 단어의 '기본형'과 '활용형'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 듯하다. 이는 독자들이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부분이기 때문에 영향력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독자가 능동과 수동, 기본형과 활용형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기자도 그럴 수 있다고 용서할 수 있을까?
'06.3.9, 국제14면, "中, 日ㆍ韓공동대륙붕 넘보나"
황교수도 문제 해결해 적극 나서야 한다 → 해결에
경향신문이 단골로 틀리는 부분이다. "염두에 두어야 한다"를 '염두해야 한다"(염두는 '-하다'형으로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마치 '바다'를 '바다하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엑스캔버스하다'는 좀 다른 것이지만)로 잘못 쓰는 것은 그래도 용서할 수 있는 경우다. 잘 몰랐기 때문이다.
이 경우는 편집 과정에서 성의 없이 '에'를 '해'로 바꾸어서 생긴다. 편집 오류는 오탈자 이전의 문제다. 경향신문은 단어 하나나, 단구 하나를 통째로 누락시켜 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중간에 단어가 없어져 뜻이 죽는 것이다.
컴퓨터 편집 시대에 치러야 할 가장 큰 비용은 이와 같은 '누락'일 것이다.
'06.3.13, 오피니언 31면 사설, "'황우석 지지'가 폭력으로 연결돼서야 "
비용은 전액 국고로 → 국고에서, 국비로
앞에서 '비용'이라는 단어가 나왔지만, 서술어의 형태를 보면 국고로 환수된다는 이미지를 감출 수 없다. "국고에서 비용을 댔다"는 뜻이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으면 많은 독자에 의해서 오도되는 것은 보지 않아도 뻔하다. 호리지차 천리지말(毫釐之差 千里之末:처음에는 털끝만한 차이지만, 나중에는 그 크기가 어마어마해진다)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맞춤법뿐만 아니라 독자가 오해하지 않도록 명확하고 간결하게 표현하려는 노력이 아쉽다.
'06.3.15, 지역종합 12면 "자기부상열차 유치전 뜨겁다"
환경정의 회원이 16일 서울 인사동에서 '진실에 눈 가려진 소비자들'의 모습을 한 채 → 진실이 가려진 채 신음하는 소비자들, 상술에 눈 가려진 소비자들
위의 표현만 본다면 진실이 소비자들의 눈을 가린 것처럼 보인다. 진실은 '진실에 눈을 뜨다'와 같이 표현되어야 한다. 진실이 누군가의 눈을 가린다면 그것은 절대로 진실이 될 수 없다. 이는 단어의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사용하는 데서 나타난 문제이다.
'눈이 가려진다'는 피동형의 문장은 마땅히 '눈을 가린' 주체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안에 나타난 대상이라고는 '진실'밖에 없다. 따라서 독자들은 '진실'을 눈을 가린 범인으로 볼 수밖에 없다. 좀더 깔끔하고 명확한 표현이 아쉽다.
'06.3.17, 수도권 10면 "'아토피 과자' 대책 촉구"(사진)
더 강력한 저항에 부딪칠 것→ 부딪힐 것
'부딪치다'는 '부딪다'의 강한 표현으로 '능동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부딪히다'는 '수동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이므로 이 두 단어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하지만, 신문 등 주요 매체에서 이 단어를 혼용해서 쓰고 있다. '강력한 저항'은 커다란 장애물을 뜻하므로 능동적으로 부딪쳐서 뚫고가는 의미가 아니다. 따라서 이 때는 '부딪히다'를 써야 한다. 주요 매체에서 이와 같은 잘못된 표현을 쓰는데 이를 읽는 일반독자들은 어느 정도일까.
'06.3.20, 국제 11면 "佛, '노ㆍ학연대' 150만 초대시위" '성폭행 여교사' → '성폭행 피해 여교사'
언어는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전혀 달라진다. 특히 우리나라의 언어는 피동형과 능동형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글자를 더 쓰더라도 독자가 의미를 명확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위 기사의 경우 여교사가 성폭행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드러나 있지 않다. 문맥상으로 여교사가 어떻게 성폭행을 저지를 수 있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시원히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성폭행은 남교사만 할 수 있다는 가정 자체도 잘못된 것이다.
위 기사가 오해의 여지를 남겼으니, 분명히 '성폭행 가해 여교사'로 오독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경향신문의 책임이다.
'06.3.22, 사회 9면 " '성폭행 여교사' 두번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