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거리의 풍경

 

이제 논술을 보지 않고는, 웬만한 대학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게 되었다. 한 번쯤 들어보았을 만한 대학은 죄다 이 시험을 보고 있으니, 논술을 보지 않는 대학을 골라 들어간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게 되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즐겁지 않고서는 무슨 발전이 있으랴.
지금까지 논술을 풀고 대학에 들어간 선배들과, 그 선배들을 가르쳐온 선생님들과, 시험을 출제했던 선생님들이 과연 논술을 재미있게 하였는지 생각해 보자.
논술 시험 도입의 큰 뜻을 어찌 알랴마는, 단순 반복 학습과 암기 위주의 교육으로 상징되는 ‘교과서’를 벗어나, 시대가 요구하는 창조적이고 통합적인 사고 능력을 기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지금도 곳곳에서 ‘타도 교과서’ 또는 ‘포스트 교과서’ 열풍이 심상치 않은 것은 논술 시험 취지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다져진 ‘지식 위주의 교육 마인드’가 깨질 수 있을까. “부자는 망해도 삼 년을 간다”고 한다. 학생들은 ‘정답’에 익숙해져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가르치던 선생님들도 ‘정답’에 익숙하고, 시험을 출제한 선생님들도 ‘정답’에 익숙하다.
그들은 ‘새로운 사고’가 무엇인지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정답’이 ‘논술’을 먹어버렸다. 논술 선생님들은 자신만만하게 ‘모범 답안지’를 가르쳐주고, 출제 위원 선생님들은 학생의 자질을 정량적으로 산출한다고 하여 장문의 제시문을 넣고, 아래와 같이 조건을 세밀하게 달아 정답을 강요한다.


[제시문 1]은 기계의 발달이 시장체계를 발전시켰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고, [제시문 2]는 철도의 부설이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변화시켰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두 제시문의 논지를 발전시키고 그것들을 서로 연결하여 산업혁명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기계의 발전이 인간의 ①사회적 관계와 ②문화적 양식을 어떻게 변화시켜 왔으며, 이러한 변화가 지니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논술하시오.


이 결과 논술은 또 하나의 지긋지긋한 교과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우리말의 위상


그렇다면 우리말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들이 써내는 논술문에는 얼마나 세련된 글이 구사되어 있을까. 한마디로 참담하다. 기본적인 맞춤법은 물론, ‘구어체’와 ‘문어체’에 대한 구분이 되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논술문제마다 논제가 있다. 논제에는 글에 대한 조건과 몇 가지 규칙들을 설명해 놓았다. 그 규칙들 중 맨 마지막에는 이런 말이 있다.

한글맞춤법을 준수할 것.


그렇지만, 맞춤법에 대한 관심은 거기까지이다. 논술문에 대한 배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출제의도’와 같은 출제자의 입장을 접했을 때 ‘논리전개’와 ‘이해력’에 대한 내용이 있을 뿐 ‘표현’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때문에 학생들은 ‘맞춤법’이나 ‘표현법’ 등을 교과목으로 치면 ‘기술/가정’처럼 등한시한다.


표현이 내용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일까, 내용이 표현에 가치를 부연하는 것일까. 마음만 좋고, 취지만 좋다면 표현은 자연히 따라오는 것일까. 프랑스의 철학가이자 과학자인 파스칼은 "의미는 말에 품위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말에서 품위를 얻는다"고 지적했는데, 일리 있는 이야기이다.

신기하게도 우리의 젊은이가 사랑에 실패하는 이유와 우리 경제가 투자부진에 활력을 잃은 이유와, 우리 사회가 양극화의 어둠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모두 여기에 담겨 있다. 이것들은 공통적으로 ‘표현의 부재’라는 병통을 안고 있다. 우리의 젊은이는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자신의 애인이 알아줄 것이라 생각하고 ‘사랑의 표현’에 소홀해 결국 다른 ‘로맨티스트’에게 애인을 빼앗겨 버렸다.

우리 기업들은 ‘손해’를 두려워해 투자를 줄이면서 돈만 불릴 생각을 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우리 경제가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는데, 이는 마땅한 표현을 얻지 못하는 데서 발생한다.

양극화도 마찬가지다. 양극화에 대한 우려만 있을 뿐 이에 대한 대안은 없다. 정신의 양극화, 정치의 양극화, 경제의 양극화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 양극화를 이겨낼 방안은 당사자들이 ‘타협안’을 내놓고, 이를 위해 각자 양보하는 것이다. 즉 어떤 아이디어든 ‘표현’이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표현’은 없고 ‘걱정’만 만연해 있다.


논술에서도 역시 표현의 문제에 대해서 소홀하다. “자꾸 써봐야 한다”는 식의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제시되고 있다. ‘어떻게’ 자꾸 쓴다는 말인가. 자꾸 똑같은 글을 쓸 것이 분명한데 말이다. 그리고 논리전개가 완성되고, 생각이 갖춰지면 표현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라는 생각은 오만에 가깝다. 지금까지 글 한 줄도 자신의 생각을 써오지 않은 사람이 하루아침에 자신의 마음에 있는 생각을 강물처럼 술술 쓸 수 있을까.


우리말의 심각한 오염은 ‘우리말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 이를 위해 우리 국어학계에서는 무슨 일을 했는가. 과학은 세계적으로 ‘대중화’를 선언하고 나섰다. 일상생활에서 펼쳐지는 과학의 원리를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려는 노력이 전 지구적으로 시도되는 가운데, 세계 문화유산인 한글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은 어떤 평가를 해야 할까. 물론 리이도 교수를 비롯해 몇몇 의식 있는 학자들이 우리말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했고, 일반 대중과 호흡을 맞춰 왔다. 하지만, 우리말의 원리와 그 복잡한 용례를 단순히 ‘한글맞춤법’에만 맞추기를 원하는 것은 또 다른 오만에 해당한다.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을 안고 씌어졌다. 우리말과 ‘한글맞춤법’은 문학과 인문학의 세례를 받을 필요가 있다. 그만큼 재밌고 철학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한글을 제자원리가 대단히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반면, 이를 이해하는 수준이 ‘기계적’이어야 되겠는가. 먼저 1부에서는 ‘맞춤법’에 대한 기본적인 소개와, ‘사전 찾기’와 같은 실용적인 이야기가 채워질 것이다.

2부에서는 ‘한글맞춤법’에 대한 원리를 각 장을 통해서 풀어낼 것이다. 한글맞춤법은 ‘법규’가 아니라, 우리말의 자모의 성격과 그 합성에 따라서 달라지는 화학반응을 그려낸 ‘문학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준하는 형태로 그려질 것이다.

3부는 표현 영역이다. 학생들이 실제로 쓴 ‘논술문’을 바탕으로 ‘글쓰기/표현’에 대한 본격적인 내용을 다룰 것이다. 가칭으로는 ‘효과적인 글쓰기를 위한 논술 clinic’이다. 기본적인 글쓰기 방법론에서부터 학생들이 자주 범하는(일반인들도 거기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사례를 조목조목 지적하며, 올바른 표현에 대해 알아본다. 그리고 글쓰기 전문가(기자, 문학가, 평론가 등 전문 저술가)의 잘못된 사례와 잘된 사례를 토대로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예술적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 다뤄 본다. 한 국어학자가 지적했듯이, 우리말이 번역투 문장으로 전락하거나 심각한 오염을 빚은 것은 전문 저술가의 잘못이 크다. 그들이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논술과 글쓰기를 이루기 위한 첫 단계를 제대로 밟아 나갔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논술교육은 희망이 있다. 종합적 사고력을 키우고, 교과의 한계를 벗어나 창의적인 인재를 키울 수 있는 결정적인 대안은 될 수 없지만, ‘미래의 인재’를 키우기 위한 하나의 가능성은 될 수 있다. 나는 논술 교육의 현 상황을 ‘논술1기’로 보고 하루빨리 ‘과거’로 바꾸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자면 이 모든 폐단을 아우르며, 커다란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논술2기’가 찾아와야 할 것이다. 이것은 논술 교육자뿐만 아니라, 논술 출제자들에게도 해당하는 사항이다. 논술이 바뀌지 않고 이대로 묻힌다면 우리나라 교육의 가능성은 몇 단계 퇴보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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