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영 지음 / 민음사 / 2003년 6월, 636쪽
李政權[이승만 정권] 때의 일이다. 펜 클럽대회에서 참석하고 돌아올 분들을 모시고 조그마한 환영회를 갖게 된 장소에서 각국의 언론자유의 실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끝에 모 여류시인한테 나는 “한국에 언론자유가 있다고 봅니까?”하고 물었더니 그 여자 허, 웃으면서 “이만하면 있다고 볼 수 있지요”하는 태연스러운 대답에 나는 내심 어찌 분개를 하였던지 다른 말을 다 잊어버려도 그 말만은 3,4년이 지난 오늘까지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 시를 쓰는 사람, 문학을 하는 사람의 처지로는 <이만하면>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 그들에게 언론자유가 있느냐 없느냐의 둘 중의 하나가 있을 뿐 <이만하면 언론자유가 있다고> 본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그 자신이 시인도 문학자도 아니라는 말밖에는 아니 된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소설가, 평론가, 시인이 내가 접한 한도 내에서만도 우리나라에 적잖이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문학의 후진성 운운의 문제를 넘어서 더 큰 근본문제이다.
시고 소설이고 평론이고 모든 창작활동은 감정과 꿈을 다루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감정과 꿈은 현실상의 척도나 규범을 넘어선 것이다. 말하자면 현실상으로는 38선이 있지만 감정이나 꿈에 있어서는 38선이란 타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이 너무나 초보적인 창작활동의 원칙을 올바르게 이행해보지 못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문학을 해본 일이 없고 우리나라에는 과거 십수 년 동안 문학작품이 없었다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문학작품이 없는 곳에 문학자가 어디 있었겠으며 문학자가 없는 곳에 무슨 문학단체가 있었겠는가. 아마 있었다면 문학단체의 이름을 도용한 반공단체는 있었을 것이지만, 이 반공단체라는 것조차 사실에 있어서는 반공을 판 돈벌이단체이거나, 문학과 반공을 <이중으로> 팔아먹은 돈벌이단체에 불과하였다.
-- 『김수영 전집』, 「창작자유의 조건」 중에서
김수영은 자신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달라져야 할 것이 있다면 첫째도 언론자유, 둘째도 언론자유, 셋째도 언론자유라고 했다. 1퍼센트의 자유가 불허된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고 말한다.
가히 문학자의 지표로 삼을 만한 말이다. 언론의 자유란 언로(言路)가 막히지 않는 것이다.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예전에는 정권이 언로를 막았지만, 현재는 여론이 언로를 막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인터넷 폭력 등이 대표적 예이다.
예전에는 문학이 자유의 침해에 대항해 투쟁했다면, 이제는 '부당함‘에 대항해 싸워야 할 것이다. 부당하게 내몰린 사람들과 사회적 사각에 방치된 약자들만으로도 우리는 하나의 국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문학자는 항상 얼굴에 불만이 가득 해야 하며, 윗사람들이 보기에는 ’눈엣가시‘ 같은 사람들이어야 한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려는 자세는 ’약자들의 국가‘의 주권을 포기하고 부당에게 신탁통치를 의뢰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이런 비타협은 문학도의 덕목으로 손색이 없다.
몇 십 년 만에 지식인들이 꿈에도 그리던 남북 문학자 연대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북한 작가가 남한의 문학상을 받기도 하고, 북한의 작품집에 남한 작가의 작품이 오르기도 하는 날이 온 것이다. 이것은 『고향』의 작가 이기영을 비롯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상과 정신의 통일을 이룩하고 수십 년 만에 찾아온 현실적 통일이자, 진정한 통일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세계의 결실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상 속에서 굳건히 쌓이고, 기정사실화 되어야 한다. 미국의 인디언 출입 금지법과 우리의 국가보안법이 사문화되거나 사문화에 준하여 결국 폐기되고 마는 것도 현실의 투쟁만 국한하지 않고 우리들의 의식 속에서 이런 악습들을 극복했을 때에 따라오는 선물인 셈이다. 통일과 자유, 타당성 등도 마음 안에 꾸준하게 그려질 때 현실적으로 무색한 날이 가까워질 것이다.
우리는 말의 길 뿐만 아니라 마음의 길도 애써 가꿔나가야 우리가 만나는 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