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향 지음, 신동주 옮김 / 인간사랑 / 2004년 12월, 948쪽, 4만원 가량

 

전국시대 주나라 말기 때 일이다. 당시 강성한 진나라가 구정(九鼎)이라는 보물을 요구했다. 보물을 요구하는 것은 당시 강대국이 즐겨 쓰는 외교전술인데, 약소국의 입장에서는 줄 수도 없고, 주지 않을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주지 않으면 그것을 빌미로 공격의 명분을 준 셈이고, 주면 나라의 상징인 보배를 넘겨주는 꼴이 되어 심정적으로 패망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곤란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어느 나라든 현명한 신하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안솔(顔率)이라는 이름을 가진 신하가 나서며 보배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안솔은 제나라로 가서, 진나라를 물리치면 보배를 건네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 말을 믿은 제나라는 군사 5만을 내어 진나라 군대를 물리치고 당당히 보배를 요구했다.

그러나 주나라 왕에게는 또 다른 곤란이었다. 제나라에게 보배를 넘겨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 다시 안솔이 나서서 보배를 보전할 수 있다고 간언하며 제나라로 떠났다. 제나라 왕에게 보배를 어느 길로 수송할 것인지 물었다. 제나라 왕은

‘양(梁)나라가 좋겠습니다.’

안솔은 양나라는 백성들이 간악해서 보배가 지나가도록 놔두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다시 제나라 왕이

‘초(楚)나라를 통해 수송하겠습니다.’

다시 안솔은 초나라 사람들 역시 호시탐탐 구정을 노리고 있으며, 국력도 강성하기 때문에 보배가 한 번 초나라 안으로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옛날 주나라가 은나라를 정벌할 때 구정을 옮기기 위해서 하나에 9만 명씩 81만 명의 인력이 소요되었습니다. 지금 귀국은 그만한 병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웃 나라 역시 그만한 병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상대할 병력과 무기가 무수히 필요합니다.’

제나라 왕은 얼굴을 붉히며, 갖지도 못할 보배를 빌미로 진나라를 몰아내려는 의도일 뿐이 아니었느냐고 말했다. 솔은 적당히 둘러대며 ‘우리 주나라는 제나라의 명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고 말했다. 제나라는 드디어 구정을 단념하였다.
 
         - 전국책 '주책(周策)' 중에서


세상을 살아기란 녹록치 않은 일이다. 특히 약자들에게는 매번 어려운 선택이 찾아온다. 어려운 선택에 처할 때 당황하지 않고, 적절히 돌파할 수 있는 능력은 적은 시간 공들여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크고 작은 흐름을 알아야 하는 것은 물론, 오감을 열어놓고 대화를 해야 한다.

 

강자와 다툴 때는 강자를 약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나폴레옹이 자주 사용한 방식인데, 전쟁에는 국지전이라는 여러 국면이 있는데, 아무리 막강한 대군이라도 지형과 환경을 활용한다면 얼마든지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는 게 지금까지 절대약세의 군대가 불가사의한 전승을 거둔 역사의 비밀이다.

 

사람의 생도 마찬가지다. 생활과 관계가 주는 묘한 심리전에 몰리면 자기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일단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가 패륜적 살인을 저질렀건, 총기난사로 부대원을 몰살시켰건 법적 도덕적 죄질과는 관계없이 냉정히 그의 행위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만이 ‘사기’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옳음’과 ‘옳음’으로만 이루어진 성 안에 ‘타락’과 ‘그름’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옳지 않음’이 적재적소에 있는 그림이 정말 잘 그린 그림이다. 마치 치명적인 독이 우리 몸을 받쳐 주는 이치와 같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를 때 그는 비로소 생명이 되듯이, 내가 그를 꿰뚫을 때 비로소 그는 나를 쥐던 손아귀를 놓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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