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입대할 때 '수진본 사서집주'(소매에 넣을 수 있도록 인쇄된 논어,맹자,대학,중용-경문만 나와 있음)를 가지고 가지 못한 것은 불행한 일이었다. 덕분에 훈련소에서 '신약'을 볼 수 있었다.

예수가 비유의 지도자라는 것은 그 때 확신했다. 경전은 비유의 잔치가 아닌가. 그래서 문학이고, 지금까지 종교적 힘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자대 배치받고 보름 정도 후에 '수진본'을 소포로 받았을 때 이틀만에 전부 읽어버렸다.

이것은 이 이야기의 주된 글감은 아니다. 사실 군대에서의 책 이야기는 참으로 눈물겹다.

 '장문의 리뷰'에 있는 책들이 그 시절에 만들어진 리뷰들이다. 그러니까 나는 군에서 수많은 불법을 자행했던 것이다. 이등병 시절에는 어쩌자고 플라톤의 '국가'라는 책에 손을 대서 주위의 동료들을 안타깝게 했다. 안타깝게 했다는 말은 다름이 아니라, 아직 날이 풀리지 않은 계절이라 모포를 덮고 잤는데, 모포 안에서 '손전등'을 키고, 책을 읽었다. 지하철에 샀던 천원짜리 손전등이었는데, 그것은 쓸 것이 못 된다. 잘 해야 열흘에서 보름 정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여친이나 가족에게는 항상 '손전등'을 보내줄 것을 강요하였고, 휴가나 외박을 나가면 두 세 개씩 들고 오는 것이 손전등이었다.

(그때 '북라이트'라는 것을 알았다면 내 군생활은 더더욱 축복이었을 것이다. 혹시라도 책 좋아하는 조카가 군대에 가거들랑 돈 아깝다 생각지 말고 괜찮은 '북라이트'를 하나 선물로 주기를 경험으로 권한다)

그러다가 발견한 것이 '화장실'이다. 화장실에서는 손전등이 필요 없었기 때문에 조명 아래서 편안하게 책을 읽었다. 그렇지만, 군에는 불침번이라는 게 있지 않는가. 통합막사이기 때문에 다섯 개의 부대가 같은 막사 안에서 생활을 했는데, 다른 부대 '아저씨'들의 근무 때만 되면 꼭 인원 확인을 철저히 하는 통에, 1-2시간을 넘길 수 없었다. 그보다 기막힌 일은 어느 날 화장실 안에서 '국가'를 3-4시간 동안 읽었던 적이 있었다. 나의 선임은 그때 나를 찾아 통합막사를 온통 뒤졌던 것인데, 내가 밝은 곳에서 책을 읽으려 옆 부대의 화장실을 이용했기 때문에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졸지에 '탈영 혐의'를 쓰게 된 것이다.

다음날 상병장 선임들의 무서운 눈초리와, 직속 선임의 '갈굼'은 피할 길이 없었다.

그러다가 상병 즈음 해서 '인트라넷 책마을'을 만나게 된다. 너무 늦게 만난 것이 애통할 지경이었지만, 막힌 세상 속에서 책 하나에 희망을 품고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클럽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그때부터 나의 독서는 공격적이 되었고, 체계화되기 시작했다.

먼저 책을 읽을 때는 형광펜으로 인상 깊은 부분을 색칠하고, 나중에 읽고 나서 그 부분을 따라가며 '워드'로 '친다' 워드로 치는 시간이 끝나면 그것을 '인쇄'해서 '오탈자'를 확인하며 내용을 정리한다. 그리고 서평을 쓰기 시작하는데, '집필'의 시간은 '발췌'의 정리가 충분히 되었을 때 이루어진다.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 그리고 행정병이라는 특수한 상황 안에서, '책마을'이라는 소통의 공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한 편이 나올 때, 아니 완성될 때마다 우레와 같은 성원과 댓글들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게 절정에 이를 즈음 해서는 서평 안에 '드라마'도 녹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엔트로피 서평은 나의 가족사를 녹인 것이다) 그렇게 하기를 몇 달, 우리 부대 사람들도 '책마을'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나의 글의 성실한 '독자'가 되어 주었다. 얼마 전에 거기 '촌장' 되는 분께 들은 이야기인데, 나의 부대 후임이 연락을 해서 나의 글을 구할 수 없겠느냐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 후임이 누군지는 짐작이 간다. 인트라넷에서의 '클럽'이라는 것은 워낙 '폭파' 위험이 많아, 나의 군 생활에서도 3-5번은 이사를 해야 할 정도이다. '기무사령부의 불법 커뮤니티 때려잡기' 이벤트는 그 바닥에서도 악명이 높다. 신고한 사람은 포상휴가를 준다고 하니,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우리 '책마을'은 우수 커뮤니티로 선정돼 어느 정도 안전망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책이란 것이 '비판'을 수반하기 때문에 '군대'라는 환경과 몹시 어울리지 못하는 특성이 있다. 그 비판을 우회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훈련도 자동으로 우리는 하게 된 셈이다.

'-밥'을 먹으면서는 환경이 더욱 좋아졌다. 우리 부대가 신 막사로 이전한 것인데, 부대마다 최신식 조명을 탑재한 화장실이 있었다. 거기서 나는 부담없이 3시간 정도씩 독서를 즐겼다. 그리고 '당직' 근무도 역시 '상황실' 지기였기 때문에 '집필'의 집중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때보다 워드 실력이 많이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책을 좀 더 가까이서 제대로 볼 수 있었던 것은 내게 참으로 큰 수확이었다. 이 '압축 독서' 아이디어를 제공해준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전 참모님이다. 내가 갓 전입했을 때, 참모님은 '예전 같으면 두꺼운 규정집 하나 띡 던져주고 다 치게 해서 훈련시켰단 말야' 하고 비아냥거렸고, 그 '친다'는 착상이 이렇게 연결된다.

군생활을 '책 생활'로 고스란히 녹을 수 있게 해준 우리 '책마을' 친구들과, 그 무거운 책 소포를 부지런히 부쳐준 어머니께 감사하는 마음 다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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