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제목을 '누나와 똥 이야기'로 하였다가, 누나와 똥을 함께 쓰는 것은 아니다 싶어 제목을 위와 같이 바꾸었다. 게다가 이 이야기는 나의 어린 시절과 '화장실'에 얼킨 이야기이므로, '똥'은 2선으로 내려가야 한다.
미식가 돼지를 돋통(통시, 돼지우리와 화장실을 함께 쓰는 제주도 특유의 양식)에 두지 마라
우리 삼촌네 집에는 돼지를 키웠다. 그런데 화장실은 '없었다'가 아니라 있긴 있었다. 그러니까 돼지우리에 돌담으로 구멍을 만들어서 거기 앉을 수 있게 만든 것이 화장실이다. 우리들이 쓰는 수세식 화장실이 맨 처음 등장한 것은 1960년대 이승만 정권 시절이었는데, '고려호텔'이라는 곳과 '경무대'(지금의 청와대) 두 곳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겨울이 되면 좌변기가 차가워져 일 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눈치 빠른 한 정치인이 미국 유학 갔다가, 좌변기 커버를 가지고 와서 이승만 대통령한테 바쳤는데, 굉장히 흡족해 하였다고 한다. 그 사람은 후에 장관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를 '변기통 장관, 좌변기 장관' 하였다고 한다.
그건 그렇고, 문제는 이 놈의 돼지와 나의 신경전이다. 녀석이 '똥맛'을 아는지, 돼지우리에 떨어진 '식은 똥'보다는 '갓 데운' 인분을 또 그렇게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돼지놈이 그 구멍과 좀 떨어져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 날도 급했지만, 돼지가 구멍 가까이 있어서, 돌멩이를 던져서 거리를 좀 떨어뜨렸다.
그래서 겨우 구멍 위에 앉을 수 있었는데, 밑이 축축하고 뜨끈뜨근한 것이었다. 이 '느낌'은 상상만 했지, 실제 경험한 적은 없었는데, 아니 이 놈의 돼지가 혀로 넬롬 내 엉덩이를 핥는 게 아닌가. 지금 생각하면 거의 비데 수준이었겠지만, 녀석은 이빨로 내 '똥'뿐만 아니라, 엉덩이도 씹어먹을 태세였다. 나는 하마터면 우리로 떨어질 뻔했고, 거의 졸도 직전까지 갔다. 지금도 돼지 멱따는 소리를 들으면 그 때의 공포가 몰려온다.
공교롭게도 '돼지의 공포'는 그 일뿐만이 아니다. 주위가 바다여서 여름이면 가까운 바다에서 헤엄을 친다. 나는 그렇게 헤엄을 잘 치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모래사장하고 가까운 바다, 그러니까 내 목 정도 오는 곳에서 놀고 있었다. 가까운 언덕에서는 어른들이 '돼지'를 잡고 있었다. 그 때의 장면은 비교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물론 그 '공포'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일단 낮은 절벽에서 돼지를 떨어뜨린다. 돼지가 기절을 하면 몽둥이로 살짝 다듬어 주고, 용접공이 쓰는 그 센 불로 돼지를 '그을린다.' 물론 이것은 '돼지 잡기 시나리오'다. 그날은 당연히 '시나리오' 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돼지는 낭떠러지가 낮았는지, 기절하지 않고 그대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것도 내가 설레설레 헤엄치고 있는 곳을 향하여, 나를 향하여 정면으로 헤엄쳐 왔다. 그 멱 따는 소리를 내면서... 끔찍했다. 나는 소리를 질렀고, 울었다. 주위의 사람들도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사람들이 돌을 던졌다. 다행히 돼지는 나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에 '웰컴투 동막골'을 보았는데, 멧돼지가 신하균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오는 장면을 보고 또 그 '공포'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