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서구 이혜리양(중1·가명) 삼남매는 겨울방학 들어 늘 아침 11시까지 잠을 잔다. 게을러서가 아니다. 집에 쌀 한 톨 없어 아침을 굶어야 하는데, 일찍 일어나면 배고픔을 참기 어렵다. 아침은 이들 남매에게 ‘금지 용어’다. 누구도 아침을 말하지 않는다. 아침만 생각하면 다들 우울해진다. 귀찮아서 아침 안 먹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삼남매는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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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리 삼남매가 도시락집에서 즐거운 표정으로 도시락을 고르고 있다. <윤희일 기자> | 막내 우석군(초등 3년·가명)은 “어쩌다 일찍 깨면 창자가 끊어질 것처럼 배고프지만 누나들이 눈치챌까봐 자는 체해요”라고 말했다.
대신 점심을 빨리 먹는다. ‘고마운 동사무소 언니’가 준 3,000원짜리 쿠폰 2장으로 도시락 전문점에서 도시락을 타 해결한다. 저녁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일요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동네 교회에서 평소 꿈도 못 꾸는 떡을 먹을 수 있어서다. 가끔은 점심·저녁도 굶는다. 혜리양이 몸이 아파 전문점에 못 갈 때다. 일요일 저녁도 거를 때가 있다. 도시락집이 쉬어 중국집에서 시키는데, 다들 느끼한 음식을 싫어해 그냥 굶는다.
도시락집에선 또다른 기쁨을 맛 본다. TV다. 둘째 혜지양(초등5년·가명)은 “아줌마가 도시락을 준비하는 15분간 TV를 볼 수 있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해요”라고 말했다. 집에는 TV가 없다.
지난해 9월 지금의 연립주택 지하 4평짜리 단칸방으로 이사오면서 대부분의 가재도구를 처분했다. 우석군은 “TV를 보다보면 배고프다는 걸 잊는데…”라고 말한다.
지난 11일 낮 12시30분 혜리남매 단칸방. 아이들은 도시락 뚜껑을 서둘러 열며 아빠 이모씨(46)를 챙겼다. “같이 드세요.” 하지만 아빠는 “너희들이나 먹어”라며 방 한 편으로 물러앉았다. 혜지양은 “아빠는 늘 우리가 남긴 것을 드세요”라고 기자에게 설명했다. 아쉽지만 일부러 조금씩 남긴다고 했다. 처음엔 혜리만 남겼지만 동생들도 곧 따라 했다.
막노동을 하던 아빠 이씨는 지난달부터 40일 넘게 일을 못 나갔다. 폐렴 후유증으로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데다, 허리와 다리 관절이 안 좋다. 엄마는 7년 전 병으로 돌아가셨다. 혜리 집에는 돈 한 푼, 쌀 한 톨이 없다. 지난해부터 아침을 굶기 시작했다. 전자제품이라고는 쓰지않는 전기밥통이 전부다. 요금을 내지 못해 전화도 끊겼다. 어쩌다 이웃어른들이 밑반찬을 주지만 냉장고가 없어 며칠 지나면 먹지 못한다.
혜지양은 일기쓰기를 좋아한다. 일기장에는 온통 ‘먹을 것’ 얘기다. ‘모처럼 밥이랑 찌개랑 김이랑 함께 먹으니까 정말 맛 있다’(1월2일자), ‘병원에서 따뜻한 오룡차를 먹었다’(1월3일), ‘교회에서 맛있는 떡을 먹었다’(1월8일) 등등. 일기에는 호떡, 라면, 음료수, 사탕, 김치찌개, 귤 등이 자주 오르내린다. 또래 어린이들은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이들에겐 하나같이 귀한 음식들이다.
도시락 분량이 적음을 시사하는 내용도 있다. ‘오늘은 아빠가 자고 계셨다. 언니가 팍팍 먹으라고 했다’는 대목이다. 서로 챙기고 사랑을 엮어가는 풍경도 나온다. ‘언니가 오늘 코피가 났다. 너무 불쌍하다’, ‘아빠 다리를 주물러 드렸다. 그래서 아빠가 잔다’(1월5일) 등이 그것이다.
삼남매의 취미는 독서다. 일본 작품을 번역한 ‘만화 우동 한 그릇’을 즐겨 읽는다. 식당 주인이 가난한 세 모자가 찾아와 우동 한 그릇을 주문하자 딱하게 여겨 한 그릇에 1.5인분을 담아 준다는 내용의 만화다. 이웃의 따스한 인심을 갈망하는 속마음이 드러난다. 혜지양의 꿈은 요리사다. 무슨 음식이든 맘껏 먹을 수 있어서다. 혜리양의 꿈은 소박하다. “나라에서 급식 주는 것만도 무척 감사해요. 더 바라는 게 있다면…TV 생기고, 아침밥도….”
〈대전|윤희일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