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2006년 신춘한라문예]소설부문 당선작(1)
그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김지희
입력날짜 : 2006년 01월 01일
낙타는 소리도 없이 출렁 흔들렸다.
아니다. 흔들린 것은 유리잔을 쥐고 있는 내 손목과 물, 그리고 내가 품고 있던 몇 알의 모래뿐이다. 유리로 만들어진 낙타는 단단하게 돋을새김되어 있다. 자신을 깨뜨리지 않는 한, 낙타는 한 걸음도 물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반투명의 유리잔은 팍팍한 모래사장으로 둥그렇게 휘감겨 있다. 낙타가 서 있는 반대편으로는 푸른 잎사귀를 늘어뜨린 키 높은 나무와 옴팍한 샘이 보인다. 하지만 내가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낙타의 보이지 않는 발바닥이다. 언제 칼날처럼 등을 베고 달아날지 모르는 모래를 지그시 누르고 있는 딱딱한 발바닥. 오랫동안 무두질한 낙타의 발바닥은 오른쪽으로 느리게 움직인다. 하지만 낙타의 다리가 옮겨지는 것과 같은 속도로 물을 품은 오아시스도 유리잔의 저편으로 달아나 버린다. 언제나 같은 속도, 같은 거리다.
반대편 모래사장 위에서 하늑거리는 잎사귀들이 몸을 뒤집으며 물 위로 고개를 수그린다. 시계가 돌아가지 않는 유리잔 위에서 낙타의 지친 다리는 여전히 근육을 부풀리며 다음 걸음을 뗀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꽃씨 하나가 황갈색 육봉 사이에서 반짝 마른 빛을 낸다.
기상캐스터는 오늘부터 황사현상이 더 심해질 거라고 예보했다. 내몽고의 커얼친 사막에서 불어온다는 모래바람은 매년 조금씩 남동쪽으로 몸을 튼다. 숲과 도시를 삼키며 점점 넓어지는 그 유동사막으로 깃발을 단 사람들이 아카시아 묘목을 들고 떠나고 있다. 식수심기운동 지휘대장이 아카시아 뿌리의 번식력에 대해 설명한다.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우리 나라도 모래사막이 될 겁니다. 태풍보다 무서운 바람이지요. 그것이 지나가고 난 자리에는 태양과 모래가 있을 뿐입니다. 이 나무가 우리의 푸른 땅을 지켜줄 겁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황량한 그 곳에는 만호보석이 널려 있지만 그것들은 모래바람을 막기 위한 돌담으로 쓰일 뿐이지요.
환경운동가들과 보석채굴업자들의 분주한 발소리가 나란히 바람소리에 묻힌다. 흙을 덮은 집에 쪽문을 내고 사는 사람들의 마을에서 낙타처럼 귀를 가린 사람들이 모래 위에 누워 꿈을 꾼다. 갈고리 같은 뿌리들은 그들의 꿈 속에서 보석을 움켜쥔 채 끝없이 뻗어나간다.
축하합니다, 오월의 신부가 되겠군요!
채널을 돌리자마자 디제이의 경쾌한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뒤이어 쏟아지는 축혼행진곡의 스타카토. 요란한 팡파르가 한낮의 햇빛을 퉁기며 질긴 메아리를 남긴다. 사연이 채택된 여자는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감사합니다”를 연발하고 있다. 디제이도 덩달아 톤을 높인다. 쇳소리와 함께 그들의 웃음소리가 찢어진다. 오늘따라 유난히 잡음이 심하다. 수신기를 창문 쪽으로 돌려놓아 보지만 소용이 없다. 떨리는 금속 안테나 끝에 어른어른 정오의 빛이 매달린다.
오늘의 주제는 ‘첫사랑도 성공할 수 있다’. 사연을 보낸 여자는 8년간의 연애담을 몇 분으로 요약해 낸다. 비음이 섞인 여자의 목소리는 미리 준비된 스크립트를 읽는 아나운서처럼 멈춤이 없다. 캠퍼스 커플, 남자의 군입대, 이별, 재회, 집안의 반대, 도피, 결혼…. 쉼표도 물음표도 없는 단락들이 이어진다. 물음과 답과 감탄사! 어쨌든 그녀는 최신형 김치냉장고를 얻었고, 그리고 다음 주엔 첫사랑에 성공한 신부가 되는 것이다. 디제이는 혼수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한다. 사랑이 가장 큰 혼수지요, 여자는 호들갑스럽게 맞장구를 친다. 마지막으로 오월의 신부는 몇 년 전에 유행했던 노래를 신청한다. 세상에 하나뿐인 그를 위한 노래예요.
예정시간이 초과되었는지 디제이는 급하게 여자와의 인터뷰를 끝낸다. 부서지는 나뭇잎 소리와 둔중한 베이스음이 규칙적으로 흘러나온다. 사랑해, 사랑했어, 사랑할 거야, 사랑은…. 잡음에 묻혀 불분명한 암호가 되어버린 노랫말들이 괴괴한 사위로 퍼져 나간다.
조금 전 삼킨 밥알이 까끌거리며 곤두선다. 트릿한 속에서 가벼운 한숨이 터져 나온다. 전기밥솥이 고장난 지도 한 달이 넘었다. 하지만 나는 김치냉장고나 전기밥솥대신 근사한 라디오를 얻고 싶어진다. 그렇다면 나도 지난날들의 음악을 신청할 수 있을까?
우리는 도대체 어떤 노래들을 들었었지? 나무탁자 위의 그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반질반질한 포마이카 탁자에 반사된 한낮의 역광 속에서 그의 실루엣이 하얗게 부서진다. 그는 좀체 말이 없다. 광고방송이 시작된 라디오를 끄고 그에게로 다가가 앉는다.
너는 무슨 노래를 들고 내게로 돌아왔니? 그는 여전히 말이 없다. 나는 그에게로 뻗으려던 팔을 도로 모아들이고 바람이 들기 시작한 창가로 돌아가 앉는다.
건너편 솔숲에서 바람을 탄 먼지들이 날아든다. 바다를 건너온 모래알과 꽃씨들이 이 쪽 바다의 끝에서 저 쪽 바다의 끝을 향해 섬을 휘감으며 날아간다. 유리에 매달린 먼지들을 쓰다듬으려던 손이 맥없이 미끄러진다. 손끝을 빠져 나온 훈기가 희미한 얼룩을 만들어 놓는다. 얼룩 너머의 세상이 편각을 이루며 일그러진다.
멀고 푸른 섬을 이룬 솔숲 속에서 이따금 새들이 솟구쳐 오른다. 새들은 망설임 없이 유리의 경계를 날렵하게 지나간다. 숲을 빠져나간 새들은 뿌연 공중의 편대비행에 재빠르게 섞인다. 이제 그림자는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가 바닥에 파묻힌 의자의 다리를 껴안으며 나른하게 드러눕는다. 먼지들이 외줄타기광대처럼 사선의 빛줄기를 어지럽게 감으며 올라간다. 눈을 감아도 눈꺼풀 위로 날아드는 입자들이 느껴진다.
의자에 걸린 그의 트렌치코트 끝자락이 발에 채인다. 표정이 사라진 그와는 달리 감청색의 외투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다. 말없는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한다.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악어가죽 지갑은 그의 생일에 선물했던 것이다. 현금 오만 원과 신용카드 두 장, 황갈색 아라베스크 무늬 타이가 도드라지는 여권용 사진 세 장, 그리고 아직 가장자리의 제단 흔적이 또렷한 낯선 이들의 명함들. 오른쪽 주머니에선 아직 다섯 개비가 남아 있는 구겨진 담뱃갑이 나온다. 넌 담배를 끊지 못했군.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고 라이터를 찾지만 손에 잡히질 않는다. 왼쪽 주머니 안으로 손가락 두 개가 들어갈 만한 구멍이 만져진다. 구멍을 빠져나온 라이터는 그를 감쌌던 등을 에둘러 뒷단의 끝까지 내려가 있다.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애를 써보지만 빠졌던 길을 쉽게 찾아낼 수 없다. 라이터는 내 손을 따라 외투의 구석구석을 지나가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가고 만다. 그도 구멍난 주머니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찾았을까. 결국은 어쩔 수 없이 딱딱해진 응어리를 등에 박아둔 채로 허청거리며 사람들 속을 걸어 다녔을까. 서랍을 뒤져 바늘쌈지와 성냥갑을 꺼내온다. 오래 방치된 감청색 실은 엉킨 채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 뜯어낸 밑단에서 새빨간 라이터가 또르르 굴러 떨어진다.
다시 그에게로 다가가 앉는다. 언제부터 붙어 있었는지 꾸들꾸들해진 밥알이 그 앞에 매달려 있다. 아주 오래 전에 이 섬은 바다였다는데, 이제 저 모래바람이 몇 천 년 더 불어오면 사막이 될지도 몰라. 바다 위에 뜬 사막을 본 적 있어? 그는 미동도 않는다. 이래도 가만히 있을 거야? 슬쩍 밀어보지만 소리 없이 미끄러지기만 할 뿐이다. 그의 입술이 있었던 자리를 더듬는다. 그는 돌아왔지만, 이젠 그가 부르는 노래를 들을 수 없다. 상자 속에 얌전히 담겨온 그는 이 솔숲 언덕을 떠나던 날처럼 세상의 먼지와 꽃가루와 그 미세한 입자들의 질서를 훌쩍 떠나 버렸다.
술에 취한 청년은 그를 넘어뜨리고도 한참을 가서야 차를 세웠다.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그의 몸은 무른 열매처럼 으깨어져 폭우가 쏟아지는 거리로 흩어져 있었다. 정확한 사인은 제2경추 치상 돌기 골절과 두개골 함몰이었지만 그 중 하나만으로도 죽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새벽 두 시 반, 그 여자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꾸만 입을 가리고 웃었을 여자를 바래다주고 네거리 교차로를 건너고 있었다. 그 여자의 집, 낡은 가구들이 기다리고 있을 그의 집, 이 언덕바지, 그리고 아무리 더듬어보아도 그의 생활과는 무관해 보이는 낯선 길로 뻗어 있는 네거리 교차로. 그는 교차로의 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늦은 시각이었지만 그는 여자를 보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여자가 못 이긴 듯 고개를 숙이고 그가 두른 팔을 걷어내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그 교차로를 벗어나 밤의 침대로 곧장 걸어갔더라면 둘은 결국 흡족한 표정으로 잠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깔밋한 양복이 흠뻑 젖은 흙색으로 바뀌도록 그는 잘못 던져진 돌팔매처럼 길 위에 드러누워 있었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아무도 그를 흔들어 깨우지 않았다. 동그랗게 담을 두른 사람들은 겁에 질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던 청년을 떠밀었다. 매캐한 냄새를 풍기는 급정거 자국과 그의 으깨진 두개골과 청년의 반짝거리는 구두가 나란히 놓였다. 붉은 빗금이 그어진 청년의 눈이 크게 벌어졌지만, 비명은 금세 빗소리에 묻혀 흘러갔다. 무성영화 속의 다정한 친구처럼 둘은 가만히 곁을 지키고 있었다. 사람들의 우산 끝을 타고내린 찬 빗방울들이 그의 이마로, 입술로, 움켜쥔 주먹 위로 떨어졌다. 끊길 듯 말 듯 외치며 달려오는 앰뷸런스가 부서진 그를 거두어갈 때까지 빗줄기는 더욱 거세어졌다.
길 위로 내동댕이쳐진, 그의 몸을 빠져나간 지난 시간들이 나를 불러냈다.
“나 왔어!”
방안으로 들어선 그는 이불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그 서슬에 차렵이불 속으로 고치처럼 말려 있던 몸이 뜯겨나간다. 숨은 뼈들이 으스러지는 것처럼 온 신경이 곤두선다.
“그냥 좀 내버려둬.”
다시 몸을 말아 들이며 이불을 뒤집어쓰기가 무섭게 그의 손이 어깨를 흔들어댄다.
“할 얘기가 있어서 왔단 말이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생리통이야. 곧 끝날 거니까 좀 내버려둬.”
돌아누운 등 뒤로 그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간다. 높은 음이 미세하게 떨린다.
“어떻게 그냥 내버려두란 말이야.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곧 끝날 거라니까.”
“무슨 생리통이 그렇게 유난스러워? 이틀째 출근도 안하고, 전화도 안 받고. 이렇게 혼자 틀어박혀 있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
“나 좀 잘게. 나중에 얘기하자.”
그는 바퀴가 닳은 사무실 의자 위에서, 공사현장의 굉음 속에서, 휴대폰을 들고 수십 번 통화버튼을 누르다 지쳐 달려온 것이다. 걱정이 되어서인지, 화가 나서인지. 아마 둘 다겠지. 우선은 걱정이 되었을 것이고, 하지만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걱정해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을 것이고. 고개를 파묻고 있어도 그의 표정이 또렷하게 보인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벽을 텅텅 두드리며 서성거리다 풀썩 주저앉는다. 금속버클이 열린 채 그의 가방이 구석으로 내던져진다.
그는 소소한 불운도 견디질 못한다. 3년 동안 자리보전을 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였다. 그의 아버지는 마지막까지도 ‘나를 죽게 내버려 둘 작정이냐’며 고함을 지르셨다. 그렇게 역정을 잘 내시는 분은 아니었다고 했다. 아버지 역시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병을 얻었고, 딴 사람이 되었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그. 그들은 죽음과 분노로 서로 얽혀 있다. 하지만 상실감보다 더 큰 어떤 힘이 그들을 꿰어 묶고 있었다. 그것을 무엇이라 이름붙일 수 있을까. 그의 말대로 진창을 같이 뒹굴어 본 가족이 없는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는 명확하고 계획적이며 계산한 것과 맞아떨어지는 일에만 안도한다. 그가 하루 종일 매달려 있는 제도판의 사각 설계도면처럼. 얼굴을 맞댈 때마다 퍼붓는 아버지의 악담들이 그를 바꾸어놓은 것은 아니다. ‘차라리 이제 그만 돌아가셨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던 그였지만, 어쩌면 그는 아버지의 빈 자리에 그려 넣을 것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악을 쓰고 주먹을 휘두르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가족의 촘촘한 내부도면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거의 없다.
그런 그를 앞에 두고 가타부타 입을 다문 채 드러누워 있으니 마음이 편할 리 없지만, 저절로 허리를 꺾게 만드는 복통은 이틀째 사그라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생리통이 심한 편이니, 그런가보다 했다. 하지만 생리가 끝난 뒤에도 뒤틀리는 복통은 멈추지 않았다. 독기를 품은 흰게들에게 갉아먹히는 것처럼 지독한 통증이었다. 살점이 뜯겨나가고 내장이 뚫리고 뼈가 으스러지고…. 내심 불안한 기운이 불쑥 솟아오를 때마다 그를 기다린 것도 사실이지만 전화를 걸 수 없었다.
<3일자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