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불처럼 또 한 편의 글을 썼네요. 시간을 들여서 심도 있게 동서양의 논구술 역사를 정리해 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논구술의 역사 - 서양


태초에 ‘로고스’가 있었나니.


서양의 지성사는 빛나는 이성을 통해 신화적 세계관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대립과 반발을 통해 구습을 타파하고 혁신적인 사고방식을 자꾸 발굴해냅니다.


대화의 첫 번째 주인공은 소피스트입니다. BC 5세기 무렵부터 BC 4세기에 걸쳐 그리스에서 활약한 지식인들의 호칭으로 이들이 주로 가르친 과목은 ‘변론술’이었습니다. 즉 '일신(一身)을 위해서나 국가를 위해서 선(善)을 도모하고, 언론이나 행위에서도 유능한 사람이 되는 길'을 가르치는 것이죠. 하지만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가르친 것은, 개인이나 국가에 대해 선이란 이런 것이라는 지혜가 아니라, 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선한 자인 체하는 기술만을 가진 데 불과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대화’는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 플라톤에서 시작합니다. 특히 플라톤은 그의 책을 모두 대화 형식으로 썼으니까 논구술의 혼합이죠.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을 차아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착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용기란 무엇인가’에 관하여 묻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를 들먹이며 지식을 자랑하지만 결국 ‘아직도 그것은 모른다’라고 하는 무지(無知)의 고백을 하게 됩니다. 결국 진정한 철학이란 ‘물음’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서양에는 예전부터 살롱(salon)이란 문화가 정착되었습니다. 귀족 부인들이 일정한 날짜에 자기 집 객실을 문화계 명사들에게 개방, 식사를 제공하면서, 문학이나 도덕에 관한 자유로운 토론과 작품 낭독 및 비평의 자리를 마련하던 풍습을 말하죠. 사랑 ·정념 ·재능 ·명예 ·야심 등 인간 본성에 관한 문제들을 즐겨 화제로 삼아 생각과 말을 세련시키던 살롱은 점점 인간성과 도덕에 관한 심도 있는 성찰이 주를 이루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모랄리스트라고 합니다. 서양의 토론 문화가 크게 활성화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살롱에서 연유하는 바가 큽니다.


서양에는 오래 전부터 에세이(essay)라는 장르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우리말로 수필(隨筆)이나 산문(散文)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에세이는 ‘격식을 갖춘 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로 이해하자면 논문이나 비평에 가깝습니다. 사고를 논리적으로 전개하면서도 창의적인 표현력과 문장력을 자랑합니다. 여전히 서양에서는 ‘에세이’를 시험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서양의 학생들도 ‘논술 시험’을 보는 걸 알았습니다. ‘에세이 시험’이 우리나라로 따지면 ‘논술 시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만 논술 시험 본다고 불평할 것은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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