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무자게 많은 글을 써대네요. 이건 좀 고등학생들이 보기 어려울 것 같은데... 어떠세요? 

 

논구술의 역사 - 동양


논구술의 핵심 키워드는 ‘토론’입니다. 동양은 기나긴 왕권 체제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권위주의적일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동양만큼 활발하게 토론문화가 형성된 곳은 없습니다. 동양은 수천 년 동안 토론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춘추전국시대를 지나면서 봉건적 체제는 완전히 무너지고 새로운 정치체제를 만드는 것이 커다란 과제였습니다. 난세에 영웅들이 많이 나온다는 이야기 많이 들어보셨죠.


세상을 구할 방도를 찾아 오랜 시간 고민하고 수련한 군자들이 세상을 주유하며 올바른 군주를 찾습니다. 그들의 머리에서 법가, 유가, 도가 사상이 굳어졌으며, 정치체제는 강력한 중앙집권으로 변모해갑니다. 진(秦)․한(漢) 제국의 탄생에는 그들의 역할이 절대적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에 능한 전략가도 있었고, 정도를 걷는 도덕주의자도 있었습니다.하지만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온몸을 바친 것은 다르지 않습니다. 유세의 성패 여부는 군주를 설득해내는 능력에 있습니다. 군주의 비위에 거슬리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구술 실력이 쟁쟁했다고 할 수 있겠죠. 그 당시에도 구술 시험이 있다면 이들이 1등으로 합격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로 가볼까요. 논술의 대표적 시험은 ‘과거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시험은 고려 광종은 958년 중국 후주에서 온 쌍기라는 사람이 제의해 처음으로 실시되었는데, 유교사상에 관한 생각과 능력을 지닌 인재를 등용하여 능력 있는 인재를 고루 등용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때 보는 시험은 경전을 얼마나 잘 외우는지를 보는 것이 생진과(生進科:小科)였습니다. 그런데 주자학이 정식 교과서로 채택되면서 천편일률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과거시험에는 또 다른 종목이 있으니 그것은 우리가 보는 논술처럼 시제(試題)를 주고 날이 어둡기 전까지 써서 제출하는 시험이었습니다. 시험의 주제는 주로 국가적 문제에 대한 진단이나 시문(詩文)을 창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정치인의 덕목은 현실 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과 서민들의 애환에 대한 세심히 아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시(詩)를 모르는 사람은 정치가의 자질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온갖 고전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오늘날의 논술 성격과 거의 일치합니다.


시험의 마지막 관문은 시무책(時務策)이었습니다. 이는 "당면한 정치 현안에 대한 국가정책(策)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묻는 시험, 곧 국가의 나아갈 바를 묻는 정치적 관문이자, 왕의 정치 파트너를 고르는 방식이었습니다. "지금 가장 시급한 나랏일은 무엇인가"(광해군)", "처음부터 끝까지 잘하는 정치란 어떤 것인가"(중종), "인재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세종), "정벌이냐 화친이냐"(선조) 등의 질문에서 볼 수 있듯, 책문에서 왕은 당대의 문제를 솔직하게 드러내며 절박하게 물었고, 이에 젊은 인재는 정치적 목숨을 걸고 정면으로 답했습니다. 전국시대의 유세가를 떠올리는 대목입니다. 이와 같은 오래된 기원을 안고 있는 시험이 논구술이므로, 여러분들은 이미 논구술 유전자를 타고났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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