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태우스 > 황우석 단상

 

 

 

 

1. 왜 그랬을까.

황우석의 기자회견을 보고나니 마음이 착잡하다. 그의 회견에서 ‘사과’는 없었다. 오직 떠넘기기와 논점 일탈만 존재했을 뿐이다. 그가 말한 걸 100%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해도, 줄기세포 8개만 가지고 ‘줄기세포 11개를 만들었다.’고 논문을 쓴 건 명백한 사기다. 능력이 있다는 것과 사기를 쳤다는 것은 전적으로 다른 전제, 그러니 ‘줄기세포를 만들어 보여주겠다.’는 건 절대로 변명이 될 수 없다.


2004년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은 200여개의 난자를 이용해서 딱 하나의 줄기세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만들었다는 것 자체만 의미가 있을 뿐, 환자 맞춤형 어쩌고 하는 게 가능하려면 성공률이 더 높아야 했다. 최소한 10개가 필요했던 건 그 때문인데, 딱 10개로 맞추면 너무 속이 보이니 11개로 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된다. 만약 8개만 성공했다면 사이언스에 실리지 못했을테니, 그건 노성일의 말대로 “학자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기자회견장에서 황우석은 시종 당당했고, 말도 거침이 없었다. 그 당당함이 혹시 자신을 교주로 모시는 소위 ‘황빠들’로부터 나오는 건 아닐까. 실제로 기자회견 이후에도 황빠들은 눈빛이 살아있네 어쩌니 하면서 노성일을 비난하기 바빴다. “그래도 피디수첩이 잘못했다. 왜?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 걸 보도했으니까.”라는 어느 황빠의 댓글처럼, 그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과학에 대해 무지한만큼 더 맹목적이 되어간다. 하지만 그들이 황우석을 열렬히 사랑하는 것과는 달리 황우석은 그네들을 무시하고, 자신이 마음 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같다. 그간 해온 숱한 거짓말은 물론이고, 앞으로 할 수많은 거짓말 역시 그런 믿음에서 기인한다.


2. 주 저자

‘황빠’에서 ‘황까’로 순식간에 전향을 한 나는 전향자들이 흔히 그렇듯이 황우석에 대한 증오심을 드러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것이 백의종군하겠다고 해놓고서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한데, 노성일에게 모든 걸 뒤집어씌우려는 게 비겁한 까닭은 논문에 등재된 스물다섯명의 저자 중 황우석이 주 저자(corresponding author)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대주주가 그렇듯이 주 저자는 논문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존재이며,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서 논문점수를 부여할 때 가산점을 받는다. 이름이 처음 나오는 제1저자에겐 가산점을 안주는 곳도 있지만, 주 저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다 (보통 학위생이 제1저자가, 지도교수가 주 저자가 된다).


우리 학교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국내잡지에 실린 논문 한편에는 150점이 부여되는데 저자가 셋이면 각각 50점을 받지만, 이름에 별표(*)가 들어간 주 저자는 거기다 75점(50%)의 가산점을 받아 125점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많은 가산점을 주는 이유는 위에서 말했듯이 그 논문의 모든 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무한책임을 져야 할 황우석이 노성일을 맹렬히 비난하면서 사죄 대신 화를 내는 건 그야말로 적반하장이다.


3. 누구 말이 맞는가?

인터뷰, 그리고 반박 인터뷰. 지루하게 이어지는 인터뷰를 그대로 생중계하는 걸 보고 있노라면 전파낭비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15일날 방영된 피디수첩을 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가 향수는 좋고 방귀는 구리다는 정도의 판단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황우석이 그런 식의 말들을 인터뷰에서 하는 게 얼마나 부적절한 것인지 알 수 있을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중 누구 말이 맞느냐고 묻는다면, 난 당연히 노성일의 손을 들어주겠다. 정황상으로도 그렇지만 내가 주목한 건, 황빠들이 비난했던 그의 작은 눈이다. 눈이 부리부리하고 신뢰성이 있어보이는 황우석과 달리, 가끔 울기도 했던 노성일은 그 작은 눈만큼이나 불쌍해 보였다.


TV나 만화에서 간신을 묘사할 때, 늘 눈을 작게 그리기 마련이다.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의심을 하기에 충분하다. 그렇기 때문에 눈이 작은 사람들은 남보다 더 정직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가장 눈이 작았던 나 역시 진작에 그런 진리를 깨닫고 정직하게 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지인들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믿는다.”는 말을 내게 한다. 눈이 크다는 것만 믿고 거짓말만 일삼는 사람을 생각하면, 눈 작은 게 언제나 나쁜 건 아니다.


4. 안규리

내가 황빠였던 시절 뚜렷한 근거도 없이 그를 옹호했던 건 사이언스에 대한 믿음도 작용했지만, (퀴리부인처럼 되라고 '규리'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안규리 교수를 알고 있다는 것도 이유가 됐다. 미국서 돌아와 자기 실험실도 없었던 시절, 우리 교실의 한 귀퉁이를 빌려서 실험을 하셨다. 남의 공간에서 더부살이하는 것만큼 서러운 것은 없는 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연구를 하는 안교수의 모습은 내게 감동을 주기 충분했다.


안교수는 그 논문이 조작이라는 걸 알았을까. 피디수첩에 의하면 줄기세포 관리는 몇몇 핵심인물이 했으니 안교수가 모를 수도 있을 것 같다. 과연 그럴까. 내가 아는 분이 2004년 논문에 관여했던 문신용 서울대교수를 만난 적이 있다. 윤리 문제가 불거져 황교수가 사과한 데 이어 MBC도 취재윤리를 위반했다고 사과한 시점이었는데, “이렇게 일단락이 되는구나.”고 지인이 말하자 문교수는 고개를 저었단다. “그렇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말은 당연하게도 문교수가 논문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지 않을까 의심하게 만든다. 손을 뗀 문교수가 아는 것을 안교수가 몰랐을까. 그녀 역시 어느 시점에서는 논문이 조작된 것임을 알지 않았을까.


5. 곰팡이

“줄기세포가 곰팡이가 슬어 모두 훼손됐다.”는 말을 황우석에게 들었을 때, 좀 어이가 없었다. 세포를 키우는 과정은 무균적인 공간에서만 가능하다. 세포는 ‘클린 벤치’라는 지극히 깨끗한 시설 안에서 배양하는데, 거기서는 인간오염기인 나도 오염을 시키는 게 쉽지 않다. 하물며 줄기세포만큼 중요한 것을 곰팡이에 오염시킨다면 그곳은 더 이상 ‘랩(실험실을 좀 있어보이려고 부르는 말)’이 아니다. 보관용액으로 쓰이는 -80도짜리 액체질소에 곰팡이가 기어들어갈 여지도 없거니와, 웬만한 세포는 여러 개로 나누어 보관함으로써 한큐에 다 죽을 위험을 분산시킨다. 그러니 곰팡이 운운하는 것보다는 40만원씩 받느라 굶주렸던 연구원이 다 먹어치웠다고 하는 게 훨씬 더 그럴듯하고 설득력이 있다.


6. 내부 고발자

‘사이언스는 무오류의 잡지다.’는 걸 비롯해서 내가 했던 말은 대부분 틀렸다. 그래도 딱 한가지 맞춘 게 있다면, ‘그 많은 연구원들이 모두 침묵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거였다. 피디수첩을 보니 최초의 제보자는 2004년 때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이고, 그가 황박사를 떠난 이유는 황우석이 “해서는 안될 일을 해서”, 그리고 “말려도 안되니까”였다. 피디수첩은 그 제보를 받고나서 조사를 시작했고, 결국 김선종 연구원에게서 핵심적인 증언을 받아낸다. 물론 그의 증언이 없었어도 방영에 별 문제가 없었을 만큼 피디수첩의 취재는 충실했다. 난 사이언스만 알았지 피디수첩은 몰랐다. 종교계와의 싸움을 비롯해서 피디수첩이 명예훼손에 휘말린 건 한두번이 아니며, 그 과정에서 피디수첩은 성실한 취재만이 살길이라는 걸 몸으로 깨달았을 거다.


난 부르짖었었다. 과학계는 자체 검증이 가능한 곳이라고. 그러니 과학계 스스로 검증하게 하자고.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사이언스에서 논문이 취소된 독일 과학자의 경우 문제를 제기한 곳은 역시나 비슷한 연구를 하는 다른 대학의 연구진이었듯이, 황우석의 실체도 결국에는 밝혀졌을 것이다. 하지만 실험의 전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내부 고발자의 제보가 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과학계의 검증엔 좀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 테고, 황우석은 그 동안 ‘영웅’으로 군림하면서 천문학적인 연구비를 계속 받아냈으리라. 황우석의 연구에 기대를 했던 분들의 좌절은 마음이 아프지만, 그의 제보는 과학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건 다른 얘기인데, 황우석이 일주일간의 병실 생활을 끝내고 서울대 연구소로 출근했을 때 연구원들 몇몇은 울음을 터뜨렸다. 울음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사랑하는 대상을 상실해서 우는 울음, 가슴의 눈물샘을 건드려 시작되는 감동의 울음,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회한의 울음, 누군가가 박해를 받을 때 박해 대상과 자기를 동일시함으로써 우는 것, 그리고 무서워서 우는 울음... 그들의 울음은, 내가 보기에, 자신의 수장이 박해를 받아서 나오는 “얼마나 고생했냐”는 울음이 아니었다. 표정으로 볼 때 그건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느냐”는 불안의 울음이었다. 그들은, 그게 조작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거다. 믿거나 말거나.


7. 자살

노성일의 폭로가 있던 날, 황우석이 자살하지 않을까 걱정한 사람이 제법 있었다. 그래서 안규리 교수도 그에게 정신과 의사를 보낸 것이겠지만, 기자회견을 보니 황우석은 절대로 자살할 사람이 아니었다. 자살은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 남아 있는 사람의 행위이다. 하지만 과학계에서 절대로 해서는 안될 짓을 해놓고도 다른 사람 탓만 하는 사람에게 쥐꼬리만한 양심이 존재하리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니 그런 걱정은 안하셔도 될 것 같다.


혹자는 말한다. 그래도 능력은 있으니 기회를 줘야지 않냐고. 하지만 과학계는 거짓말에 대해 일반 사회보다 훨씬 더 가혹하다. 사이언스는 물론이고 데이터 조작같은 짓을 했던 사람의 논문을 받아줄 학술지는 하나도 없다. 그러니 이제 황우석을 잊자. 지난 2년간, 그리고 최근 한달여 동안 우리 사회는 너무 황우석 얘기만 했다. 이 땅에 과학자가 황우석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사람도 그 혼자만은 아니다. 혹 그중 누군가가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한다고 해도 수십조의 부가가치를 산출한다느니, 강원래를 걷게 한다드니, 우리나라를 앞으로 먹여살릴 거라느니 하는 식의 기대는 하지말자. 황우석 스스로 자초한 면이 있지만, 황우석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그로 하여금 자멸의 길을 걷게 했다는 걸 상기하자.


8. 사족

노성일의 폭로가 있던 날,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잠깐 구상했던 거다. 부관참시라고 생각지 마시고 재미로 읽어 주시길.

 

[D 대학 서민 박사는 소의 대변에서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려진 ‘야클’이란 기생충을 발견했다. 서씨는 “올해 초 전남 곡성에 있는 소 100마리의 대변을 받아서 검사한 결과 11마리의 변에서 야클을 발견했다.”면서 “곧 네이쳐 지에 이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쾌거에 찬사를 보내면서 “기생충학에 대해 아낌없는 지원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알라딘수첩 팀이 가보니 전남 곡성에는 소가 딱 두 마리밖에 없었다. 게다가 서씨가 증거로 제시한 다른 쇠똥의 사진들이 죄다 2번 소와 3번 소의 것과 똑같았던지라, 의혹을 증폭시켰다. 곡성에 사는 주민 박찬미 씨(35)는 “원래 곡성은 여물이 없어서 소를 키울 수가 없는 곳”이라면서 “곡성에 소가 100마리나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씨는 “내가 쇠똥을 받을 당시에는 분명 100마리가 있었다. 지금 두 마리밖에 없다면 그건 마을 주민들이 다 잡아먹은 탓”이라고 반박했다. 이 얘기를 들은 마을주민 세실(37) 양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마을에서 소 98마리를 잡아먹었다면 거의 사흘마다 한 마리의 소를 먹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난 쇠고기를 못먹은지 벌써 3년이 되었다. 내가 단 한 마리의 소라도 먹었다면 팔뚝이 이리도 가늘겠는가.”


알라딘수첩 팀은 서씨에게 따졌다.

“소는 다 어디로 갔습니까? 정말 있었다면 소꼬리라도 보여 주시죠.”

서씨는 흔쾌히 보여주겠다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하지만 며칠 뒤 서씨는 다른 말을 한다. “곡성이란 곳이 워낙 척박한 곳이라 꼬리가 없는 소도 많이 있었고, 확보해둔 소꼬리도 우리 연구원이 꼬리곰탕집에 팔아치운 모양입니다.”

알라딘수첩은 물었다. “그렇다면 야클이 정말 있긴 있는 겁니까?”

서씨는 고뇌에 찬 표정으로 대답했다.

“야클은... 우리가 야클을 있다고 믿고,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또 그 믿음에 따라 행동한다면 야클은 분명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야클의 존재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실체를 보여줄 것을 요구한다면 야클은 없는 것이기도 하지요. 기자님은 어느 쪽입니까?”

그의 질문에 알라딘수첩 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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