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법과 글쓰기
일찍이 조선 후기의 대문호 연암 박지원도 글쓰기를 병법에 비유하여 말한 것이 있다.
"글을 잘 짓는 자는 병법을 안다고 할 수 있다. 글자는 비유컨대 병사이고, 뜻은 비유컨대 장수이다. 제목은 무찔러야 할 적국이고, 고사를 인용하는 것은 싸움터의 진지이다. 글자를 묶어 구절이 되고, 구절이 모여 단락을 이루는 것은 부대의 대오행진과 같다. 글에 리듬을 얹고 표현을 매끄럽게 하는 것은 나팔이나 북, 깃발과 같다. 글이 호응을 이루는 것은 봉화와 같다."
〈소단적치인(騷壇赤幟引)〉이란 글에 나온다. 장수가 병사들을 지휘하여 적국을 무찌르듯, 글쓰는 이는 단어와 문장을 주제로 집중시켜 쓰려고 하는 내용을 공략해야 한다. 부대에 소대와 중대와 대대의 지휘 체계가 있듯이 글자가 모여 문장을 이루고, 문장은 모여서 단락을 이루며, 단락이 모여서 전체 글을 이룬다. 각각의 부분들은 장수의 일사불란한 지휘 아래 일제히 돌격하여 주제라는 적국을 무찔러야 한다. 그러자면 진군 나팔도 있어야 하고 후퇴를 알리는 북도 필요하다. 소리만으로 부족할듯 하여 깃발을 흔들어서 부대원에게 명령을 전달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글쓰는 이는 문장이 껄끄럽지는 않은지, 표현이 부적절하지는 않은지 살펴서 자신의 의도를 독자에게 오해 없이 충분하게 전달하도록 힘써야 한다. 직접 적을 보지 않더라도 먼 곳의 봉화를 보면 적이 쳐들어 온 것을 알 수 있듯이, 시시콜콜이 다 말하지 않아도 글 쓰는 이의 의도가 십분 전달되는 글을 써야 한다.
박지원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대저 장평(長平)의 병사가 그 용감하고 비겁함이 지난 날과 조금도 다르지 않고, 그 무기의 예리하고 둔함이 전 날과 변함이 없었는데도, 염파(廉頗)가 이끌 때는 적을 눌러 이겼고, 조괄(趙括)이 대신하자 모두 스스로 죽음을 당했다."
염파는 조나라의 유명한 장수였다. 진나라와 싸울 때 염파는 진나라의 예기를 꺾으려고 일부러 성을 굳게 지키며 나가 싸우지 않았다. 염파의 지연 작전에 사기가 떨어질대로 떨어진 진나라는 고민 끝에 우리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늙고 겁 많은 염파가 아니라 젊고 용감한 조괄이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조나라에서도 염파를 겁장이라고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으므로 왕은 조괄에게 지휘권을 넘기고 말았다. 기고만장한 조괄은 부임하자 마자 지휘관과 명령체계를 모두 바꿔 버리고 진나라를 얕잡아 보고 교만하게 싸우다가 그만 10만 명이나 되는 조나라의 병사들을 일시에 죽이고 말았다.
같은 병사를 가지고 싸웠는데도 이순신이 거느리면 연전연승 했고, 원균이 이를 대신하자 조선 수군은 맥도 추어 보지 못하고 떼죽음을 당했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병법을 운용하는 장수의 능력이다. 글쓰는 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쓰고자 하는 글감을 공략하는 안목이다. 훌륭한 쓸거리가 있다 해도 이를 효과적으로 공략하지 못하면 독자에게 아무런 느낌을 일으키지 못하는 죽은 글이 되고 만다. 비록 많은 인용과 예시를 했다 하더라도 주제를 향해 집중되지 않으면 중구난방의 산만한 글이 되고 만다. 아름다운 문장을 썼다해도 초점이 없으면 알맹이 없는 허술한 글이 되고 만다. 훌륭한 군복을 입고 좋은 총을 잡았다고 해서 적을 이길 수는 없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적의 허점을 파악하고, 그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대응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박지원은 계속해서 말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그 근심이 언제나 갈 길을 잃고 헤매거나 요령을 얻지 못하는데 있다. 갈 길이 분명하지 못하면 한 줄도 쓰기 어렵고, 쓴다 하더라도 글이 더디고 껄끄러운 것이 문제가 된다. 요령을 얻지 못하면 아무리 꼼꼼하게 생각하여도 오히려 성글고 새는 곳이 있게 되어 탈이다."
논술에 임하는 학생들을 보면 제목을 주면 우선 쓰고 볼 생각부터 한다. 기세 좋게 시작한 글쓰기는 그래서 두어 줄 쓰고 나면 말문이 콱 막히고 만다. 왜 그랬을까? 갈 길을 잃고 헤맸기 때문이다. 공격 목표도 정하지 않고 무작정 `돌격!`을 외치는 장수 격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다른 사람의 글도 많이 읽어 보고 글을 쓰기로 한다. 논거도 있고 예시도 풍부하므로 좋은 글이 될 듯 싶었다. 그러나 막상 글을 다 쓰고난 뒤 읽어 보면 너무나 진부하고 상투적인 이야기를 주욱 늘어 놓았을 뿐이다. 왜 그랬을까? 요령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적군에 비해 무기도 우수하고 군사도 많았는데 작전을 잘 짜지 못해 눈 앞에서 승리를 놓친 장수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