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문화 제국주의


10월 20일 유네스코는 ‘문화 다양성 협약’을 가결시켰다. 이 협약은 1999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처음 발의되었는데, 주로 프랑스와 유럽 국가들이 미국문화의 범람에 맞서 자국문화를 지키자는 취지에서 제안된 것이다. 생물에 종(種)의 다양성이 있듯이 문화도 민족, 언어, 지역에 따라 그 성격이 다양한 것이고 이러한 다양성은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협약의 취지이다.

그런데 148개의 회원국 중 미국과 이스라엘 두 나라만 반대했다고 한다. 이스라엘이야 미국이 하자는 대로 따르는 나라이니 언급할 필요도 없거니와. 미국이 이 협약에 반대한 사실은 깊이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이 협약에 반대했다는 것은 “각국은 자국문화에 대하여 보호 조치를 취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협약의 규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문화의 획일주의에 반대한다”는 협약의 근본정신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세상 만물은 다르게 태어난다

이 세상 만물은 원래 다르게 태어났다. 같은 꽃이라 해도 빨간 꽃도 있고 노란 꽃도 있다. 같은 나무라 해도 침엽수도 있고 활엽수도 있으며 키가 큰 나무도 있고 작은 나무도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피부가 흰 사람도 있고 검은 사람도 있으며, 잘생긴 사람도 있고 못생긴 사람도 있다. 또 야구를 잘하는 사람도 있고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세상이다.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지역과 언어와 민족의 풍속에 따라서 나라마다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의 다양성은 그 나름의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것대로 인정되어야 한다. 유네스코가 우리나라의 판소리와 강릉 단오제를 세계 무형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것도 각국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판소리와 강릉 단오제는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적 개성인데 이것을 보호,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렇게 각기 다른 다양한 문화가 공존함으로써 세계의 문화가 더욱 풍성해질 수 있는 것이다.

영화만 봐도 그렇다.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과 장예모 감독의 「붉은 수수밭」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것은 각각 한국과 중국의 독특한 문화적 개성을 표현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지금 미국의 헐리우드에서 제작되는 영화 편수는 전 세계 영화의 10분의 1에 불과한데 이 10%의 미국 영화가 세계 영화 수입의 85%를 장악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각국의 스크린 쿼터 제도에 대하여 미국이 집요하게 압력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는 문화적 주권을 가지고 있다. 모든 국가는 헐리우드식의 획일적 영화문화에 맞서 자국의 문화를 보호할 권리가 있다. 그렇게 해야 「취화선」이나 「붉은 수수밭」같은 개성적인 영화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다양해서 가치 있는 것, 다름을 인정해야

다시 말하거니와 나라마다 문화는 다양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모든 나라의 문화가 획일적이면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각국의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다름으로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문화적 개성을 인정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국의 문화를 타국에 강요한다면 이것은 ‘문화 제국주의’ 또는 ‘문화 전체주의’에 다름이 아니다.

미국 대통령 부시의 얼굴은 ‘중앙집권형’이다. 즉 두 눈과 코가 얼굴 중앙에 몰려 있다. 자기의 얼굴모양과 마찬가지로 부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 세계문화의 구축을 기획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기획이 ‘문화’와는 거리가 먼 ‘야만적’ 기획이라는 사실을 미국과 부시는 늦기 전에 깨닫기 바란다.


글쓴이 / 송재소
·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 저      서 <다산시선> 
               <다신시연구> 
               <신채호 소설선-꿈하늘> 
               <한시미학과 역사적 진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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