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난 吐瀉物에 救出當했다

얼마나 대단한 일기를 쓰려고 하는지, 또 얼마나 장문의 일기를 쓰려고 하는지 오늘은 순수하게 일기를 쓰기 위해서 윙 커멘더 피시방을 찾았다. 우선 이 피시방 제목이 좀 그렇다. 나는 항상 윙 카펜터로 알고 있었는데, 두 개 다 뜻을 모른다. 이왕이면 발음하기도 멋스런 카펜터가 낫지 않은가 하고 생각하였다. 그나저나 어젯밤은 간만에 과음을 하였는데, 내가 왜 과음을 했는지 잠들때까지 잘 몰라서 질책하는 여자친구에게 항변 한마디 하지 못하고 '꼬집힘'만 당했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나는 새벽 한신줄 알았다- 물렁물렁하던 속이 드디어 발작을 일으키더니 전날 먹었던 돼지고기를 잘게 썰어서 방출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전에 낌새를 알아채서 한동안 누운 채로 고민했다. 방에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대책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두 가지 방향에 대한 대비책을 세웠다. 우선 '그분'이 급히 오실 경우에는 휴지통을 안고 그 구멍에다 쏟는다. 그리고 내가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실 경우에는 싱크대로 달려간다. 그런데 갑자기 올라오는 느낌이 목에 '턱!' 하고 왔을때 주저않고 싱크대로 달려갔다. 중간에 떨어져 나오는 것을 손으로 막고 한움큼의 '그것'과 함께 시원하게 내보냈다. 사실 나는 '구토'를 조금은 사랑한다. 그 성격이 박력있는 것은 물론이고, 한 번 불붙으면 위 속에 있는 덩어리를 한톨도 남김없이 다 털어내는 정신은 그야말로 작가정신과도 통한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배에서는 '꼬르륵' 하는 소리가 나기 때문에 얄밉고 깜찍하다는 애틋한 마음도 든다.

토사물 안에는 소설 두 점과 내 여자친구의 인생 한 점과 내 인생이 몇 점 들어 있었다. 가히 최근의 전환기로 삼을 만하다. 아! 그리고 사랑스러운 우리 동네 꼬마아기를 빠뜨릴 수 없다. 내가 '꼬마아기'라고 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그애는 순수하게 토사물에서 나온 것은 아니지만 '토사물을 향해' 들어왔다.

'토사물'이란 한자를 확인하기 위해 국어사전을 뒤지던 중 토사곽란(吐瀉곽亂-응씨! '곽'자도 없고ㅠㅠ)-위로는 토하고 아래로는 설사하면서 배가 뒤틀리듯이 몹시 아픈 병증-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는데 꼭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에게도 병증은 병증이 되는데 실은 이 글도 그 병증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꼭 한자로 써야 할 이유는 없는데, 그렇게 고집하고 싶어서 썼다. 특히 '당(當)'자를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커다란 이유가 되겠다. 구출은 구출이지만 '구출됐다'가 아니라 '구출당했다'가 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구출됐다'는 그야말로 내가 객체가 돼버리는 수동적인 관계가 된다. 그러나 '구출당했다'는 구출하는 '대상'과 구출당하는 '대상'이 모두 염두된 단어이기 때문에 그렇게 취하는 것이 당연하며 또한 이것은 구출당하는 사람의 입장에 좀더 손을 들어준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조금만 더 나아가자면, 누군가 구출해준것보다 내가 당한 것이 이 글의 생명이며, 그것은 오랜 내 인생 여정에도 그대로 적용되리라 생각한다. 나는 많이 당해야 꽃을 피울 인생이다. 그리고 '구출'이란 단어도 찾아보았는데, 재미있게도 '救出-구하여 냄'과 '驅出-몰아냄'이 붙어 있었다. 후자의 의미도 재미있고, 또 적절하리라 생각되어 그것을 전자에 흡수시킨다. 그러면 한자로 쓰지 말고 한글로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물음이 튀어나올 수 있는데, 나는 일단 그 물음에서 도망칠테다.


어젯밤의 술자리는 나로서는 그리 허심탄회한 자리는 아니었다. 여자친구의 회사 직원들의 가족 송년 모임의 성격이었기 때문에 나의 자리가 위축되기도 했거니와 여자친구를 통해서 회사 오너의 자질과 됨됨이를 적나라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맘이 좀 불편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를 꼭 데려오라는 청이 있었다 해서 가게 되었고, 또한 그 어색한 분위기에서 여자친구를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도 좀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 탓인지, 시시컬컬한 대답 외에 마음 속에 있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실장이란 사람은 나를 앉혀놓고 한마디 했는데, 그 전문을 나는 기억하고 있고, 또한 그것이 나의 토사물을 깨운 주범이라는 것을 나는 배가 휘어지도록 토하면서 깨달았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은 윗글처럼 어색하거나 기분나쁘지 않았고 아주 자연스럽게 분위기 안에서 술을 마셨던 것에 대해서는 남몰래 자긍심을 느낀다. 아무튼 오실장이란 사람은 내게 왈
"우리가 하는 일은 참 어렵고 힘든 거에요. 그래서 프로정신이 필요하답니다. 00씨는 그 점에 있어서 많이 모자라고 배워야 할 것도 많아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삼일을 해서 그만두기도 하고 일주일을 해서 그만두기도 하죠."
나는 별로 애쓰지 않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끄덕 대응해 주었지만 마음 속에서는 한마디가 입안까지 밀려들었다. 그러나 사람이 마음의 말을 할 때는 순간적으로 선택의 입장에 놓이게 된다. 그 선택이 말을 꺼내놓기 꺼려한다면 나는 그 선택을 매우 긍정하는 편이다. 그래서 끝내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몰래 꺼내놓자면 이렇다.
"오실장님. 죄송합니다만, 제가 듣기로 '세 사람이 길을 가매 반드시 내 스승이 거기 있다'고 하며 '그 사람의 좋은 점은 따라가려고 노력하고 좋지 않은 점은 가려내어 내게는 그런 점이 없는지 반성하고 고친다'*고 하였는데, 실장님의 회사에는 족히 세 명은 더 되는 것 같으니 스승이 없다고 할 순 없겠죠. 그런데 실장님이 말하신 일주일, 혹은 이틀 일하고 그만둔 사람들은 실장님 말씀처럼 모자라고 힘들고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지만, 실장님도 역시 그러한 점이 없진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생기지 않았나 합니다. 제가 들으니 실장님은 여론에 충실하지는 않다고도 하고, 약간의 독재를 한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회계에 있어서도 사비(私費)와 회사의 공금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경영에 있어서도 객관적인 전략보다는 인정이 개입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프로'라고 하신 말씀은 거두어야 하시지 않을까요?"
이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잘한 일이다. 그러나 이 말은 계속 내 마음 속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침에 여자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지금 추진되고 있는 다른 직장 얘기가 잘 된다면 그리로 가라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젊을 때 만만찮은 고생을 한다. 그러나 어떤 비젼 없이 하는 고생은 헛수고일 뿐이다.
00야! 나는 네 오빠의 반대가 옳다고 보지 않는다. 사회에 적응해야 한다지만(이건 오빠의 말이 아니다) 자신의 인생과 소신 같은 것들을 모두 사회의 척도대로 일그러트린 다음에야 가능한 '적응'을 나는 '적응'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다. 분명히 사회도 옳지 않은 점이 많으며, 그것이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 적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대개는 통설로 받아들이는 그 '사회'에 대해서 나는 온몸으로 항변하고 싶다. 그것이 내가 '사회'를 살아가는 의미이다.
아무튼 그 후로 술을 죽게 먹어서 뻗어버렸다. 그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다.
아니다. 꼬마 아이들이 있었다. 그 중에도 '오은총'이라는 아이랑 재미있게 놀았는데, '은총'이라는 이름이 얘쁘기도 했거니와 '환희'(잘난 야구선수와 잘난 씨에프 겸 영화 겸 드라마 스타의 아들) 생각이 나서 좀 슬펐다. 그렇게라도 좋은 의미의 이름을 짓고 싶어 하겠지만, 그것보다 사람의 이름은 좀더 그윽한 무엇이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운명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이름보다 더한 강자는 없다고 본다. 그래서 자기 자식 이름을 스스로 짓기 위해서라도 부모는 한문을 좀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천박한 지식으로 볼 때도 '환희'나 '은총'이라는 이름은 당사자의 인생과 통하지 않을 뿐더러, 어떤 호소도 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아이의 인생에 신비한 비밀을 숨겨 둘테다. (이렇게 말하니 조금 부담이 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부모는 우리말에 대한 어느 정도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보람'이라는 이름이 만여 명에 달한다는 말을 접할 때 그 아쉬움은 더하다.(누가 국문학적 철학적 한문학도 아니랄까봐. 죄송함다 습관이 돼놔서)

아직도 토사물에서는 꺼내 놓을 게 많다. 내 여자친구는 방금 메시지를 보내서 '왜 그리 징하게 기냐'하고 또 꼬집었지만, 좀 써야겠다. 내 글은 모두 비망록의 성격을 가지고있다. 특히 어떤 '꿈틀거림'에 의해서 글을 쓸 때는 더하다. 그래서 정성을 다해 쓴다. 독자에게는 상당히 괴롭겠지만, 나의 사정을 좀 인정어린 눈으로 보아주기를 바랍니다. 지금 내 여자친구는 두더쥐 게임처럼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갔다를 자주 반복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 한 학기 동안 나의 동료인 철수한찰**은 소설을 두 개나 완료했다고 하지만, 나는 구성(構成; structure)단계의 소설 한 점과 구상(構想; image)단계의 소설 한 점과 제목단계의 소설 한 점을 겨우 갖고 있을 뿐이다. 그 중에서 두 개가 토사물 안에서 쏟아져나왔다. 친절하게 제목과 같이 나왔는데, 하나는 '두 번째 얼굴을 하고 있는 너'에다가 밑에 부제로 '-회색연애소설'이라고 붙은 것이고, 하나는 '독자의 꿈'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 자못 여러 가지 구상이 붙어 있는 소설이다.
한림화 선생의 말처럼 '연애소설은 모든 작가의 꿈'이다. 나도 좋은 연애소설 하나 써보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는데, 부제를 보아하니 나의 연애관은 부정적인 색깔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그것은 약간의 학을 접한 경험과 사서(四書)를 서당에서 배운 경험이 일조한 듯하다. 이것을 코믹하게 쓴다면 부제를 걷어버려야겠지만 지금으로선 그냥 놔두고 싶다.
'독자의 꿈' 중에서 재밌다고 생각되는 착상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판금조치(販禁措置)'와 관련된 내용이다. 어느정도 미래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거기는 '작가재판소'라는 곳이 있다. 한 작가가 죽은 후 150년이 지났을 때 그 작품을 문제삼을 수 있는데, 그 중에서 '표절'에 관한 조항은 없다. 재판소가 특히 중점을 두는 것은 '작가의 엽기적 행각과 그 작품'이 과연 정당한가 하는 문제다. 재판소의 판결에서 부당하다는 판정이 나오면 출판사는 전판(全版) 70쇄 이전의 독자들에게 10%의 벌금을 지불한다. (70판이 되지 않는 작품들은 문제삼지 않는다) 그리고 현재 판매되고 있는 책에 한해서는 역시 10%를 깎아서 판매하도록 명령한다. 그것은 사실상 판금을 의미하는데, 왜냐하면 그런 판결을 받은 이후로 그 책은 사실상 판매율 제로에 가깝게 되고, 그 작가의 연구자를 제외한 다른 독자들은 그 책을 사지 않기 때문이다.


아! 아직도 쓰지 못하고 머릿속에 노트 속에 감춰둔 작품들은 쌓여만 간다. 그런데 나는 왜 완결짓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지 모르겠다. 사실은 조금 알 것 같기는 하다. 며칠 전 서당 훈장님이 그러한 나의 지론에 힘을 실어주는 말씀을 해 주셨다. "사상이 없는 작품은 읽을 거리는 되겠지만 명작은 되지 못한다."(우리 나라에 노벨문학상이 없는 이유를 말씀하시며) 그렇다. 내게는 역사관과 인생관과 사상이 결여되어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논문이나 서평 혹은 세미나 자료 같은 것에 노력을 해야겠다. 특히, 요즘은 하나의 연재물을 계획하고 있다. 상식철학사(常識哲學史)라는 제목으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에서 현대 철학까지 정리를 해서 올려놓을 계획인데, 내게는 詳識이 될 것이고, 독자에게는 常識이 될 것이므로 동전처럼 앞뒷면을 가진 것 같아 내게는 기쁘다. 지금 나의 근황은 여러 가지 자료에 눌려있다. 내게 있어 작품 특히 소설의 집필은 가장 마지막 단계이다. 가끔 단발적으로 꺼내놓는 소설도 있겠지만, 그것은 모두 습작임을 인정한다.

작품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나는 이제부터 스스로 작가라고 여기는 뻔뻔스러움을 가지고 생활하기로 하였다. 사실 등단이라는 것이 좀 그렇다. 등단은 했으면서도 작가가 아닌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아직 내가 스스로 작가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뻔뻔스럼'이란 꼬리표를 갖고 있지만 아마 그 꼬리표는 내가 현실적으로 등단을 한 후에도 오래도록 나를 괴롭힐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 '뻔뻔스럼'을 갖게 된 이유는 지금 내 생활을 감싸는 어떤 '어중간함'이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지만 작가는 아니기 때문에 작품을 작가의 입장에서 써야 하는지 작가 지망생의 입장에서 써야 하는지 구분이 매우 모호하다. 그리고 그런 구분은 역사나 인생을 놓고 볼 때 가소로운 구분이다. 나는 세계에서 작가라는 이름을 갖지 못할지라도 백년 혹은 수천년 이후의 독자에게 직접 얘기할 순 있다. 그 원고가 끝내 발견이 되지 못하거나 발견될 자격을 갖지 못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실 자신이 천재라고 여기는 뻔뻔스럼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 중에서 진짜 천재도 여럿 있다. 나는 천재에 대해서 고민해본 사람은 모두 천재라고 생각한다. 내가 주는 천재라는 이름이라서 별로 쓸모는 없지만 그들을 모두 천재로 임명한다. 그런데 나는 천재가 아니라 작가이다. 나는 작가이다. 작가적인 생활을 할 것이고, 왜 작가인지 그 목적을 한번 고민해볼 생각이다. 아울러 무목적의 목적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생각이다. 특히 자신이 작가라고 생각하고, 천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작가와 천재가 될 가능성이 더 많다고 생각되므로 내가 가지는 '뻔뻔스럼'은 일종의 '전략적 뻔뻔스럼'이다.

내게 한 가지 걱정이 있다. 가끔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감'에 대해서 혹시 대답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이다. 눈을 감으면 '靈'들이 내게 무수한 요구를 해오는 것 같다. 나는 항상 그들 앞에서 고개를 푹 숙여 있고, 그 영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다. 나는 그 영을 한 번 한껏 끌어안아 보고 싶다. 그것이 또한 '뻔뻔스럼'의 이유가 될 것이다.

과음을 하고 신나게 구토를 하고 나면 어질어질하기도 한데 '꺼억' 하고 트림이 나올 때는 우습다. 먹지 않고 오히려 뱉어냈는데, 트림이 나올 수 있을까? 과음에 대해서는 김수영이 일가를 이룰 것이다. 그의 산문집 안에 낙타과음이라는 재미있는 제목의 산문이 있는데, 오늘 머리감고 마르기를 기다리며 읽었다. 혼자 방안에서 키득키득 웃었던 모습이 아직도 도망가지 않고 옆에서 나를 간지럽히고 있다. 특히 무도 누나***의 회탐에 김수영 산문집이 귀엽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뿌듯함을 느꼈다. 나도 일종의 전도(傳道)를 한 셈이 되지 않느냐며 자랑스러워 하고 있는데, 깜찍한 발상이지만 끝내 지우긴 아쉽다. 무도 누나도 지금 머리를 밀었다 나갔다 하는 것 같다. 과음을 하고난 다음에 그 글을 읽으면 재미가 더한다. 시간이 되면 전문을 올려놓고 싶다.

지금도 기운이 남아 있어서 한껏 쏟아낼 것 같아 불안하다. 그러나 나는 '구토'의 진공청소기 같은 특징에 베팅을 하고 마음을 놓는다. 그렇게 게워내고 이불 안에서 배를 살살 만지며 천정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데, 갑자기 꼬마아기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애는 자주 동네에서 징징대는 아이인데, 징징대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통곡을 한다. 그 행위에 대해서 형용할 표현을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그러니까 내용은 징징대는 주제인데, 형식은 대성통곡이다.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분은 도움을 주면 고맙겠다. 평소에는 제대로 듣지 않았는데, 오늘 정확히 들어보니 '안아줘어-' '안아줘어-' 하며 통곡을 하는 내용이었다. 듣고보니 그 애는 평소에도 그런 내용으로 통곡을 하던 보기드문 꼬마다운 꼬마아기였다. 그래서 꼬마아기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 아이를 어디다 붙여 놓으면 좋을까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이렇게 밀집된 동네에 살고 있는 것은 하나의 행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도스또옙스끼도 '가난한 사람들'을 쓸 때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 집단으로 하숙하는 방에 살고 있었고, 마르크스가 자본론 등 저작을 쓸 때도 처참하게 가난한 방에서 썼다. 나도 '내친구 순병이'라는 소설의 착상을 여기서 얻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 동네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얼마 없으면 떠나게 되어 아쉽다. 내가 절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소음'들을 동네는 선사해준다. 그 중에는 특히 주목할 만한 '소리'가 있기도 하다. 옆집 할머니는 이틀에 한 번 꼴로 발악하는 소리를 지르고 또 이틀에 한 번 꼴로 빗자루질을 한다. 그 플라스틱 빗자루로 동네를 쓸 때 나는 그 소리는 피부가 꿈틀댈 정도로 큰 자극을 준다. 아무튼 내가 만들어내지 못하는 '소음'을 줄 수 있는 곳에 자주 가 볼 생각이다.

내가 구토하며 쏟아낸 것들을 다 썼는지는 의문이지만 이제는 밥먹으러 가야겠다. 내 눈은 지금 노랗게 변했고 화면도 잘 보이지 않는다. 옆에서는 짜장면, 짬뽕, 탕슉을 마구 먹으면서 냄새를 보내고 있고, 감기 기운이 나를 또 엄습한다. 이 때는 밥을 좀 먹어줄 필요가 있다. 해장국을 먹어야지. 아무튼 요즘은 내 문체가 살아나고 있는 것 같아서 즐겁다. 여자친구가 들으면 좋아할 내용일텐데, 여자친구를 따라서 나가면 좋은 자극을 받고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것은 일종의 외조(外助)가 될 것이다. 그런 외조를 많이 받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내조를 잘 해야 할 것 같다. 내조는 말할 것 없이 공부가 되겠는데, 어른들은 인생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에 한 마디를 들으면 그 전체적인 상황을 거의 정확하게 예측해낸다. 그것을 이순(耳順)이라고 하는데, 공선생님이 육십 세때 그러했다고 한다.**** 특히 많은 '소음'들이 '소리'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내공이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많은 '당함'이 '상처'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역시 많은 내조가 필요하다. 아무래도 나는 평생 공부만 할 운명일 것 같다는 풀쌍한***** 생각이 든다. 백면서생을 극복해 내면서도 공부를 계속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다.











*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從之, 其不善者而改之.
<論語> 述而第七 中 21章
**'님'자는 생략하도록 하겠음. 동료가 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생략하겠음. 글의 특성상 '님'을 생략했지만, 어쩌면 영원히 생략하는 것이 어떨까 하고 고민하고 있으나 그것은 당사자의 허락이 없으면 불가능하며, 또 많이 얼굴을 맞대지 않으면 불가능함. 이것은 회원탐구 안에 들어갈 내용이지만, 철수한찰에 대해서는 글 몇 꼭지와 사진 한 장이 전부이다. 특히 하얀 볼과 동그란 눈만 기억이 나는데, 그 똥그란 눈이 내게 어떻게 말을 걸어 올지 사뭇 궁금함.
***갑자기 '무도 누나'라고 해서 당황하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주를 붙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부를 때도 되지 않았을까요.
****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論語> 爲政第二 中 4章
*****'불쌍한'의 제주도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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