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또예프스끼 전집 - 전25권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외 22명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6월
평점 :
절판


오래전부터 그의 작품과 인생을 내 인생과 관계시켜서 주시했는데, 그것이 하나의 말을 이룰 만큼 그럴듯해졌기 때문에 쓴다.
먼저 기질, 성격, 분위기의 면에서 유사하다. 약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에다가 니힐리즘적인 면이 그러한데, 이것은 내가 부정할 수 없다. 인물로 따지자면 죄와 벌의 라스꼴리니꼬프라고나 할까? 게다가 도스또옙스끼(이름이 너무 치기 어렵다. 개스끼라고 하면 좋을 것 같은데, 건 너무하고 줄여서 도스끼라고 함)의 작품에 끊임없이 나오는 핵심 재료는 라스꼴의 친구 재간꾼이자 농담꾼 라주미힌(이름이 맞는지 불분명함)의 성격도 나는 갖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아주 침울해지기도 잘하지만 수월히 거기서 빠져나오기도 하고 운명의 명령으로 오랜 시간동안 그 안에 있어야 할 때도 있다. 게다가 '대인관계에서 위력을 발하는 농담의 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를 예의 주시하거나 예민한 사람들은 '능구렁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무도 누나 같은 사람은 '오버'라는 수식을 붙이기도 하는데 그러한 성격이 제일 두드러지는 순간은 아마 나와 한주먹성을 붙영놔둘 때가 아닌가 한다. 도스끼의 그러한 면에서 나오는 좋은 점들은 솔직히 내가 물려받고 싶은 거이기도 하고, 내가 영향을 받기도 한 것 같은데, 근본적인 성격이 맞물려야 그런 것이 가능하므로 아무튼 이것이 닮은꼴 베스트원이다.

두번째는 천박한 내 언어로 말하자면 '만병(晩兵)-만학의 구조를 살짝 따다가 지은 말'이라고나 할까? 나는 스물 여섯에 군에 들어갔었고, 도스끼는 서른 즈음인지 훨 넘어서인지 한번 더인지 암튼 무~쟈게 늦게 군대에 갔다. 그것은 도스끼의 인생 중에서도 전환점이 되며 그의 문학적인 측면으로 봐서도 연구가들은 전환점이라고 말하고, 그의 인생처럼 극적인 입대였다. 자세히 말하지는 않겠지만 도스끼 연구가들은 그의 문이 군대 사건을 중심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특히 나는 후기를 많이 좋아한다. 이보다 더 비슷해지기 위해서는 나는 군대가서 새파란 고참들한테 오만가지 능멸과 조롱을 당해야 하는데, 제발 그것은 닮고 싶지 않다.

세번째는 슬픈 거이기도 한 신체적 결함이다. 이점을 확대 해석하면 도스끼와 나의 만남의 문이 될 것 같다. 신체적 결함이라고 하기에는 내가 너무 건강한 편이지만 우격다짐으로 말을 더 하자면, 도스끼는 만성 간질을 앓았고 그 구체적인 시기는 자신이 선택하기도 하였을 테지만 대개 운명의 명령을 받았다.
늦게 깨달은 사실이지만 나는 사위(斜位) 증상이 있다. 생활상 거의 무리가 없는 증상이긴 하지만 작은 상을 지속적으로 쳐다보는 데는 무리가 많다. 게다가 작은 상을 지속적으로 쳐다보는 것을 업으로 삼을 경우는 가히 치명적이다. 약간 말을 더 하자면, 왼쪽 동공과 오른쪽 동공이 각도를 서로 협의해서 나오는 삼각형의 똥침으로 상을 쳐다보게 되는 게 일반적인 경우이다. 특히 책을 읽을 때는 왼쪽 동공과 오른쪽 동공이 더욱 긴밀히 협상해야 한다. 그런데 나의 경우는 왼쪽 동공과 오른쪽 동공이 불화하기 때문에 똥침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고 삼각형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서 엇갈린 엑스(X)자가 된다. 그것을 책의 글자라는 상에 비추면 당연히 글자가 붕 뜨게 되고 왼쪽 동공과 오른쪽 동공이 티격태격하는 만큼 출렁출렁하기 때문에 더 독서를 할 수 없다. 이것은 또 네번째 닮은꼴에 들어가야 할 테지만, 나같이 예민하고 섬세한(예민함과 섬세함의 차이점은 잘 모르겠지만) 기질을 가진 사람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휘말려 각종 합병증을 일으킬 위험이 크다. 지금도 그것 때문에 거의 하루 종일 신경을 쓰고 있어서 몸에서 꾸물럭꾸물럭 이상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무도 누나가 '건강에 신경쓴다면'이라는 리플을 달았을 때 의미가 심장해서 죽는 줄 알았다.
이 상황에 대한 나의 대처는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로 40만원에 해당하는 프리즘 안경을 써서 왼쪽 동공과 오른쪽 동공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란 점에서 '고래와 무리다'.
두번째는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안과 전문의와 상담을 추진하는 것인데, 이것은 군대 입대 시기와 관련돼 있기 때문에 불투명하다.
세번째가 가장 나닮은 대책인데, 과학적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의 간절한 갈망으로 대처하고 있다. 나는 갈망의 힘을 믿는다, 믿고 싶다. 그것을 여친에게 얘기했더니 끄덕끄덕 하면서도 못내 미적지근함을 감추지 않기는 하였지만, 그 갈망을 통해서 연속해서 최고 세시간 정도 되는 눈밧데리의 힘을 얼마간 더 연장시킬 수 있었다. 이것도 역시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지만. 눈밧데리가 한 번 방전이 되면 일단 시원한 풍경을 찾아서 밖으로 나가는데, 다시 충전될 때까지는 얼마를 기다려야 할지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아마 내 생각에 한잠을 자야 돌아오는 것 같았다. 최악의 경우 내가 하루동안 줄 수 있는 눈의 힘은 세 시간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무리해서 나아갈 경우 눈의 크기를 아주 작게 해서 상을 억지로 꿰맞출 수는 있지만 그렇게 되면 나의 안면근육과 표정에 문제가 생긴다. 나는 눈을 크게 떠야 된다고 울엄마는 누누히 강조한다. 안그래도 엄청 강한 인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안경으로 커버해서 평생 렌즈 끼는 것도 주저하는데, 인상까지 더 더러워지면 그야말로 '난몰라'이다. 하 하 하 하 하 하 '어쩜좋아'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당태종은 장군상이어서 아주 강인한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신하들이 두려워서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하는데, 하루는 당태종이 최측근 신하에게 물었다. 그 신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고, 그것을 고치기 위해 한동안 하루에 한두시간씩 거울 앞에 서서 인상 예쁘게 하는 연습을 꾸준히 했다. 그 결과 인상이 좋아지게 되어 신하들이 맘놓고 말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사위의 한 원인-최소한 발견하게 된 원인-은 도스끼에게 있다.
2000년 여름의 일이다. 문학동아리에 있으면서 마지막으로 했던 행사가 '독서토론회'였는데, 내 후배 역시 도스끼를 마음에 들어하고 있었으므로 작가를 도스끼로 정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 '죄와 벌', '백치', '악령', '까라마조프 형제들' 등의 작품을 2주마다 토론에 붙이느라고 그 여름 내 손에는 도스끼의 책이 떠날 날이 없었다.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후기 장편의 경우 단행본으로 따지자면 1000~2000페이지에 해당하기 때문에 위에 있는 굵직굵직한 책을 모두 합하면 적어도 5000페이지는 될 것이다. 아마 '까라마 형제들'을 마지막으로 토론하기 하루 전날이었던 것 같은데, 일이 있어서 미루다가 전날 1000페이지를 한꺼번에 읽었다. 그 때 글자가 상당히 깨졌기 때문에 책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나의 미신으로 보아, 그것은 도스끼가 나에게 선사한 선물이라 생각한다. '너는 너무 걱정거리가 없어서 굵직하고 심오한 글줄을 만들어내기 힘들어. 그러니까 이거 하나 달고 힘좀 내렴.' 하고 도스끼가 자주 속삭이는 소리를 다른 귀로 듣는다.

다섯번째로 신비스런 호기심이다. 물론 작가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생명의 원천이지만, 나도 좀 유난하다는 생각이 든다. 뒤에 나올 끝내망설임장에서 내 호기심의 진수가 드러난다.
도스끼와 내가 다른 점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하나 고르자면 그 사람은 극적인 인생을 꽉 채운 사람이었고, 나는 살아있는 소시민인 관계로 이리저리 쏠리는 반거충이라는 점. 반거충이는 반거들충이라고도 하는데 무엇을 배우다가 다 이루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이란다. 꼭 나를 가리키는 단어인 것 같아 뜨끔하다. 이외에 내가 좋아하는 우리말은 '음전하다'는 말이다. 이것은 김수영 산문집에서 처음으로 봤는데, '말이나 행동이 곱고 점잖다'는 뜻이다. 이것 또한 내가 결여된 것 같아 못내 아쉽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나는 아이와 많이 닮은 어른이 아이들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아이와 멀어진다고 해서 그에게 어른이라는 칭호를 줄 수는 없다. 우리는 '어른스럽다'*에 대한 이상한 견해를 갖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은 다시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들레르는 유년 시절 큰누이나 엄마의 품 안에서 오랜 시간 보호되지 못한다면 그가 아무리 위대한 천재라도 얼마간은 무미건조할 수밖에 없다고 조심스럽게 말한 적이 있는데, 이말처럼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천재여도 인간적인 감동을 주는데 한계가 있으며 정이 떨어질 것 같다. 지금 내가 의문에 부친 점은 다름아닌 '루소'**라는 사람인데 그가 아이를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지는 끝내 해결을 보지 못했다. 이에 대한 보다 명쾌한 설명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기다린다.
도스또는 아이들을 주제로 한 소설을 쓰기로 마음 먹었으며 그것을 까라마 형제들에서 완벽하게 표현해 냈다. 그것을 쓰기 위해 아동연구가이자 의사인 벗에게 편지를 보내서 아이들에 대한 당신이 아는 모든 자료를 보내 줄 것을 간절히 부탁한다. 그래서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까라마 형제 안에 넣을 수 있었고 그것이 또한 까라마 형제의 핵심 주제를 형성한다. 뿐만 아니라 까라마 형제의 백미인 법정 안에서의 변호인 최후 변론에서는 실러의 '군도'라는 작품을 인용하며 유년 시절에 대한 중요성을 부각하며 이반과 알료사의 진지한 대화 안에서도 '어린이'와 유년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고 있다. 나도 그렇게 아이들을 좋아하고 싶다. 마냥 마음만으로 좋아하는 게 아니라. 이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 뒷부분에 별록을 첨가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도스또는 희와 비와 미와 신비와 사랑 등 모든 인간적 고민을 한몸에 집중시킨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그를 닮으려고 하는 이유다.
나는 도스또옙스끼를 사랑한다.

요번에 서점에서 도스또의 아내인 안나가 쓴 남편의 이야기를 본 일이 있는데, 그것도 재미있었다. 틈틈히 가서 다 읽어야겠다. 여친이 김승옥 소설은 맘잡고 읽어보라고 하는데 읽을까 말까 고민중이다. 너무 철학적이고 어려운 책만 읽는다고 작은 누나도 말했는데, 이렇게 가다가는 또 치우쳐서 균형을 잡기 힘들 것 같다. 소위 통속이라는 것도 한 번 읽어봐야겠는데, 이런~ 나는 아직도 고전(古典)에 고전을 거듭하고 있다우.
역시 밥을 먹었더니 문체도 늘어진다. 더 쓸까말까 고민중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맞아! 아는지 모르겠지만 나 하나로 통신 일 짤렸다. 원래 4팀으로 운용하고 있었는데, 제주도의 신구간 때문에 8팀으로 만들면서 내가 투입되었다. 그런데 4팀으로 정상 운영할 수 있으니까 나는 필요없다고 하더라. 돈벌어서 대학원 등록금 빚진거 갚으려고 했는데, 그것이 끝내 아쉬울 것 같다. 이러한 결말은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인데, 생각해보면 참 그럴듯하고 내가 소설을 쓴다고 하더라도 이 결과만큼 극적이고 바람적이고 현명한 것은 없으리라고 확신한다. 나는 나의 인생을 주무르는 신적인 존재를 깊이 신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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